2007년의 시대정신을 위와 같이 정의 할 수 있을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으나, 2002년 노무현의 시대정신이 완결지어지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다음 시대를 맞아야 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그리고 “참여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한다”라는 의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를 향한 국민의 바람’을 지속시킴과 동시에 국민의 변화된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고 충족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2007년을 “다양성의 공존”이라 정의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역간 대립, 계층간 양극화, 이념의 충돌, 민족간 대결’을 모두 수용 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난 모름.
주민참여의 자치를 통한, 기득권과 특권 문화의 구조 개선.
지방분권의 정치를 통한, 지역주의 극복과 중앙권력의 분산.
이러한 시도가 의식구조의 개선을 가져오고, 그를 통해 경제적 격차와, 정치/사회/문화적 이질감에서 오는 갈등과 대립을 완화시킬 수 있지는 않을까. 통일을 준비해야만 하는 시대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준비되어 져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다양성의 공존’과 ‘주민참여와 분권정치’.
이렇게 연결짓는 것이 가능 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2007년의 시대정신에 포함 될 수도 있는 것이라면... 그때 떠오르는 인물이 있긴하다.
2007년의 시대정신은 무엇? 누구?
“겸손과 겸양, 그리고 비주류 속의 비주류”
- 1986년 전두환에 맞서 민주헌법쟁취 충북도민 결의 대회 : 구속(27세)
- 1988년 민정당 박희태에 맞서 민중당 후보로 총선 출마 : 낙선(29세)
- 2002년 경남 도지사 출마 : 낙선
- 2002년 민주당 노무현 후보 경남선거대책본부장
- 2004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총선 출마 : 낙선
- 2006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남도지사 출마 : 낙선
바보 스럽다. 지독히도..
“서민은 가난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한 것에 분노한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본인은 40년에 걸쳐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군부독재와 그 잔존세력들로 둘러싸인 불공정의 한복판에 서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전라도와 경상도의 싸움’이라는 개소리가 버젓히 통하는 그 독재와 지역주의의 한복판에서 20년 이상을 싸워오면서...
어쩌면 그러한 도전과 낙선의 경력도 유용한 훈장이 될터인데, 그는 별다른 자랑조차 하는법이 없다. 정말 바보?
아니다. 그는 이미 처음부터 느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민주화운동 경력을 정치생명 연장의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대다수 386들의 위선과 변절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처음부터...
그에게 있어서 낙선이란 것은,
도전하는 자의 당당한 자랑거리도, 지역주의에 맞서온 시간들에 대한 훈장도, 정치 생명력 연장을 위해 필요한 효과적인 도구도 아닌것이다.
그저 ‘할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겸손과 겸양의 담담한 의지. 이거 참으로 꺽기 힘든 신념인 것이다. 누구도 꺽지 못할 의지인 것인다.
노무현대통령은 그를 행자부장관에 임명했다.
이뻐서? 고생해서? 어려울때 도와주어서? 네버~!!
바닥 민중들에게 인정 받고, 지역주의에 맞서오며 보여주었던 그의 능력, 역량, 그리고 가능성을 주목 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대통령은 그러한 가치를 소중히 여겼던건 아닐까.
성공한 비주류 노무현 이었기에 가능 할 수 있었던.
2002년 유시민(현 장관)의 일갈, “운동권도 주류다”. 멋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외롭지 않다.
유시민이 현실정치에서 자칭/타칭 왕따라고는 하나, 그 역시 서울대 운동권 지도자의 경력과 그 인맥을 바탕으로 세력과 힘을 형성하고 있으니, 그리고 개혁 네티즌들의 열열한 지원도 있으니 말이다.
‘왕따는 맞지만 외롭지는 않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유시민 장관 탓하는 거 아니니 오해 말기를) 이와같은 의미에서 김두관은 비주류 속의 비주류이고, ‘외로운 왕따’라는 것이다.
“난 아직도 흥분을 해야만 하는가?”
개인적으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다양성이 공존하는 문화의 창출’이라 생각하며, 그를 위해 ‘주민참여를 통한’ 자치와 ‘지방분권의 정치’가 필요하다고도 여기고 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시대정신의 구현에 알맞은 지도자의 상은 대중과 서민의 삶 속에서 단련되고 수양되어진 ‘겸손과 겸양, 그리고 인화’의 지도력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는 바람이 있긴하다.
그리고 그에게 “나를 흥분시켜 주시오. 감동받게 해주시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시오!”라는 요구는 하지 않아야 겠다.
감동받고 지지해 주는, 그러한 주고 받음의 방식은 이제 좀 멀리 해야 할듯도 하다.
다만, 내가 정한 나름의 시대정신에 알맞은 삶을 살아온 것 인지, 준비는 되어 있는지, 그리고 신뢰 할 수 있는지, 그렇게 하나하나 찾아 살펴보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개천에서 용났다?[펌글]
dreamkorea.net 'DK사랑방'에 어느 회원님이 올리신 글입니다.
============================================================
'이장-군수-장관-대통령정무특보-집권여당 최고위원’
박희태 말하길, “동네 이장하던 그 촌놈이...”
어감과 의미는 다를 지언정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김두관의 모습이 아닐런지.
“개천에서 용났다”
중앙집권적 사고와 환경속에서 안위와 영화를 누리고 있는 이시대의 서울 양반들에겐, 그저 억세게 운좋은 시골 촌놈으로 비추어 지는 김두관.
친일과 반공 그리고 독재의 세월 속에서 구축되어진 수구의 영화.
혁명과 개혁 이라는 투쟁의 세월 속에서 영역을 확보해 왔던 민주의 훈장.
특권과 기득권을 이어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야 마는 지금의 존재들.
바로 중앙의 카르텔. 악어와 악어새.
‘감히 시골 이장 촌놈 따위가 나한테 덤벼?’ 박희태식 중앙 권력들의 사고.
‘지방에서 좀 놀았던 경력가지고 우리랑 같이 놀려구?’ 386식 중앙 권력들의 사고.
‘개천에서 난 용은 개천에서 놀아야 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왕조시대의 사고를 가지고, 휴대폰으로 TV보는 시대를 살고 있는 중앙의 카르텔.
그들이 하는 말. “개천에서 용났다”!
“용들의 전쟁, 그리고 싸움의 기술”
기약 없는 정치제도의 구조 개선(정당개혁, 개헌, 선거구제 개편 등..).
1년, 10년, 20년이 지나면 변할 수 있을까? 정말? 과연?
중앙 권력들의 기득권 영유를 위한 세련된 변화. 이러한 세련됨을 시대정신의 구현, 또는 진화된 역사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중앙 권력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개천에 담장쌓기 놀이’. '국민 접근 불가 놀이'.
이러한 꿍짝~이, 10년이 지나면, 그리고 20년 후에는 멈추어 질 수 있을까?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으로의 권력 분산과, 중앙의 정쟁을 주민참여의 분권정치로 바꾸어 내고자 하는 사고, 그리고 의지와 실천. 용들의 의식구조를 바꾸어야만 가능 한 것이 아닐런지.
정치제도의 구조 개선. 지역과 지역의 대립, 서울 양반과 지방 촌놈의 차별. 그리고 통일 이후의 남북 격차 해소에 이르기 까지.
바로 ‘자치와 분권’으로의 의식구조 변경에서 시작될 수 있는 것.
중앙 거대 공룡들의 기득권 영유라는 공통된 목표.
자치와 분권을 휩쓸어 버리는 용들의 한바탕 춤판, 그리고 정쟁이라는 근사한 싸움의 기술. 정쟁...
“시대정신은 대선승리의 핵심요소”
- 1992년의 김영삼 : 군부독재 종식과 문민정부 수립
- 1997년의 김대중 : 수평적 정권교체
- 2002년의 노무현 : 새로운 정치를 향한 국민의 변화와 개혁의 바람
- 2007년의 ? : ‘계급과 계층, 중앙과 지방, 남과 북’등..이 함께하는 다양성의 공존
2007년의 시대정신을 위와 같이 정의 할 수 있을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으나, 2002년 노무현의 시대정신이 완결지어지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다음 시대를 맞아야 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그리고 “참여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한다”라는 의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를 향한 국민의 바람’을 지속시킴과 동시에 국민의 변화된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고 충족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2007년을 “다양성의 공존”이라 정의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역간 대립, 계층간 양극화, 이념의 충돌, 민족간 대결’을 모두 수용 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난 모름.
주민참여의 자치를 통한, 기득권과 특권 문화의 구조 개선.
지방분권의 정치를 통한, 지역주의 극복과 중앙권력의 분산.
이러한 시도가 의식구조의 개선을 가져오고, 그를 통해 경제적 격차와, 정치/사회/문화적 이질감에서 오는 갈등과 대립을 완화시킬 수 있지는 않을까. 통일을 준비해야만 하는 시대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준비되어 져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다양성의 공존’과 ‘주민참여와 분권정치’.
이렇게 연결짓는 것이 가능 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2007년의 시대정신에 포함 될 수도 있는 것이라면... 그때 떠오르는 인물이 있긴하다.
2007년의 시대정신은 무엇? 누구?
“겸손과 겸양, 그리고 비주류 속의 비주류”
- 1986년 전두환에 맞서 민주헌법쟁취 충북도민 결의 대회 : 구속(27세)
- 1988년 민정당 박희태에 맞서 민중당 후보로 총선 출마 : 낙선(29세)
- 2002년 경남 도지사 출마 : 낙선
- 2002년 민주당 노무현 후보 경남선거대책본부장
- 2004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총선 출마 : 낙선
- 2006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남도지사 출마 : 낙선
바보 스럽다. 지독히도..
“서민은 가난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한 것에 분노한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본인은 40년에 걸쳐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군부독재와 그 잔존세력들로 둘러싸인 불공정의 한복판에 서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전라도와 경상도의 싸움’이라는 개소리가 버젓히 통하는 그 독재와 지역주의의 한복판에서 20년 이상을 싸워오면서...
어쩌면 그러한 도전과 낙선의 경력도 유용한 훈장이 될터인데, 그는 별다른 자랑조차 하는법이 없다. 정말 바보?
아니다. 그는 이미 처음부터 느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민주화운동 경력을 정치생명 연장의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대다수 386들의 위선과 변절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처음부터...
그에게 있어서 낙선이란 것은,
도전하는 자의 당당한 자랑거리도, 지역주의에 맞서온 시간들에 대한 훈장도, 정치 생명력 연장을 위해 필요한 효과적인 도구도 아닌것이다.
그저 ‘할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겸손과 겸양의 담담한 의지. 이거 참으로 꺽기 힘든 신념인 것이다. 누구도 꺽지 못할 의지인 것인다.
노무현대통령은 그를 행자부장관에 임명했다.
이뻐서? 고생해서? 어려울때 도와주어서? 네버~!!
바닥 민중들에게 인정 받고, 지역주의에 맞서오며 보여주었던 그의 능력, 역량, 그리고 가능성을 주목 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대통령은 그러한 가치를 소중히 여겼던건 아닐까.
성공한 비주류 노무현 이었기에 가능 할 수 있었던.
2002년 유시민(현 장관)의 일갈, “운동권도 주류다”. 멋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외롭지 않다.
유시민이 현실정치에서 자칭/타칭 왕따라고는 하나, 그 역시 서울대 운동권 지도자의 경력과 그 인맥을 바탕으로 세력과 힘을 형성하고 있으니, 그리고 개혁 네티즌들의 열열한 지원도 있으니 말이다.
‘왕따는 맞지만 외롭지는 않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유시민 장관 탓하는 거 아니니 오해 말기를) 이와같은 의미에서 김두관은 비주류 속의 비주류이고, ‘외로운 왕따’라는 것이다.
“난 아직도 흥분을 해야만 하는가?”
개인적으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다양성이 공존하는 문화의 창출’이라 생각하며, 그를 위해 ‘주민참여를 통한’ 자치와 ‘지방분권의 정치’가 필요하다고도 여기고 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시대정신의 구현에 알맞은 지도자의 상은 대중과 서민의 삶 속에서 단련되고 수양되어진 ‘겸손과 겸양, 그리고 인화’의 지도력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는 바람이 있긴하다.
그리고 그에게 “나를 흥분시켜 주시오. 감동받게 해주시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시오!”라는 요구는 하지 않아야 겠다.
감동받고 지지해 주는, 그러한 주고 받음의 방식은 이제 좀 멀리 해야 할듯도 하다.
다만, 내가 정한 나름의 시대정신에 알맞은 삶을 살아온 것 인지, 준비는 되어 있는지, 그리고 신뢰 할 수 있는지, 그렇게 하나하나 찾아 살펴보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의 겸손과 겸양속에 감추어진 굳은 의지와 결단, 그리고 실천과 결실.
그러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틈틈이 살펴 보아야 겠다.
“자랑할일 없다. 그저 해야할 일 묵묵히 해나가고 이루어가면 그뿐이다.”
“불공정에 분노하는 국민들을 대신해 불공정의 한복판에서 해야할 일들이 있다”
민중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묵묵히 기득권과 맞서고 있는 사람.
개천 송사리들의 절망과 분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중앙 기득권을 파헤치고, 권력의 분산을 시도하고 있는 사람.
그래서 우리와 가장 닮은 외로운 왕따, 슬픈 비주류.
이렇게 글로나마 당신에게 응원을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뱀발.
이땅의 모든 주류들이여~! 김두관을 조롱하며 "국민을 위한다"말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