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Star Part.1 [현진영]

송윤우200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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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석이라는 본명을 가진 현진영은 이태원의 클럽가의 각종 댄스경연대회에서 입상을 독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춤솜씨를 가진 재주꾼이었는데 이를 눈여겨본 이수만에게 픽업되어 SM기획의 첫가수로 90년 `야한 여자`를 타이틀로 데뷔한다. 데뷔당시 한국의 Bobby Brown을 연상케하는 세련된 매너로 가요계에 충격을 건냈으며 백댄스팀이었던 와와는 클론, 듀스 등의 스타를 배출하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히트곡으로 `슬픈 마네킹`, `난 깜짝 놀랄 짓을 할거야`, `흐린 기억속에 그대`, `두근두근쿵쿵` 등이 있으며 구본승의 `미궁`을 작곡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탁이준이 출신의 이탁과 함께 IWBH라는 그룹을 조직하기도 했다. 2002년 4집을 발표하고 `요람`을 히트시켰다.

한국 최고의 춤꾼이자 힙합 음악의 전도사 현진영. 환상적인 춤 실력을 지닌 그는 한국 가요계에 힙합 음악의 제대로 된 맛을 처음 선보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백댄서 출신으로 가수 데뷔에 성공한 최초의 사례로, 이후 이현도나 박진영과 같은 댄서 출신 뮤지션들의 전범이 되기도 했다. 잦은 구설수와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되면서 명예에 먹칠을 하기도 했지만,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며 재활에 성공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진영(본명 허현석)은 1971년 2월 3일에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리라 국민학교와 원천 중학교를 거친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춤과 노래에 심취해 학업에는 큰 미련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하게 된 것도 춤 때문이었다. 데뷔 전부터 이미 방송가에서는 알아주는 춤꾼으로 통하던 그는 가수 출신의 제작자 이수만을 만나면서 연예계 데뷔의 기회를 잡게 된다.


현진영은 데뷔 초기부터 가요계에 거센 돌풍을 몰고 왔다. 우선 그는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소울 창법을 구사했고, 미국 힙합 가수들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고난이도의 춤 실력과 랩을 구사할 수 있었다. 백댄서팀인 ‘와와’를 대동하고 내놓은 현진영의 1집 [슬픈 마네킹]은 가요 팬들에게는 문화적 충격과도 같았다. 또한 이 앨범을 통해 현진영은 작곡에도 참여하며 향후 만능 뮤지션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데뷔 음반의 성공에 고무된 현진영은 1992년 2집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발표하고 가요계 정상의 자리에 도전했다. 이미 같은 해 서태지가 한국식 랩 음악의 성공을 이뤄낸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진영 역시 더욱 정통에 가까운 랩 음악을 마음놓고 추구할 수 있었다. 백댄서인 이현도와 절친한 음악 동료 이탁 등이 작곡가로 참여한 이 음반은 서태지의 1집과 함께 1992년 최고의 히트작으로 기록되었다. ‘흐린 기억 속의 그대’와 같은 곡은 지금까지도 팬들에게 애창되고 있으며, ‘현진영 Go 진영 Go’ 역시 타이틀곡에 못지 않게 히트하면서 현진영의 전성기를 열어 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인기 정상의 자리에 오르면서, 현진영에게 가해진 심한 심리적 압박과 정신적인 고통은 그를 마약의 유혹에 빠지게 만들었다. 마약이 주는 일시적인 환각 상태를 통해 탈출구를 얻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현진영의 향후 활동을 끊임없이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다. 결국 1993년 3집 음반 [두근두근 쿵쿵]을 내놓고 얼마 안 있어 현진영을 비롯한 댄서 다수가 구속되는 사태가 빚어지게 된다. 그에게는 졸지에 마약 사범의 딱지가 붙게 되었고, 사회적인 냉대와 방송계 퇴출이라는 크나큰 손실 또한 감수해야 했다. 현진영은 이 때부터 4년이 넘는 긴 기간 동안 팬들에게 잊혀진 존재로 지내야만 했다.

현진영은 1997년 새로운 모습으로 가요계에 복귀했다. ‘탁2준2’ 출신의 이탁과 함께 I.W.B.H라는 힙합 듀오를 결성하고 돌아온 것이다. 이들이 내놓은 음반 [Stop Drug]은 제목 그대로 마약에서 벗어나려는 자신들의 의지가 담겨 있었고, 미국 본토 음악과 비교해도 떨어짐이 없는 출중한 힙합 음악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I.W.B.H에게는 좀처럼 방송 출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더욱이 팬들 역시도 현진영 전성기 때와는 달리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음반의 실패에 좌절한 현진영은 또다시 향정신성 약물 투여와 폭력 사건 등으로 얼룩진 시기를 보내게 된다.

오랜 고통의 시간을 감내한 그는 2001년 솔로 4집 음반 [Wild Gangster Hip Hop]을 내놓고 다시 한번 가요계 복귀에 나섰다. 이전과는 달리 팬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한국 랩 음악의 선구자로 현진영의 존재가 새삼 부각되는 시기였고, 마약에 연루된 연예인들에 대한 세간의 시각도 많이 누그러진 시기였던 탓이다. 현진영 본인도 재활원에서 고통스런 재활 과정을 거치며 의욕을 나타냈고, 이 모습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팬들의 동정표도 얻을 수 있었다. 더욱이 인터넷을 통해 자생적으로 생겨난 현진영 팬클럽의 지원까지 더해져, 현진영의 4집은 나름대로 흡족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결코 과거의 화려한 인기를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여전한 팬들의 사랑을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현진영에게는 큰 수확이었다.

이름 : 현진영 (본명: 허현석)
출생 : 1971년 2월 3일
신체 : 키: 170cm, 체중: 58kg
취미 : 음악감상
특기 : 전자오락
수상 : 1993년 미국 메릴랜드대학생 선정 최고 외국가수

경력 : 2006년 8월 영화 '신데렐라' 음악감독
         2004년 메이드 인 H.J.Y 음반기획사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