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_ one

이가람200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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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깨어나는 밝은 아침은 두렵다.

시끄럽고 번거롭고 바쁘고, 무엇보다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그 시작이 새롭다한들 어제와 다를바 없을거란 사실에 달갑지가 않다.

(물론, 그 하루하루의 신선함은 스스로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것이지만)

 

 

 

아니다.

좀 더 분명히 따져보자면 아침이 싫다기보다 새벽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새벽, 그 시간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내 귀로 들리는 소리는 오직 내가 만들어낸 것이고, 내 눈으로 보이는 것은 오직 내 눈 앞에 있는 것 뿐이고 새벽동안 나의 세계는 오롯이 홀로 커다란 존재감을 가진다.  그 존재감이 충분히 만족스럽고 매력적이기 때문에 새벽에 대한 사랑은 그렇게 오랫동안 버릴 수가 없는 모양이다.

 

 

 

따끈한 카라멜향 커피는 도톰한 유리잔에 담겨 나를 바라본다.

언제까지나 따뜻하게 나의 이번 새벽을 함께해주리라, 믿음직스럽게 모니터 앞에 데려다 두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반쯤 남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벌써부터 무덤하고 야속한 듯이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도 새벽의 이 시간을 즐기는 듯, 오늘의 따뜻함은 꽤 오래 간다.

 

 

 

오늘은 꽤 긴 문장으로 써내려 가고 있다.

애초에 글이라는걸 길고 정돈되게 써본것은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텐데, 글쓰기에 철없던 나는 짤막짤막한 감정의 나열들을 '글'이라 칭하며 스스로의 작문실력이 꽤나 괜찮다고 알게모르게 우쭐대고 있던 모양이다. 길게 쓰면 쓸 수록 써내려가는 속도는 느려진다. 고치는 횟수도 늘어간다.

 

 

 

 

'흥부는 제비다리를 고쳐줬다. 흥부는 참 착하다.'

광고에서는 글은 있지만 생각이 없다한다. 지금의 나라도 저 문장을 좀 더 멋진척을 하며 길게 늘려쓰는 정도일텐데ㅡ 정답이란 없겠지만, 오답은 있겠지.

그동안 내가 써온건 푸념과 체념 그리고 아픔과 기쁨.

감정 외의 다른 것을 설명하는데에는 재주가 없다. 아니, 감정을 나열하고 폭발하는 것 외에는 그것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한계다.

그나마 새벽이 아니면 그마저도 되지 않는 비참함, 그렇게 나는 새벽의 몽롱한 시간에 의존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어린시절의 새벽은 두근거림이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시간.

지금의 끄적임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의욕적인 시간들 이었다고 회상해본다.

(물론 기억이란 잔가지는 잘라내고 큰 줄기로 멋드러지게 포장되기 마련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칭찬을 받기위한 시간, 그게 좀 더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다음날 자고 일어나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새벽동안의 작업을 내놓으며 '칭찬'과 '부러움'을 받아 축적하기 위해. 그 축적된 에너지는 또다시 다른 새벽을 잠으로부터 지켜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나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머리가 커질수록 칭찬을 받는 횟수는 줄어만 갔다.

나만큼 칭찬받을 만한 사람들이 걸러져 주위에 그득하자 줄어드는 칭찬만큼 의욕도 줄어들어갔다. 스스로의 창작욕구는 늘어가도 왠일인지 점점 더 그 욕구를 스스로가 소화하여 풀어놓지를 못했다. 소화불량, 한번 체하고 나니 먹기도 두려워진다.

주위에는 잘먹고 잘 소화해서 잘 풀어두는 '칭찬받을사람'들이 끊이질 않았으므로.

 

 

 

 

그렇게 새벽은, 도피의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