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후불제이다.(나의20대 이야기)

김현수2007.02.19
조회147
나의 20대 이야기.

아래 글은 영삼성(www.youngsamsung.com) 에
20대 시절의 제 사진과 함께 기고한 글입니다. 
 


인생에 있어 신분이 변화하는 계기 혹은 사건은 대부분 20대에 몰려있다.
나 역시 20대, 그 짧은 10년을
소년에서 청년으로, 어른으로. 학생에서 군인으로 회사원으로 또 한 가정의 가장으로
정신없이 변신하며 살았다.

나는 스물 다섯에 만난 여자와 결혼을 했고
스물 여섯에 택한 직업에 여태 종사하고 있다.
스무살의 선택으로 평생을 살게 되버린 거다.
이십대의 선택은 그래서 중요하다. 

누구나처럼 입시 터널을 통과한 자의 자유를 만끽하며 20대를 출발했다.
당시 시대상황상 대학생의 30%는 소위 운동권 - 가담(?)의 정도엔 차이가 있지만 - 이었고
30%는 공부벌레였고,
마지막 30% 는 당시 처음 나온 용어인 오렌지 족, 혹은 오렌지 족이 되고 싶은 사람들 이었다.

나는 어느쪽에도 포함되지 않은 아웃사이더 였다.
현실의 부조리에 대항하거나,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하기 보다는
그저 주어진 자유를 누리며 가볍게 산 편이었다.
집안에 큰 시련이 있던 탓에 학비를 직접 벌어야 했지만
강남에서 족집게 과외 선생으로 소문이 난 바람에 비교적 쉽게 학비를 조달할 수 있었다. 

학문 ?
수학을 못해 문과를 택했는데
"‘콤퓨타’가 모든 집에 깔리는 시기가 10년안에 올것" 이라는 소신으로 응용통계학을 전공한 덕분에
4년 내내 수학 시험을 봐야했다..
(난 내가 살면서 시험에서 빵점을 맞게 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덕분에 공부를 잘 하지 못했다.


“군대 갔다 오면 사람된다 “는 말은 내게도 딱 들어 맞는 말이었다.
아니 사실 정확히 말하면 군대가 사람을 만들기 보다는
제대후 처음으로 부딪히게 되는 “현실”  - 가장 큰 현실은 먹고 사는 것 이고, 군대는 우리 생에 마지막으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집단이니까 - 이 사람을 만들었다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지금도 가끔 동창들을 만나면
“우리가 10년 늦게 태어났으면 취직도 못했을 것” 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당시엔 “취업난”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가고 싶은곳”을 가느냐  “갈수 있는 곳”을 택하느냐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웬만하면 취업은 다 했다. 공부 못한 내게도 “갈수 있는 곳”은 있었다.


첫직장인 코오롱에서 내가 처음 받은 월급은 이것 저것 떼고 나면 70만원 정도 였다.
매년 오르는 액수래봐야 고작 3-40만원 정도 였는데
그나마 IMF 여파로 연봉이 오르긴 커녕 깎이는 바람에
퇴직할 당시, 서른이 된 내 월급은 여전히 초봉 수준이었다.

공부 잘해서 금융권에 취직한 친구들 중엔 연봉이 내 세배인 경우도 있었으니
학교든, 군대든 늘 남과 같은 조건 하에 놓여있다가
처음으로 세상의 불공평함(unfair)을 실감한 시기였다.
그리고 그 불공평함의 수혜자가 되느냐 피해자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본인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1/3 수준의 연봉은 대학시절 내 삶이 받은 성적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입사후 1년이 지나자 104명의 입사동기가 하나 둘 퇴사하기 시작했는데
내 눈에만 그렇게 비친건지는 몰라도 직장을 박차고 나가는 순서가
집안이 좋거나 능력이 뛰어난 순 이었던 것 같다.
소위 말해 대안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은 선택이 자유로왔던 거다.


당시 나는 서울 가장 싼 곳에 반지하 월세 방한칸 얻어 혼자 먹고 자던 처지였다.
회사를 그만두면 당장 하루도 먹고 살 방법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소처럼 일하는 방법 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구체적인 목표가 없던건 아니었으나 그 접근법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이회사 사장이 되려면 내 동기 100명 내 아래위 동기 각각 100명 총 300명중에서 일등하면 되는 것.” 이란 생각만 품고 살았다.

단 하루 휴가도 쓰지 않고 주말도 없이 새벽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는 생활이 5년간 이어졌고 
그러다 보니 300명중에 1등은 아니어도 적어도 동기 중에 가장 진급이 빠른 상태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십대를 마감하던 해 사표를 내고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밑천은 이십대의 반을 털어 배운 일. 그게 다였다.


나는 인생은 후불제라고 생각한다.
하루 15시간 일하고 7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20대를 보냈는데
지금은 그 보다 훨씬 적게 일하면서 수십배의 돈을 벌고 있다.
그 이유가 내 실력이 그 시절에 비해 수십배 향상된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때 받을 보상을 지금 후불로 받고 있다는 생각이다.

피카소는 단 몇분만에 초상화 한장 그려주고 엄청난 돈을 받으며 “그림 그리는데는 몇분 안걸렸지만 이렇게 받는데 몇십년 걸렸다”고 했다.

대기업의 중역과 말단 직원의 연봉은 수백배 차이가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중역이 연봉차이 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연봉차이의 시간만큼 더 일하는 건 더더욱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열심히 산 모든 이는 이십대에 유보되었던 보상을 언젠가 후불로 받게 되며
그 액수와 시기가 조금씩 다를 뿐이라는 생각이다.

인생은 후불제고 얼마를 받느냐를 결정하는 시기가 바로 이십대다.
바꿔 말하면 인생을 즐기기 위해 선불을 지불하는 시기가 바로 찬란한 이십대다.
그런 이유로 이십대에 하는 모든 일들중 쓸모 없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

출처 : http://blog.joins.com/yjyljy/7355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