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와 자유 민주주의-우리가 잘못 알고있는 두 단어

김간중200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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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갱이는, 북한의 경우처럼 겉으로 열린 공동체를 지향하지만 실제적으론 소수의 권력과 이권만 챙기려고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독재정치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에 이용당하는 사람들 역시 포함되지요.

  그리고 박정희 역시 그렇게 똑같이, 그럴싸한 명분만 내세우고 독재정치를 했기 때문에 그 둘은 모두 같은 전체주의자 곧 빨갱이죠. 결과론적으로 경제성장한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운칠기삼의 성공을 그의 본질처럼 말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죠. 
  그래서인지 저 둘을 정신없이 추종하는 분들의 사고방식은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수령님 우리들은 행복해요'라는 세뇌된 소리와 종종 감동받은 눈물도 흘려주는 객체적 근성까지. 

  하지만 어떤 이들은 사회구성원의 실질적인 자유를 추구합니다. 그들은 순진하게 부자들만의 시장경제적 자유라는 사이비 자유를 자유로 착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실질적 경제생활과 문화생활의 영위에서 공동체 구성원의 실질적 자유를 추구합니다. 
 자유란 무한하고 고유한 그리고 다원적인 개체들의 상호 조화임을 아는 그들은 진정한 자유주의자들입니다. 
 
  또 그들은 민주주의가 형식적인 1인 1표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아무리 형식적 법률이 같더라도 무직자와 기업인의 형선고가 극과 극이라는 것을 알고 있듯, 선거의 4대 원칙이 실질적으로는 기만임을, 사실 정치적 영향력은 소수의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그들만의 리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주의자들은 끊임없이 그런 부당한 격차를 해소하려고 합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인간과 백성에게 최대한 합리적인 시스템을, 人民에게 윤리적 당위성을 실현하고자 나아갑니다. (이 실현 과정이 점진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방법론적 차이와 현실 해석의 차이로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겠습니다) 
  민주란 실질적으로 경제와 문화적 일상생활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고 있는 그들은 진정한 민주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와 함께 그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자를 보고 또한 그 무대를 만든 이들의 땀을 잊지 않습니다. 그들은 수면 위의 빙산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 더 큰 빙산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주의 대부분이 평범한 시선에는 잡히지 않는 암흑물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지역의 비싼 땅값이 다른 땅과 다른 이들의 관계속에서 이뤄지는 결과물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건희를 무인도에 내놓으면 몇 조는 커녕 몇 만원의 가치도 생산할 수 없는 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자유와 평등은 서로 대치되지 않습니다. 모든 개체들의 고유한 특질을 살려내는 것, 그것들이 자유로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위해, 자유로운 공동체, 열린 공동체를 위하여. 그들은 창조적인 여행을 떠납니다. 때론 무소의 뿔처럼, 때론 시편 23편 처럼, 때론 진인사대천명처럼 하지만 때론 장자의 나비처럼 그렇게.  

  그래서 그들은 박정희나 김일성처럼 모두를 위한다면서 전체주의로 한 사람 한 사람을 핏빛 권력을 휘두르는 진짜 빨갱이와는 다릅니다. 
  자유로운 공동체주의-열린 공동체주의들을 혹자는 코뮤니즘이나 아나키즘이라고도 부르지만, 동시에 그것은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입니다.

 

*이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자들이 누구인지는 각자 판단할 문제입니다. 완벽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무엇이든 흔들리는 일시적인 존재자들입니다. 관계망에서 그 존재의 규정이 임시적으로 내려질 뿐이지요. 그렇든 진보도 스스로에 대하여 진보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진부가 되어 버립니다. 제가 보기엔, 실제로 많은 진보 세력들은 매너리즘에 빠져서 진보진영을 사고의 식민지로 만들고(이탁오의 개처럼), 선정성을 바탕으로 감상적인 사이비 진보로 보입니다. 진짜 진보는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천천히 만들어가야할 존재이며 올바르게 세워가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