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성 시인의 ‘답청(踏靑)’

국정홍보처200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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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 시인의 ‘답청(踏靑)’

  정희성 시인의 ‘답청(踏靑)’     풀을 밟아라

들녘엔 매맞는 풀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룰 수 없어

봄은 스스로 풀밭을 이루었다

이 나라의 어두운 아희들아

풀을 밟아라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

풀을 밟아라




유례없이 따스한 겨울이다. 지구의 온난화를 걱정하는 소리도 자주 들린다. 그런데 나는 사람보다 풀이나 나무가 더 걱정이다. 이 지구의 겨울을 이렇게 만든 게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초목들이 섣불리 봄이 온 건 아닌가 하고 착각할까봐 두렵다. 한때 봄이 오기 직전에 보리밭 밟기를 장려한 적이 있었다. 날이 따스해지면 보리의 뿌리가 들뜨게 마련이어서 꼭꼭 밟아주어야만 뿌리를 단단히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시인이 70년대에 역사 현실 속으로 구체적인 시선을 돌리기 직전의 시다. 그 행보를 예감하고 있는 시라 하겠다. 풀을 밟는 어두운 아이들은 권위주의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상징한다. 김수영의 ‘풀’과 함께 한 시대의 꿈을 키워주던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