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몸을 4등분 한다면 "木"이라는 한자는 머리로, "村"이라는 한자는 상반신으로, "拓"은 허리, "哉"가 다리. 만져본다면 분면 울퉁불퉁 하고 딱딱할 것이다.
만약 기무라 타쿠야가 기무야 타쿠야로 있기 위해 무슨일이 있어도 빼머릴수 없는것이 있다라고 하면 첫째는 "왕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일도, 놀이도,사생활도, 바보짓을 할 때도,파도타기를 할때도 시간을 잊어버리고 한다.
낚시도 그렇다. 아무리 잡히지 않았닥 해도 정말로 즐겨가며 시간을 보낸다.
물론 드라마도,노래도,버라이어티도 정말 성실하게 한다.
다음은 "미간의 주름". 뭔가에 빠져서 자신이 그 속에 몰입해 있을대, 미간에 주름이 생기는 것 같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여러 가지를 본다던가 듣는다던가 만진다던가해서 스위치가 들어와 있는것. 자주 오해를 받게 되긴 하지만.. "왜 화나 있어요?" 라고...
"기무라 타쿠야"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그렇게 물리어져 왔지만, "기무타쿠"는 그렇지 않다. 언젠가부터 발생하여 나의 의사와도 상관없이 그렇다고 세상에 퍼져있다.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기무타쿠"라고 불려지는데도 익숙해져 있다.
일단, 그 존재는 인정하고 있다.
밥을 먹으러 가도 그 ㄱ돗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97명은 "아! 기무타쿠다"라고 말한다.
대기실의 입구에 "기무라 타쿠야"라고 적혀있어도 지나가는 사람은 "기무타쿠"라고 한다.
자주 한자에 영어로 맞춘 글자를 쓰곤한다. "질투"라고 쓰고 "젤라시"라고 읽는 것 같이...왠지 그런 느낌도 든다.
"기무타쿠"라고 하는 것은 어쩐지 공공물같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수년전 주간지 일을 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나의 주의 사람들은 찍은적이 있었다. 그때 직접 만나서 그러지 말라고 항의 했더니 그 사람은 "기무라씨는 공인이니까 이쪽은 알 권리가 있다."라고 당연한 것 같은 얼굴로 단언했었다. "아~ 그런건가?"라고 생각했지만, 물론 그것에 대해 납득은 못하고 있다.
"기무타쿠"라는 것은 누구라도 들어올수 있고 누구라도 나갈수 있다.
이것이라고 말할수 있는 건축물도 아닌 휑덩그레한 공원과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기무타쿠공원"에는 모두 마음대로 이미지를 만들어 놀기도 하고,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냥 지나가버린다. 그 곳에서는 기무라타쿠야 나 자신이 놀기도 한다.
가끔은 재미있지만 언제나 즐거운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라디오에서 자기소개를 할때 "여러분 안녕하세요 DJ기무라입니다."라고 말할때가 있다. 그런때는 7할은 자기비하를 하고 있는것.
기무타쿠를 나는 기무라 타쿠야보다 아래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기무라 타쿠야라고 하는 사람이 트랙을 달리고 있다고 하면 기무타쿠는 그 뒤를 쫓아가고 있다는 느낌.
상당히 돌아서 갈 때도 있는것 같지만...
일을 하고 있을때는 기무라타쿠야라고 하는 나 자신을 나 자신으로 보고 있다고나 할까, 프로듀서와 같은 눈으로 객관적으로 보는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나에게 시키는 일을 알고 있지 않다면 책임감을 갖지 못할 뿐더러 그것은 주위에 대해서도 실례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일의 상황은 누군가가 준비하고 나는 단지 그 일부가 되어있던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현장"의 사람. "스마스마"라면 "스마스마"의 사람. 취재를 할 때는 그 쪽 잡지의 살마. 언제나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기무라 타쿠야를 하고 있지만 예를들어 다시 한번 태어낤 수 있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다시 기무라 타쿠야로는 태어나지 않는다. 1번으로 족하다. PART2는 없다.
VOL 1. 木村拓哉
1996. 11
나에게 있어서 "木村拓哉 (기무라 타쿠야)" 단순한 이름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존재 그것
나의 몸을 4등분 한다면 "木"이라는 한자는 머리로, "村"이라는 한자는 상반신으로, "拓"은 허리, "哉"가 다리. 만져본다면 분면 울퉁불퉁 하고 딱딱할 것이다.
만약 기무라 타쿠야가 기무야 타쿠야로 있기 위해 무슨일이 있어도 빼머릴수 없는것이 있다라고 하면 첫째는 "왕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일도, 놀이도,사생활도, 바보짓을 할 때도,파도타기를 할때도 시간을 잊어버리고 한다.
낚시도 그렇다. 아무리 잡히지 않았닥 해도 정말로 즐겨가며 시간을 보낸다.
물론 드라마도,노래도,버라이어티도 정말 성실하게 한다.
다음은 "미간의 주름". 뭔가에 빠져서 자신이 그 속에 몰입해 있을대, 미간에 주름이 생기는 것 같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여러 가지를 본다던가 듣는다던가 만진다던가해서 스위치가 들어와 있는것. 자주 오해를 받게 되긴 하지만.. "왜 화나 있어요?" 라고...
"기무라 타쿠야"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그렇게 물리어져 왔지만, "기무타쿠"는 그렇지 않다. 언젠가부터 발생하여 나의 의사와도 상관없이 그렇다고 세상에 퍼져있다.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기무타쿠"라고 불려지는데도 익숙해져 있다.
일단, 그 존재는 인정하고 있다.
밥을 먹으러 가도 그 ㄱ돗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97명은 "아! 기무타쿠다"라고 말한다.
대기실의 입구에 "기무라 타쿠야"라고 적혀있어도 지나가는 사람은 "기무타쿠"라고 한다.
자주 한자에 영어로 맞춘 글자를 쓰곤한다. "질투"라고 쓰고 "젤라시"라고 읽는 것 같이...왠지 그런 느낌도 든다.
"기무타쿠"라고 하는 것은 어쩐지 공공물같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수년전 주간지 일을 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나의 주의 사람들은 찍은적이 있었다. 그때 직접 만나서 그러지 말라고 항의 했더니 그 사람은 "기무라씨는 공인이니까 이쪽은 알 권리가 있다."라고 당연한 것 같은 얼굴로 단언했었다. "아~ 그런건가?"라고 생각했지만, 물론 그것에 대해 납득은 못하고 있다.
"기무타쿠"라는 것은 누구라도 들어올수 있고 누구라도 나갈수 있다.
이것이라고 말할수 있는 건축물도 아닌 휑덩그레한 공원과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기무타쿠공원"에는 모두 마음대로 이미지를 만들어 놀기도 하고,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냥 지나가버린다. 그 곳에서는 기무라타쿠야 나 자신이 놀기도 한다.
가끔은 재미있지만 언제나 즐거운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라디오에서 자기소개를 할때 "여러분 안녕하세요 DJ기무라입니다."라고 말할때가 있다. 그런때는 7할은 자기비하를 하고 있는것.
기무타쿠를 나는 기무라 타쿠야보다 아래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기무라 타쿠야라고 하는 사람이 트랙을 달리고 있다고 하면 기무타쿠는 그 뒤를 쫓아가고 있다는 느낌.
상당히 돌아서 갈 때도 있는것 같지만...
일을 하고 있을때는 기무라타쿠야라고 하는 나 자신을 나 자신으로 보고 있다고나 할까, 프로듀서와 같은 눈으로 객관적으로 보는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나에게 시키는 일을 알고 있지 않다면 책임감을 갖지 못할 뿐더러 그것은 주위에 대해서도 실례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일의 상황은 누군가가 준비하고 나는 단지 그 일부가 되어있던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현장"의 사람. "스마스마"라면 "스마스마"의 사람. 취재를 할 때는 그 쪽 잡지의 살마. 언제나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기무라 타쿠야를 하고 있지만 예를들어 다시 한번 태어낤 수 있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다시 기무라 타쿠야로는 태어나지 않는다. 1번으로 족하다. PART2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앞으로 전진할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