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엘 왜 가려 합니까.

백윤아2007.02.24
조회12,596

 

 

내가 동경했던 건 서울대의 이름값이 아니라 서울대생들의 그 순수한 열정과 학문을 위해 쏟는 노력이었어. 내가 봐 온 분들은 또 다들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고. 근데 다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서울대라는 이름이, 아니 대학이라는 곳이 젊음의 꿈과 순수와 프라이드가 아닌 학벌과 권력과 아집을 위한 이익집단으로 변절해 버렸다면, 그런 곳을 존속시킴에 무슨 의미가 있지?

 

 

난 그래서 의대가 싫더라. 뚜렷한 윤리관도 가치관도 없이 그저 안정된 삶을 위해 의대에 가고 의대를 목표로 하고 그 모든 젊은 날의 꿈과 힘을 다 바쳐서 얻고자 하는 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지 의문이 들어. 솔직히 의사 협회네 약사 협회네 자기네들 이익다툼 하는 거 보기도 싫고, 병원마다 필요없는 검사 잔뜩 하고 처방 잔뜩 해 주고 기록까지 조작해가면서 보험금 타 내고. ..하긴 그러니까 정말 훌륭한 의사들이 빛을 얻는 건가...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일부에 대한 거. 이게 의사들에 대한 일반론이 아니길 빈다 진짜.

 

 

아는 여자애. 나보다 한 학년 아래인 과학고에 다니는 여학생인데, 좀 당돌하긴 하지만 인물 바르고 똑똑한 앤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 자기를 좋아한다고 고백해온 같은 학교 선배에게 "선배는 공부해서 대학이나 가세요"라고 말했다는 거 듣고 그야말로 패닉. 딱 그 말을 들은 순간에 떠오른 말 한 마디 "이 싸가지"

 

 

물론 설마 저렇게 말했겠어? 그건 아니었겠지. 근데 문자는 달라도 말에 담긴 뜻은 더 날카로웠겠지. 외고는 어쩐지 모르겠다만, 과학고는 대부분의 학생이 2학년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지? 고백했다던 그 선배는 3학년반이었을 테니 2학년만에 대학을 가지 못한 경우겠지. 그 학교 내에선 그리 썩 공부를 잘하는 축은 아니었을 테고 말야.

 

 

근데 그거 할 말이라고 생각해? 첫째 자기를 좋아한다는 이성에게 할 말이 아니고, 둘째 후배가 선배에게 할 말이 아니고 셋째 오만과 엘리트 의식으로 덮인 그 말 속에 담긴 뜻이 난 무서워.

 

 

그 애가 서울대를 간다고 생각해 봐. 아니 유학이라던지 카이스트던지 포공이라던지 이런 거 제외하고 일단 서울대. 갔다고 생각해 봐. 같은 학교 선배도 그런 말로 무시해버린 애가 일반고 졸업한 애들 실업고에서 온 애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해 줄 거라 생각해? 여기서 자기 프라이드와 오만은 제발 좀 구분하자. 자기보다 부족한 사람 포용할 줄 모르고 자기와 다른 사람 이해해줄 줄 모르고 저 위까지 올라가서 혹 신의 땅에 닿는다 할지라도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 타인을 위함이 아닌 재주와 열정은 진정으로 쓰일 수 없는 것임을,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알아줄까?

 

 

고3 올라가는 입장에서 이건 나에게도 큰 깨달음이다. 안정된 보수도 좋고 자기개발도 좋고 다 좋지만 단 하나 기억해야 할 건 "모든 사람을 위한" 노력이 되고 꿈이 되고 재능이 되어야 함을. '공부해서 남 주자'라는 구절을 천천히 곱씹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명문대라는 이름에, 그 간판에 목숨을 걸지 말고 '무엇을 위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지'가 더 중요함을, 허울만의 엘리트 의식이 아닌 진정 순수와 꿈을 간직한 엘리트가 되기를. 그 간극을 바로세우길 빈다. 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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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3 올라가는 자연계 학생입니다. 한 달쯤 전에 썼던 글이구요. 나름대로 대입에 대해 많이 고민을 하고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다른 분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변에서 대학생활 하고 있는 친척들, 선배들, 줄곧 봐오면서 느끼는 거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전공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빤 왜 의대에 갔어?"라고 물어보면 "점수가 그렇게 나왔으니까"라던지요....(그 점수가 도대체;;ㄱ=) 반대의 경우가 더 많지요. 점수가 낮아서 가고 싶은 대학을, 가고 싶은 학과를 못 가는 경우 말이죠. 올해 입학하는 선배 중 한 분 있네요. 약학계열 합격통지 받고도 평소 소신대로 생명공학 전공하겠다며 등록했습니다. 취업난으로 인한 현행 입시 제도의 대학 서열화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이와 같은 문제점을 바로잡을 수 없겠죠. 그렇지만 그런 물질적인 가치로 한 번뿐인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고3 친구들 최선을 다해서 내년 이맘때쯤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꼭!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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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26일, 간단하게 한 마디 추가하고자 합니다. 사실 이런 길기만 하고 쓸데없는 글 묻힐 줄 알았습니다 ㅠㅠ (제목이 그렇게 선정적이었을까요;;;) 정말정말 의외로 너무 많은 분들이 댓글 올려주셔서 놀랍기만 한 마음입니다. 대학진학 자체의 필요성을 따지는 게 아닙니다. 과격한 말로 옮기자면 '그럴거면 대학 왜 가니'라는, 상위 일부를 타겟으로 삼은 글이었고, 주제를 말하자면 "대학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제대로 전달이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댓글 읽어보면서 여러 생각 많이 했습니다. 좀 더 겸허한 마음을 가지자는 생각도 했고 저보다 훨씬 더 견문 넓으신 분들의 통찰력이 담긴 의견도 받아들였습니다. 굳이 모든 사람의 찬성을 구하고자 쓴 글은 아니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글도 아닙니다. 그 점은 분명히 하겠습니다. 제 뜻을 곡해하신 듯한 분도 몇몇 계신 듯 합니다만... ㅠㅠ 주제는 저거에요 밑줄 그은 거(...) 그에 대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겠지만 제 신상에 관한 거나 글의 말단에 대한 기타의견(일반적으로 태클 등)은 논외로 치겠습니다. 그리고 의대를 비하한 건 아니라는 거, 분명히 해 두고 싶습니다. 의대를 졸업한 후의 그 몇몇 의사 아닌 기꾼이들의 예를 들어 봤는데 의사집단 전체를 비난한 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글의 말단이 아닌 주제를 봐주세요. 그 점은 부탁드립니다.

 

P.S.:그리고 제가 쓴 글 맞습니다^^;; 날짜 보니 1월 20일날 처음 썼던 글이네요. 제 블로그에 올렸다가 여기 처음으로 옮긴 건데, 그 사이에 어디서 보신 걸까요; 그 점은 저도 궁금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