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의 사랑은...중에서

이정은2007.02.26
조회41
김C의 사랑은...중에서

옛이야기를 자주 하기 시작한 것을 보니, 그녀도 나이를 먹은 게 틀림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깝게 놓쳐버린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지금 같았으면 코웃음거리도 안됐을 이유 때문에 포기해버린 남자들,
그들과의 추억은 세월이 지날수록 뽀얗게 더 예뻐지고 있었다.
“아, 지금 같았으면 그 남자 절대 안 놓쳤는데!”
이렇게 후회해 봐도, 이제는 소용없는 일이다..

“나이 드니까, 주변에 남자들이 자취를 감춰버리더라고... 누가 그럴 줄 알았나?”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창과 술잔을 기울이며
서른의 서글픔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제일 억울한 게 뭔지 아냐? 이제는, 옛날 같은 추억을 만들 수가 없다는 거야...
예를 들어서 봐봐. 내가 만났던 그 두 살 연하 있지?
6년 전에 걔랑, 맨날 여기서 술 마시고, 우리집까지 걸어갔거든.
당연히 오래 걸렸지! 한 세 시간 걸렸나? 그래도 그땐 그게 얼마나 좋았는데...
나이 서른에, 이제 누가 그런 짓을 같이 해주겠냐?”
그때 그 녀석을 잡았어야 했다며 똑같은 레퍼토리를 읊어대는 그녀에게
동창 녀석은 깜짝 제안을 했다.
오늘 하루 자기 한 몸 희생할 테니 그녀의 집까지 걸어서 가보자는 것이었다.
그녀는 팔짝 뛰며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들은 먼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깊은 밤이었지만 후덥지근한 공기에 그들은 곧 땀을 흘리기 시작했고,
6년 전과는 달리 높은 굽을 신고 있던 그녀는 발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네 시간이 지나 동네 어귀에 이르렀을 땐, 하늘 높이 치솟은 해가,
땀에 팅팅 불은 그들의 모습을 아주 잔인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간신히 그 둘이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땀과 섞여 흘러내린 화장품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마침내 인정했다.
“역시, 추억은, 억지로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부다.
이것도 어렸을 때, 두근두근하는 남자랑, 철모르고 했어야 좋은 짓이지..아휴...”
그러자, 푹 젖은 와이셔츠가 온몸에 달라붙어 그녀만큼이나 추한 몰골이던 동창은
뒤돌아 가기 전, 가벼운 말투로 이렇게 말해주었다.
“혹시 아냐. 나 놓치고 5년쯤 지나면, 이것도 추억이 될 지...”

추억이란, 나중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되는 일들이다.
사랑의 가능성이라곤 씨가 말라버린 것 같은 이 삭막한 현재도,
미래로 날아가 되돌아보면
그래도 꽤 거둘만한 씨앗들이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김C의 사랑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