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문화유산이다.
'토함산 석굴암'을 알리는 일주문.
언뜻 보기에 가분수처럼 보여 쓰러지지 않을 까 걱정이 될 정도인데,
뭐 알아서 설계를 했겠지...
토함산 자락에 위치한 석굴암.
지금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정면에서만 볼 수 있도록
유리벽을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조형물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천년동안 습기와 이끼도 끼지않을정도로
완벽한 제습 메카니즘을 가진 미스테리한 건물.
하지만...
순수하게 돌로만 구축된 건물을
일제시대에 보수를 한답시고 시멘트를 바르는 바람에
지금은 통풍이 제대로 되지않아 습기로 가득차
제습기와 펌프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비통할 따름이다.
사진 출처 : 석굴암 홈페이지
원형 공간의 얼개를 지닌 석굴암 주실의 돔형 천장.
석굴암 주실의 돔형 천장을 사진으로 보는 순간
로마의 '판테온 신전'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최근에
불교미술사가인 이주형 서울대 교수가
현재 내전 중인 아프가니스탄 지역 고대 석굴이
8세기 작품인 석굴암의 설계 당시 유력한 모티브였으며,
그 뿌리는 1~2세기 로마시대 신전건축(판테온)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따져봐야겠지만,
아무튼 비슷하긴 정말 비슷한 듯...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예전에는 통로였던 곳이 지금은 '통제구역'으로 막혀 있었다.
석굴암에서 바라본 풍경.
본존불도 이 풍경을 바로보고 있겠지?
방명록처럼 외국인들이 기와에 느낀점과 소망을 적어놓은 '기와불사'들이 많이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이라 그런지 역시 외국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듯 하여 뿌듯했다.
석굴암 일주문을 나오면 볼 수 있는 '종' (이름은 모르겠다.-_-)
석굴암 주차장에서 바라본 풍경.
사실 석굴암은 볼 게 그렇게 많지 않은 곳이다.
오직 석굴암 자체밖에 없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지만,
석굴암의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의 유기학적 미를 이해한다면
석굴암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창건하였다는 석굴암을 둘러보고
이번에는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창건하였다는 불국사로 향했다.
불국사 입구에 있는 불국사의 배치도
토함산 불국사를 알리는 '일주문'
석굴암의 '일주문'과 달리 안정적으로 서 있다.
불국사로 가는 길.
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하기만 했다.
여름에 왔으면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로 푸른빛이었을 정원.
지금은 겨울이라 앙상한 나무들로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천왕문에는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이 불국사를 지키고 있었다.
어릴적에 다른 사찰에서 봤을 땐, 엄청 무서워 보였었는데,
이 곳의 사천왕들은 모두 웃고있는 상이어서인지
아님 내가 훌~쩍 커버려서인지
암튼 별로 무서워 보이진 않았다.
천왕문을 지나 걸어가다보니
톱으로 잘린 것 같진 않고... 벼락을 맞았는지 암튼 새총 모양의 나무가 서 있었다.
드디어 불국사를 가장 대표하는 청운교와 백운교의 모습이 보였다.
국보 제 23호인 청운교와 백운교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에 있는 것은 백운교로 길이 6.3m에 17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에 있는 것은 청운교로 길이 5.4m에 16계단으로 되어 있다.
청운교의 아래 부분은 무지개 모습의 홍예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들 계단은 부처님이 계신 도리천을 의미하며,
33이라는 숫자는 욕계 제2천인 33천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청운교/백운교 옆에는 국보 제 22호인 연화교와 칠보교도 보였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대웅전 서쪽에 위치한 극락전 영역을 오르는 석조계단으로, 보통 연화칠보교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양식은 청운교. 백운교와 같으나 규모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는데, 연화교는 높이 230㎝, 폭 148㎝이고, 칠보교는 높이 406㎝, 폭 116㎝이다
. 계단에 연꽃잎이 새겨져 있는 부분을 연화교라 하고, 칠보교는 금 · 은 · 유리 · 수정 · 산호 · 마노 · 호박의 일곱 가지 보석의 다리라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고...
이들 계단은 안양문으로 연결되고, 문을 들어서면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세계인 극락전 영역에 이르게 된다.
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청운교, 백운교와 연결되어 있는 자하문이 닫혀 있어, 돌아서 올라가니
드디어 다보탑과 석가탑이 나왔다.
생각보다 대웅전 앞마당이 좁아보였다.
10원짜리 동전 뒤에 찍혀 있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다보탑.
국보 제20호로 지정된 다보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찬탄하는 다보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으로 ‘과거의 부처님’ 인 다보부처님이 ‘현재의 부처님’인 석가모니 부처님께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석가탑 옆에 세웠다고 한다.
높이 10m 40㎝로 대웅전에 석가탑과 나란히 서 있으며, 건축 연도는751년로 알려져 있고
현재 남아있지 않은 목조건축 양식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보탑은 석가탑과 자주 비교되는데
석가탑이 전형적인 형태라면 다보탑은 가장 개성적인 형태의 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국보 제 21호로 대웅전 앞에 다보탑과 나란히 서 있는 '석가탑'
석가탑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부처님의 교화를 상징하는 탑으로
다보탑과는 달리 당시의 전통적인 석탑양식을 취하고 있다.
높이는 8m 20㎝이고 751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석가탑은 이전에 세워진 감은사지삼층석탑의 형태를 이어받은
우리나라 3층 석탑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탑의 주위에 배치되어 있는 여덟 개의 연꽃과 회랑은 이 곳이 성역임을 나타낸다고...
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다보탑과 석굴암 바로 뒤에 있는 '대웅전'.
다보탑과 석굴암의 명성(?) 때문인지 관심도가 조금 떨어졌다.
나만의 생각인가? 아무튼...
대웅전에서 바라본 '극락전'
극락전에는
극락전의 주불인 아미타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이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국보 제27호로 지정된 금동불이다.
높이 180cm, 머리 높이 48cm이며, 무릎 너비는 125cm로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금동비로자나불좌상에 비해 3cm 가량 크다고 한다.
극락전에는 최근에 '금동아미타여래좌상'보다 더 인기를 끄는 놈이 나왔는데, 그것은
극락전 현판 뒤에 있다가 최근에 발견되었다는 다름아닌 '황금돼지'이다.
내가 보기엔 멧돼지로 보이는데,
올해가 황금돼지해라 비약된 것 같다.
암튼, 올만에 불국사까지 갔는데 못 보고 와서 아쉬웠다.
기사가 조금만 더 빨리 났어도...
사진출처 : 연합뉴스
무설전을 지나 관음전에 올라 바라본 모습.
예전에는 못느꼈는데, 우리 고유의 기와형태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불국사 '관음전'
자비의 보살인 관세음보살 (觀世音菩薩)을 모셔저 있다.
광명의 부처라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는 '비로전'
비로전에는 국보 제26호인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저 있는데, 이는 극락전의 금동아미타불좌상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백률사 금동약사여래 입상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의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본래 대웅전에 모셔져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극락전의 아미타부처님과 함께 극락전으로 옮겨졌고, 그 뒤 현재의 비로전 주존불로 안치되었다고...
'나한전' 뒤로 가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쌓아올린 돌담들이 즐비했다.
모두들 무슨 소원을 빌며 쌓아올렸을까?
나한전을 나와 바라본 불국사의 정경.
대웅전 기둥과 석가탑의 끝부분이 보인다.
대웅전과 극락전이 연결되는 이동통로
극락전 바깥 옆에 있던 편종.
시계반대방향으로 불국사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청운교/백운교 앞에 왔다.
다시 봐도 멋있었다.
석굴암과 불국사는 지난 1995년에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하나의 도시에 2개가 동시에 지정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의 문화유산이 미적이나 과학적으로 뛰어나다는 게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2000년에는 경주역사유적지구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천년의 고도 경주는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석굴암과 불국사를 돌아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가는 곳마다 입장료를 받고 거기다 주차료까지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화유산들이 제각각 떨어져 있어
차가 없으면 이동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점심을 먹고 계산할 때 신용카드를 제시하니
카드용지가 다 떨어졌다는 말도 안돼는 변명으로 카드로 결재하지 못했다.
석굴암, 불국사 각각 입장료가 4천원이군... 거기다 주차료까지...켁!
'동아시아의 로마'를 표방하며
세계적인 역사관광지로 거듭나려하는 경주로써는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들일 것이다.
(솔직히 로마를 방문했을 때,
스케일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고 느꼈지만
경주는 경주만의 매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마 베네치아 광장에 우뚝 서 있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이러한 경주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1장의 티켓으로 경주에 있는 모든 유적지를 볼 수 있는
'1 Day Pass', '3 Day Pass' 또는 '1 Week Pass'를 만들어
부담없이 여러 곳을 답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본다.
주차권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런던이 좋았던 점은 유명한 박물관이나 갤러리들이 (British Museum, National Gallery 등)
모두 무료였다는 점이다. (물론 세계 곳곳에서 훔쳐온 것들이니 그럴만도 하겠지만...)
그리고 파리는 무료는 아니지만 'Museum Pass'와 같이 한 장만 사면
여러 박물관과 갤러리들을 둘러볼 수 있는 Ticket이 있어 좋았다.
세계 곳곳에서 약탈한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런던의 'British Museum'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로 더욱 유명해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최근 들어 경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어들고
수학여행도 제주도나 외국으로 나가는 추세라
점점 방문객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 경주에는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내달 3월에는 신라가 가장 부흥했던 8세기때 모습을 재현한
'신라 밀레니엄 파크'가 개장하고
2034년까지 3조 2800억원을 들여
황룡사 복원을 포함한 '경주 역사문화도시'를 조성한다고 한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외세의 힘 (당나라)을 끌여들여 삼국통일을 한 치욕의 역사이긴 하지만...
세계문화유산, 석굴암과 불국사
2007.1.28.
전날 '하이원'으로 출정을 다녀온 후,
피로가 채 풀리기도 전에
결혼식이 있어 경주로 갔다.
결혼식을 마치고 나서
미국과 영국에서 온 레이첼과 미카일을 만나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을 보여주기 위해
석굴암과 불국사로 향했다.
덕분에 나도 거의 20여년만에 석굴암과 불국사를 답사할 수 있었다.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문화유산이다.'토함산 석굴암'을 알리는 일주문.
언뜻 보기에 가분수처럼 보여 쓰러지지 않을 까 걱정이 될 정도인데,
뭐 알아서 설계를 했겠지...
토함산 자락에 위치한 석굴암.
지금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정면에서만 볼 수 있도록 유리벽을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예전에는 통로였던 곳이 지금은 '통제구역'으로 막혀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이라 그런지 역시 외국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듯 하여 뿌듯했다.
석굴암 일주문을 나오면 볼 수 있는 '종' (이름은 모르겠다.-_-)
석굴암 주차장에서 바라본 풍경.
사실 석굴암은 볼 게 그렇게 많지 않은 곳이다.
오직 석굴암 자체밖에 없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지만,
석굴암의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의 유기학적 미를 이해한다면
석굴암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창건하였다는 석굴암을 둘러보고
이번에는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창건하였다는 불국사로 향했다.
불국사 입구에 있는 불국사의 배치도
토함산 불국사를 알리는 '일주문'
석굴암의 '일주문'과 달리 안정적으로 서 있다.
불국사로 가는 길.
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하기만 했다.
여름에 왔으면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로 푸른빛이었을 정원.
지금은 겨울이라 앙상한 나무들로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천왕문에는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이 불국사를 지키고 있었다.
어릴적에 다른 사찰에서 봤을 땐, 엄청 무서워 보였었는데,
이 곳의 사천왕들은 모두 웃고있는 상이어서인지
아님 내가 훌~쩍 커버려서인지
암튼 별로 무서워 보이진 않았다.
천왕문을 지나 걸어가다보니
톱으로 잘린 것 같진 않고... 벼락을 맞았는지 암튼 새총 모양의 나무가 서 있었다.
드디어 불국사를 가장 대표하는 청운교와 백운교의 모습이 보였다.
국보 제 23호인 청운교와 백운교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에 있는 것은 백운교로 길이 6.3m에 17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에 있는 것은 청운교로 길이 5.4m에 16계단으로 되어 있다.
청운교의 아래 부분은 무지개 모습의 홍예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들 계단은 부처님이 계신 도리천을 의미하며,
33이라는 숫자는 욕계 제2천인 33천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청운교/백운교 옆에는 국보 제 22호인 연화교와 칠보교도 보였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대웅전 서쪽에 위치한 극락전 영역을 오르는 석조계단으로,
보통 연화칠보교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양식은 청운교. 백운교와 같으나 규모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는데,
연화교는 높이 230㎝, 폭 148㎝이고, 칠보교는 높이 406㎝, 폭 116㎝이다
.
계단에 연꽃잎이 새겨져 있는 부분을 연화교라 하고,
칠보교는 금 · 은 · 유리 · 수정 · 산호 · 마노 · 호박의
일곱 가지 보석의 다리라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고...
이들 계단은 안양문으로 연결되고, 문을 들어서면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세계인 극락전 영역에 이르게 된다.
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청운교, 백운교와 연결되어 있는 자하문이 닫혀 있어, 돌아서 올라가니
드디어 다보탑과 석가탑이 나왔다.
생각보다 대웅전 앞마당이 좁아보였다.
10원짜리 동전 뒤에 찍혀 있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다보탑.
국보 제20호로 지정된 다보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찬탄하는 다보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으로
‘과거의 부처님’ 인 다보부처님이 ‘현재의 부처님’인 석가모니 부처님께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석가탑 옆에 세웠다고 한다.
높이 10m 40㎝로 대웅전에 석가탑과 나란히 서 있으며,
건축 연도는751년로 알려져 있고
현재 남아있지 않은 목조건축 양식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보탑은 석가탑과 자주 비교되는데
석가탑이 전형적인 형태라면
다보탑은 가장 개성적인 형태의 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국보 제 21호로 대웅전 앞에 다보탑과 나란히 서 있는 '석가탑'
석가탑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부처님의 교화를 상징하는 탑으로
다보탑과는 달리 당시의 전통적인 석탑양식을 취하고 있다.
높이는 8m 20㎝이고 751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석가탑은 이전에 세워진 감은사지삼층석탑의 형태를 이어받은
우리나라 3층 석탑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탑의 주위에 배치되어 있는 여덟 개의 연꽃과 회랑은 이 곳이 성역임을 나타낸다고...
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다보탑과 석굴암 바로 뒤에 있는 '대웅전'.
다보탑과 석굴암의 명성(?) 때문인지 관심도가 조금 떨어졌다.
나만의 생각인가? 아무튼...
대웅전에서 바라본 '극락전'
극락전에는
극락전의 주불인 아미타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이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국보 제27호로 지정된 금동불이다.
높이 180cm, 머리 높이 48cm이며, 무릎 너비는 125cm로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금동비로자나불좌상에 비해 3cm 가량 크다고 한다.

극락전에는 최근에 '금동아미타여래좌상'보다 더 인기를 끄는 놈이 나왔는데, 그것은 극락전 현판 뒤에 있다가 최근에 발견되었다는 다름아닌 '황금돼지'이다. 내가 보기엔 멧돼지로 보이는데, 올해가 황금돼지해라 비약된 것 같다. 암튼, 올만에 불국사까지 갔는데 못 보고 와서 아쉬웠다. 기사가 조금만 더 빨리 났어도... 사진출처 : 연합뉴스극락전의 금동아미타불좌상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백률사 금동약사여래 입상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의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본래 대웅전에 모셔져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극락전의 아미타부처님과 함께 극락전으로 옮겨졌고,
그 뒤 현재의 비로전 주존불로 안치되었다고...
석굴암과 불국사는 지난 1995년에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하나의 도시에 2개가 동시에 지정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의 문화유산이 미적이나 과학적으로 뛰어나다는 게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2000년에는 경주역사유적지구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천년의 고도 경주는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석굴암과 불국사를 돌아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가는 곳마다 입장료를 받고 거기다 주차료까지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화유산들이 제각각 떨어져 있어
차가 없으면 이동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점심을 먹고 계산할 때 신용카드를 제시하니
카드용지가 다 떨어졌다는 말도 안돼는 변명으로 카드로 결재하지 못했다.
석굴암, 불국사 각각 입장료가 4천원이군... 거기다 주차료까지...켁!
'동아시아의 로마'를 표방하며
세계적인 역사관광지로 거듭나려하는 경주로써는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들일 것이다.
(솔직히 로마를 방문했을 때,
스케일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고 느꼈지만
경주는 경주만의 매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마 베네치아 광장에 우뚝 서 있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이러한 경주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1장의 티켓으로 경주에 있는 모든 유적지를 볼 수 있는
'1 Day Pass', '3 Day Pass' 또는 '1 Week Pass'를 만들어
부담없이 여러 곳을 답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본다.
주차권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런던이 좋았던 점은 유명한 박물관이나 갤러리들이 (British Museum, National Gallery 등)
모두 무료였다는 점이다. (물론 세계 곳곳에서 훔쳐온 것들이니 그럴만도 하겠지만...)
그리고 파리는 무료는 아니지만 'Museum Pass'와 같이 한 장만 사면
여러 박물관과 갤러리들을 둘러볼 수 있는 Ticket이 있어 좋았다.
세계 곳곳에서 약탈한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런던의 'British Museum'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로 더욱 유명해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최근 들어 경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어들고
수학여행도 제주도나 외국으로 나가는 추세라
점점 방문객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 경주에는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내달 3월에는 신라가 가장 부흥했던 8세기때 모습을 재현한
'신라 밀레니엄 파크'가 개장하고
2034년까지 3조 2800억원을 들여
황룡사 복원을 포함한 '경주 역사문화도시'를 조성한다고 한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외세의 힘 (당나라)을 끌여들여 삼국통일을 한 치욕의 역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천년의 역사를 지키며 이루어 놓은 찬란한 문화유산만은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출처 : 중앙일보
이러한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서비스 측면의 소프트웨어도 함께 발전시켜
경주가 '동아시아의 로마'가 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