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몇년 들어 오스카는 뒤통수 치기를 즐기는 것 같다. 대다수의 예상을 몇 년동안 보기 좋게 깨뜨려 왔기 때문이다. 2005년에도 <에비에이터>가 휩쓸 것이란 예상을 보기 좋게 깨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게 작품상의 영예를 안겼으며, 2006년에도 <브로크백 마운틴>을 얘기하던 대세를 비웃기라도 하듯 <크래쉬>에게 작품상을 안겨줬다. 올 2007년에 열린 아카데미도 요즘 아카데미가 뒤통수 치는 데 재미붙였다는 생각을 굳히게끔 해주었다.
2월 25일 저녁(우리 시각으로는 26일 오전) 미국 la 코닥 극장에서 열린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유독 다양한 영화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어느 쪽에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지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가운데, 드러난 수상 결과는 우선 다음과 같다.
작품상 : <디파티드> - 그래험 킹
감독상 : <디파티드> - 마틴 스콜세지
남우주연상 : <라스트 킹> - 포레스트 휘태커
여우주연상 : <더 퀸> - 헬렌 미렌
남우조연상 : <미스 리틀 선샤인> - 앨런 아킨
여우조연상 : <드림걸즈> - 제니퍼 허드슨
각본상 : <미스 리틀 선샤인> - 마이클 안트
각색상 : <디파티드> - 윌리엄 모나한
촬영상 :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기예르모 나바로
미술상 :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유제니오 카발레로
의상상 : <마리 앙투아네트> - 밀레나 카노네로
음향상 : <드림걸즈> - 마이클 밍클러 외 2명
편집상 : <디파티드> - 셀마 슈메이커
음향편집상 :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 앨런 로버트 머레이
시각효과상 : <캐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 - 존 놀 외 3명
분장상 :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데이빗 마티 외 1명
주제가상 : <불편한 진실> 삽입곡 'i need to wake up' - 멜리사 애더리지
작곡상 : <바벨> - 구스타보 산타올랄라
외국어영화상 : <타인의 삶>(독일) - 플로리안 헨켈-도너스마르크
장편애니메이션상 : <해피 피트> - 조지 밀러
장편다큐멘터리상 : <불편한 진실> - 데이빗 구겐하임
단편영화상 : <웨스트 뱅크 스토리> - 아리 샌델
단편애니메이션상 : <덴마크 시인> - 토릴 코브
단편다큐멘터리상 : <양쯔강의 에이즈 고아> - 루비 양
공로상 : 엔니오 모리꼬네
진 허숄트 박애주의상 : 셰리 랜싱(파라마운트 부사장)
<디파티드> : 4개 부문 수상 (작품, 감독, 각색, 편집)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3개 부문 수상 (미술, 촬영, 분장)
<드림걸즈>, <미스 리틀 선샤인>, <불편한 진실> : 각 2개 부문 수상
<바벨>, <더 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라스트 킹>, <마리 앙투아네트>, <캐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 : 각 1개 부문 수상
-제79회 아카데미 수상의 영광을 안은 배우들. 왼쪽부터 포레스트 휘태커(남우주연상), 제니퍼 허드슨(여우조연상), 헬렌 미렌(여우주연상), 앨런 아킨(남우조연상).
이렇다. 애초부터 특정 영화가 독보적으로 최다 후보에 오르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수상 결과 역시 어느 한 편에게 확 몰려 있지 않고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선 매 부문마다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는 재미를 만끽하기도 했다.
사실 이번 79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들 중에서는 딱 '아카데미가 이 영화한테 상을 주겠구만'하고 꼽히는 영화가 없었다. 다들 아카데미가 안좋아할 만도 한 부분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벨>은 다국적 언어가 나오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일본어 대사로만 이루어진 영화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아카데미 취향은 아닌 것 같은 인디 성향의 코미디물이고, <디파티드>는 그동안 오스카가 뭔 이유에서인지 좋아라하지 않았던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다. <더 퀸>은 영국 영화고 내용도 온전히 영국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미국에서 여는 아카데미가 손을 들어줄 지 의문이었다. 작품상까지도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가운데,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그래서 이변이라면 이변이라 할 만한 일들이 꽤 일어났다.
1. 마틴 스콜세지의 화려한 한풀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거장'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 감독이건만, 아카데미에서만은 한번도 트로피를 안아본 적이 없는 감독이 바로 마틴 스콜세지이다. 오랜 감독 생활동안 <분노의 주먹>, <예수의 마지막 유혹>, <좋은 친구들>, <순수의 시대>,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등의 영화로 6번이나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트로피를 안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2005년 <에비에이터>를 들고 나왔을 당시에는 초반부 <에비에이터>가 주요 부문을 타 가면서 분위기를 몰고 가는가 싶더니만 막판에 몰아서 치고 나온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의해 넉다운되기도 했었다. 겉으론 아무리 신경쓰지 않는다지만, 그 서운한 느낌은 늘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었을 것. 올 아카데미 때도 역시 후보로 불려질 때만 해도 그의 표정은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아니, 어느 때보다도 지쳐 있었을지 모른다. 더구나 2005년에 한번 패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또 맞붙게 되었는데 오죽하랴.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올해 아카데미가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드디어 감독상의 영예를 안긴 것이다. 스콜세지 감독은 그동안의 고충을 수상 소감에서 털어놓았다. 어딜 가도 주변 사람들이 '오스카 꼭 타세요, 꼭 타세요'하며 아주 빌었다는 것.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안타깝게 지켜봤는데 자신은 오죽하랴. 뒤늦게 안은 감독상의 영예 앞에 어린 아이마냥 기뻐서 소리지르고, 잔뜩 떨린 듯 말을 빨리빨리 해 나가는 스콜세지 감독의 모습에 절로 박수가 보내졌다. 참석자들 또한 그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모습에 아낌없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작품 활동을 한지 30여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는 아카데미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스티븐 스필버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등 오랜 지기들과 함께 미소짓는 그의 모습이 어찌나 가슴 벅차게 느껴지던지.
그렇다고 <디파티드>가 작품상까지 받을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사실 올 아카데미는 <바벨>, <더 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등과 같은 영화들에게 작품상의 여부에 대한 관심이 쏠려 있던 터라 <디파티드>가 아무래도 개봉한 지 오래되고 해서 작품상은 좀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예측도 없지 않았는데, 아니나다를까 아카데미는 작년 <크래쉬>에게 작품상을 안긴 데 이어 올해도 그런 우리의 예상을 보기좋게 깨버렸다. 감독상은 물론이요 최고 영예인 작품상까지 자신의 영화가 거머쥐게 되어, 마틴 스콜세지는 올 아카데미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2. <드림걸즈>의 부진
사실 <드림걸즈>가 작품상, 감독상, 남녀주연상과 같은 알짜배기 부문에는 후보에 오르지 않긴 했지만 어쨌든 6개 부문에 8개 후보를 올린 것으로 최다 노미네이션을 기록했으니 어느 정도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음향상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일정 성과를 얻겠구나 했었다.
그런데 에디 머피가 남우조연상 부문에서 미끄러지면서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카데미는 코미디 배우에서 비로소 연기파로 거듭나려는 에디 머피 대신, 오랜 시간 조연급으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다져온 노장 앨런 아킨에게 남우조연상을 안겨주었다. 물론 연기의 질로 봤을 때 앨런 아킨은 얼마든지 탈 자격이 있으며, 다크호스로 여겨져왔기 때문에 생뚱맞은 일이진 않지만, 그래도 대다수가 에디 머피가 탈 것이란 예상을 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실 이렇게 대다수의 예측을 따라가는 와중에도 약간 불안감은 있었다. 아카데미는 코미디 배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주옥같은 연기를 여러 번 보여준 짐 캐리도 후보에도 오른 적이 없었고, 2004년 그렇게 0순위로 꼽히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빌 머레이도 보기좋게 미끄러지고 말았다. 이번 에디 머피도 어쩌면 그런 경우인지 모른다. 아카데미에선 코미디 배우 출신이라는 것도 핸디캡일 뿐더러 그는 흑인이기까지 하다. 아카데미가 코미디 배우에겐 역시나 인색할 뿐더러 흑인배우들에게 트로피를 3개나 주는 것도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래도 여우조연상은 다행히 제니퍼 허드슨에게 돌아갔고,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탈락한 그녀에게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를 달아주었다.
그런데 반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제가상에서는 필시 <드림걸즈>가 가져갈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5개 후보들 중에 3개 곡이 <드림걸즈>에서 나온 곡들. 3/5 확률임에도 그 확률에 들어맞지를 못했다. 사실 '후보를 너무 많이 올려놔서 아카데미가 상대적으로 외면하고 다른 영화 주제곡에게 주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을 내심 하긴 했지만, 정말 그럴 줄이야. 아카데미는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의 주제곡에게 상을 줌으로써, 이 다큐멘터리가 다루고 있는 환경문제의 중요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더 강조한 것 같다. <드림걸즈>의 노래들은 아쉽게도, 출연진들이 함께 나와 부르는 특별공연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3. <판의 미로>의 선전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올 아카데미 후보 발표 당시, 스페인 영화로서 6개나 후보에 지명된 것만으로도 상당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칸에 최초 공개되었을 당시에도 황금종려상 운운할 만큼 대단한 완성도를 자랑했기에, 아카데미에서의 선전도 어느 정도 기대해 볼 만했다. 시각적 효과가 대단한 영화답게, 영화는 시각적 효과를 따지는 부문에서 상을 많이 가져갔다.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괴물들을 손수 만들어낸 스탭들에게 분장상이 돌아갔고, 환상적인 세트와 미술, 촬영을 선보인 스탭들에게 미술상과 촬영상이 돌아갔다.
하지만 이색적인 건 이 영화가 스페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외국어영화상 부문에선 미끄러졌다는 점. 독일에서 만들어진 <타인의 삶>이 외국어영화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래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로서의 대접이 아닌, 미국 내에서 만들어진 영화들과 당당히 경쟁해 승리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난히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많이 모인 올 아카데미가, 미국 내에서 비영어권 사람들이 충분히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4. <바벨>,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의 부진
강력한 작품상 후보로까지 꼽히며 6개 부문 7개 후보를 올렸던 <바벨>은 고작 작곡상 하나만 수상하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 칸 영화제도 감독상을 안기며 인정한 탄탄한 완성도에다가 휴머니즘적인 메시지, 배우들의 알찬 연기까지 아카데미가 충분히 좋아할 요소를 갖고 있었지만 작곡상 이외의 부문에서는 외면받고 말았다. 사실 이전부터 한 가지 걸렸던 게 <바벨>의 주제의식과 전개방식이 작년 작품상을 가져갔던 <크래쉬>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아카데미가 비슷한 영화에게 2년 연속 작품상을 안겨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아카데미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이 영화가 이미 칸 영화제에서 묵직한 상을 하나 받아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이 이미 한번 상을 준 영화에 또 상을 안길 수는 없다는 고집을 왠지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카데미가 좋아라 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도 주요 상 수상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음향편집상이라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부문이 있었나 싶을 상 하나만 가져가게 되고 말았다. 역시 일본어 영화라는 장벽은 제아무리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라도 아카데미 앞에선 힘들었던 걸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도 올 아카데미에서는 마틴 스콜세지에게 2005년 때처럼 보기좋게 당하고 말았다.
이상 올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주요 이변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이변이라 생각하는 부분을 꼽는다면, 장편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카>를 제치고 <해피 피트>가 수상한 것이 이채롭다. 전통적으로 아카데미가 픽사를 좋아라 했기에 이번에도 기술의 발달은 물론 깊이까지 있는 <카>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해피 피트>가 연말에 흥행도 대박을 기록했고, 오락적으로나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해피 피트>의 수상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았었다.(<몬스터 하우스>는 사실 수상작이 되기에 좀 중량감이 떨어진다) 그런 가운데 <해피 피트>가 영광을 안았고, 여기서 아카데미가 또 한 번의 작은 이변을 낳았다.
그렇다고 모든 부문이 이변으로 수놓아진 건 아니었다. 남녀주연상은 <라스트 킹>의 포레스트 휘태커와 <더 퀸>의 헬렌 미렌이 가져감으로써 일반적인 예상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사실 두 부문의 경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수상 가능성을 어느 정도 점쳤던 게 사실이다. 요즘 아카데미가 30대를 갓 넘은 적당히 젊은 배우들을 선호해 온 편이라, 이번에도 그런 아카데미의 취향에 따라 이 두 사람이 상을 받을 가능성이 없진 않을 것이라고 예측은 했었다. 하지만, 결국 이번 아카데미는 일관된 취향에서 벗어나 노장, 중견배우들의 힘에 더욱 무게를 실어주었다. 헬렌 미렌, 포레스트 휘태커, 앨런 아킨. 이들 모두가 오랜 세월동안 화려하진 않지만 자기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내공을 다져 온 중견배우들 아니던가.
그 결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은 젊은 나이에 수 차례 남녀주연상 후보에 올랐음에도 또 한번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피터 오툴 또한 이번까지 총 8번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음에도 수상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비록 아카데미로부터 공로상을 받긴 했지만, 이 분 또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 못지 않게 비운의 배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받을 사람은 받아가고, 받을 거라 생각 못했던 영화들이 예상을 뒤엎고 받아가기도 하는 가운데, 흥미로운 장면들도 몇몇 있었다. 여기, 재미있었던 장면들과 인상적인 장면들로 나뉘어서 한번 살펴보았다.
<재미있었던 장면들>
1. 잭 블랙과 윌 패럴, 존 c. 라일리의 비극적(?) 뮤지컬
2004년 '지루해송'으로 아카데미에 일대 난타를 날렸던 이들이 올 아카데미에서도 한방 제대로 먹였다. 그 대상은 바로 코미디 배우들을 좀체로 사랑해주지 않는 아카데미의 관행. 로빈 윌리엄스도 그 오랜 배우 생활동안 겨우 남우조연상으로 빛을 봤고, 짐 캐리는 여전히 한 번도 후보에 오르지 않았고, 빌 머레이는 0순위라는 기대에도 좍 미끄러졌을 만큼, 아카데미는 코미디 배우들을 무게가 없다는 이유에서인지 쉽사리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런 꽉 막힌 현실을 잭 블랙과 윌 패럴이 대표 코미디 배우로 나서서 신랄하게 풍자했다. 우리도 진지한 영화에 나가자 이런 식으로 노래를 주고 받으면서 막간으로나마 아카데미의 이런 보수적인 시선에 풍자의 펀치를 날렸다. 하지만 이렇게 해봤자 무슨 소용, 결국 아카데미는 코미디 배우인 에디 머피의 손을 역시 들어주지 않았는걸.
2.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재연사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호흡을 맞췄던 앤 해서웨이와 에밀리 블런트가 그에 걸맞는 의상상을 시상하러 나온 순간. 둘은 바로 앞에서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메릴 스트립을 타겟으로 순간 '카푸치노 왜 안 갖다 드렸어?'와 같은 대사들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분위기를 재연하기 시작했다. 새삼스런 재연으로 장내가 웃음바다가 된 가운데 메릴 스트립도 그 장면을 기분좋게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웃고 계시니까 괜찮을거야' 하고 안심하는 순간, 급정색하시며 미란다 프리슬리의 포스를 다시금 내뿜으시는 메릴 여사. 두 사람은 결국 '이거 다 하고 갖다드릴게요' 하며 꼬리를 내리고 만다. 눈부시게 빛나는 명배우의 재치를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3. 재롱잔치가 되어도 괜찮아
단편애니메이션 부문에 두 어린 친구들이 나왔다. <미스 리틀 선샤인>으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애비게일 브레슬린과 <행복을 찾아서>에서 윌 스미스와 함께 열연한 그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 둘은 이 장대한 시상식장에서 아이다운 수다로 웃음꽃을 피운다. 제이든 스미스가 '아빠가 코미디라길래 찍었는데 알고보니 드라마더라'하며 투정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고, 제이든 스미스가 순간 대사 실수를 하자 그 앞에 앉은 윌 스미스 부부가 아이들 재롱잔치라도 보는 듯 박장대소를 하며 지켜보는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역사가 오랜 시상식 속에서도 이렇게 아이들의 재롱잔치마냥 천진난만한 모습을 편히 지켜볼 수 있다니. 이런 시상식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4. 사회자의 유머감각
올 아카데미의 사회자였던 엘렌 드제너러스의 유머감각도 시상식의 분위기를 돋우는 데 일조했다. 자칫 굳어버릴 수 있는 시상식의 분위기를 제대로 주무르는 그녀의 솜씨. 역시 인기 토크쇼 mc다웠다.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게 가서는 반갑다고 인사하며 얘기하다가 뜬금없이 옆에 앉은 대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나, 무용수들이 공연을 선보이는 장막 뒤로 들어가서는 손가락으로 개와 새 모양을 만드는 유치한 장난을 하지 않나, 참석 배우들 앞으로 내려가서는 청소기를 들고 쓸고 다니면서 '사회자가 이런 것까지 해야 되는 줄은 몰랐다'고 투정을 부리질 않나. 이렇게 격식 안차리고 참석 배우들과 함께 맘껏 놀면서 유머를 과시하는 사회자가 있었기에 시상식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
5. 거장들의 유머감각
놀라운 것은, 우리가 흔히 앞쪽 자리에서 무게잡고 앉아있을 거라고 생각한 감독들마저도 유머감각을 맘껏 펼쳐보였다는 것이다. 감독상 발표 순간. 스티븐 스필버그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감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쟁쟁하기 이를 데 없는 감독들이 함께 무대에 등장했다. 그러고는 하는 얘기. 스티븐 스필버그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이 자리에 올라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기분이 어떨지 안다고 하다가 가운데 있는, 감독상을 한번도 탄 적이 없는 조지 루카스 감독에게 '여기 왜 나와 있냐?'고 장난어린 핀잔을 준다. 이 큰 시상식 무대에서 어린아이들마냥 놀리고 뻘쭘해하는 거장들의 모습이 어찌나 친근하게 느껴지던지. 친근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그들의 무게감이 더욱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괜한 말이 아니라, 이런 말이 좀 실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 분 모두 정말 귀여우셨다. 뒤이어 수상의 영광을 안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님 마저도 어쩜 그리 기뻐서 주체할 수 없는 아이의 모습처럼 천진해 보이시던지.
<인상적이었던 장면들>
1. 몸으로 말하는 그들
시상식 중간중간에 여러 영화들의 상징적 이미지들을 몸으로 표현해낸 무용수들의 퍼포먼스는 압권이었다. 맨처음 오스카 트로피부터 시작해서 <해피 피트>의 펭귄들, <미스 리틀 선샤인>의 봉고차, <스네이크 온 어 플레인>의 뱀에 둘러싸인 비행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삼지창 달린 굽, <디파티드>의 총까지 정말 사람이 저런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그림들을 단 몇 초 만에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모습에 그저 감탄사만 연이어 내뱉을 뿐이었다. 짧지만 굵고 요란하지 않지만 강하게, 관객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 대단한 퍼포먼스임은 분명했다.
2. 엔니오 모리꼬네를 위하여
400편에 가까운 영화들의 음악을 만들면서도 한번도 아카데미의 영예를 얻지 못했던 엔니오 모리꼬네가 평생공로상의 영광을 안았다. 수차례 아카데미로부터 외면받은 모리꼬네에 대한 위로의 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그의 가치를 확실히 인정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상이었다. 압권이었던 건 셀린 디온이 등장해 모리꼬네의 작품 중 하나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수록된 음악에 가사를 붙인 'i knew i loved you'를 부르는 순간. 가사와 셀린 디온의 목소리까지 붙이니 이렇게도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노래가 완성되었다니. 단지 악기와 멜로디 만으로 심금을 울렸던 모리꼬네의 능력이란 실로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던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어로 얘기하는 모리꼬네 곁에서 나름 성심성의껏 통역해주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3. <드림걸즈> 특별무대
주제가상에 3곡이나 후보로 올린 <드림걸즈>는 특별무대까지 가질 수 있는 영광을 안았다. 비욘세와 제니퍼 허드슨, 애니카 노니 로즈와 키스 로빈슨까지 <드림걸즈> 출연진들이 나와 함께 부른 주제가상 후보 3곡들.(에디 머피까지 함께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영화 속 못지 않은 파워풀한 가창력을 선보이며 무대를 장악해 마치 여기가 아카데미가 아니라 그래미인가 하는 착각마저 잠시나마 들게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뒤이어 주제가상을 받지 못할 <드림걸즈>에 대한 아카데미의 위로의 수단이었던 것일까.
4. 거장들의 행진
앞서 얘기했지만, 감독상을 시상하는 순간에 세 거물 감독이 함께 등장한 것이 이채로웠다. 세 감독은 아이들처럼 농담을 주고받고는 발표를 했고, 뒤이어 나온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오랜 친구로서 깊은 포옹을 나눴다. 마틴 스콜세지가 상을 받고 나서야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아카데미의 영광 속에 웃음짓는 저 거장들의 대열에 이제야 비로소 마틴 스콜세지도 함께 하게 하려고 저들을 부른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물론 조지 루카스는 후보에만 올랐었지만) 게다가 네 감독이 30년 넘게 알아온 지기라고 하지 않는가.
이상 아카데미를 보며 느꼈던 점들을 나름대로 차분하게 얘기해보았다. 올 아카데미도 역시 한치의 끊어짐도 없는 매끄러운 진행과 함께, 80년에 가까운 전통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그 전통 속에서 위엄있게만 보이려 하지 않고(심사위원들은 그럴 수 있겠지만), 자유로운 진행 방식의 사회자의 자유분방한 입담과 수상 여부에 상관없이 모두들 참석해서 무게 재지 않고 진심으로 즐기는 명배우들의 모습이 돋보였다. 이렇게 진정한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 시상식들도 이런 면을 좀 본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었다. 한동안 젊은 배우들을 아끼던 것에서 벗어나 노장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흑인 및 비영어권 영화인들에게도 골고루 상을 나눠주며 미국의 집안 잔치에서 그치는 게 아닌, 진정 글로벌 축제로 거듭나는 아카데미의 모습을 보면서, 전통과 권위란 그것을 허물수록 더욱 영광스러운 빛을 발한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제79회 아카데미에서 마음껏 즐기고 영광을 누린 영화인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 한 마디 더 -
ocn의 중계 상태에는 심히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어쩔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늘 몇 초 늦게 나오는 동시통역은 답답해서 그냥 영어 대충 알아들으면서 보게 만들고, 그마저도 실수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나 사람 이름 부분. 마이클 쉰을 '마이크 쉔'이라고 표기한 건 그나마 애교다. 키스 로빈슨을 '퀸즈 라벤즈'라고 쓰고, 퀸 라티파를 '퀸 라친파'라고 써 주는 센스...; 중간중간에 나오는 mc들의 해설은 후보작이나 배우들에 대해 모르는 시청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지만, 백스테이지 등 몇몇 장면은 광고나 ocn 스튜디오 보내느라 끊어먹었던 점이 좀 아쉽다. 덕분에 무용수들의 <해피 피트> 퍼포먼스도 ocn 생중계에선 잘렸다. 앞으로도 매년 중계할 텐데, 내년엔 부디 신경 좀 써주길 바란다.
이성적이면서도 감정적인 제79회 아카데미 총정리
요 근래 몇년 들어 오스카는 뒤통수 치기를 즐기는 것 같다. 대다수의 예상을 몇 년동안 보기 좋게 깨뜨려 왔기 때문이다. 2005년에도 <에비에이터>가 휩쓸 것이란 예상을 보기 좋게 깨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게 작품상의 영예를 안겼으며, 2006년에도 <브로크백 마운틴>을 얘기하던 대세를 비웃기라도 하듯 <크래쉬>에게 작품상을 안겨줬다. 올 2007년에 열린 아카데미도 요즘 아카데미가 뒤통수 치는 데 재미붙였다는 생각을 굳히게끔 해주었다.
2월 25일 저녁(우리 시각으로는 26일 오전) 미국 la 코닥 극장에서 열린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유독 다양한 영화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어느 쪽에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지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가운데, 드러난 수상 결과는 우선 다음과 같다.
작품상 : <디파티드> - 그래험 킹
감독상 : <디파티드> - 마틴 스콜세지
남우주연상 : <라스트 킹> - 포레스트 휘태커
여우주연상 : <더 퀸> - 헬렌 미렌
남우조연상 : <미스 리틀 선샤인> - 앨런 아킨
여우조연상 : <드림걸즈> - 제니퍼 허드슨
각본상 : <미스 리틀 선샤인> - 마이클 안트
각색상 : <디파티드> - 윌리엄 모나한
촬영상 :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기예르모 나바로
미술상 :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유제니오 카발레로
의상상 : <마리 앙투아네트> - 밀레나 카노네로
음향상 : <드림걸즈> - 마이클 밍클러 외 2명
편집상 : <디파티드> - 셀마 슈메이커
음향편집상 :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 앨런 로버트 머레이
시각효과상 : <캐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 - 존 놀 외 3명
분장상 :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데이빗 마티 외 1명
주제가상 : <불편한 진실> 삽입곡 'i need to wake up' - 멜리사 애더리지
작곡상 : <바벨> - 구스타보 산타올랄라
외국어영화상 : <타인의 삶>(독일) - 플로리안 헨켈-도너스마르크
장편애니메이션상 : <해피 피트> - 조지 밀러
장편다큐멘터리상 : <불편한 진실> - 데이빗 구겐하임
단편영화상 : <웨스트 뱅크 스토리> - 아리 샌델
단편애니메이션상 : <덴마크 시인> - 토릴 코브
단편다큐멘터리상 : <양쯔강의 에이즈 고아> - 루비 양
공로상 : 엔니오 모리꼬네
진 허숄트 박애주의상 : 셰리 랜싱(파라마운트 부사장)
<디파티드> : 4개 부문 수상 (작품, 감독, 각색, 편집)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3개 부문 수상 (미술, 촬영, 분장)
<드림걸즈>, <미스 리틀 선샤인>, <불편한 진실> : 각 2개 부문 수상
<바벨>, <더 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라스트 킹>, <마리 앙투아네트>, <캐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 : 각 1개 부문 수상
-제79회 아카데미 수상의 영광을 안은 배우들. 왼쪽부터 포레스트 휘태커(남우주연상), 제니퍼 허드슨(여우조연상), 헬렌 미렌(여우주연상), 앨런 아킨(남우조연상).
이렇다. 애초부터 특정 영화가 독보적으로 최다 후보에 오르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수상 결과 역시 어느 한 편에게 확 몰려 있지 않고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선 매 부문마다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는 재미를 만끽하기도 했다.
사실 이번 79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들 중에서는 딱 '아카데미가 이 영화한테 상을 주겠구만'하고 꼽히는 영화가 없었다. 다들 아카데미가 안좋아할 만도 한 부분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벨>은 다국적 언어가 나오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일본어 대사로만 이루어진 영화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아카데미 취향은 아닌 것 같은 인디 성향의 코미디물이고, <디파티드>는 그동안 오스카가 뭔 이유에서인지 좋아라하지 않았던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다. <더 퀸>은 영국 영화고 내용도 온전히 영국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미국에서 여는 아카데미가 손을 들어줄 지 의문이었다. 작품상까지도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가운데,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그래서 이변이라면 이변이라 할 만한 일들이 꽤 일어났다.
1. 마틴 스콜세지의 화려한 한풀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거장'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 감독이건만, 아카데미에서만은 한번도 트로피를 안아본 적이 없는 감독이 바로 마틴 스콜세지이다. 오랜 감독 생활동안 <분노의 주먹>, <예수의 마지막 유혹>, <좋은 친구들>, <순수의 시대>,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등의 영화로 6번이나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트로피를 안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2005년 <에비에이터>를 들고 나왔을 당시에는 초반부 <에비에이터>가 주요 부문을 타 가면서 분위기를 몰고 가는가 싶더니만 막판에 몰아서 치고 나온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의해 넉다운되기도 했었다. 겉으론 아무리 신경쓰지 않는다지만, 그 서운한 느낌은 늘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었을 것. 올 아카데미 때도 역시 후보로 불려질 때만 해도 그의 표정은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아니, 어느 때보다도 지쳐 있었을지 모른다. 더구나 2005년에 한번 패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또 맞붙게 되었는데 오죽하랴.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올해 아카데미가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드디어 감독상의 영예를 안긴 것이다. 스콜세지 감독은 그동안의 고충을 수상 소감에서 털어놓았다. 어딜 가도 주변 사람들이 '오스카 꼭 타세요, 꼭 타세요'하며 아주 빌었다는 것.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안타깝게 지켜봤는데 자신은 오죽하랴. 뒤늦게 안은 감독상의 영예 앞에 어린 아이마냥 기뻐서 소리지르고, 잔뜩 떨린 듯 말을 빨리빨리 해 나가는 스콜세지 감독의 모습에 절로 박수가 보내졌다. 참석자들 또한 그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모습에 아낌없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작품 활동을 한지 30여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는 아카데미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스티븐 스필버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등 오랜 지기들과 함께 미소짓는 그의 모습이 어찌나 가슴 벅차게 느껴지던지.
그렇다고 <디파티드>가 작품상까지 받을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사실 올 아카데미는 <바벨>, <더 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등과 같은 영화들에게 작품상의 여부에 대한 관심이 쏠려 있던 터라 <디파티드>가 아무래도 개봉한 지 오래되고 해서 작품상은 좀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예측도 없지 않았는데, 아니나다를까 아카데미는 작년 <크래쉬>에게 작품상을 안긴 데 이어 올해도 그런 우리의 예상을 보기좋게 깨버렸다. 감독상은 물론이요 최고 영예인 작품상까지 자신의 영화가 거머쥐게 되어, 마틴 스콜세지는 올 아카데미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2. <드림걸즈>의 부진
사실 <드림걸즈>가 작품상, 감독상, 남녀주연상과 같은 알짜배기 부문에는 후보에 오르지 않긴 했지만 어쨌든 6개 부문에 8개 후보를 올린 것으로 최다 노미네이션을 기록했으니 어느 정도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음향상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일정 성과를 얻겠구나 했었다.
그런데 에디 머피가 남우조연상 부문에서 미끄러지면서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카데미는 코미디 배우에서 비로소 연기파로 거듭나려는 에디 머피 대신, 오랜 시간 조연급으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다져온 노장 앨런 아킨에게 남우조연상을 안겨주었다. 물론 연기의 질로 봤을 때 앨런 아킨은 얼마든지 탈 자격이 있으며, 다크호스로 여겨져왔기 때문에 생뚱맞은 일이진 않지만, 그래도 대다수가 에디 머피가 탈 것이란 예상을 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실 이렇게 대다수의 예측을 따라가는 와중에도 약간 불안감은 있었다. 아카데미는 코미디 배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주옥같은 연기를 여러 번 보여준 짐 캐리도 후보에도 오른 적이 없었고, 2004년 그렇게 0순위로 꼽히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빌 머레이도 보기좋게 미끄러지고 말았다. 이번 에디 머피도 어쩌면 그런 경우인지 모른다. 아카데미에선 코미디 배우 출신이라는 것도 핸디캡일 뿐더러 그는 흑인이기까지 하다. 아카데미가 코미디 배우에겐 역시나 인색할 뿐더러 흑인배우들에게 트로피를 3개나 주는 것도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래도 여우조연상은 다행히 제니퍼 허드슨에게 돌아갔고,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탈락한 그녀에게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를 달아주었다.
그런데 반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제가상에서는 필시 <드림걸즈>가 가져갈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5개 후보들 중에 3개 곡이 <드림걸즈>에서 나온 곡들. 3/5 확률임에도 그 확률에 들어맞지를 못했다. 사실 '후보를 너무 많이 올려놔서 아카데미가 상대적으로 외면하고 다른 영화 주제곡에게 주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을 내심 하긴 했지만, 정말 그럴 줄이야. 아카데미는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의 주제곡에게 상을 줌으로써, 이 다큐멘터리가 다루고 있는 환경문제의 중요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더 강조한 것 같다. <드림걸즈>의 노래들은 아쉽게도, 출연진들이 함께 나와 부르는 특별공연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3. <판의 미로>의 선전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올 아카데미 후보 발표 당시, 스페인 영화로서 6개나 후보에 지명된 것만으로도 상당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칸에 최초 공개되었을 당시에도 황금종려상 운운할 만큼 대단한 완성도를 자랑했기에, 아카데미에서의 선전도 어느 정도 기대해 볼 만했다. 시각적 효과가 대단한 영화답게, 영화는 시각적 효과를 따지는 부문에서 상을 많이 가져갔다.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괴물들을 손수 만들어낸 스탭들에게 분장상이 돌아갔고, 환상적인 세트와 미술, 촬영을 선보인 스탭들에게 미술상과 촬영상이 돌아갔다.
하지만 이색적인 건 이 영화가 스페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외국어영화상 부문에선 미끄러졌다는 점. 독일에서 만들어진 <타인의 삶>이 외국어영화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래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로서의 대접이 아닌, 미국 내에서 만들어진 영화들과 당당히 경쟁해 승리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난히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많이 모인 올 아카데미가, 미국 내에서 비영어권 사람들이 충분히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4. <바벨>,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의 부진
강력한 작품상 후보로까지 꼽히며 6개 부문 7개 후보를 올렸던 <바벨>은 고작 작곡상 하나만 수상하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 칸 영화제도 감독상을 안기며 인정한 탄탄한 완성도에다가 휴머니즘적인 메시지, 배우들의 알찬 연기까지 아카데미가 충분히 좋아할 요소를 갖고 있었지만 작곡상 이외의 부문에서는 외면받고 말았다. 사실 이전부터 한 가지 걸렸던 게 <바벨>의 주제의식과 전개방식이 작년 작품상을 가져갔던 <크래쉬>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아카데미가 비슷한 영화에게 2년 연속 작품상을 안겨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아카데미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이 영화가 이미 칸 영화제에서 묵직한 상을 하나 받아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이 이미 한번 상을 준 영화에 또 상을 안길 수는 없다는 고집을 왠지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카데미가 좋아라 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도 주요 상 수상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음향편집상이라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부문이 있었나 싶을 상 하나만 가져가게 되고 말았다. 역시 일본어 영화라는 장벽은 제아무리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라도 아카데미 앞에선 힘들었던 걸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도 올 아카데미에서는 마틴 스콜세지에게 2005년 때처럼 보기좋게 당하고 말았다.
이상 올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주요 이변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이변이라 생각하는 부분을 꼽는다면, 장편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카>를 제치고 <해피 피트>가 수상한 것이 이채롭다. 전통적으로 아카데미가 픽사를 좋아라 했기에 이번에도 기술의 발달은 물론 깊이까지 있는 <카>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해피 피트>가 연말에 흥행도 대박을 기록했고, 오락적으로나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해피 피트>의 수상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았었다.(<몬스터 하우스>는 사실 수상작이 되기에 좀 중량감이 떨어진다) 그런 가운데 <해피 피트>가 영광을 안았고, 여기서 아카데미가 또 한 번의 작은 이변을 낳았다.
그렇다고 모든 부문이 이변으로 수놓아진 건 아니었다. 남녀주연상은 <라스트 킹>의 포레스트 휘태커와 <더 퀸>의 헬렌 미렌이 가져감으로써 일반적인 예상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사실 두 부문의 경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수상 가능성을 어느 정도 점쳤던 게 사실이다. 요즘 아카데미가 30대를 갓 넘은 적당히 젊은 배우들을 선호해 온 편이라, 이번에도 그런 아카데미의 취향에 따라 이 두 사람이 상을 받을 가능성이 없진 않을 것이라고 예측은 했었다. 하지만, 결국 이번 아카데미는 일관된 취향에서 벗어나 노장, 중견배우들의 힘에 더욱 무게를 실어주었다. 헬렌 미렌, 포레스트 휘태커, 앨런 아킨. 이들 모두가 오랜 세월동안 화려하진 않지만 자기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내공을 다져 온 중견배우들 아니던가.
그 결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은 젊은 나이에 수 차례 남녀주연상 후보에 올랐음에도 또 한번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피터 오툴 또한 이번까지 총 8번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음에도 수상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비록 아카데미로부터 공로상을 받긴 했지만, 이 분 또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 못지 않게 비운의 배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받을 사람은 받아가고, 받을 거라 생각 못했던 영화들이 예상을 뒤엎고 받아가기도 하는 가운데, 흥미로운 장면들도 몇몇 있었다. 여기, 재미있었던 장면들과 인상적인 장면들로 나뉘어서 한번 살펴보았다.
<재미있었던 장면들>
1. 잭 블랙과 윌 패럴, 존 c. 라일리의 비극적(?) 뮤지컬
2004년 '지루해송'으로 아카데미에 일대 난타를 날렸던 이들이 올 아카데미에서도 한방 제대로 먹였다. 그 대상은 바로 코미디 배우들을 좀체로 사랑해주지 않는 아카데미의 관행. 로빈 윌리엄스도 그 오랜 배우 생활동안 겨우 남우조연상으로 빛을 봤고, 짐 캐리는 여전히 한 번도 후보에 오르지 않았고, 빌 머레이는 0순위라는 기대에도 좍 미끄러졌을 만큼, 아카데미는 코미디 배우들을 무게가 없다는 이유에서인지 쉽사리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런 꽉 막힌 현실을 잭 블랙과 윌 패럴이 대표 코미디 배우로 나서서 신랄하게 풍자했다. 우리도 진지한 영화에 나가자 이런 식으로 노래를 주고 받으면서 막간으로나마 아카데미의 이런 보수적인 시선에 풍자의 펀치를 날렸다. 하지만 이렇게 해봤자 무슨 소용, 결국 아카데미는 코미디 배우인 에디 머피의 손을 역시 들어주지 않았는걸.
2.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재연사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호흡을 맞췄던 앤 해서웨이와 에밀리 블런트가 그에 걸맞는 의상상을 시상하러 나온 순간. 둘은 바로 앞에서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메릴 스트립을 타겟으로 순간 '카푸치노 왜 안 갖다 드렸어?'와 같은 대사들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분위기를 재연하기 시작했다. 새삼스런 재연으로 장내가 웃음바다가 된 가운데 메릴 스트립도 그 장면을 기분좋게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웃고 계시니까 괜찮을거야' 하고 안심하는 순간, 급정색하시며 미란다 프리슬리의 포스를 다시금 내뿜으시는 메릴 여사. 두 사람은 결국 '이거 다 하고 갖다드릴게요' 하며 꼬리를 내리고 만다. 눈부시게 빛나는 명배우의 재치를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3. 재롱잔치가 되어도 괜찮아
단편애니메이션 부문에 두 어린 친구들이 나왔다. <미스 리틀 선샤인>으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애비게일 브레슬린과 <행복을 찾아서>에서 윌 스미스와 함께 열연한 그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 둘은 이 장대한 시상식장에서 아이다운 수다로 웃음꽃을 피운다. 제이든 스미스가 '아빠가 코미디라길래 찍었는데 알고보니 드라마더라'하며 투정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고, 제이든 스미스가 순간 대사 실수를 하자 그 앞에 앉은 윌 스미스 부부가 아이들 재롱잔치라도 보는 듯 박장대소를 하며 지켜보는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역사가 오랜 시상식 속에서도 이렇게 아이들의 재롱잔치마냥 천진난만한 모습을 편히 지켜볼 수 있다니. 이런 시상식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4. 사회자의 유머감각
올 아카데미의 사회자였던 엘렌 드제너러스의 유머감각도 시상식의 분위기를 돋우는 데 일조했다. 자칫 굳어버릴 수 있는 시상식의 분위기를 제대로 주무르는 그녀의 솜씨. 역시 인기 토크쇼 mc다웠다.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게 가서는 반갑다고 인사하며 얘기하다가 뜬금없이 옆에 앉은 대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나, 무용수들이 공연을 선보이는 장막 뒤로 들어가서는 손가락으로 개와 새 모양을 만드는 유치한 장난을 하지 않나, 참석 배우들 앞으로 내려가서는 청소기를 들고 쓸고 다니면서 '사회자가 이런 것까지 해야 되는 줄은 몰랐다'고 투정을 부리질 않나. 이렇게 격식 안차리고 참석 배우들과 함께 맘껏 놀면서 유머를 과시하는 사회자가 있었기에 시상식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
5. 거장들의 유머감각
놀라운 것은, 우리가 흔히 앞쪽 자리에서 무게잡고 앉아있을 거라고 생각한 감독들마저도 유머감각을 맘껏 펼쳐보였다는 것이다. 감독상 발표 순간. 스티븐 스필버그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감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쟁쟁하기 이를 데 없는 감독들이 함께 무대에 등장했다. 그러고는 하는 얘기. 스티븐 스필버그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이 자리에 올라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기분이 어떨지 안다고 하다가 가운데 있는, 감독상을 한번도 탄 적이 없는 조지 루카스 감독에게 '여기 왜 나와 있냐?'고 장난어린 핀잔을 준다. 이 큰 시상식 무대에서 어린아이들마냥 놀리고 뻘쭘해하는 거장들의 모습이 어찌나 친근하게 느껴지던지. 친근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그들의 무게감이 더욱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괜한 말이 아니라, 이런 말이 좀 실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 분 모두 정말 귀여우셨다. 뒤이어 수상의 영광을 안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님 마저도 어쩜 그리 기뻐서 주체할 수 없는 아이의 모습처럼 천진해 보이시던지.
<인상적이었던 장면들>
1. 몸으로 말하는 그들
시상식 중간중간에 여러 영화들의 상징적 이미지들을 몸으로 표현해낸 무용수들의 퍼포먼스는 압권이었다. 맨처음 오스카 트로피부터 시작해서 <해피 피트>의 펭귄들, <미스 리틀 선샤인>의 봉고차, <스네이크 온 어 플레인>의 뱀에 둘러싸인 비행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삼지창 달린 굽, <디파티드>의 총까지 정말 사람이 저런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그림들을 단 몇 초 만에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모습에 그저 감탄사만 연이어 내뱉을 뿐이었다. 짧지만 굵고 요란하지 않지만 강하게, 관객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 대단한 퍼포먼스임은 분명했다.
2. 엔니오 모리꼬네를 위하여
400편에 가까운 영화들의 음악을 만들면서도 한번도 아카데미의 영예를 얻지 못했던 엔니오 모리꼬네가 평생공로상의 영광을 안았다. 수차례 아카데미로부터 외면받은 모리꼬네에 대한 위로의 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그의 가치를 확실히 인정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상이었다. 압권이었던 건 셀린 디온이 등장해 모리꼬네의 작품 중 하나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수록된 음악에 가사를 붙인 'i knew i loved you'를 부르는 순간. 가사와 셀린 디온의 목소리까지 붙이니 이렇게도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노래가 완성되었다니. 단지 악기와 멜로디 만으로 심금을 울렸던 모리꼬네의 능력이란 실로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던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어로 얘기하는 모리꼬네 곁에서 나름 성심성의껏 통역해주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3. <드림걸즈> 특별무대
주제가상에 3곡이나 후보로 올린 <드림걸즈>는 특별무대까지 가질 수 있는 영광을 안았다. 비욘세와 제니퍼 허드슨, 애니카 노니 로즈와 키스 로빈슨까지 <드림걸즈> 출연진들이 나와 함께 부른 주제가상 후보 3곡들.(에디 머피까지 함께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영화 속 못지 않은 파워풀한 가창력을 선보이며 무대를 장악해 마치 여기가 아카데미가 아니라 그래미인가 하는 착각마저 잠시나마 들게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뒤이어 주제가상을 받지 못할 <드림걸즈>에 대한 아카데미의 위로의 수단이었던 것일까.
4. 거장들의 행진
앞서 얘기했지만, 감독상을 시상하는 순간에 세 거물 감독이 함께 등장한 것이 이채로웠다. 세 감독은 아이들처럼 농담을 주고받고는 발표를 했고, 뒤이어 나온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오랜 친구로서 깊은 포옹을 나눴다. 마틴 스콜세지가 상을 받고 나서야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아카데미의 영광 속에 웃음짓는 저 거장들의 대열에 이제야 비로소 마틴 스콜세지도 함께 하게 하려고 저들을 부른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물론 조지 루카스는 후보에만 올랐었지만) 게다가 네 감독이 30년 넘게 알아온 지기라고 하지 않는가.
이상 아카데미를 보며 느꼈던 점들을 나름대로 차분하게 얘기해보았다. 올 아카데미도 역시 한치의 끊어짐도 없는 매끄러운 진행과 함께, 80년에 가까운 전통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그 전통 속에서 위엄있게만 보이려 하지 않고(심사위원들은 그럴 수 있겠지만), 자유로운 진행 방식의 사회자의 자유분방한 입담과 수상 여부에 상관없이 모두들 참석해서 무게 재지 않고 진심으로 즐기는 명배우들의 모습이 돋보였다. 이렇게 진정한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 시상식들도 이런 면을 좀 본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었다. 한동안 젊은 배우들을 아끼던 것에서 벗어나 노장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흑인 및 비영어권 영화인들에게도 골고루 상을 나눠주며 미국의 집안 잔치에서 그치는 게 아닌, 진정 글로벌 축제로 거듭나는 아카데미의 모습을 보면서, 전통과 권위란 그것을 허물수록 더욱 영광스러운 빛을 발한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제79회 아카데미에서 마음껏 즐기고 영광을 누린 영화인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 한 마디 더 -
ocn의 중계 상태에는 심히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어쩔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늘 몇 초 늦게 나오는 동시통역은 답답해서 그냥 영어 대충 알아들으면서 보게 만들고, 그마저도 실수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나 사람 이름 부분. 마이클 쉰을 '마이크 쉔'이라고 표기한 건 그나마 애교다. 키스 로빈슨을 '퀸즈 라벤즈'라고 쓰고, 퀸 라티파를 '퀸 라친파'라고 써 주는 센스...; 중간중간에 나오는 mc들의 해설은 후보작이나 배우들에 대해 모르는 시청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지만, 백스테이지 등 몇몇 장면은 광고나 ocn 스튜디오 보내느라 끊어먹었던 점이 좀 아쉽다. 덕분에 무용수들의 <해피 피트> 퍼포먼스도 ocn 생중계에선 잘렸다. 앞으로도 매년 중계할 텐데, 내년엔 부디 신경 좀 써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