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미국의 전략이 실패한 이유]

김영경2007.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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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략이 실패하게 된 수많은 이유 지중해에서 인도까지

히샴 벤 압달라 엘

알라위  

  는 르몽드코리아와의 업무협약에 따라 한국어판 기사 일체를 3월부터 본 사이트에 전재합니다. 기사는 유료로 제공되며, 일부 기사의 경우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이라크의 군사개입을 강화시키고 이란을 공격할 계획을 꾸미고 있다. 미군에게 닥친 역경, 미국 유권자들의 비난, 대다수 국가의 반대 등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노선을 바꾸지 않았다. 시아파의 위협이란 구실로 백악관은 호의적인 아랍 지도자들을 규합시키려 하지만 그들마저 미국 지도부를 신뢰하지 않는 듯하다.
  
  1979년 이란 혁명이후로,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슬람의 힘을 이용해서 소련을 견제할 수 있으리란 달콤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지미 카터의 안보보좌관이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입안한 이 이론에 따르면, 모로코에서 파키스탄까지 이어지는 ‘위기의 궁선’이 존재하지만 ‘이슬람의 궁선’을 동원해서 이 지역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억제할 수 있었다.1)
  
   르몽드 [미국의 전략이 실패한 이유] △르네 마그리트 | 승리, 1939 ⓒ
 하기야 1953년 이란을 필두로, 1960년대와 1970년대에도 이 지역에서 좌파적이고 민족주의 색채를 띤 정당들을 소외시키고 몰락시키는 데 이슬람의 보수세력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이란의 근본주의가 소련의 취약지대에서 무슬림의 봉기를 촉발시키는 도화선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추측했던 것이다.
  
  그후 미국은 중동과 중앙 아시아에서 여러 정책을 두고 저울질했다. 미국에게는 두 가지 목표밖에 없었다. 하나는 냉전에서의 승리였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지원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지지했으며, 그 수단들이 때로는 모순되기도 했다. 예컨대 미국은 이라크?이란 간의 전쟁(1980-1988)에서 이라크를 공식적으로 지원하면서도 이스라엘 무기의 이란 인도를 허락했다. 당시 텔아비브에 가까운 보수주의자들은 테헤란에 우호적인 입장을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이스라엘이 세속적인 아랍 민족주의를 주된 적으로 여기면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견제하려고 점령지역 내의 무슬림 형제들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워싱턴이 사우디 아라비아와 파키스탄과 동맹을 맺으면서 이런 전략은 절정에 이르렀다. 특히 파키스탄은 19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과 맞서 싸울 국제 지하드 전사를 창설하는 주역 역할을 했다.2)
  
  1990년 소련이 해체된 반면에 미국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몰아내기 위해서 국제연합군을 창설했다. 시리아에서 모로코까지 아랍 국가들은 국제법과 유엔 결의안에 근거한 국제연합군의 창설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그들에게는 우방이고 산유국인 군주국을 구원하는 동시에 국제정의에 발맞추어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보장이 주어졌다. 따라서 쿠웨이트의 주권이 회복되자마자,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철수를 요구한 결의안을 비롯해 유엔의 모든 결의안이 시행되어야만 했다.
  
  아랍이라는 체스판
  
  온갖 압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사담 정권을 전복시키려면 군사력을 동원해야만 했다. 또한 사담 후세인과 그의 정부를 제거하자마자 새로운 정부를 수립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정부를 수립하느냐가 골칫거리였다. 수니파 정부? 시아파 정부? 쿠르드족 정부? 아니면 바트당 정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참여를 허락해야만 할까? 어떤 형태로든 정부가 수립하기 위해서 미군이 바드다드에 얼마나 오랫동안 주둔해야 할까? 미군이 철수한 후에는 그 정부가 어떻게 될까? 미국이 그 지역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어느 정도까지 희생을 각오해야 할까? 내 생각에 … 사담 정권을 전복시켰다면 우리는 이라크라는 수렁에 빠지는 실수를 저지르는 셈이었다. 미국이 그렇게 희생을 치러야 할 만큼 사담이 가치있는 존재냐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결론은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인물이었다.”3) 이렇게 절제된 의견은 바로 당시 국방장관이었고 현재 미국 부통령인 딕 체니의 생각이었다.
  
   르몽드 [미국의 전략이 실패한 이유] △위기의 궁선 : 모로코에서 파키스탄까지 ⓒGoogle Earth
  당시 바그다드의 ‘정권교체’를 강력히 권고했던 사람들은 10년 이상 동안 이라크에 가해진 제재에 그런대로 만족했다. 그들은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압력단체를 조직했고, 상황이 무르익으면 곧바로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서 정치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1991년 10월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회담 이후,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 정책을 잠시 시행하려 했지만 곧 유야무야 되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이스라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996년 이후, ‘평화과정’은 웨스트 뱅크의 정착민을 배가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위기의 궁선’의 동쪽 끝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종전은 북부동맹의 전쟁 지도자들과 탈레반의 투쟁으로 발전했다.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미국은 파키스탄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이슬람화된 군사정권으로 변해갔고, 아프가니스탄은 파키스탄의 군사 정권에게 인도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적 공조를 제안했다. 파키스탄 군정보국에게 전폭적인 지원은 받은 탈레반이 승리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파키스탄의 새 정부와 관계를 더욱 견고히 발전시켜 갈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미국은 아랍민족과 무슬림의 바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갖가지 정책이 시행되었고 군대가 동원되었다. 동맹이 맺어지고 파기되었다. 아랍인과 무슬림의 땅에서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다른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벌어진 전쟁이었다. 이라크, 이란, 시아파 및 수니파 근본주의자들, 지하드라는 이데올로기, 독재와 민주주의, 절대군주, 야세르 알라파트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이스라엘의 정착촌과 ‘평화과정’ 등에 대한 정치적 입장의 변화에 따른 변덕이었다. 미국은 본연의 목표, 즉 석유 공급권의 확보, 냉전의 승리, 지배권의 확인, 혹은 이스라엘의 지원을 위해서 군사를 동원했다. 하지만 그런 목표 중 하나가 성취되면 미국은 지원을 얻으려고 꼬득였던 아랍인과 무슬림의 관심사를 ‘잊어버렸다’.
  
  2001년 9월 11일의 3년 전, 브레진스키의 유명한 대답만큼 아랍과 무슬림의 세계를 모욕한 말은 없었다. 소련을 자극해서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게 만들려고 지하드 조직을 지원하면서 야기한 유감스런 사건들에 대한 질문에 브레진스키는 “유감스레 생각할 것이 무엇인가? … 세계사에서 누가 더 중요한가? 탈레반인가 소련제국의 몰락인가? 일부 이슬람주의자를 흥분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냉전을 종식시켜 중앙 유럽을 해방시키는 것인가?”라고 반박했다.4)
  
  9.11사태이후 이라크의 침략과 점량까지 지난 5년 동안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건들이 이 지역에서 일어났다. 2003년 미국이 승리할 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통일된 이라크에 안정되고 비신정적인 민주 정부를 수립한 후에 신속하게 철수했더라면 미국은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매우 위험한 도박을 벌였고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한 퇴역 장성의 표현을 빌면, “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참담한 전략적 실패였다”.5) 만회할 길이 없는 패배였다.
  
  승자는 명백히 이란이다. 이라크 군대를 해체하고 바트당 중심의 구조를 와해시킨 미국의 전략 덕분에 이란은 전통적인 숙적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었다. 동시에 미국이 시아파 성직자들을 신뢰하면서 이라크 내에 이란의 동조세력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워싱턴은 조만간 공격할 듯한 적의 힘을 오히려 키워주었다.
  
  미국에게는 물론이고 무슬림 세계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서구의 지배에 저항하는 이데올로기로 요약되던 세속적이고 좌파적인 아랍 민족주의가 뒤로 물러나고, 그런 저항을 더욱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에 가둬버린 이슬람주의가 힘을 얻었다. 민족의 독립과 개발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에 종교?문화 및 공동체의 대립까지 더해졌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를 과거에는 서구세계가 부추겼지만 이제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실패하면서 테헤란이 이슬람의 깃발 아래에서 아랍 민족주의라는 횃불을 높이 치켜들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르몽드 [미국의 전략이 실패한 이유] △2003년 9월 14일 미 해군 에섹스호가 과거 미 해군기지였던 필리핀 마닐라 북부 올롱가포 시에 위치한 수빅만으로 입항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마침내 이란이 아랍 민족주의와 나날이 거세지는 이슬람의 저항을 하나로 결집시킨 새로운 전선의 첨병으로 등장했다. 모든 것이 이란의 뜻에 달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예컨대 이란은 미군의 상황을 편하게 해줄 수도 있고 더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헤즈볼라와 동맹을 맺고 있는 까닭에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을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다. 또한 하마스를 지원해서 팔레스타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도 있다.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걸프 지역의 산유국까지도 이란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이라크가 몰락하면서 남긴 이 지역의 권력 공백을 메우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을 억누르며, 시아파과 수니파 간의 해묵은 관계의 성격까지 바꿔놓을 위치에 있는 이란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위협은 이란의 전략적 중요성을 견고히 해주고, 아랍-무슬림 세계를 위한 저항의 전위부대라는 이란의 위상을 부각시킬 뿐이다. 워싱턴과 텔아비브가 한 가지 난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군사개입의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공중폭격과 특수부대의 작전에만 의존해야 한다. 이런 공격으로는 체제를 완전히 전복시키기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에서 미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이 핵무기의 사용을 고려하는 것일까?6) 이런 모험의 결과는 지역적 차원에서나 국제적 차원에서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파괴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험을 하기 전에 미국은 신뢰를 회복하고 미제국 전체를 단합시키는 두려움을 새롭게 조작해내야만 한다.
  
  워싱턴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도움을 받아 종파의 분열을 이용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기도 하다. 서로 모순되는 두 경향이 눈에 띈다. 하나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화해이다. 테헤란과 헤즈볼라 간의 유사성을 분명히 드러냈고, 셰이크 하산 나스랄라를 아랍세계, 적어도 하마스의 영웅으로 부각시킨 2006년 여름 레바논 전쟁 이후로 두 종파 간의 화해가 모색되었다. 전례가 없던 일로, 아랍세계에서 존경받는 수니파 종교 지도자들이 시아파와의 차이는 종교에서 극히 사소한 부분, 즉 ‘오술’이 아닌 ‘포루’에 불과하다고 인정했다.7) 다른 하나는 점령으로 인해 두 종파 간의 긴장 관계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이라크에서 뚜렷하다. 전략적 지역에 집중된 시아파는 수 세기 전부터 수니파 권력자에게 멸시당한 까닭에 원한과 분노를 억눌러왔다. 반대로 시아파 민병대의 권력 남용과 사담 후세인의 모욕적인 처형은 수니파에게 증오심을 안겨주었다.
  
  미국의 일부 지도자는 리야드가 시아파에 대한 수니파의 저항 운동을 지원해줄 것이라 분석한다. 실제로 사우디 정부는 중동 지역에서 시아파와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에 무척 적대적이다. 또한 사우디 정부는 필요하다면 이라크 내의 수니파를 보호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걸프만의 군주국들, 이집트, 요르단, 쿠르드족, 이라크와 레바논의 수니파 및 팔레스타인의 파타당이 시아파의 이란, 알라위파의 시리아와 그들의 동맹,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맞서서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까? 아랍의 ‘온건파’는 양측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팔레스타인 문제에 신속하면서도 공정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런 모험에 뛰어든다면 진지한 타협의 기회마저 사라질 것이다.
  
  중동에서의 위험한 도박
  
  종파 간의 갈등을 이용하려는 이런 전략은 무슬림 간의 내전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내전에 참전하는 국가는 이스라엘과 미국을 대신해서 이 지역을 갈갈이 찢어버리는 하수인으로 여겨질 수 있다. 어떤 무슬림 세력, 어떤 수니파, 결국 어떤 반시아파 세력을 지원해야 할까? 어떤 세력이라도 지원한다면, 서구 세계 심지어 미국의 여론까지 자국의 정부가 새로운 ‘지하드 살라피스트 무장단체’, 달리 말하면 알카에다를 키워내는 것이라 생각하며 겁먹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렇게 되다면 승리는커녕 새로운 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짓이다.
  
  네오콘은 이런 전략을 건설적인 불안, 혹은 창조적 파괴라 미화시키지만, 한 냉정한 관계자는 훨씬 적절하게 ‘국가의 자살행위’, 즉 국가의 파괴라고 칭했다.8) 미국은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서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결국 인정했다. 의도는 제쳐두고 결과만을 따진다면, 워싱턴의 중동정책이 ‘파탄국가’를 구하기는커녕 파탄국가를 만들어낼 뿐이라고 아랍인과 무슬림이 결론짓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레바논의 공격은 엄청난 파괴를 자행하고도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스라엘은 그 지역과 세계에서 더욱 더 고립되었다. 헤즈볼라는 전투원들과 교신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며, 침략자에게 패배의 아픔을 안겨주고,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날려보내는 역량을 상실하지 않았다.9) 그러나 이스라엘은 목표물에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을 뿐아니라 헤즈볼라를 무장해제시키지 못했고 체포당한 군인들조차 귀환시키지 못했다.
  
  미국에 이라크에서 경험했듯이, 레바논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제기된 문제는 이런 패배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판돈을 두 배로 올릴 것인가’였다. 이번의 실패가 새로운 세대의 전쟁을 알리는 징조였을까, 아니면 일순간의 패배였을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첨단무기를 이용한 어마어마한 폭격을 과시하며 걸프전쟁(1990-1991)과 발칸 반도에서 자랑스레 내세웠던 ‘사망율 제로’를 지향하는 승리 모델이 효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이제부터는 장기적인 관리와 국민의 호응을 끌어내는 것이 과제이다. 막강한 공군이 보장해줄 수 없고, 소중한 인명과 정치적 비용이 요구되는 과제이다.
  
  워싱턴은 이 작은 전쟁에서 맡은 역할 덕분에 이미 상당한 대가를 치렀다. 푸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미국에게 레바논의 파괴 행위를 막아달라고 읍소했다. 이런 모습은 하나의 전환점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3.14그룹은 ‘백향목 혁명’ 덕분에 선거에서 승리했다. 워싱턴은 ‘백향목 혁명’을 부시 대통령이 아랍 세계에 심어주려는 민주적 개혁의 전형으로 찬양하며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레바논에 따끔한 교훈을 주려는 이스라엘의 욕심 때문에 시니오라는 버림받고 말았다. 워싱턴은 한 달 동안의 휴전을 방해했을 뿐아니라 이스라엘에게 파괴적 무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르몽드 [미국의 전략이 실패한 이유] △2006년 8월1일밤 이스라엘 공수부대원들이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을 넘어 행군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그로 인해, 시니오라의 표현대로 레바논의 기반시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파괴되고 말았고,10) 레바논 정부의 힘이 크게 약화되었다. 덕분에 헤즈볼라가 중요한 역할을 맡겠다고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헤즈볼라는 ‘백향목 혁명’을 거꾸로 흉내내고, 미국과 서방세계가 권유한 전술까지 모방하면서 대규모 반전시위를 절도있게 주도하고 있다. 미국은 이런 내전에 끼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레바논 군부와 보안군에 원조를 대폭 늘였으며, 보안군은 수니파와 드루즈파에서 신병 모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11) 미국 언론에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지만 이런 정책은 아랍과 이스라엘 및 세계 언론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레바논 전쟁 이후로,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할 목적에서 동맹국을 배신하거나 정의의 원칙을 위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아랍 세계를 설득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사회기반시설이 파괴되고, 정치?사회적인 결집력이 약화되었으며, 종파 간의 갈등과 내전으로 발전할 구실까지 생겼다. 이라크에서 경험한 이런 역학관계는 워싱턴의 계획에 전혀 없던 참담한 결과였다. 레바논에서 똑같은 결과가 빚어졌을 때도 불행한 우연의 일치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유사한 역학관계가 팔레스타인에서도 나타나자 많은 학자가 미국 전략의 ‘모델’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영토는 엄청난 인도주의적 위기에 빠졌다. 2006년 1월의 선거에서 하마스가 승리한 이후로 미국과 유럽 연합은 이스라엘과 손잡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기아상태에 몰아 넣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거부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누구나 예측했듯이 이런 야만적 공격으로 사회적 질서가 붕괴되고 내분이 일어났다.
  
  미국의 한 평론가는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상황을 이렇게 묘사해주었다.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군인과 거대한 전기 철조망에 둘러싸인 채 불결하고 과밀한 빈민가에 갇혀 살고 있다. 그들은 가자 지구를 떠날 수도 없고 그곳에 들어갈 수도 없다. 게다가 이스라엘군의 습격을 일상으로 겪어야 한다 […] 법과 질서를 붕괴시키고 혼란의 씨를 뿌리려 그들을 궁핍한 삶으로 몰아가려는 이스라엘의 조직적인 시도는 가자 시의 길에서 흔히 눈에 띈다.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에 허물어진 팔레스타인 내부무, 외무부, 국가경제부, 수상 집무실이 있던 건물과 몇몇 교육기관의 잔해 앞을 지난다 […] 웨스트 뱅크도 가자에 닥친 위기와 유사한 위기에 신속히 빠져들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가자와 웨스트 뱅크를 이라크의 축소판으로 만들어서 얻는 이득이 무엇일까? [ …] 그렇게 해서 테러의 위협을 줄이고, 자살테러공격을 저지해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일까?”12)
  
  미국이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아, 파타당의 실력자 모하메드 다흘란과 관련된 제17부대의 전투원들에게 무기를 인도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보안부대 책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런 미국 무기의 인도로 하마스와의 군비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13)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이스라엘이 그 지역에서 야망을 실현하는 데 걸림돌로 지목한 세 나라에서 사회질서를 붕괴시키고 내전을 촉발하려는 전략이 전개되었다. 팔레스타인인을 완전히 종속시키거나, 이스라엘이 탐내는 모든 땅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쫓아내려는 우익 시오니스트 집단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들은 거추장스런 이웃 국가들을 허약하게 만들려고 한다. 이런 광신도들이 이스라엘 정부에서 핵심적인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는 하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워싱턴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친구가 되는 길을 착각하면서 그처럼 파괴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전략을 구사한다는 사실, 게다가 그런 전략을 입안까지 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일 뿐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친구라면 이런 전략에 참여하고픈 유혹을 뿌리치고, 이스라엘의 한 평론가가 지적한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의 정책은 팔레스타인 사람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까지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2억의 아랍인에게 둘러싸인 인구 700만의 작은 유대국가(그중 550만이 유대인)가 무슬림 세계 전체를 적으로 만들었다. 그런 국가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팔레스타인인을 구원하는 길이 곧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길이다.”14)
  
  미국은 중동에서만 참담한 패배를 당한 것이 아니다. 동쪽 끝,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911사태 이후,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무력으로 추적할 권리가 워싱턴에 있다는 사실에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하부구조를 재편할 목적으로 나토까지 동원해서 방대한 군사 작전을 개시한 결정은 너무나 위험했다.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무력의 결정적인 승리이외에, 사회개혁에 필요한 장기적인 재정지원과 정책지원이 뒤따라야 했다. 또한 그 지역에서 신뢰받고 존경받는 인물을 개혁의 길에 동참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미국은 신속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 북부동맹의 전쟁 지도자들에게 의지했고, 카불의 중앙정부와 유사한 정부를 급조하려고 수입한 대통령에게 의지했다. 게다가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느라 아프가니스탄에서 서둘러 손을 뗀 까닭에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지도층을 제거하는 데도 실패했다. 빈 라덴과 아이만 알 자와하리는 지금도 여전히 카세트 테이트를 살포하고 있으며,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 양편을 지배하는 파슈툰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탈레반은 세력을 재정비해서 나토군에게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 때문에 나토군은 막사에 틀어박혀 급습을 하거나 공중폭격을 할 때만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15) 파키스탄의 외무장관까지 나토가 패배를 인정하고 군대를 철수시켜야 한다고 공언할 정도까지 되었다.
  
  알카에다와 분명하고도 고결한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워싱턴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지도자들과 부족들의 복잡한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때문에, 또한 파키스탄의 위험하고도 복잡한 상황 때문에 방향을 잘못 잡고 실수를 저질렀다. 파키스탄은 카슈미르를 두고 국가의 사활이 걸린 전투를 벌이고 있고 이슬람 세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슬라바마드는 나토와 아프가니스탄 정부에게 ‘온건한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을 인정하라고 촉구하면서, 북(北)와지리스탄의 관할권을 탈레반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이렇게 근거를 마련하자, ‘온건하지 않은 탈레반’이 나토군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이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례가 없던 ‘자살폭탄테러’까지 감행하기도 한다. 이라크와의 관련설이 현실화된 것일까?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국은 결국 파키스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파키스탄은 구조적으로 급진적 이슬람 단체와 손잡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그 결과로, 알카에다의 ‘파키스탄화’가 궁극적으로 파키스탄의 ‘알카에다화’로 변질된다면? 미국 언론은 이처럼 불안한 현상에 대해 함구할 뿐이다.
  
  따라서 ‘위기의 궁선’은 중동에서 인도 대륙까지 확대된다. 앞으로 수 개월 내에, 현재의 위기를 악화시키거나, 아니면 합리적 해결책을 찾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결정이 내려질 것이다. 특히 워싱턴의 결정이 주목된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전환점을 마련하려면, 서구의 지도자들이 알카에다, 바트당, 헤즈볼라, 하마스, 시리아, 이란을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악의 축’으로 똑같이 분류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위기들 간에는 관련성이 있지만, 각 위기의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서 그 뇌관을 제거하는 데 힘써야 한다.
  
  베이커-해밀턴 보고서의 진실
  
  시리아를 예로 들어보자. 시리아는 미국을 위협하지도 않을뿐더러 과거에 여러 차례 미국에 도움을 주었다. 또한 합법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나라이다. 이스라엘의 골란 고원 점령은 미국에게 어떤 이익도 없다. 따라서 골란 고원의 철수에 관해서는 시리아와 협정을 체결해야 마땅하다.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도 국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조직들이다. 미국도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상당한 문제를 해결하고, 광적인 테러의 방지를 비롯해 국익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조직들이 알카에다의 지부이거나 알카에다를 모방한 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베트남이 ‘악의 제국’의 도구가 되지 않았듯이 이 조직들도 그런 도구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조건이 갖추어질 때 협상가들이 이런 국가들과 이런 조직들을 관리가능한 적으로 바꿔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정치계에서 영향력을 가진 목소리들이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베이커-해밀턴의 보고서가 가장 분명한 증거이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장을 마련하자고 촉구했다. 이미 초래된 타격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잘못된 결정이 취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정치적 방향전환을 진지하게 모색해야만 한다. 이렇게 하자면, 일방적 무력 사용만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또한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원하는 정책도 포기해야 한다. 특히, 강대국의 필요성 때문에, 이스라엘 정착민의 영토적 야심 때문에, 혹은 알카에다라는 가공의 공동체 때문에 입맛에 따라 조작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틀에 무슬림 세계의 다양한 민족과 국민을 뭉뚱그려 넣을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르몽드 [미국의 전략이 실패한 이유] 기사에 덧붙임
필자소개 : Hichan Ben Abdallah El Alaoui는 프린스턴 대학 부설 북아프리카와 중동 및 중앙아시아 연구소의 창립자로 1996년과 2000년의 팔레스타인 선거에서 국제 감시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2007년 1월 29일,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섭정 강사’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쓴 글이다. 모로코 왕, 모하메드 4세의 사촌이기도 하다.
번역 : 강주헌

이하 각주
1) Robert Dreyfuss, Deveil's Game: How the United States Helped Unleash Fundamentalist Islam, Metropolitan Books, New York, 2005, p.240.
2) Piere Abramovici, "L'histoire secrete des negociations entre Washington et les talibans", Le Monde diplomatique, 2002년 1월.
3) Soref Symposium, 1991년 4월 29일. www.washingtoninstitute.org/templateC07.php?CID=55
4) Le Nouvel Observateur, Paris, 1998년 1월 15일부터 21일까지.
5) William E. Odom, "What's wrong with cutting and running?", The Lowell Sun, Lowell (Massachusetts, Etats-Unis), 2005년 9월 30일.
6) Jorge Hirsch, "Nuking Iran is not off the table", 2006년 7월 6일. www,antiwar.com/orig/hirsch.pho?articleid=9255. Philip Giraldi, "Deep background', The American Conservative, Arlington (Virgine), 2005년 8월 1일.
7) 포루(foru)는 ‘가지’를 뜻하고, 오술(osul)은 ‘근원’을 뜻한다.
8) Sarah Shield, "Staticide, not civil war on Iraq", 2006년 12월 6일, www.commondreams.org/views06/1208-32.htm
9) Alastair Crooke & Mark Perry, "How Hezbollah Defeated Israel", Counterpunch.org. 2006년 10월 12일과 13일. 10) www.archive.gulfnews.com/indepth/israelattack/Lebanon/10054034.htm
11) www.english.chosun.com/w21data/html/news/200612/200612160010.htm. Megan K. Stack, "Lebanon builds up security forces", Los Angeles Times, 2006년 12월 1일.
12) Chris Hedges, "Worse than Apartheid", www.truthdig.com/report/item20061218_worse_than_apartheid
13) Aaron Klein, "US weapons prompt Hamas arms Race?", www.wnd.com/news/article.asp?article_id=53411
14) Tanya Reinhardt, "Introduction", www.zmag.org/content/showarticle.cfm?ItemID=11140
15) Syed Saleem Shahzad, "Comment les talibans ont repris l'offensive", Le Monde diplomatique, 2006년 9월.


2007년03월01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