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다"란 어휘를 사전에서 찿아 볼려고 몇군데를 뒤적였는데 유감스럽게 어느곳에도 시원스런 답이 없다.해서 예전 어느 괴짜 철학 교수가 나름대로 끼워 마추던 말을 떠올려 본다."미치다"는 어느 어느곳에 "가까이 왔다" "이르렀다" "다가왔다" .. 대충 대충 이런 뜻도있고 직설적인 표현으론 정신나간 사람을 미친사람 이라고 부른다. "쟁이"란 말은 특이한 직업뒤에 부쳐서 부르는 사투리로써 그 대표적인 쟁이가 "엿쟁이" "땜쟁이" 등등이 있다.이런 직업은 오랬동안 했거나 특별할때 혹은 대를 이었다 던지 아주 잘할때 또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변함없이 꾸준히 하는사람을 일컬어서 부르기도 하지만 상식없는 사람들이 상대를 아래로 깔보며 부를때 "쟁이" "쟁이" 라고도 한다. 6.25 직후 피난민들이 부산에 몰렸다.너나 할것없이 조석 꺼리를 해결하기도 어려웠던 피난민들 중에는 뼈대있는 장인들도 꾀 있었을 것이리라.마땅이 해먹을 짗이없던 이들은 신작로나 골복길을 누비고 다니며안방에 있던 손재주를 가족들의 입에 풀칠이라도 해줄려고 하루종일 목이 터져라 에고 다녔을 것이고 그런 과정에 장인이 "쟁인"으로 혹은 혀짧은 사람들이 "재이"혹은 "쟁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울릉도 호박엿은 메스컴을 통해 유명해 졌다.몆번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래도 내가 어릴때 먹었던 구멍이 숭숭난 허연 엿이 진짜 맛있는 엿이고 요사히는 구경하기도 힘든다. 그당시 특이한 직업이 엿장사 이다. 대부분 큰 가위를 철렁거려가며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는데 마땅한 간식 꺼리가 없던 시절이라 행여 엿장사가 지나가는 기척이라도 나면 입안에 군침이 돌아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집안 구석구석에 있는 못쓰는것은 무엇이든 가지고 달린다. 인심좋은 엿쟁이를 만나면 한두가락 더 얻을수도 있고 어떤 엿장사는 널찍하니 펼쳐놓은 엿판위에 쇠 칼을 올려놓고 가위를 망치삼아 떼어 주기도 한다.고게 때로는 많이 떼이기도하고 적게 받을때도 있는데 그런때를 엿쟁이 맘대로.... 라고 우리들은 말했다. 기억에 남는 엿장사가 있는데 언제보나 술에 쩌들어 있고 목소리 우렁차게 고함을 치는데 고물 가져오란 말은 한마디도 안하고 무조건 "내가왔따"~~아~~아~ "내해~가아~와았따"~~ 아~~아~아 ~ 얼씨구나 좋다아~아 "내 가아~ 와았~따"~~그러고선 엿가락을 한움큼 쥐고 "우" 하니 따라 다니는 코흘리게 어린애들 앞에 있는 담 벼락에 냅다 던진다 .고럴때 산산 조각난 엿조각은 먼저 먹는 녀석이 임자다. 싸고 간편한 양은으로 만들은 솥이나 냄비는 그당시의 중요한 가정필수품이 었다.그런데 그게 오래쓰다 보면 닳아서 구멍이나게 마련인데 고걸 때워 주는 직업이 있었다.바로 "땜장이" 이다.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골목길이 조용하다 싶은데 "솥 때우소" 냄비때우소!"......뚜드리고 갈고 잘 떼워졌나 햇볕에 비쳐보고 .. 장전동 골목길을 누비는 땜쟁이 여럿중, 난쟁이 키에 손톱이 아주 짧고 몽땅하게 생긴 빡빡얽은 곰보가 있었는데 목소리가 우스꽝스럽고 걷는 폼도 갈지자로 걸어서 하루라도 안오면 동내 꼬마들이 서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장전교회 바로위에 집채만한 바위가 있는데 꼬마들 여럿 바위위에 올라가 놀다가 예의 그 목소리... "솥 때우소" 냄비 때우소!" 꼬마들 여럿이서 한박자도 안틀리고 한목소리로"꼼보딱지 때우소!"그 땜쟁이는 한번도 틀림없이 늘 다니는 골목길을 기계처럼 다녔다. 우리들은 놀려 댔지만 그런덴 관심도 없었다. "쟁이"란 누가 뭐라해도 자기 할일만 할때 진짜 "쟁이"가 되는게다. 요 전번에 교횔 가려는데 날 기다렸다면서 자기 차로 모시겠단다.집안 대대로 불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다.대단한 재력가에다 뻣뻣하기 이를데 없고 나이도 들데로 들었다.한마디로 대화하기 힘든 사람이다.그런데 왼일인지 최근들어 교회에 나간다는 소문이 있었다.또 한사람을 태운다.전도도 잘한다. 3 년전..서울에 살때 자기가 사는 동내 구청장으로 부터 10 시반에 만나자고전화가 왔다.아쉬울때 마다 부탁하는 처지라 황급히 나갔단다.그날 끌리다시피 교회에 나가서 말씀을 듣다가 부뚜막의 엿처럼 녹아버린 거라.늦게배운 도적질 날새는줄 모른다고 요새는 새벽 기도도 안 빠진단다.참말로 세상 오래살고 볼일이다.날 보면서 "실례합니다.....옛날에 저희집에 오셔서 교회 이야기 할때 맘속으로 이사람 미쳤구나".. 라고 생각했읍니다.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서 온 집안이 오랫동안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모두들은 때로는 어떤 과정을 통과 하면서 "미친갱이"가 되기도 했다.한걸음 더 나아가 목회자로 혹은 사모로써 교회를 섬기고 장로나 장로 부인이된 형제도 있다.바로 "쟁이"가 된게다. 날 미친갱이로 생각했던 사람은 이제 자기가 "미친갱이"가 되었고 우리들은 "예수쟁이"가 되었다.미친갱이와 예수쟁이.. 암만 들어도 화가 안난다.
미친갱이와 예수쟁이..
"미치다"란 어휘를 사전에서 찿아 볼려고 몇군데를 뒤적였는데 유감스럽게 어느곳에도 시원스런 답이 없다.
해서 예전 어느 괴짜 철학 교수가 나름대로 끼워 마추던 말을 떠올려 본다.
"미치다"는 어느 어느곳에 "가까이 왔다" "이르렀다" "다가왔다" ..
대충 대충 이런 뜻도있고 직설적인 표현으론 정신나간 사람을 미친사람 이라고 부른다.
"쟁이"란 말은 특이한 직업뒤에 부쳐서 부르는 사투리로써 그 대표적인 쟁이가 "엿쟁이" "땜쟁이" 등등이 있다.
이런 직업은 오랬동안 했거나 특별할때 혹은 대를 이었다 던지 아주 잘할때 또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변함없이 꾸준히 하는사람을 일컬어서 부르기도 하지만 상식없는 사람들이 상대를 아래로 깔보며 부를때 "쟁이" "쟁이" 라고도 한다.
6.25 직후 피난민들이 부산에 몰렸다.
너나 할것없이 조석 꺼리를 해결하기도 어려웠던 피난민들 중에는 뼈대있는 장인들도 꾀 있었을 것이리라.
마땅이 해먹을 짗이없던 이들은 신작로나 골복길을 누비고 다니며
안방에 있던 손재주를 가족들의 입에 풀칠이라도 해줄려고 하루종일 목이 터져라 에고 다녔을 것이고 그런 과정에 장인이 "쟁인"으로 혹은 혀짧은 사람들이 "재이"혹은 "쟁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울릉도 호박엿은 메스컴을 통해 유명해 졌다.
몆번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래도 내가 어릴때 먹었던 구멍이 숭숭난 허연 엿이 진짜 맛있는 엿이고 요사히는 구경하기도 힘든다.
그당시 특이한 직업이 엿장사 이다.
대부분 큰 가위를 철렁거려가며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는데 마땅한 간식 꺼리가 없던 시절이라 행여 엿장사가 지나가는 기척이라도 나면 입안에 군침이 돌아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집안 구석구석에 있는 못쓰는것은 무엇이든 가지고 달린다.
인심좋은 엿쟁이를 만나면 한두가락 더 얻을수도 있고 어떤 엿장사는 널찍하니 펼쳐놓은 엿판위에 쇠 칼을 올려놓고 가위를 망치삼아 떼어 주기도 한다.
고게 때로는 많이 떼이기도하고 적게 받을때도 있는데 그런때를 엿쟁이 맘대로.... 라고 우리들은 말했다.
기억에 남는 엿장사가 있는데 언제보나 술에 쩌들어 있고 목소리 우렁차게 고함을 치는데 고물 가져오란 말은 한마디도 안하고 무조건 "내가왔따"~~아~~아~ "내해~가아~와았따"~~ 아~~아~아 ~ 얼씨구나 좋다아~아 "내 가아~ 와았~따"~~
그러고선 엿가락을 한움큼 쥐고 "우" 하니 따라 다니는 코흘리게 어린애들 앞에 있는 담 벼락에 냅다 던진다 .
고럴때 산산 조각난 엿조각은 먼저 먹는 녀석이 임자다.
싸고 간편한 양은으로 만들은 솥이나 냄비는 그당시의 중요한 가정필수품이 었다.
그런데 그게 오래쓰다 보면 닳아서 구멍이나게 마련인데 고걸 때워 주는 직업이 있었다.
바로 "땜장이" 이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골목길이 조용하다 싶은데 "솥 때우소" 냄비때우소!"......
뚜드리고 갈고 잘 떼워졌나 햇볕에 비쳐보고 ..
장전동 골목길을 누비는 땜쟁이 여럿중, 난쟁이 키에 손톱이 아주 짧고 몽땅하게 생긴 빡빡얽은 곰보가 있었는데 목소리가 우스꽝스럽고 걷는 폼도 갈지자로 걸어서 하루라도 안오면 동내 꼬마들이 서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장전교회 바로위에 집채만한 바위가 있는데 꼬마들 여럿 바위위에 올라가 놀다가 예의 그 목소리...
"솥 때우소" 냄비 때우소!"
꼬마들 여럿이서 한박자도 안틀리고 한목소리로"꼼보딱지 때우소!"
그 땜쟁이는 한번도 틀림없이 늘 다니는 골목길을 기계처럼 다녔다.
우리들은 놀려 댔지만 그런덴 관심도 없었다.
"쟁이"란 누가 뭐라해도 자기 할일만 할때 진짜 "쟁이"가 되는게다.
요 전번에 교횔 가려는데 날 기다렸다면서 자기 차로 모시겠단다.
집안 대대로 불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대단한 재력가에다 뻣뻣하기 이를데 없고 나이도 들데로 들었다.
한마디로 대화하기 힘든 사람이다.
그런데 왼일인지 최근들어 교회에 나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또 한사람을 태운다.
전도도 잘한다.
3 년전..
서울에 살때 자기가 사는 동내 구청장으로 부터 10 시반에 만나자고전화가 왔다.
아쉬울때 마다 부탁하는 처지라 황급히 나갔단다.
그날 끌리다시피 교회에 나가서 말씀을 듣다가 부뚜막의 엿처럼 녹아버린 거라.
늦게배운 도적질 날새는줄 모른다고 요새는 새벽 기도도 안 빠진단다.
참말로 세상 오래살고 볼일이다.
날 보면서 "실례합니다.....옛날에 저희집에 오셔서 교회 이야기 할때 맘속으로 이사람 미쳤구나".. 라고 생각했읍니다.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서 온 집안이 오랫동안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모두들은 때로는 어떤 과정을 통과 하면서 "미친갱이"가 되기도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목회자로 혹은 사모로써 교회를 섬기고 장로나 장로 부인이된 형제도 있다.
바로 "쟁이"가 된게다.
날 미친갱이로 생각했던 사람은 이제 자기가 "미친갱이"가 되었고 우리들은 "예수쟁이"가 되었다.
미친갱이와 예수쟁이..
암만 들어도 화가 안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