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ine이안되었지만, 아침 6시좀 넘어 쓰기 시작해서 7시반 다되서 끝낸 글. 파일명은 있지만 제목은 없다. 뭘로할지잘-_-;
읽고한번실천해보도록하자 :)
제목추천고고씽
다소 좀 복잡한 기분과 심정과 함께, 책 2 페이지를 읽고 나서는 어제 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 새벽 2시 정도에 잠에 들었다. 이불 같은 건 안 덮었고, 창문과 커튼과 문은 다 닫혀있었다.
꿈을 꾸고는 잠에서 깨며 눈을 떴다.
그리곤 그땐 왜 그랬는지, 딱히 화장실을 가고싶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갈증을 없애려 부엌으로 향했다.
벌써 밖은 동이 튼 시간이었고, 몇 시인지는 생각조차 하지도 않았다. 다만 회색하늘과 한 폭의 그림 같은 구름만이 있었다.
물을 마시러 가다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보아서 무엇인지 가까이 제대로 보아야 했다.
개똥.
우리집은 개를 베란다 밖에서 키우기에, 들어오는 일이 잦지 않았다.
난 사람들이 개를 사랑하고, 개 얘기만 나오면 찔린다. 몇몇 정치인들께선 돈 얘기가 나오면 불편한 것처럼 말이다. 내가 그렇게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나루는 미니어처 핀셔, 푸들과 도베르만의 교배종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사주신 개였다.
처음엔 작았지만, 성깔 덕에 점점 밀려서 베란다에서 밖에 못 있게 되었었다. 아버지는 돌아 가신지 꽤 되었고, 가족은 힘들었으며,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개를 좋아하시지 않았다. 우리 누나나 나도 애정이 부족했다, 우리 가족은 원래 혼자 잘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난 내 맘에 항상 미안함이 있기에 대리고도 가끔 나가곤 했지만 너무 뚱뚱해서, 나가면 발작을 일으키고 거품을 물고 기절을 한다. 밤에 대리고 나가도 너무 크고 시꺼매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긴다. 따지고 보면 다 내 잘못이었다.
이쁜 개, 성깔은 좀 있지만, 머리도 좋은 그런 개를, 저렇게, 힘들게 살게 하다니.
어머니의 돈도 지금까지 여간 들어간 게 아닐 것이다. 그런 것을 항상 잘 알면서도. 하나의 생각과 미안함과 사죄를 품고 있으면서도, 본능적인 편의를 위해 미루어 왔던 것 같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사랑한단 말과 죄송하단 말을 자주 못하듯이.
나와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 몇 날이고 몇 일이고 혼자서 지낸 개였다. 혼내시는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바로 옆에, 한 지붕아래 살면서도, 혼자.
동물학대자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
그래서 부엌에 가서 물을 마시면서도, 혼자는 나름 깼다고 생각하면서도, 시원한 물을 컵도 없이 통째로 들이키면서, 난 자고 있었나 보다. 통을 들고 방으로 돌아가, 다시 부엌으로 가 키친 타월로 개똥을 집었을 때, 마루전체로 나오는 햇빛 사이로 본 것은:
개 오줌.
일전에 어머니가, 새벽에 항상 나는 자고있는 시각에 개가 베란다의 바리케이트를 뚫고 나와 자기가 혼을 낸 것에 대해서 보복을 하고 들어갔다고 하였다. 이놈이 또 그랬구나… 하며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내 방 화장실 변기에 개똥을 넣고, 휴지를 꺼내 개 오줌을 닦으러 갔다.
5시 38분. 새벽,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건 평일에도 보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4시간 정도밖에 안 잤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꽤나 맑았다.
닦고 나서 화장실에 버리자니, 내 방 발코니로 멋들어진 자연의 한순간 뿐인 예술이 보였다.
사진을 찍어야지, 하면서 사진기 갖으러 내가 마루로 나갔을 때 본 것은 놀랍게도 쇼파에 앉아있었던 나루였다.
내 무관심 속에서 자란 나루, 항상 내가 미안해 하면서도 결국 그런 마음 만으로 아무것도 안 해주었던. 어떻게 보자면 내가 미안 해줘야 할 개가 그곳에 앉아 자고있었다.
내가보자 그놈도 날 봤는지, 아니 그 년도 날 봤는지, 일어 났다. 워 낙에 한번 들어오면 다시 베란다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 놈이라, 그리고 미안한 점도 있어 그 옆에 앉았다.
사실 어제 자기 전, 자고 있을 나루를 볼까 했다, 하지만 갈팡질팡하는 발걸음, 이내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자고 있을 터인데 깨울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러다가 들어와 오줌을 이곳 저곳에 갈기고, 똥도 싼 것이다.
피곤한 어머니의 화와 힘을 덜어드리기 위해 내가 다 치워야 했다. 절대 귀찮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항상 모든 일을 도맡아 하셨다. 내가 안 하거나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루와 거기 앉아 있었다.
어제 집에 들어왔을 때 엄마가 나루를 개 장사에게 팔아야 한다고 했다. 아니, 거의 단호하게 판다고 하셨다. 더 이상 늙기 전에 파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반박 하지 못했다. 내가 반박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지. 사랑도 주지 못한 주제에, 그리고 주지도 못할 주제에 거절을해 양쪽에 다 힘들게 하라고?
뭘 아는지, 거기 앉아서 쓰다듬어 주었다. 뚱뚱한 놈. 뭔가 전혀 모르는 눈빛. 죄 없는. 무지의 대한 폐를 우리는 죄라고 여길까? 지혜로운 자가 무식한 이를 돌보는 것 아니던가, 그것이 위와 아래의 존재 이유며, 이유가 없다면 도리 아닐까.
그냥 마냥 몇 초고 걔도 날보고 나도 걜 보았다. 고개를 돌려 밖을 본다, 구름과 해, 장마가 지나간 여름의 아침. 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른 곳에도 오줌을 싸놓았길래 치우고선 둘이 앉아 있었다.
여러 생각을 했겠지, 했었다. 어제 밤의 묘한 감정인지 생각인지의 교차도, 들떠있던 마음도 한층 다 죽어버린 기분. 항상 이러 하였다. 잠은 감수성을 죽이는 건지, 사람을 위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그냥 다르게 보는 것인지. 어쨌든 기억을 죽였다. 한층 더 약하게, 비현실적으로, 마치 꿈같이.
생각들은 잊혀지고, 기억들도 잊혀지고, 약속들도 어겨진다.
그러나 더 꿈 같은 것이 내 옆에 있었다. 이렇게 들어 맞을 수가. 신이 나에게, 좀 생각해보라고 보낸 것 같았다. 나의 그릇됨, 나태함, 무지. 다 아는 거처럼 굴면서도, 결국 바로 옆 우리집 개도 돌봐주지 못하다니. 나의 일초, 일초, 혼자 사색하던, 공부하던, 슬퍼하던 그런 시간들, 나루는 잊혀져 잠을 자고 있었을 거다. 혼자서, 기억 없이, 또 다시.
마치,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들 같이. 또는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 같이, 무지하게.
잔인하게.
이놈을 어떻게 다시 집안에 둘까?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생각이다. 내놓으면 귀찮은 건 사실이다. 대소변을 아직도 잘 못 가리고, 늙었고, 재주도 없었다. 성깔은 또 더럽고. 아니, 내 성깔이 더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쇼파에 앉아 있게 하고, 사진기를 가져오고, 사진을 몇 방이고 찍었다. 그 기억은, 그 시간과 공간과 느낌은 저장된다. 다시, 되 부를 순 없겠지만, 어쨌든 그 부분은 남는다.
이렇게 내가 글을 몇 장이고 쓰면, 컴퓨터에서 날라가기 전 까지는 남는다. 다시 얼마나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많은 회의, 신비로운 시간과 자주 해주지 못한 그냥 같이 있어줌을 하면서, 4시간전의 괴리감을 느꼈다. 뭔가 별거 아니었던 듯 싶고, 잊혀진 듯 한.
여러 인생, 세상, 나의 대한 생각과 고찰들 중에서, 하나 정리 되는 것은, 모든 것은 잊혀진다는 것이다. 그 기억은 남더라도, 그 감정은 잊혀진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는 다 다르지만, 그 들뜸은 가라앉혀지고, 그 흥분 또한 아득해진다, 저 멀리로.
쓰다듬어주고, 일어나 이놈이 어떻게 나왔나 보고있었다. 또 장을 힘으로 밀어 부쳐서 기어 나왔구나.
얼마나 나오고 싶었을까.
넣기도 미안하지만 넣어야 했다. 어머니 화내시는 모습 보기도 싫었고. 어제 아침, 학원 다녀와서 샤워하자고 나루에게 말했었는데, 그 약속도 어겨졌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친구와 밖에서 웃으며 놀면서.
우린 얼마나 무관심한가? 그러면서 감성적인 듯 떠들어 대고있다, 정작 너무 간단한 것들을 모르고, 어려운 것들을 파헤치면서.
고맙다는 말은 못하지만, 고맙게 느낄 방법을 찾기도 하고.
사랑한단 말도 못했으면서, 사랑 받을 방법을 찾으며,
위로도 한번 못해주었고, 듣지도, 보아주지도, 같이 있어주지도, 같이 울어주지도 못했으면서, 모든 것을 바란다.
‘Do un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unto you.’
성경의 구절이다. 얼마나, 이루지 못하여지는 말인가? 작은 편의, 작은 만족 때문에 양심엔 금이 가는 건 그렇다고 쳐도, 얼마나 많은 이가, 서로의 무관심과 둔함 속에 상처 받고 우는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래왔을까.
들어서 개를 넣으려고 하면 아마 발악할 것이다. 자기도 내가 자길 넣는 다는걸 모르는 게 결코 아니겠지.
그래서 일어 났더니, 그놈도 바닥으로 내려왔다. 소리를 만들어 두려웠다, 혹시나 어머니가 깰까. 어쨌든 바리케이트를 여니, 그놈이 혼자 조용히 들어갔다. 고마웠다.
그리곤 다시 닫고선, 물을 마시길래 밥도 주어야 하나 하고 어머니에게 갔다. 손을 만지니 어머니가 화들짝 깨시더군. 내가 더 놀랐어. 밥을 줄까 하고 물어보니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물어보라고 하셨다. 다행이다, 개가 오줌 싸고 똥싼 거에 대해서 모르시니, 근심하나 덜어 드렸네.
잠깐동안의 짧은 대화를 나누고 나는 다시 방으로 가서 사진을 더 찍고는, 잘 필요도 없을 것 같아, 숙제 좀 하고 피곤하면 자기로 하고선 나의 다른 방으로 갔다.
바보 같은 나, 하루 밤사이의 꿈, 반복되던 일들의 발견.
잔인한 나의 그릇됨, 감수성에 빠지고선 늪에서 허우적거린 나, 생각과 잊혀짐 사이 기록의 반복사이에서의 조금 더 큰 자극. 생각 만이 아닌, 현실 적인 어필.
할머니가 깨셨는지 와서 밥을 주었냐고 물으셔서 안 주었다고 했다. 몇 번 말했지. 안주셨어요? 하고 물으시니 줬다는 줄 아시기에, 아니라고 나는 안 줬다고 다시 몇 번 말해 의사 소통이 되었다.
할머니는 늙으셨다. 청력이 많이 안 좋으시고, 생각도 느리시고, 그리고 자부심이 좀 남으셔서 마찰이 많았다. 힘없으신 할머니.
집에 주기적으로 오시는, 예전에 나를 키워주시던 할머니, 공주셨던 (이 씨 이심, 정말로) 할머니에게 들었다. 별로 남지도 않으신 인생, 네가 낙일 텐데 기쁘게 해드리라고. 할머니에 대해서 난 잘 모른다, 어떻게 만났는지도 조금밖에 모르고, 인연이 오래된 것은 아나, 요리를 잘하시고, 우리가족과 잘 맞는다는 것. 굉장히 똑똑하신 분이다.
하지만 결혼 후 반년 후에 6.25가 터져 남편이 행방불명 되었고, 그렇게 살아오신 할머니. 세월의 아픔과 자국에도 할머니는 꿋꿋하시고, 세상에 밝으셨다. 정치에 대한 것을 많이 아셨다, 공무원 일을 하셨던 만큼, 당들의 추세, 짓거리들, 정치인들.
날씨, 요리, 세계, 드라마, 뉴스, 전부 다. 박식한 만큼 이해심도 넓으시다.
그렇게 들었던 그 말이 오래도 남아 있는가 보다. 어차피 가실 거, 가기 전에, ‘있을 잘해’라는 말처럼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거늘. 만 인류가 후회하는 것을, 절차를 나도 밟고 있었다.
시정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마찰이 있는 어머니에게 어느날 밥을 먹으며 이 말씀을 드렸다. 오해와 마찰이 있어도, 안 맞는 점이 있어도, 어쩔 수 없는 거, 웃으면서 하면 뭐가 덧나나. 너 좋고 나 좋으면 장땡이지. 좋게 해주려는 것은 ‘희생’ 이 아니다, 대가는 이득일 것 이다.
가실 날 얼마 안 남은 분들에게, 사랑도 못 드린단 말인가. 결국 일생 살아오시면서, 이런 저런 일 겪으시고 이젠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실 때, 조금 그 방법이 엇갈렸다고 하더라도. 받은 게 없더라도, 그거, 그 까짓 거, 못해드린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가실 날 얼마 안 남은 건, 당신도 나도 모두가 그렇다.
매일을 마지막처럼 살라는 그 유명한 말을 못 들어본 자가 없음에도, 우린 기만한다. 인간은 쉽게 잊는다, 자기 중심적으로 돌아가고, 실천 하지 못한다, 심장의 가운데에 박히지 않는 한.
그리하여, 6시가 넘어 나는 방에 들어와 여김 없이 컴퓨터를 키고 이 글을 적는다.
기록한다. 잊혀질 기억들을.
구름이 지나가고 해가 자기의 빛을 다하고, 듣지 못했던 곤충들이 마구 울기 시작한다.
오늘의 아침.
잊혀지고, 후회도 없게 되겠지만, 잃을 것 없는 장사, 순간의 기쁨을 위해 살아간다면, 순간의 기쁨을 위해, 이 글이 당신의 심장에 박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오늘 하루는 항상 기만하고 잊었던 일들을 하는 게 어떨까?
즐겁게 다시 오늘도 살아가는 거다. 오늘 당신은 갈 날이 얼마 남지 않는 것처럼,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과, 당신의: 친구, 선생님, 동생, 형, 누나, 언니, 오빠, 자녀, 남자친구, 여자친구,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사촌, 삼촌, 오촌, 육촌, 경비 아저씨, 길거리의 거지, 일하는 사람들, 힘들어 하는 사람들, 기쁜 사람들, 바쁜 사람들, 사람과 사람들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잃을 것 없는 장사니까 해보자. 쪽이 팔려나가면, 기쁨을 사는거다.
고마워, 사랑해, 미안해, 이게 어렵다면, 커피라도 끓여주고, 안부라도 물어보고, 밥이라도 사주고, 웃어 라도 주자. 이 간단하고도 어려운 건, 오늘 나의 개가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작년 여름, 개가 나에게 가르쳐준것.
refine이안되었지만, 아침 6시좀 넘어 쓰기 시작해서 7시반 다되서 끝낸 글. 파일명은 있지만 제목은 없다. 뭘로할지잘-_-;
읽고한번실천해보도록하자 :)
제목추천고고씽
다소 좀 복잡한 기분과 심정과 함께, 책 2 페이지를 읽고 나서는 어제 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 새벽 2시 정도에 잠에 들었다. 이불 같은 건 안 덮었고, 창문과 커튼과 문은 다 닫혀있었다.
꿈을 꾸고는 잠에서 깨며 눈을 떴다.
그리곤 그땐 왜 그랬는지, 딱히 화장실을 가고싶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갈증을 없애려 부엌으로 향했다.
벌써 밖은 동이 튼 시간이었고, 몇 시인지는 생각조차 하지도 않았다. 다만 회색하늘과 한 폭의 그림 같은 구름만이 있었다.
물을 마시러 가다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보아서 무엇인지 가까이 제대로 보아야 했다.
개똥.
우리집은 개를 베란다 밖에서 키우기에, 들어오는 일이 잦지 않았다.
난 사람들이 개를 사랑하고, 개 얘기만 나오면 찔린다. 몇몇 정치인들께선 돈 얘기가 나오면 불편한 것처럼 말이다. 내가 그렇게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나루는 미니어처 핀셔, 푸들과 도베르만의 교배종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사주신 개였다.
처음엔 작았지만, 성깔 덕에 점점 밀려서 베란다에서 밖에 못 있게 되었었다. 아버지는 돌아 가신지 꽤 되었고, 가족은 힘들었으며,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개를 좋아하시지 않았다. 우리 누나나 나도 애정이 부족했다, 우리 가족은 원래 혼자 잘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난 내 맘에 항상 미안함이 있기에 대리고도 가끔 나가곤 했지만 너무 뚱뚱해서, 나가면 발작을 일으키고 거품을 물고 기절을 한다. 밤에 대리고 나가도 너무 크고 시꺼매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긴다. 따지고 보면 다 내 잘못이었다.
이쁜 개, 성깔은 좀 있지만, 머리도 좋은 그런 개를, 저렇게, 힘들게 살게 하다니.
어머니의 돈도 지금까지 여간 들어간 게 아닐 것이다. 그런 것을 항상 잘 알면서도. 하나의 생각과 미안함과 사죄를 품고 있으면서도, 본능적인 편의를 위해 미루어 왔던 것 같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사랑한단 말과 죄송하단 말을 자주 못하듯이.
나와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 몇 날이고 몇 일이고 혼자서 지낸 개였다. 혼내시는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바로 옆에, 한 지붕아래 살면서도, 혼자.
동물학대자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
그래서 부엌에 가서 물을 마시면서도, 혼자는 나름 깼다고 생각하면서도, 시원한 물을 컵도 없이 통째로 들이키면서, 난 자고 있었나 보다. 통을 들고 방으로 돌아가, 다시 부엌으로 가 키친 타월로 개똥을 집었을 때, 마루전체로 나오는 햇빛 사이로 본 것은:
개 오줌.
일전에 어머니가, 새벽에 항상 나는 자고있는 시각에 개가 베란다의 바리케이트를 뚫고 나와 자기가 혼을 낸 것에 대해서 보복을 하고 들어갔다고 하였다. 이놈이 또 그랬구나… 하며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내 방 화장실 변기에 개똥을 넣고, 휴지를 꺼내 개 오줌을 닦으러 갔다.
5시 38분. 새벽,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건 평일에도 보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4시간 정도밖에 안 잤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꽤나 맑았다.
닦고 나서 화장실에 버리자니, 내 방 발코니로 멋들어진 자연의 한순간 뿐인 예술이 보였다.
사진을 찍어야지, 하면서 사진기 갖으러 내가 마루로 나갔을 때 본 것은 놀랍게도 쇼파에 앉아있었던 나루였다.
내 무관심 속에서 자란 나루, 항상 내가 미안해 하면서도 결국 그런 마음 만으로 아무것도 안 해주었던. 어떻게 보자면 내가 미안 해줘야 할 개가 그곳에 앉아 자고있었다.
내가보자 그놈도 날 봤는지, 아니 그 년도 날 봤는지, 일어 났다. 워 낙에 한번 들어오면 다시 베란다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 놈이라, 그리고 미안한 점도 있어 그 옆에 앉았다.
사실 어제 자기 전, 자고 있을 나루를 볼까 했다, 하지만 갈팡질팡하는 발걸음, 이내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자고 있을 터인데 깨울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러다가 들어와 오줌을 이곳 저곳에 갈기고, 똥도 싼 것이다.
피곤한 어머니의 화와 힘을 덜어드리기 위해 내가 다 치워야 했다. 절대 귀찮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항상 모든 일을 도맡아 하셨다. 내가 안 하거나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루와 거기 앉아 있었다.
어제 집에 들어왔을 때 엄마가 나루를 개 장사에게 팔아야 한다고 했다. 아니, 거의 단호하게 판다고 하셨다. 더 이상 늙기 전에 파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반박 하지 못했다. 내가 반박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지. 사랑도 주지 못한 주제에, 그리고 주지도 못할 주제에 거절을해 양쪽에 다 힘들게 하라고?
뭘 아는지, 거기 앉아서 쓰다듬어 주었다. 뚱뚱한 놈. 뭔가 전혀 모르는 눈빛. 죄 없는. 무지의 대한 폐를 우리는 죄라고 여길까? 지혜로운 자가 무식한 이를 돌보는 것 아니던가, 그것이 위와 아래의 존재 이유며, 이유가 없다면 도리 아닐까.
그냥 마냥 몇 초고 걔도 날보고 나도 걜 보았다. 고개를 돌려 밖을 본다, 구름과 해, 장마가 지나간 여름의 아침. 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른 곳에도 오줌을 싸놓았길래 치우고선 둘이 앉아 있었다.
여러 생각을 했겠지, 했었다. 어제 밤의 묘한 감정인지 생각인지의 교차도, 들떠있던 마음도 한층 다 죽어버린 기분. 항상 이러 하였다. 잠은 감수성을 죽이는 건지, 사람을 위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그냥 다르게 보는 것인지. 어쨌든 기억을 죽였다. 한층 더 약하게, 비현실적으로, 마치 꿈같이.
생각들은 잊혀지고, 기억들도 잊혀지고, 약속들도 어겨진다.
그러나 더 꿈 같은 것이 내 옆에 있었다. 이렇게 들어 맞을 수가. 신이 나에게, 좀 생각해보라고 보낸 것 같았다. 나의 그릇됨, 나태함, 무지. 다 아는 거처럼 굴면서도, 결국 바로 옆 우리집 개도 돌봐주지 못하다니. 나의 일초, 일초, 혼자 사색하던, 공부하던, 슬퍼하던 그런 시간들, 나루는 잊혀져 잠을 자고 있었을 거다. 혼자서, 기억 없이, 또 다시.
마치,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들 같이. 또는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 같이, 무지하게.
잔인하게.
이놈을 어떻게 다시 집안에 둘까?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생각이다. 내놓으면 귀찮은 건 사실이다. 대소변을 아직도 잘 못 가리고, 늙었고, 재주도 없었다. 성깔은 또 더럽고. 아니, 내 성깔이 더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쇼파에 앉아 있게 하고, 사진기를 가져오고, 사진을 몇 방이고 찍었다. 그 기억은, 그 시간과 공간과 느낌은 저장된다. 다시, 되 부를 순 없겠지만, 어쨌든 그 부분은 남는다.
이렇게 내가 글을 몇 장이고 쓰면, 컴퓨터에서 날라가기 전 까지는 남는다. 다시 얼마나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많은 회의, 신비로운 시간과 자주 해주지 못한 그냥 같이 있어줌을 하면서, 4시간전의 괴리감을 느꼈다. 뭔가 별거 아니었던 듯 싶고, 잊혀진 듯 한.
여러 인생, 세상, 나의 대한 생각과 고찰들 중에서, 하나 정리 되는 것은, 모든 것은 잊혀진다는 것이다. 그 기억은 남더라도, 그 감정은 잊혀진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는 다 다르지만, 그 들뜸은 가라앉혀지고, 그 흥분 또한 아득해진다, 저 멀리로.
쓰다듬어주고, 일어나 이놈이 어떻게 나왔나 보고있었다. 또 장을 힘으로 밀어 부쳐서 기어 나왔구나.
얼마나 나오고 싶었을까.
넣기도 미안하지만 넣어야 했다. 어머니 화내시는 모습 보기도 싫었고. 어제 아침, 학원 다녀와서 샤워하자고 나루에게 말했었는데, 그 약속도 어겨졌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친구와 밖에서 웃으며 놀면서.
우린 얼마나 무관심한가? 그러면서 감성적인 듯 떠들어 대고있다, 정작 너무 간단한 것들을 모르고, 어려운 것들을 파헤치면서.
고맙다는 말은 못하지만, 고맙게 느낄 방법을 찾기도 하고.
사랑한단 말도 못했으면서, 사랑 받을 방법을 찾으며,
위로도 한번 못해주었고, 듣지도, 보아주지도, 같이 있어주지도, 같이 울어주지도 못했으면서, 모든 것을 바란다.
‘Do un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unto you.’
성경의 구절이다. 얼마나, 이루지 못하여지는 말인가? 작은 편의, 작은 만족 때문에 양심엔 금이 가는 건 그렇다고 쳐도, 얼마나 많은 이가, 서로의 무관심과 둔함 속에 상처 받고 우는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래왔을까.
들어서 개를 넣으려고 하면 아마 발악할 것이다. 자기도 내가 자길 넣는 다는걸 모르는 게 결코 아니겠지.
그래서 일어 났더니, 그놈도 바닥으로 내려왔다. 소리를 만들어 두려웠다, 혹시나 어머니가 깰까. 어쨌든 바리케이트를 여니, 그놈이 혼자 조용히 들어갔다. 고마웠다.
그리곤 다시 닫고선, 물을 마시길래 밥도 주어야 하나 하고 어머니에게 갔다. 손을 만지니 어머니가 화들짝 깨시더군. 내가 더 놀랐어. 밥을 줄까 하고 물어보니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물어보라고 하셨다. 다행이다, 개가 오줌 싸고 똥싼 거에 대해서 모르시니, 근심하나 덜어 드렸네.
잠깐동안의 짧은 대화를 나누고 나는 다시 방으로 가서 사진을 더 찍고는, 잘 필요도 없을 것 같아, 숙제 좀 하고 피곤하면 자기로 하고선 나의 다른 방으로 갔다.
바보 같은 나, 하루 밤사이의 꿈, 반복되던 일들의 발견.
잔인한 나의 그릇됨, 감수성에 빠지고선 늪에서 허우적거린 나, 생각과 잊혀짐 사이 기록의 반복사이에서의 조금 더 큰 자극. 생각 만이 아닌, 현실 적인 어필.
할머니가 깨셨는지 와서 밥을 주었냐고 물으셔서 안 주었다고 했다. 몇 번 말했지. 안주셨어요? 하고 물으시니 줬다는 줄 아시기에, 아니라고 나는 안 줬다고 다시 몇 번 말해 의사 소통이 되었다.
할머니는 늙으셨다. 청력이 많이 안 좋으시고, 생각도 느리시고, 그리고 자부심이 좀 남으셔서 마찰이 많았다. 힘없으신 할머니.
집에 주기적으로 오시는, 예전에 나를 키워주시던 할머니, 공주셨던 (이 씨 이심, 정말로) 할머니에게 들었다. 별로 남지도 않으신 인생, 네가 낙일 텐데 기쁘게 해드리라고. 할머니에 대해서 난 잘 모른다, 어떻게 만났는지도 조금밖에 모르고, 인연이 오래된 것은 아나, 요리를 잘하시고, 우리가족과 잘 맞는다는 것. 굉장히 똑똑하신 분이다.
하지만 결혼 후 반년 후에 6.25가 터져 남편이 행방불명 되었고, 그렇게 살아오신 할머니. 세월의 아픔과 자국에도 할머니는 꿋꿋하시고, 세상에 밝으셨다. 정치에 대한 것을 많이 아셨다, 공무원 일을 하셨던 만큼, 당들의 추세, 짓거리들, 정치인들.
날씨, 요리, 세계, 드라마, 뉴스, 전부 다. 박식한 만큼 이해심도 넓으시다.
그렇게 들었던 그 말이 오래도 남아 있는가 보다. 어차피 가실 거, 가기 전에, ‘있을 잘해’라는 말처럼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거늘. 만 인류가 후회하는 것을, 절차를 나도 밟고 있었다.
시정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마찰이 있는 어머니에게 어느날 밥을 먹으며 이 말씀을 드렸다. 오해와 마찰이 있어도, 안 맞는 점이 있어도, 어쩔 수 없는 거, 웃으면서 하면 뭐가 덧나나. 너 좋고 나 좋으면 장땡이지. 좋게 해주려는 것은 ‘희생’ 이 아니다, 대가는 이득일 것 이다.
가실 날 얼마 안 남은 분들에게, 사랑도 못 드린단 말인가. 결국 일생 살아오시면서, 이런 저런 일 겪으시고 이젠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실 때, 조금 그 방법이 엇갈렸다고 하더라도. 받은 게 없더라도, 그거, 그 까짓 거, 못해드린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가실 날 얼마 안 남은 건, 당신도 나도 모두가 그렇다.
매일을 마지막처럼 살라는 그 유명한 말을 못 들어본 자가 없음에도, 우린 기만한다. 인간은 쉽게 잊는다, 자기 중심적으로 돌아가고, 실천 하지 못한다, 심장의 가운데에 박히지 않는 한.
그리하여, 6시가 넘어 나는 방에 들어와 여김 없이 컴퓨터를 키고 이 글을 적는다.
기록한다. 잊혀질 기억들을.
구름이 지나가고 해가 자기의 빛을 다하고, 듣지 못했던 곤충들이 마구 울기 시작한다.
오늘의 아침.
잊혀지고, 후회도 없게 되겠지만, 잃을 것 없는 장사, 순간의 기쁨을 위해 살아간다면, 순간의 기쁨을 위해, 이 글이 당신의 심장에 박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오늘 하루는 항상 기만하고 잊었던 일들을 하는 게 어떨까?
즐겁게 다시 오늘도 살아가는 거다. 오늘 당신은 갈 날이 얼마 남지 않는 것처럼,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과, 당신의: 친구, 선생님, 동생, 형, 누나, 언니, 오빠, 자녀, 남자친구, 여자친구,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사촌, 삼촌, 오촌, 육촌, 경비 아저씨, 길거리의 거지, 일하는 사람들, 힘들어 하는 사람들, 기쁜 사람들, 바쁜 사람들, 사람과 사람들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잃을 것 없는 장사니까 해보자. 쪽이 팔려나가면, 기쁨을 사는거다.
고마워, 사랑해, 미안해, 이게 어렵다면, 커피라도 끓여주고, 안부라도 물어보고, 밥이라도 사주고, 웃어 라도 주자. 이 간단하고도 어려운 건, 오늘 나의 개가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2006년 8월 2일. 아침 7시 37분까지.
첨부파일 : 개에게 내가 배운것은.d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