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성지 치명차산과 전동성당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치명자산... 사실 이 곳은 전동성당과 함께 가볼 생각이었는데, 승암사와 매우 지척에 있어 다음 코스로 정하였다.. 나즈막한 언덕이라 생각하며 유유히 출발한 서울댁들... 허나, 굽이굽이 돌아 산 정상까지... 아~ 이럴 줄 몰랐다.. 그래도 산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은 정겨웠다. 꽃이라도 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 . 사실 전주는 여러 가지로 역사가 깊은 곳이다. 후백제를 창건한 견훤의 주 활동지였고, 조선을 건국한 전주 이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가 나온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헉헉거리며 올라온 곳에 있는 성당 내 모습은 무척 한국적이었다. 성가정의 모습을 한 성수대 또한 그러했다. 그 다음날 전동성당에서 드린 미사 시간에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길, 이 곳 치명자산에 천주교 전주대교구건물이 건립된다고 한다. 그만큼 천주교쪽에서는 중요한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치명자산 자락에 있는 성당 내부의 모습 성수대의 모습 치명자산이라는 뜻은 목숨을 바친 자들이 묻힌 산이라는 뜻이다. 이산은 옛부터 승암산(중바위산) 이라 불렸는데 천주교 순교자들이 묻힌 이후로는 치명자산 혹은 루갈다산으로 더 많이 불려지고 있다. 이 곳에는 1784(정조8년)년 호남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 영입과 서양 선진문화수용을 하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 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 의처 신희. 동정 부부로 순교한 큰 아들 유 중철(요한중석)과 며느리 이 순이(루갈다) 등이 모셔져 있다. 이 분들은(순조1년) 신유박해때 9월부터 4개월여에 걸쳐 전주 남문밖 (현 정동성당) 전주옥, 숲정이에서 처형되어 멸족되었다. 그 자리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성당이 바로 전동성당이다. 전동성당 이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터가 있는 곳으로 보드네 신부가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명동 성당을 설계한 포아넬 신부의 설계로 건물이 완공되었다. 호남 지방의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의 하나라고 한다. 영화 약속에 나와 더욱 유명한 곳이다. -박신양과 전도연의 눈물의 결혼식 장면을 이 곳에서 찍었단다. 위치:전주 한옥마을 태조로 입구2
전주의 성지 치명차산과 전동성당
전주의 성지 치명차산과 전동성당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치명자산...
사실 이 곳은 전동성당과 함께 가볼 생각이었는데,
승암사와 매우 지척에 있어 다음 코스로 정하였다..
나즈막한 언덕이라 생각하며 유유히 출발한 서울댁들...
허나, 굽이굽이 돌아 산 정상까지... 아~ 이럴 줄 몰랐다..
그래도 산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은 정겨웠다.
후백제를 창건한 견훤의 주 활동지였고,
조선을 건국한 전주 이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가 나온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헉헉거리며 올라온 곳에 있는 성당 내 모습은 무척 한국적이었다.
성가정의 모습을 한 성수대 또한 그러했다.
그 다음날 전동성당에서 드린 미사 시간에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길,
이 곳 치명자산에 천주교 전주대교구건물이 건립된다고 한다.
그만큼 천주교쪽에서는 중요한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이산은 옛부터 승암산(중바위산) 이라 불렸는데
천주교 순교자들이 묻힌 이후로는 치명자산 혹은 루갈다산으로 더 많이 불려지고 있다.
이 곳에는 1784(정조8년)년 호남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 영입과 서양 선진문화수용을 하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 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 의처 신희. 동정 부부로 순교한 큰 아들 유 중철(요한중석)과 며느리 이 순이(루갈다) 등이 모셔져 있다.
이 분들은(순조1년) 신유박해때
9월부터 4개월여에 걸쳐 전주 남문밖 (현 정동성당) 전주옥, 숲정이에서 처형되어 멸족되었다.
그 자리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성당이 바로 전동성당이다. 전동성당
이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터가 있는 곳으로
보드네 신부가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명동 성당을 설계한 포아넬 신부의 설계로 건물이 완공되었다.
호남 지방의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의 하나라고 한다.
영화 약속에 나와 더욱 유명한 곳이다.
-박신양과 전도연의 눈물의 결혼식 장면을 이 곳에서 찍었단다.
위치:전주 한옥마을 태조로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