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정치를 하며 어떤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한나라당의 진로는 무엇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주변으로부터, 지지자로부터, 비판자로부터 받으면서 나 스스로 정리하고 이를 칼럼으로 게재하고자 한다. 공개하는 것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의견을 구하거나 공유하기 위함이다. 몇 차례가 될지 모르지만 현 시점에서의 나의 생각을 최대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지금 시점에서 정리하는 것은 대통령선거가 지나고 지난 과정을 전면적으로 돌아보면서, 나 자신의 초심과 출발점을 확인하고, 당의 혁신을 외치는 시점에 있어서 나 자신과 당의 좌표를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간혹 원론적인 내용들이 나오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것은 글로 정리하다 보니 앞뒤 맥락상 그렇게 되는 것이고, 가급적 실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해 보려고 한다.
2. 내가 생각하는 정치와 정당의 의미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면 보다 나은 방향이란 어떤 것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최대공약수는 국민 개개인의 행복한 삶의 추구가 아닐까. 국민 개개인이 보다 자유롭고, 보다 평등하고, 보다 풍요롭고,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그러한 삶 말이다. 그러나 개인의 행복한 삶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고, 나라가 부강하고 사회가 성숙하여야 한다. 가난하고 불안정한 나라들을 가보라. 나라가 안 되면 국민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이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통해 절실히 깨달은 바 있다.
결국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부강이 정치의 목적이다. 나는 민주적 정치, 효율적 경제, 상호부조적인 사회 등이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선진사회에의 진입을 목표로 한다. 예를 들자면, 한반도 평화의 공고화를 통한 안정적 남북관계의 진전, 국가경쟁력 강화를 통한 선진국 진입, 중산층이 두터운 마름모꼴의 중산층사회, 개인의 행복을 지원하는 국가공동체 등이 정치가 답을 제시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더 상세한 나의 이념적, 정책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
한편, 나는 정당에 속해서 정치를 하고 있다. 나는 왜 정당에 속해서 정치를 하는가.
정당은 정치적 결사체이다. 즉, 정당은 정치적인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결속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조직이다.
민주사회에서 정당의 존립기반은 국민이다. 국민의 지지와 참여 없이 현대의 정당은 존립할 수 없다. 정당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지 않으면 더 이상 정당이 아니다.
정당의 기본기능은, 사회 여러 분야의 다양한 국민의 요구와 의견을 흡수하여 이를 정책, 정견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또 각종 선거에 후보를 추천하고 당선시켜 대통령, 국회의원 등 공직을 담당하여 정책을 실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정당은 국민으로부터 의견과 요구를 흡수하고 당의 정책, 정견으로 제시하여 이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는 과정이 얼마나 활발하고 강력한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각종 선거에 후보를 내고 승리할 수 있는가가 정당의 영향력을 결정한다. 영향력 행사수단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물론 정권획득일 것이다.
나는 정당에 속해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면 나의 뜻과 정당의 뜻은 같은가. 내가 지향하는 목표는 정당의 지향과 같은가. 어느 정도 같고 어느 정도 다른가. 내가 대변하고자 하는 국민의 의사는 당의 정책, 정견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내가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것은(그 멤버쉽, 소속의 의미)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점은 다음 글에서 이야기하기로 하자.
3. 내가 생각하는 한나라당의 정체성
내가 생각하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은 이런 것이다.
건국, 산업화, 민주화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한다. 즉, 8.15이후 대한민국 수립이 외교안보면에서 민족생존조건으로서 역사적 정통성을 지닌다는 점, 미국일본과의 협력 속에서 추구한 60년대 이후 경제성장의 역할을 민족생존의 물질적 조건으로서 평가한다는 점,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민주화투쟁과 민주정부하에서의 민주화과정의 의미를 평가하고 계승한다는 점.
극좌와 극우를 견제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인하는 친북한적인 입장이나, 미국일본등 세계경제와의 연관이나 기업활동의 자유를 부정하는 급진좌파의 입장 등 극좌를 견제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권리를 탄압하는 독재정권의 잔재나, 민주주의의 다원성을 이분법적인 반공친공논리로 극단화시키는 매카시즘적 색깔론 등 극우 역시 견제한다.
합리적, 미래지향적 개혁을 추진한다. 건강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아우르는 중도세력을 중심으로 합리적 개혁을 추진한다. 합리적 개혁은 낭만주의나 군중심리를 경계하고 실용주의적이고 시스템에 의한 변화를 추구하며 예측가능성, 안정성을 중시한다. 추구하는 지표로는 경제수준의 선진국 진입(1인당 국민소득 2만불, 총국민소득 1조불),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 정부,시장,사회시스템, 위쪽이 두터운 마름모꼴 소득구조를 지닌 중산층사회(일본은 인구 1억 2천만명 중 1억명이 중산층인 사회를 추구함), 개인의 자아실현을 지원하는 자아실현적 복지시스템, 사회성원에게 복수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 한미일 동맹의 성숙에 기초한 남북화해협력구조 등.
이에 더하여 세계화, 정보화, 생태화, 문화화, 고령화 등 현대사회의 여러 경향을 얼마나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효과적인 국가발전전략을 수립할 것인가, 또 통일시대를 누가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가 등 미래지향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즉, 미래에 대한 공신력 있는 안내지도를 제시하는 정치집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 세대적인 면에서는 산업화세대, 민주화세대뿐 아니라 디지털세대를 아울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에 무감각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는 수구적인 경향을 주변화시키고 약화시켜야 한다. 끊임없이 변화를 파악, 소화하고 자기혁신(innovation)을 체질화하여야 한다.
이쯤 되면, 이게 한나라당의 정체성이냐 하고 생각할 분들이 많을지 모른다. 한나라당의 지금의 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말한 정체성과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린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현재 한나라당의 모습 사이의 불일치가 바로 한나라당이 쓰고 있는 수구의 껍데기이고, 자기혁신을 하지 못하고 기득권에 안주하여 역사적으로 뒷걸음질친 자기 업보이다. 수구의 껍질을 벗고 변화에 뒤쳐진 낙후성에서 벗어나 합리적 개혁세력의 중심으로 서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정체성 확립의 절박한 과제이다.
4. 정당간의 차별성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일부 사람들이 한국에서도 이념정당으로 헤쳐모여 해야 한다고 한다. 보수와 진보, 또는 좌파와 우파로 정당이 나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특수성과 현대사회에서의 정당의 변화를 볼 때 이념정당으로의 분화는 맞지 않다고 본다.
해방 후 극단적 좌우대결과 한국전쟁, 남북대치의 영향으로 한국에서 정당들의 이념적 분포는 매우 폭이 좁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이론적인 잣대로 보았을 때는 모두 보수정당이다. 한나라당 중도우파, 민주당 중도좌파 ??? 이도 역시 맞지 않는 잣대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경쟁하는 정당들이 캣치올(catch all - 모든 유권자를 겨냥하는) 정당으로 가는 추세이며, 중도파로 수렴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선거 때는 더욱 그렇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유럽의 우파정당과 좌파정당, 일본의 자민당과 민주당 등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뚜렷이 나타나는 경향이다. 물론 정당간에 역사적 전통, 주된 지지계층의 차이가 유지되기는 하지만.
이는 현대사회가 과거의 자산층과 무자산층 등 단순한 계층구조가 아니라 매우 다양한 사회계층과 집단들이 생겼고 사회의 이슈와 과제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좌파, 우파 또는 보수, 진보라는 잣대 자체가 맞지 않게 된 것이다. 다양한 사회집단들 중에서 보다 많은 지지를 끌어들이기 위해 계급정당이 아니라 국민통합정당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정당간의 차별성은 계급정당, 이념정당으로서의 차이가 아니라 "정책선호"의 차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지지기반계급, 통일된 하나의 이념으로 단순히 구분할 수가 없고, 각각의 정책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각 정책마다 경우에 따라 다르기(케이스 바이 케이스) 때문에 정당의 입장을 미리 예단할 수 없다.
또 같은 정당 내에서도 정책에 대한 입장이 다른 그룹이나 개인들이 있을 수 있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이 공화당쪽 정책을 지지하는 투표를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흔하게 일어난다.
또 같은 당 내에서도 주도세력 또는 지도자에 따라 제시하는 지도력이라는 결과물은 매우 다르다. 민주당 내에서도 김대중의 리더쉽과 노무혐의 리더쉽이 크게 다르듯이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회창의 리더쉽과 다른 지도자들(아직은 부각되지 않았지만)의 리더쉽은 매우 다른 내용과 특성을 가지고 한국사회에 다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정당간의 차별성이 반드시 가치나 이념의 차이, 정책의 차이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또 그 차이가 적대적이거나 공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죽기살기식의 정쟁은 정당간 차별성 때문이 아니라 공존의 원리를 외면하고 배타적, 적대적으로 상대방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이 서로 비슷한 경우에도 전략이나 방법론 차원에서 차별성이 나타나게 된다. 또 내거는 정책이 같아도 그것을 집행하고 관리하는 효율성이나 능력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즉, 같은 개혁을 내걸더라도 개혁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론과 능력에서 차이가 있는데, 어쩌면 이 차이가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의 개혁성공을 위해서는 특히 김대중정부의 잇따른 개혁실패가 주는 교훈을 잘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생각을 정리해보겠다.)
국민의 입장과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볼 때 국정을 운영할 예비집단이 복수로 있는 것이 낫다. 그래야 한 집단이 시대변화에 따른 국가과제해결에 실패했을 때 대체집단이 상시 대비되어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여당과 야당의 교체에 따른 민주주의의 장점이고, 복수정당제도가 보장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합리적 개혁세력으로서 중심을 잡고 한나라당을 수구의 껍데기를 벗고 미래지향적 자기혁신을 이루어 국정담당의 예비세력으로서 준비를 하는 것. 이것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서 내가 할 일이다.
5. 나는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국민의 삶에서 출발한 정치
다시 자신에게 묻는다. 정치란 무엇인가. 인도의 네루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라고 했다. 넘어져 좌절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는 것이 정치이다. 고립된 개인들과 갈라진 사회를 하나의 대한국민으로 통합하는 것이 정치이다.
정치가 정치인 그들만의 리그였던 적이 있다. 다수의 국민들과는 높은 담장으로 차단된 채 그들만의 밀실, 그들만의 당사, 그들만의 체육관에 들어앉아 국민들에게 지시하고 가르치던 시절이 있었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폐쇄회로에 갇혀서 정치의 경쟁상대를 매도하는데 골몰하면서 국가를 자신들이 이끌고 있다고 착각 속에 살던 시절이 있다.
정치와 국민 사이의 담장을 걷어내고 어떻게 국민의 요구와 교감할 것인가. 국민의 삶, 그 속에서의 눈물과 아픔을 어떻게 국가의 정책과 활동으로 연결시켜낼 것인가. 다수 국민의 공감과 비판을 어떻게 흡수해서 국가활동의 에너지로 연결시킬 것인가.
정치는 국민 개개인의 삶에서 출발하고 또 개개인의 삶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내가 대변해야 할 국민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떤 문제들인가. 예를 들어, 올해 34세의 중소기업 영업사원, 열심히 뛰어서 인정받지만 월급은 만족스럽지 않다. 아이들 유치원비, 학원비 걱정에 대학까지 공부시킬 생각을 하면 걱정이다. 주택부금을 붓고 있지만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내집마련의 꿈은 더 멀어진다. 문화생활욕구수준은 높은데 점점 엄두가 안 난다. 경기가 나빠지고 있어서 걱정이다. 출근길 교통은 아침부터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아이를 키우는 30대 여성.........수많은 생활인들, 서민들, 그들 삶에서부터 정치의 몫을 찾아 일을 해가야 한다. 이들이 자신이 정치인에 의해 대변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의 삶과 결부된 정책을 개발하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개인의 삶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삶에 희망을 찾고 활력을 주는 정치가 필요하다. 민족이라는 코드의 화두를 놓쳐버린 것은 보수세력의 치명적 실책이고 게으름이었다. 냉전구조의 변화에 따른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성숙된 자주외교와 남북화해협력을 제시해야 했었다. 외교와 남북문제에 대한 견해는 다른 기회에 제시하기로 하자.
국민의 삶에서 출발하고 국민의 삶에 도움과 희망을 주는 정치, 이것이 근본이다. 생활이라는 코드, 서민이라는 코드, 민족이라는 코드, 이것이 국민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한 화두로 느낀다.
나는 왜, 그리고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
나는 왜 정치를 하며 어떤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한나라당의 진로는 무엇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주변으로부터, 지지자로부터, 비판자로부터 받으면서 나 스스로 정리하고 이를 칼럼으로 게재하고자 한다. 공개하는 것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의견을 구하거나 공유하기 위함이다. 몇 차례가 될지 모르지만 현 시점에서의 나의 생각을 최대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지금 시점에서 정리하는 것은 대통령선거가 지나고 지난 과정을 전면적으로 돌아보면서, 나 자신의 초심과 출발점을 확인하고, 당의 혁신을 외치는 시점에 있어서 나 자신과 당의 좌표를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간혹 원론적인 내용들이 나오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것은 글로 정리하다 보니 앞뒤 맥락상 그렇게 되는 것이고, 가급적 실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해 보려고 한다.
2. 내가 생각하는 정치와 정당의 의미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면 보다 나은 방향이란 어떤 것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최대공약수는 국민 개개인의 행복한 삶의 추구가 아닐까. 국민 개개인이 보다 자유롭고, 보다 평등하고, 보다 풍요롭고,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그러한 삶 말이다.
그러나 개인의 행복한 삶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고, 나라가 부강하고 사회가 성숙하여야 한다. 가난하고 불안정한 나라들을 가보라. 나라가 안 되면 국민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이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통해 절실히 깨달은 바 있다.
결국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부강이 정치의 목적이다. 나는 민주적 정치, 효율적 경제, 상호부조적인 사회 등이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선진사회에의 진입을 목표로 한다. 예를 들자면, 한반도 평화의 공고화를 통한 안정적 남북관계의 진전, 국가경쟁력 강화를 통한 선진국 진입, 중산층이 두터운 마름모꼴의 중산층사회, 개인의 행복을 지원하는 국가공동체 등이 정치가 답을 제시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더 상세한 나의 이념적, 정책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
한편, 나는 정당에 속해서 정치를 하고 있다. 나는 왜 정당에 속해서 정치를 하는가.
정당은 정치적 결사체이다. 즉, 정당은 정치적인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결속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조직이다.
민주사회에서 정당의 존립기반은 국민이다. 국민의 지지와 참여 없이 현대의 정당은 존립할 수 없다. 정당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지 않으면 더 이상 정당이 아니다.
정당의 기본기능은, 사회 여러 분야의 다양한 국민의 요구와 의견을 흡수하여 이를 정책, 정견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또 각종 선거에 후보를 추천하고 당선시켜 대통령, 국회의원 등 공직을 담당하여 정책을 실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정당은 국민으로부터 의견과 요구를 흡수하고 당의 정책, 정견으로 제시하여 이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는 과정이 얼마나 활발하고 강력한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각종 선거에 후보를 내고 승리할 수 있는가가 정당의 영향력을 결정한다. 영향력 행사수단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물론 정권획득일 것이다.
나는 정당에 속해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면 나의 뜻과 정당의 뜻은 같은가. 내가 지향하는 목표는 정당의 지향과 같은가. 어느 정도 같고 어느 정도 다른가. 내가 대변하고자 하는 국민의 의사는 당의 정책, 정견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내가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것은(그 멤버쉽, 소속의 의미)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점은 다음 글에서 이야기하기로 하자.
3. 내가 생각하는 한나라당의 정체성
내가 생각하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은 이런 것이다.
건국, 산업화, 민주화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한다.
즉, 8.15이후 대한민국 수립이 외교안보면에서 민족생존조건으로서 역사적 정통성을 지닌다는 점,
미국일본과의 협력 속에서 추구한 60년대 이후 경제성장의 역할을 민족생존의 물질적 조건으로서 평가한다는 점,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민주화투쟁과 민주정부하에서의 민주화과정의 의미를 평가하고 계승한다는 점.
극좌와 극우를 견제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인하는 친북한적인 입장이나, 미국일본등 세계경제와의 연관이나 기업활동의 자유를 부정하는 급진좌파의 입장 등 극좌를 견제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권리를 탄압하는 독재정권의 잔재나, 민주주의의 다원성을 이분법적인 반공친공논리로 극단화시키는 매카시즘적 색깔론 등 극우 역시 견제한다.
합리적, 미래지향적 개혁을 추진한다.
건강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아우르는 중도세력을 중심으로 합리적 개혁을 추진한다.
합리적 개혁은 낭만주의나 군중심리를 경계하고 실용주의적이고 시스템에 의한 변화를 추구하며 예측가능성, 안정성을 중시한다.
추구하는 지표로는
경제수준의 선진국 진입(1인당 국민소득 2만불, 총국민소득 1조불),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 정부,시장,사회시스템,
위쪽이 두터운 마름모꼴 소득구조를 지닌 중산층사회(일본은 인구 1억 2천만명 중 1억명이 중산층인 사회를 추구함),
개인의 자아실현을 지원하는 자아실현적 복지시스템,
사회성원에게 복수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
한미일 동맹의 성숙에 기초한 남북화해협력구조 등.
이에 더하여 세계화, 정보화, 생태화, 문화화, 고령화 등 현대사회의 여러 경향을 얼마나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효과적인 국가발전전략을 수립할 것인가,
또 통일시대를 누가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가 등
미래지향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즉, 미래에 대한 공신력 있는 안내지도를 제시하는 정치집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 세대적인 면에서는 산업화세대, 민주화세대뿐 아니라 디지털세대를 아울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에 무감각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는 수구적인 경향을 주변화시키고 약화시켜야 한다.
끊임없이 변화를 파악, 소화하고 자기혁신(innovation)을 체질화하여야 한다.
이쯤 되면, 이게 한나라당의 정체성이냐 하고 생각할 분들이 많을지 모른다. 한나라당의 지금의 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말한 정체성과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린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현재 한나라당의 모습 사이의 불일치가 바로 한나라당이 쓰고 있는 수구의 껍데기이고, 자기혁신을 하지 못하고 기득권에 안주하여 역사적으로 뒷걸음질친 자기 업보이다.
수구의 껍질을 벗고 변화에 뒤쳐진 낙후성에서 벗어나 합리적 개혁세력의 중심으로 서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정체성 확립의 절박한 과제이다.
4. 정당간의 차별성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일부 사람들이 한국에서도 이념정당으로 헤쳐모여 해야 한다고 한다. 보수와 진보, 또는 좌파와 우파로 정당이 나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특수성과 현대사회에서의 정당의 변화를 볼 때 이념정당으로의 분화는 맞지 않다고 본다.
해방 후 극단적 좌우대결과 한국전쟁, 남북대치의 영향으로 한국에서 정당들의 이념적 분포는 매우 폭이 좁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이론적인 잣대로 보았을 때는 모두 보수정당이다. 한나라당 중도우파, 민주당 중도좌파 ??? 이도 역시 맞지 않는 잣대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경쟁하는 정당들이 캣치올(catch all - 모든 유권자를 겨냥하는) 정당으로 가는 추세이며, 중도파로 수렴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선거 때는 더욱 그렇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유럽의 우파정당과 좌파정당, 일본의 자민당과 민주당 등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뚜렷이 나타나는 경향이다. 물론 정당간에 역사적 전통, 주된 지지계층의 차이가 유지되기는 하지만.
이는 현대사회가 과거의 자산층과 무자산층 등 단순한 계층구조가 아니라 매우 다양한 사회계층과 집단들이 생겼고 사회의 이슈와 과제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좌파, 우파 또는 보수, 진보라는 잣대 자체가 맞지 않게 된 것이다. 다양한 사회집단들 중에서 보다 많은 지지를 끌어들이기 위해 계급정당이 아니라 국민통합정당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정당간의 차별성은 계급정당, 이념정당으로서의 차이가 아니라 "정책선호"의 차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지지기반계급, 통일된 하나의 이념으로 단순히 구분할 수가 없고, 각각의 정책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각 정책마다 경우에 따라 다르기(케이스 바이 케이스) 때문에 정당의 입장을 미리 예단할 수 없다.
또 같은 정당 내에서도 정책에 대한 입장이 다른 그룹이나 개인들이 있을 수 있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이 공화당쪽 정책을 지지하는 투표를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흔하게 일어난다.
또 같은 당 내에서도 주도세력 또는 지도자에 따라 제시하는 지도력이라는 결과물은 매우 다르다. 민주당 내에서도 김대중의 리더쉽과 노무혐의 리더쉽이 크게 다르듯이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회창의 리더쉽과 다른 지도자들(아직은 부각되지 않았지만)의 리더쉽은 매우 다른 내용과 특성을 가지고 한국사회에 다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정당간의 차별성이 반드시 가치나 이념의 차이, 정책의 차이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또 그 차이가 적대적이거나 공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죽기살기식의 정쟁은 정당간 차별성 때문이 아니라 공존의 원리를 외면하고 배타적, 적대적으로 상대방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이 서로 비슷한 경우에도 전략이나 방법론 차원에서 차별성이 나타나게 된다. 또 내거는 정책이 같아도 그것을 집행하고 관리하는 효율성이나 능력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즉, 같은 개혁을 내걸더라도 개혁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론과 능력에서 차이가 있는데, 어쩌면 이 차이가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의 개혁성공을 위해서는 특히 김대중정부의 잇따른 개혁실패가 주는 교훈을 잘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생각을 정리해보겠다.)
국민의 입장과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볼 때 국정을 운영할 예비집단이 복수로 있는 것이 낫다. 그래야 한 집단이 시대변화에 따른 국가과제해결에 실패했을 때 대체집단이 상시 대비되어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여당과 야당의 교체에 따른 민주주의의 장점이고, 복수정당제도가 보장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합리적 개혁세력으로서 중심을 잡고 한나라당을 수구의 껍데기를 벗고 미래지향적 자기혁신을 이루어 국정담당의 예비세력으로서 준비를 하는 것. 이것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서 내가 할 일이다.
5. 나는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국민의 삶에서 출발한 정치
다시 자신에게 묻는다. 정치란 무엇인가. 인도의 네루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라고 했다. 넘어져 좌절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는 것이 정치이다. 고립된 개인들과 갈라진 사회를 하나의 대한국민으로 통합하는 것이 정치이다.
정치가 정치인 그들만의 리그였던 적이 있다. 다수의 국민들과는 높은 담장으로 차단된 채 그들만의 밀실, 그들만의 당사, 그들만의 체육관에 들어앉아 국민들에게 지시하고 가르치던 시절이 있었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폐쇄회로에 갇혀서 정치의 경쟁상대를 매도하는데 골몰하면서 국가를 자신들이 이끌고 있다고 착각 속에 살던 시절이 있다.
정치와 국민 사이의 담장을 걷어내고 어떻게 국민의 요구와 교감할 것인가. 국민의 삶, 그 속에서의 눈물과 아픔을 어떻게 국가의 정책과 활동으로 연결시켜낼 것인가. 다수 국민의 공감과 비판을 어떻게 흡수해서 국가활동의 에너지로 연결시킬 것인가.
정치는 국민 개개인의 삶에서 출발하고 또 개개인의 삶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내가 대변해야 할 국민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떤 문제들인가. 예를 들어, 올해 34세의 중소기업 영업사원, 열심히 뛰어서 인정받지만 월급은 만족스럽지 않다. 아이들 유치원비, 학원비 걱정에 대학까지 공부시킬 생각을 하면 걱정이다. 주택부금을 붓고 있지만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내집마련의 꿈은 더 멀어진다. 문화생활욕구수준은 높은데 점점 엄두가 안 난다. 경기가 나빠지고 있어서 걱정이다. 출근길 교통은 아침부터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아이를 키우는 30대 여성.........수많은 생활인들, 서민들, 그들 삶에서부터 정치의 몫을 찾아 일을 해가야 한다. 이들이 자신이 정치인에 의해 대변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의 삶과 결부된 정책을 개발하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개인의 삶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삶에 희망을 찾고 활력을 주는 정치가 필요하다. 민족이라는 코드의 화두를 놓쳐버린 것은 보수세력의 치명적 실책이고 게으름이었다. 냉전구조의 변화에 따른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성숙된 자주외교와 남북화해협력을 제시해야 했었다. 외교와 남북문제에 대한 견해는 다른 기회에 제시하기로 하자.
국민의 삶에서 출발하고 국민의 삶에 도움과 희망을 주는 정치, 이것이 근본이다. 생활이라는 코드, 서민이라는 코드, 민족이라는 코드, 이것이 국민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한 화두로 느낀다.
2003. 0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