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결의안이 지난 1월 31일 미국 하원에 제출되면서 일본이 떠들썩하다. 2월 20일 아소 외상이 구 일본군은 위안부를 강제 동원하는 데 개입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발언해 한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 직면한 가운데, 3월 5일 아베 총리마저 국회에서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상당한 파문이 예상된다. 특히 아베의 발언은 총리 취임 후 위안부 강제동원을 시인한 1993년 고노(河野)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했던 자신의 지난해 국회 발언과도 배치되는 것이어서 흔히 있어온 일본 정치인들의 고답적인 망언의 차원을 넘어 뿌리깊은 군국주의와 우경화의 뿌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국제사회의 비난이 예상됨에도 이런 발언을 한 것은 고노 담화가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고 있어 미 하원의 위안부 비난 결의안 가결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으로 보인다. 또 내달 지방자치 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 세력의 결집을 통한 지지율 확산을 겨냥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면서도 이날 아베 총리는 "협의의 의미로서의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었다. 관헌이 사람들을 납치해 데려가는 강제성은 없었다. 그런 것을 증명하는 증언도 없다"고 구 일본군과 관청에 의한 강제연행 증거가 없다는 주장과 함께, "당시에는 경제상황도 있었다. 본인이 나서서 그런 길로 가려고 생각한 분은 아마 없을 것이다. 중간에 개입한 업자가 사실상 강제한 케이스도 있었다. 광의의 해석으로는 강제성이 있었다"고 [협의의 강제성]은 부정하면서 [광의의 강제성]은 인정함으로써 국제사회와 국내여론의 비난을 동시에 피해보려는 꼼수를 쓰는 치졸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아베의 주장은 ▲일본 정부가 직접 강제 동원을 내렸다고 기록된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전제를 깔면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 사실이 없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일본 우익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1993년 일본 내각외정심의실의 보고서도 “강제 동원이 일부 있었지만, 민간이 한 일일 뿐 일본 정부와는 상관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위안부 강제 동원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다. ▲위안부 출국 목적을 ‘정주(定住)를 위해’로 기재하도록 조치했다는 1940년 일본 내무성 문서 ▲부녀자의 모집·주선을 잘 단속하라고 지시한 1938년 일본 내무성 경보국장(警報局長)의 문서 등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을 묵인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며, 일본 정부가 종전을 전후해 체계적으로 문서 말살을 명령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연합군의 일본군 포로 심문 기록 등에 명백히 남아 있다. 그리고 1997년 일본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이 발간한 '종군위안부 관계자료 집성‘에는 일제가 종군위안부를 동원하는 데 군과 경찰은 물론 중국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까지 개입했음을 입증하는 공식문서가 수록되어 있다.
피해자들의 증언 또한 강제 연행을 입증하고 있다. 2002년 미국 연방정부 기록보존소에서 발견된 문서는 1945년 종전 때 미군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중국 쿤밍(昆明)에서 생포된 한국인 여성 23명이 모두 위안부였으며 모두 강제(compulsion)와 사기(misrepresentation)에 의해 위안부가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정진성(鄭鎭星)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1993년 당시 생존 피해자 중 일부인 175명의 보건복지부 신고내용을 조사한 결과 취업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82명, 협박 및 폭력이 62건, 인신매매 4건, 유괴·납치 5건, 근로정신대를 통한 동원이 8건, 공출·봉사대 등의 명목이 14건이었다. 정 교수는 “2004년 인도네시아 발리크파판(Balikpapan)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어 보니 ‘강제로 머리채를 잡혀 트럭에 태워졌다’ ‘연극배우를 시켜 준다고 속여 위안소로 데리고 갔다’는 등 한국 피해자들의 증언과 거의 흡사했다”며 “강제동원 증언이 매우 신빙성이 높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제사회의 중대한 보호법익의 하나인 기본적 인권 보장과 관련 있을 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국제범죄를 바로 다스려 정의를 세워야 하는 위안부 문제가 명백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전후 미해결의 현안으로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것인가? 아베의 이중적인 접근법이 바로 그 해답일 것이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군 개입을 일부 시인한 93년의 ‘고노담화’를 뒤집으려 하고 있는 일본 우익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 정권 차원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협의니 광의니 하는 개념으로 강제성을 부인하거나 호도하고 있으며, 문부과학성은 역사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위안부 기술 삭제를 종용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는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 저지를 위해 토머스 폴리 전 하원의장 등 미국의 전·현직 고위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피해 당사국인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로서는 한일 간의 과거사 청산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제라도 관계국 정부와 국제인권기구, 시민단체들은 일본의 태도 변화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음에도 정부나 국회는 이 문제에 대해 미온적이며, 학계나 사회단체마저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바로 학계나 사회단체의 일치된 노력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일본 우파적 시각을 공유하는 학자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비판을 받은 뉴라이트 재단의 안병직 교수는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자료가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을 뿐이지, 위안부를 강제동원 했다, 안했다라고 이야기한 바가 없다”고 일본 우익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한 말을 한 바 있다. 그도 꽤 잘나가는 학자이기에 논박을 피해갈 수 있는 논거는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강제 동원됐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자료 중에는 일부 위안부의 증언도 있으니까. 그러나 역사학에 있어서 본인의 증언은 방증자료로 쓸 수는 있어도 본격적인 역사자료로 채택하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강제가 있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이는 가능성에 불과하지 실제 사실여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이를 명확하게 말하려면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서 아베 총리의 [협의의 강제성]과 [광의의 강제성]이 생각나는 것은 나만이 국수주의자여서일까?
안 교수 그 자신은 “강제가 없었다”고 이야기한 바가 없음에도 “강제가 없으면 자발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심각한 논리적 한계가 있다고 항변한다. 인간의 행태에 있어서 강제에 의해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고 자발적인 행동도 있지만, 과연 이 두 가지 경우밖에 없느냐면서 공부 못하는 학생과 가난한 사람을 예로 들고 있다. “누구나 공부를 잘 하고 싶지만 성적이 반드시 1, 2등일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 강제로 성적을 나쁘게 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자발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나? 또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고 가난은 피하고 싶어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그들이 강제적으로 가난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렇지 않다고 그는 결론을 쉽게 낸 뒤, 우리 인간 대부분은 강제도 아니고 자발성도 아닌 형태로 생활하고 있다는 요지를 그대로 위안부 문제에 대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이러했다. “한국의 수많은 위안부들이 강제동원된 것이 아니라면 모두 자발적이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가난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위안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는 대단히 가슴 아픈 일이다.”
공부 못하는 사람이 다 강제로 그런 것이 아니고 못 사는 사람이 다 강제로 그런 것도 아닌데, 자발적인 것도 아니니 누구 잘못인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렇다면 위안부도 다 강제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닌데 자발적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렇다고 누굴 탓할 것인가? (제 운명을 탓해야지, 왜 일제를 들먹이느냐)... 이는 아베의 [협의 내지 광의의 강제성] 주장보다 더 명쾌하게 일제의 책임을 면탈시키는 주장이 아닌가? 참으로 위대한 3단논법식의 대위법이 아닌가!
이런 사람이 소위 사회운동을 하는 역사학자이며 대학교수란다. 그것도 일제의 현생국인 일본의 교수나 역사학자가 아니라 일제의 최대 피해 당사국인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이며 대학 교수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지 않은가? 지금 일본의 가장 친한 미국에서 일본인 3세 의원조차도 군대위안부가 문제라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유리한 상황에서조차 가해 당사국인 일본은 일사분란하게 사실 은폐를 시도하고 있는데 반해, 피해 당사국인 한국은 오히려 스스로 일본 우익의 논리에 빠져 사분오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안병직의 변주곡을 따라 퍼지는 아베의 망언!
아베의 위안부 망언, 우리에게 과연 비판할만한 자격이 충분한 것인가?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결의안이 지난 1월 31일 미국 하원에 제출되면서 일본이 떠들썩하다. 2월 20일 아소 외상이 구 일본군은 위안부를 강제 동원하는 데 개입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발언해 한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 직면한 가운데, 3월 5일 아베 총리마저 국회에서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상당한 파문이 예상된다. 특히 아베의 발언은 총리 취임 후 위안부 강제동원을 시인한 1993년 고노(河野)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했던 자신의 지난해 국회 발언과도 배치되는 것이어서 흔히 있어온 일본 정치인들의 고답적인 망언의 차원을 넘어 뿌리깊은 군국주의와 우경화의 뿌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국제사회의 비난이 예상됨에도 이런 발언을 한 것은 고노 담화가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고 있어 미 하원의 위안부 비난 결의안 가결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으로 보인다. 또 내달 지방자치 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 세력의 결집을 통한 지지율 확산을 겨냥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면서도 이날 아베 총리는 "협의의 의미로서의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었다. 관헌이 사람들을 납치해 데려가는 강제성은 없었다. 그런 것을 증명하는 증언도 없다"고 구 일본군과 관청에 의한 강제연행 증거가 없다는 주장과 함께, "당시에는 경제상황도 있었다. 본인이 나서서 그런 길로 가려고 생각한 분은 아마 없을 것이다. 중간에 개입한 업자가 사실상 강제한 케이스도 있었다. 광의의 해석으로는 강제성이 있었다"고 [협의의 강제성]은 부정하면서 [광의의 강제성]은 인정함으로써 국제사회와 국내여론의 비난을 동시에 피해보려는 꼼수를 쓰는 치졸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아베의 주장은 ▲일본 정부가 직접 강제 동원을 내렸다고 기록된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전제를 깔면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 사실이 없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일본 우익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1993년 일본 내각외정심의실의 보고서도 “강제 동원이 일부 있었지만, 민간이 한 일일 뿐 일본 정부와는 상관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위안부 강제 동원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다. ▲위안부 출국 목적을 ‘정주(定住)를 위해’로 기재하도록 조치했다는 1940년 일본 내무성 문서 ▲부녀자의 모집·주선을 잘 단속하라고 지시한 1938년 일본 내무성 경보국장(警報局長)의 문서 등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을 묵인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며, 일본 정부가 종전을 전후해 체계적으로 문서 말살을 명령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연합군의 일본군 포로 심문 기록 등에 명백히 남아 있다. 그리고 1997년 일본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이 발간한 '종군위안부 관계자료 집성‘에는 일제가 종군위안부를 동원하는 데 군과 경찰은 물론 중국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까지 개입했음을 입증하는 공식문서가 수록되어 있다.
피해자들의 증언 또한 강제 연행을 입증하고 있다. 2002년 미국 연방정부 기록보존소에서 발견된 문서는 1945년 종전 때 미군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중국 쿤밍(昆明)에서 생포된 한국인 여성 23명이 모두 위안부였으며 모두 강제(compulsion)와 사기(misrepresentation)에 의해 위안부가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정진성(鄭鎭星)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1993년 당시 생존 피해자 중 일부인 175명의 보건복지부 신고내용을 조사한 결과 취업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82명, 협박 및 폭력이 62건, 인신매매 4건, 유괴·납치 5건, 근로정신대를 통한 동원이 8건, 공출·봉사대 등의 명목이 14건이었다. 정 교수는 “2004년 인도네시아 발리크파판(Balikpapan)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어 보니 ‘강제로 머리채를 잡혀 트럭에 태워졌다’ ‘연극배우를 시켜 준다고 속여 위안소로 데리고 갔다’는 등 한국 피해자들의 증언과 거의 흡사했다”며 “강제동원 증언이 매우 신빙성이 높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제사회의 중대한 보호법익의 하나인 기본적 인권 보장과 관련 있을 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국제범죄를 바로 다스려 정의를 세워야 하는 위안부 문제가 명백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전후 미해결의 현안으로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것인가? 아베의 이중적인 접근법이 바로 그 해답일 것이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군 개입을 일부 시인한 93년의 ‘고노담화’를 뒤집으려 하고 있는 일본 우익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 정권 차원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협의니 광의니 하는 개념으로 강제성을 부인하거나 호도하고 있으며, 문부과학성은 역사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위안부 기술 삭제를 종용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는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 저지를 위해 토머스 폴리 전 하원의장 등 미국의 전·현직 고위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피해 당사국인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로서는 한일 간의 과거사 청산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제라도 관계국 정부와 국제인권기구, 시민단체들은 일본의 태도 변화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음에도 정부나 국회는 이 문제에 대해 미온적이며, 학계나 사회단체마저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바로 학계나 사회단체의 일치된 노력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일본 우파적 시각을 공유하는 학자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비판을 받은 뉴라이트 재단의 안병직 교수는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자료가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을 뿐이지, 위안부를 강제동원 했다, 안했다라고 이야기한 바가 없다”고 일본 우익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한 말을 한 바 있다. 그도 꽤 잘나가는 학자이기에 논박을 피해갈 수 있는 논거는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강제 동원됐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자료 중에는 일부 위안부의 증언도 있으니까. 그러나 역사학에 있어서 본인의 증언은 방증자료로 쓸 수는 있어도 본격적인 역사자료로 채택하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강제가 있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이는 가능성에 불과하지 실제 사실여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이를 명확하게 말하려면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서 아베 총리의 [협의의 강제성]과 [광의의 강제성]이 생각나는 것은 나만이 국수주의자여서일까?
안 교수 그 자신은 “강제가 없었다”고 이야기한 바가 없음에도 “강제가 없으면 자발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심각한 논리적 한계가 있다고 항변한다. 인간의 행태에 있어서 강제에 의해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고 자발적인 행동도 있지만, 과연 이 두 가지 경우밖에 없느냐면서 공부 못하는 학생과 가난한 사람을 예로 들고 있다. “누구나 공부를 잘 하고 싶지만 성적이 반드시 1, 2등일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 강제로 성적을 나쁘게 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자발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나? 또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고 가난은 피하고 싶어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그들이 강제적으로 가난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렇지 않다고 그는 결론을 쉽게 낸 뒤, 우리 인간 대부분은 강제도 아니고 자발성도 아닌 형태로 생활하고 있다는 요지를 그대로 위안부 문제에 대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이러했다. “한국의 수많은 위안부들이 강제동원된 것이 아니라면 모두 자발적이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가난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위안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는 대단히 가슴 아픈 일이다.”
공부 못하는 사람이 다 강제로 그런 것이 아니고 못 사는 사람이 다 강제로 그런 것도 아닌데, 자발적인 것도 아니니 누구 잘못인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렇다면 위안부도 다 강제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닌데 자발적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렇다고 누굴 탓할 것인가? (제 운명을 탓해야지, 왜 일제를 들먹이느냐)... 이는 아베의 [협의 내지 광의의 강제성] 주장보다 더 명쾌하게 일제의 책임을 면탈시키는 주장이 아닌가? 참으로 위대한 3단논법식의 대위법이 아닌가!
이런 사람이 소위 사회운동을 하는 역사학자이며 대학교수란다. 그것도 일제의 현생국인 일본의 교수나 역사학자가 아니라 일제의 최대 피해 당사국인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이며 대학 교수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지 않은가? 지금 일본의 가장 친한 미국에서 일본인 3세 의원조차도 군대위안부가 문제라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유리한 상황에서조차 가해 당사국인 일본은 일사분란하게 사실 은폐를 시도하고 있는데 반해, 피해 당사국인 한국은 오히려 스스로 일본 우익의 논리에 빠져 사분오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