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y가 국제 무대에 첫 선을 보이던 날..

김동현200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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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y가 국제 무대에 첫 선을 보이던 날..

개인적으로 무지 무지 조아하는 포니다..

 

■ 주요제원


  - 크기(길이x너비x높이) : 3970 x 1558 x 1360
  - 축거(mm) : 1248         - 윤거(앞/뒤) : 1278 / 1248
  - 차량중량(kg) : 870     - 배기량(cc) : 1238  
  - 최고출력(마력/rpm) : 80 / 6300
  - 최고토크(kg.m/rpm) : 10.8 / 4000
  - 최고시속(km/h) : 155
  - 연비(km/ℓ) : 15.0

 

최초의 국산 고유모델(국산화 90%) 승용차. 현대자동차는 포드와의 사업추진이 허사로 돌아가자 이탈리아 디자이너 쥬지아로에게 스타일링을 맡겨 한국형 승용차 "포니"의 개발에 성공하고 74년 10월 제55회 토리노 모터쇼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함으로서 국산 고유모델 시대를 열었다. 한국인의 취향과 체격, 그리고 도로사정에 맞는 경제형 차인데다가 내구성이 좋아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끌었으며, 마이카 시대를 열어준 차였다. 포니가 나온 뒤 승용차 시장의 80% 정도였던 중형차는 밀려나고 소형차 시대가 열렸다.

 


포니는 1975년 12월 생산에 들어가 76년 2월 울산공장에서 첫 출고되었으며, 판매 첫해에 1만726대가 팔려나가 국내 승용차시장 점유율 43.6%를 차지하면서 단번에 최고 인기차로 떠올랐다.  그해 7월 국산승용차로선 처음으로 에콰도르에 5대가 수출됐다.

 


이렇게 시작된 포니 시리즈는 1984년 단일 차종으로서는 처음으로 50만대 생산을 돌파 하였으며, 1975년 12월~ 1985년 12월까지 293,936 (내수 226,549대, 수출 67,387대)가 생산되었다.

 


77년에는 1,439cc 92마력짜리 엔진과 왜건, 픽업트럭등 가지치기 모델도 등장했으며 76년 당시 포니의 차값은 2,273,270원 이었다.

 


포니는 1960년대 중반 고(故) 정주영 회장의 자동차사업 진출의지와 박정희 정부 때의 국산차 육성정책이 맞물려 탄생된 모델이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동생인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에게 자동차사업을 맡기게 되는데, 1967년 현대자동차 초대사장에 취임한 정세영 회장은 즉각 독자모델 개발에 착수한다.

 


당시 원천기술이 전무했던 현대는 1973년 말부터 1975년 말까지 기술요원 200여명을 각국의 기술도입선에 보내 연수받게 하고, 일본 미쓰비시 등의 자동차생산 전문가를 데려와 기능공 2000여명을 단계적으로 훈련시켰다. 엔진은 미쓰비시 새턴엔진(배기량 1238cc 80마력), 자동차의 기본뼈대인 새시는 미쓰비시 랜서의 것을 채용했다. 1975년 1월에는 포니의 최종외형과 일부 내장 설계를 당시 세계 자동차 디자인계를 주도하던 이탈리아 이탈디자인(Italdesign)의 주지아로(Giugiaro)에게 맡겼다. 5월부터는 일본 쇼와금형과 재일동포가 운영하는 단조공장에 기능공을 보내 차체 제작의 핵심기술을 익혀나갔다.

 


포니의 목표 국산화율은 90%였다. 1974년 새시부품을 시작으로 부품사양과 도면이 나오자, 현대차는 총 429개 부품업체를 계열화해 당시로선 불가능에 가까웠던 국산화율을 이뤄낼 수 있었다. 오늘날 국내 자동차산업의 기본뼈대가 전부 여기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 

포니가 벤츠엔진 이라는 말은 와전 된거였군..

그리고..  외관이 매력적인 이유가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