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살인(Honor Killing)은 중동과 서남 아시아지역에서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을 살해하는 관습입니다. 이 관습은 정조를 잃거나 간통을 범한 어성들을 상대로 자행되어 오는 것으로 가족이나 부족과 같은 집단의 명예를 개인의 생명보다 우선시하는 가부장적인 사회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 남성폭력의 대명사인 '염산테러 생존자'인 한 방글라데시 여성이 행사에서 벌이는 퍼포먼스
현대의 명예살인은 보통 남성 가족 구성원이 여성을 상대로 행하는 폭력으로서, 종종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1년에 몇번씩 신문을 읽다보면 파키스탄 같은 지역에서 행해진 명예살인 사건이 나와서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곤 합니다. 파키스탄에서는 이런 악습을 없애기 위해 의회에서 몇번 이를 금하는 법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이슬람 보수파들에 의해 아직도 통과되지 못하고 이다고 합니다.
이러한 중동지역의 명예살인 보도에 경악하곤 하는 우리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조선왕조실록에는 현대와는 다른 의미의 명예살인 사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조 14년 8월 10 일 기록을 보면 전라도 강진에 살고 있는 은애(다른 기록에는 이 사람의 이름을 김은애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라는 여인의 살인에 대해서 정조가 좌의정인 채제공과 형조가 서로 토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의 살인 사건에 대해서 최고의 통치자인 임금까지 나서서 토론하게 된데는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었던 것이겠죠. 그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전라남도 강진에 김은애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최정련이라는 사람이 이 여자와 결혼을 하고 싶어 먼저 자기와 김은애가 몰래 사귀는 사이라는 소문을 내고 안조이라는 동네 할머니를 내세워 청혼을 해옵니다. 그러나 허락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 시집을 가버리자 최정련과 안조이는 더욱 추잡한 말로 소문을 퍼트립니다. 그러자 분을 참지 못한 18세의 김은애는 밤중에 안조이의 집에 찾아와 칼로 난자(기록에 보면 목과 가슴을 18번 정도 찔렀다고 함)를 합니다.
결국 자신의 명예를 지키위 위해 살인을 한 것인데, 이 여자의 살인죄를 물어야 할지, 아니면 명예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행위인지에 대해서 재판은 8번이나 반복되지만 결론을 내지 못해 결국 정조에게까지 해당 판결건이 올라오게 됩니다.
법집행을 담당하는 형조와 좌의정 채제공은 이에 대해 원통함과 보복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하지만 살인한 자를 용서하는 것은 어느 법에도 없으며, 그런 분함은 관청에 호소하여 풀어야지 자기 손으로 법을 집행하는 것은 부당하여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냅니다.
하지만 정조는 다른 결론을 내립니다. 18세의 어린 여자로 보통 같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분함을 호소하였겠지만 스스로 원수를 찾아가 꾸짖고 복수를 하여 자신의 무고함을 알렸고, 또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자세는 웬만한 남자도 어려운 것이다는 평가를 하며, 이런 용맹은 스스로 목매죽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자세라며, 사람으로서의 윤리와 자세에 적합하다는 판결을 내립니다.그리고 마지막 특이한 조건도 붙입니다. 김은애를 풀어주면 최정련을 찾아가 다시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이 무척 크니 김은애가 최정련을 죽이지 못하도록 접근금지 명령을 추가합니다.
▲ 조선시대 국가에서 많이 보급했던 삼강행실도
정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조선시대 실학자로 잘 알려진 이덕무를 시켜 김은애 사건에 대한 내용을 일종의 전기로 만들게 하고 이를 널리 읽히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조대의 기록에, 그리고 이덕무의 한문소설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자살을 택하던 대부분의 여자들과 달리 김은애는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인지라 김은애사건은 왕조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 바른 태도와 윤리에 대해서 교육하는 것으로 '삼강오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가에서 오랫동안 보급하고 가르치던 국민윤리인데, 사실 그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내용이 '죽음'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살한 여인에 대한 기록이 무척 많고,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살이나 피를 드린 효자의 경우도 많이 기록되어 있죠.
어렸을 적 드라마에서 부모님의 임종순간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부모님의 입안에 떨어뜨리는 장면 기억 많이 나시죠? -.- 조선시대 삼강오륜의 여파가 현대 드라마에게까지 제대로 전해진 것이죠. 명예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그리고 그것이 지켜지지 못했을 때는 서슴없이 죽음을 택하거나 신체를 훼손하는 법을 강조합니다. 특히 여성이 지키고 따라야 할 항목은 너무나 가혹하기까지 합니다. 정조도 김은애 사건을 국가기강관리과 통치체제의 유지차원에서 제대로 활용한 것입니다.
현대 이슬람 문화권에서 벌어지는 죽음은 남자가 여자를 살해하는 방식이었지만 조선시대 방법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죽음의 방식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들의 죽음은 모두 가부장제도와 남성중심의 사회구조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발생했던 연예인과 관련된 섹스스캔들을 지켜보면 대부분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많은 소문의 번짐과 비난, 악플러들에 의해 결국 그 여성은 육체는 멀쩡할지 모르겠지만 정신적인 피폐함을 맞이하고 맙니다.
몇백년 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를 지금 이슬람권의 명예살인과 조선시대 김은애사건에 경악하는 우리와 똑같은 심정으로 보지 않을까 걱정하며, 아직도 남아있는 우리 의 남성중심사고와 행동에 대해서 제 스스로 먼저 반성합니다.
조선시대 18세 유부녀의 살인
명예살인(Honor Killing)은 중동과 서남 아시아지역에서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을 살해하는 관습입니다. 이 관습은 정조를 잃거나 간통을 범한 어성들을 상대로 자행되어 오는 것으로 가족이나 부족과 같은 집단의 명예를 개인의 생명보다 우선시하는 가부장적인 사회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 남성폭력의 대명사인 '염산테러 생존자'인 한 방글라데시 여성이 행사에서 벌이는 퍼포먼스
현대의 명예살인은 보통 남성 가족 구성원이 여성을 상대로 행하는 폭력으로서, 종종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1년에 몇번씩 신문을 읽다보면 파키스탄 같은 지역에서 행해진 명예살인 사건이 나와서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곤 합니다. 파키스탄에서는 이런 악습을 없애기 위해 의회에서 몇번 이를 금하는 법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이슬람 보수파들에 의해 아직도 통과되지 못하고 이다고 합니다.
이러한 중동지역의 명예살인 보도에 경악하곤 하는 우리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조선왕조실록에는 현대와는 다른 의미의 명예살인 사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조 14년 8월 10 일 기록을 보면 전라도 강진에 살고 있는 은애(다른 기록에는 이 사람의 이름을 김은애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라는 여인의 살인에 대해서 정조가 좌의정인 채제공과 형조가 서로 토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의 살인 사건에 대해서 최고의 통치자인 임금까지 나서서 토론하게 된데는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었던 것이겠죠. 그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전라남도 강진에 김은애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최정련이라는 사람이 이 여자와 결혼을 하고 싶어 먼저 자기와 김은애가 몰래 사귀는 사이라는 소문을 내고 안조이라는 동네 할머니를 내세워 청혼을 해옵니다. 그러나 허락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 시집을 가버리자 최정련과 안조이는 더욱 추잡한 말로 소문을 퍼트립니다. 그러자 분을 참지 못한 18세의 김은애는 밤중에 안조이의 집에 찾아와 칼로 난자(기록에 보면 목과 가슴을 18번 정도 찔렀다고 함)를 합니다.
결국 자신의 명예를 지키위 위해 살인을 한 것인데, 이 여자의 살인죄를 물어야 할지, 아니면 명예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행위인지에 대해서 재판은 8번이나 반복되지만 결론을 내지 못해 결국 정조에게까지 해당 판결건이 올라오게 됩니다.
법집행을 담당하는 형조와 좌의정 채제공은 이에 대해 원통함과 보복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하지만 살인한 자를 용서하는 것은 어느 법에도 없으며, 그런 분함은 관청에 호소하여 풀어야지 자기 손으로 법을 집행하는 것은 부당하여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냅니다.
하지만 정조는 다른 결론을 내립니다. 18세의 어린 여자로 보통 같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분함을 호소하였겠지만 스스로 원수를 찾아가 꾸짖고 복수를 하여 자신의 무고함을 알렸고, 또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자세는 웬만한 남자도 어려운 것이다는 평가를 하며, 이런 용맹은 스스로 목매죽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자세라며, 사람으로서의 윤리와 자세에 적합하다는 판결을 내립니다.그리고 마지막 특이한 조건도 붙입니다. 김은애를 풀어주면 최정련을 찾아가 다시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이 무척 크니 김은애가 최정련을 죽이지 못하도록 접근금지 명령을 추가합니다.
▲ 조선시대 국가에서 많이 보급했던 삼강행실도
정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조선시대 실학자로 잘 알려진 이덕무를 시켜 김은애 사건에 대한 내용을 일종의 전기로 만들게 하고 이를 널리 읽히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조대의 기록에, 그리고 이덕무의 한문소설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자살을 택하던 대부분의 여자들과 달리 김은애는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인지라 김은애사건은 왕조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 바른 태도와 윤리에 대해서 교육하는 것으로 '삼강오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가에서 오랫동안 보급하고 가르치던 국민윤리인데, 사실 그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내용이 '죽음'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살한 여인에 대한 기록이 무척 많고,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살이나 피를 드린 효자의 경우도 많이 기록되어 있죠.
어렸을 적 드라마에서 부모님의 임종순간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부모님의 입안에 떨어뜨리는 장면 기억 많이 나시죠? -.- 조선시대 삼강오륜의 여파가 현대 드라마에게까지 제대로 전해진 것이죠. 명예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그리고 그것이 지켜지지 못했을 때는 서슴없이 죽음을 택하거나 신체를 훼손하는 법을 강조합니다. 특히 여성이 지키고 따라야 할 항목은 너무나 가혹하기까지 합니다. 정조도 김은애 사건을 국가기강관리과 통치체제의 유지차원에서 제대로 활용한 것입니다.
현대 이슬람 문화권에서 벌어지는 죽음은 남자가 여자를 살해하는 방식이었지만 조선시대 방법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죽음의 방식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들의 죽음은 모두 가부장제도와 남성중심의 사회구조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발생했던 연예인과 관련된 섹스스캔들을 지켜보면 대부분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많은 소문의 번짐과 비난, 악플러들에 의해 결국 그 여성은 육체는 멀쩡할지 모르겠지만 정신적인 피폐함을 맞이하고 맙니다.
몇백년 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를 지금 이슬람권의 명예살인과 조선시대 김은애사건에 경악하는 우리와 똑같은 심정으로 보지 않을까 걱정하며, 아직도 남아있는 우리 의 남성중심사고와 행동에 대해서 제 스스로 먼저 반성합니다.
*P.S 2007년 3월 8일 99주년을 맞이한 세계여성의 날을 지나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