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11일, 호빵맨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습니다. 그 웃음은 삶의 고달픔과 사회적 모순을 잠시 잊고 지어보이는 웃음과 닮았습니다. 또한 온갖 역경을 이기고 넘어서서 승리와 희열을 만끽하는 웃음과도 닮았습니다. 아니, 닮은 것이 아니라 같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그렇게 대통령선거를 향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내년이면 어느덧 한국이 해방 60주년을 맞습니다. 독립된 민주공화국으로서 환갑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독립도 민주도 공화도 여전히 요원한 과제로 남았습니다. 민주화의 열망에 못 이겨 고안된 헌법도 올해로 성년을 맞이했지만, 한국사회의 모습은 가진 자의 자유만이 판을 치는 정글입니다. 민주주의를 쒀서 엉뚱한 쪽에게 줘버린 거지요. 이제는 밥을 모두에게 나누어주어, 배고픈 사람이 굶지 않고, 배부른 사람이 양보하며, 밥 지은 사람이 다들 당당히 대우받고, 모두에게 밥 지을 기회를 주는, 그런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흔히들 진보는 이상일 뿐이라고, 한마디로 비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생산력이 역사상 극에 달했음에도 기아와 빈곤의 먹구름이 걷히지 않는,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날이 다가옴에도 전쟁과 파괴가 자행되는 이 현실에서, 생존을 위한 인류의 연대와 지성을 과연 '이상'이라는 말로 묻을 수 있을까요? 진보는 별천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돈이 없어 병을 못 고치고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현실을 새로운 현실로 바꾸는 일이 바로 진보입니다. 특권과 비리로 독점한 부와 권력을 두루 나누는 것이 진보입니다.
홍안의 둥근 얼굴, 호빵맨을 꼭 닮은 노회찬 후보가 걸어온 여정도 그러한 진보의 길이었습니다. 그는 박정희 유신독재를 목도하며 청소년 시절부터 민주화를 열망하고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는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는 대신 직업학교의 졸업장을 받아들었고, 용접공으로 노동현장에 들어가 일하고 싸우며 희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불가능한 실험으로 꼽혔던 진보정당 세우기에 나섰습니다. 그렇게 해서 1997년 '국민승리21'이 대통령 후보를 내세웠고 2000년 결국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습니다. 2002년 지방의회 진출과 대선 선전에 이어 2004년 총선에서 원내진출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 모든 선거를 노회찬이 진두지휘했습니다.
원내진출 이후 노회찬 의원은 미디어에서 선보였던 탁월한 언변, 그 이상의 의정활동을 하였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대미굴욕외교를 질타하였으며, 비리기업과 그 하수인이 된 권력집단이 유착한 내용을 폭로하였습니다. 반대와 저항만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민생특위위원장으로서 현장과 의회를 오가며 서민경제를 위한 입법에 힘썼습니다. 노회찬은 진보정당의 대표적 인물인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를 최전선에서 대변하는 정치인입니다.
3년 전 오늘 노무현 대통령은 수구특권동맹에 의해 탄핵당했습니다. 수십만의 인파가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덕분에 노대통령은 복귀했고 집권여당은 과반의석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노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수구특권동맹의 한 일파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경제구조개혁을 약속하고 이라크파병재검토를 들먹였지만, 재벌을 위한 경제정책, 미국을 위한 외교정책을 펴고 말았습니다. 한국사회는 노무현 대통령과 범여권, 그리고 한나라당 등이 자기네들끼리 사실상의 '대통합신당'을 만들어 허약한 일자리를 양산하고 하릴없이 대운하를 파대며 미국에 고개를 조아리는 잔혹한 미래로 접어들지도 모릅니다.
2007년 대통령선거가 두렵습니다. 그러니 많은 젊은이들이 정치는 썩었다, 관심을 가질 가치가 없다며 등을 돌리는 사정도 이해할 만합니다. 허나 잘 먹고 잘 사는 일은 그래도 치에 달려 있습니다. 돈이 스스로 주인을 찾아가는 법이 없고 차가 차를 만들 리가 없듯 말입니다. 정치인은 우리 살림살이를 맡은 일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사회가 완전한 절망에 빠지지 않은 것을 보면, 정치판에도 괜찮은 인물들이 얼마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개인에 대한 지지가 탄핵역풍을 풀무질하지 않았음을. 탄핵역풍 속에 치러진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이 모두 누워서 떡 먹듯 당선된 사이비 개혁파만은 아님을. 드디어 호빵맨 노회찬이 대선 후보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호빵맨 노회찬의 대학생 팬클럽'도 출범을 선언합니다. 팬클럽은 결코 노회찬 후보를 따르지 않습니다. 길을 찾아 헤매며 걷다가 문득 어깨를 걸게 되었을 뿐입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질낮은 교육환경을 통과하는 순간 청년실업에 시달리는 세상에서 그를 친구로 삼았을 뿐입니다. 노회찬은 아무 불만 없이 시키는대로 따라하기만을 강요하는 세균맨들을, 우리와 손잡고 물리치는 소중한 친구입니다. 호빵맨 노회찬과 날아오를 대학생 친구들, 식빵맨, 잼아저씨, 버터누나, 치즈, 카레빵맨을 기다립니다.
호빵맨 노회찬의 대학생 팬클럽, 망토를 두릅니다
호빵맨 노회찬의 대학생 팬클럽이 망토를 두릅니다
2007년 3월 11일, 호빵맨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습니다. 그 웃음은 삶의 고달픔과 사회적 모순을 잠시 잊고 지어보이는 웃음과 닮았습니다. 또한 온갖 역경을 이기고 넘어서서 승리와 희열을 만끽하는 웃음과도 닮았습니다. 아니, 닮은 것이 아니라 같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그렇게 대통령선거를 향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내년이면 어느덧 한국이 해방 60주년을 맞습니다. 독립된 민주공화국으로서 환갑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독립도 민주도 공화도 여전히 요원한 과제로 남았습니다. 민주화의 열망에 못 이겨 고안된 헌법도 올해로 성년을 맞이했지만, 한국사회의 모습은 가진 자의 자유만이 판을 치는 정글입니다. 민주주의를 쒀서 엉뚱한 쪽에게 줘버린 거지요. 이제는 밥을 모두에게 나누어주어, 배고픈 사람이 굶지 않고, 배부른 사람이 양보하며, 밥 지은 사람이 다들 당당히 대우받고, 모두에게 밥 지을 기회를 주는, 그런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흔히들 진보는 이상일 뿐이라고, 한마디로 비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생산력이 역사상 극에 달했음에도 기아와 빈곤의 먹구름이 걷히지 않는,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날이 다가옴에도 전쟁과 파괴가 자행되는 이 현실에서, 생존을 위한 인류의 연대와 지성을 과연 '이상'이라는 말로 묻을 수 있을까요? 진보는 별천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돈이 없어 병을 못 고치고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현실을 새로운 현실로 바꾸는 일이 바로 진보입니다. 특권과 비리로 독점한 부와 권력을 두루 나누는 것이 진보입니다.
홍안의 둥근 얼굴, 호빵맨을 꼭 닮은 노회찬 후보가 걸어온 여정도 그러한 진보의 길이었습니다. 그는 박정희 유신독재를 목도하며 청소년 시절부터 민주화를 열망하고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는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는 대신 직업학교의 졸업장을 받아들었고, 용접공으로 노동현장에 들어가 일하고 싸우며 희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불가능한 실험으로 꼽혔던 진보정당 세우기에 나섰습니다. 그렇게 해서 1997년 '국민승리21'이 대통령 후보를 내세웠고 2000년 결국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습니다. 2002년 지방의회 진출과 대선 선전에 이어 2004년 총선에서 원내진출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 모든 선거를 노회찬이 진두지휘했습니다.
원내진출 이후 노회찬 의원은 미디어에서 선보였던 탁월한 언변, 그 이상의 의정활동을 하였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대미굴욕외교를 질타하였으며, 비리기업과 그 하수인이 된 권력집단이 유착한 내용을 폭로하였습니다. 반대와 저항만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민생특위위원장으로서 현장과 의회를 오가며 서민경제를 위한 입법에 힘썼습니다. 노회찬은 진보정당의 대표적 인물인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를 최전선에서 대변하는 정치인입니다.
3년 전 오늘 노무현 대통령은 수구특권동맹에 의해 탄핵당했습니다. 수십만의 인파가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덕분에 노대통령은 복귀했고 집권여당은 과반의석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노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수구특권동맹의 한 일파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경제구조개혁을 약속하고 이라크파병재검토를 들먹였지만, 재벌을 위한 경제정책, 미국을 위한 외교정책을 펴고 말았습니다. 한국사회는 노무현 대통령과 범여권, 그리고 한나라당 등이 자기네들끼리 사실상의 '대통합신당'을 만들어 허약한 일자리를 양산하고 하릴없이 대운하를 파대며 미국에 고개를 조아리는 잔혹한 미래로 접어들지도 모릅니다.
2007년 대통령선거가 두렵습니다. 그러니 많은 젊은이들이 정치는 썩었다, 관심을 가질 가치가 없다며 등을 돌리는 사정도 이해할 만합니다. 허나 잘 먹고 잘 사는 일은 그래도 치에 달려 있습니다. 돈이 스스로 주인을 찾아가는 법이 없고 차가 차를 만들 리가 없듯 말입니다. 정치인은 우리 살림살이를 맡은 일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사회가 완전한 절망에 빠지지 않은 것을 보면, 정치판에도 괜찮은 인물들이 얼마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개인에 대한 지지가 탄핵역풍을 풀무질하지 않았음을. 탄핵역풍 속에 치러진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이 모두 누워서 떡 먹듯 당선된 사이비 개혁파만은 아님을. 드디어 호빵맨 노회찬이 대선 후보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호빵맨 노회찬의 대학생 팬클럽'도 출범을 선언합니다. 팬클럽은 결코 노회찬 후보를 따르지 않습니다. 길을 찾아 헤매며 걷다가 문득 어깨를 걸게 되었을 뿐입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질낮은 교육환경을 통과하는 순간 청년실업에 시달리는 세상에서 그를 친구로 삼았을 뿐입니다. 노회찬은 아무 불만 없이 시키는대로 따라하기만을 강요하는 세균맨들을, 우리와 손잡고 물리치는 소중한 친구입니다. 호빵맨 노회찬과 날아오를 대학생 친구들, 식빵맨, 잼아저씨, 버터누나, 치즈, 카레빵맨을 기다립니다.
2007년 3월 12일,
'호빵맨 노회찬의 대학생 팬클럽'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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