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지 3년이 되었다. 솔직히 그 전까지는 고양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사람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는데 고양이한테까지 관심을 보일 여력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어느 초여름 오락가락 비가 내리는 밤에 나와 아내는 잠시 맡아주기로 하고 (당시에 태어난지 3~4개월 정도였던 ) 고양이 용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렇게 3년이 훌쩍 흘러갔다. 원주인이 가르쳐준 이름이 정확히 ‘용’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용이’라는 것인지 헷갈려하면서도...
어렸을 때 고양이를 키운 전력이 있다는 아내와 달리 나는 고양이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었고, 그래서 고양이를 소재로 한 만화 책 몇 권을 들여다보는 정도의 성의를 보였다. 우리집으로 오자마자 침대 밑으로 들어간 용이는 3일 정도가 지나서야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도 침대 밖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전까지 용이는 우리가 없는 시간 혹은 우리가 잠든 시간만을 택하여 돌아다닐 뿐, 나머지 시간에는 절대 침대 아래에서 나오지 않았다.
소심하고 입 짧고 새침하며 예민하던 어린 용이는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한 주가 되고, 한 주가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일 년이 되고, 그 일 년이 삼 년이 되면서 점차 바뀌어갔다. 그 사이 중성화 수술을 시켜야 했고, 식사량이 갑작스레 불어나 자율식단을 급식제로 바꾸어야 했으며, 벙어리가 아니라서 하루에 한 번 정도 냥~ 하는 소리를 듣게도 되었고, 돈 주고 사온 장난감에는 전혀 무반응이면서도 비닐봉지나 팬티 고무줄 같은 끈에는 환장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십여 차례의 탈출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무사히 포획에 성공하여 소심하고 특유의 의기소침함으로 무장한 집고양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가 고양이를 찾는데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세 가지 있어요. 집중력, 순간 포착 능력, 그리고 텔레파시죠. 어떨 때는 고양이에 대한 얘기만 듣고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하는 느낌이 와요. 그래서 너무 숩다 생각될 때는 겁이 날 때도 있어요... 김봉규 씨는 고양이를 찾아 달라는 출장 의뢰를 받으면 4~5시간 동안 해당 지역을 샅샅이 훑는다. 그가 ‘텔레파시’라 부르는 결정적 느낌이 오면, 예정한 수색 시간을 훌쩍 넘겨서도 계속 고양이를 찾는다. 어떤 날은 오후 3시에 찾기 시작해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줄곧 쉬지 않고 걸으며 고양이를 찾아내기도 한다.”
만약에 포획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어쩌면 위의 고양이 찾기 전문가를 수소문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책은 용이와 같은 집고양이가 아니라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길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여기에 간간히 고양이를 키우며 고양이와 관련된 일들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와 저자와 저자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정도랄까.
사실 길고양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용이를 키우고 나서부터이다. 고양이라는 동물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거나 관심은 커녕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길 위의 고양이는 무쓸모의 존재에 불과하거나 추방해야 할 거리의 불량식품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다보면 길 위의 고양이에게 그저 심심하게 눈길을 보낼 수가 없게 된다. 그런 이유로 나 또한 몇 마리의 길고양이를 기억하고, 한 마리의 길고양를 수습한 적이 있으며, 현재도 거둬먹이는 길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용이의 탈출을 조장했던 (아무래도 동네 보스라고 여겨졌다, 사람을 절대 무서워하지 않으며, 결코 빠르게 걸어다니지 않는다) 왕큰 얼굴에 애꾸눈이 선명했던 노란 고양이, 어느 해 가장 추웠던 겨울날 용이로 착각하여 한참을 품에 안고 있었던 짝퉁 용이 고양이, 집앞을 서성거리는 것을 아내가 불쑥 데리고 들어오는 바람에 우리집에서 일주일을 요양시키며 동물병원을 거쳐 친한 동생에게 입양을 시켰던 애교 천단의 고양이 시시, 집앞의 창고에서 발견되었던 손바닥만한 새끼 고양이 노랑이와 깜장이가 있다. 깜장이는 현재까지도 우리집 앞을 서성이다가 우리가 주는 음식을 먹고 우리가 주는 물을 마시며 조금은 럭셔리한 길고양이로서 생활하고 있다.
책에는 길고양이와 지역 주민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원하는 저자의 마음이 잘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은 차근차근 정갈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잡지사 기자라는) 저자의 글과 많은 시간 공을 들이고 치열한 포즈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사진들에 잘 나타나있다. 더불어 저자는 TNR 프로그램이니 지역주민 네트워크니 실질적인 길고양이 프로젝트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저 이 지구라는 땅덩어리가 온전히 인간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 저자의 글과 사진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평화롭게 모든 것들과 공존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 그냥 이대로 살아가게 해주세요...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지 3년이 되었다. 솔직히 그 전까지는 고양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사람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는데 고양이한테까지 관심을 보일 여력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어느 초여름 오락가락 비가 내리는 밤에 나와 아내는 잠시 맡아주기로 하고 (당시에 태어난지 3~4개월 정도였던 ) 고양이 용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렇게 3년이 훌쩍 흘러갔다. 원주인이 가르쳐준 이름이 정확히 ‘용’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용이’라는 것인지 헷갈려하면서도...
어렸을 때 고양이를 키운 전력이 있다는 아내와 달리 나는 고양이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었고, 그래서 고양이를 소재로 한 만화 책 몇 권을 들여다보는 정도의 성의를 보였다. 우리집으로 오자마자 침대 밑으로 들어간 용이는 3일 정도가 지나서야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도 침대 밖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전까지 용이는 우리가 없는 시간 혹은 우리가 잠든 시간만을 택하여 돌아다닐 뿐, 나머지 시간에는 절대 침대 아래에서 나오지 않았다.
소심하고 입 짧고 새침하며 예민하던 어린 용이는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한 주가 되고, 한 주가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일 년이 되고, 그 일 년이 삼 년이 되면서 점차 바뀌어갔다. 그 사이 중성화 수술을 시켜야 했고, 식사량이 갑작스레 불어나 자율식단을 급식제로 바꾸어야 했으며, 벙어리가 아니라서 하루에 한 번 정도 냥~ 하는 소리를 듣게도 되었고, 돈 주고 사온 장난감에는 전혀 무반응이면서도 비닐봉지나 팬티 고무줄 같은 끈에는 환장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십여 차례의 탈출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무사히 포획에 성공하여 소심하고 특유의 의기소침함으로 무장한 집고양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가 고양이를 찾는데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세 가지 있어요. 집중력, 순간 포착 능력, 그리고 텔레파시죠. 어떨 때는 고양이에 대한 얘기만 듣고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하는 느낌이 와요. 그래서 너무 숩다 생각될 때는 겁이 날 때도 있어요... 김봉규 씨는 고양이를 찾아 달라는 출장 의뢰를 받으면 4~5시간 동안 해당 지역을 샅샅이 훑는다. 그가 ‘텔레파시’라 부르는 결정적 느낌이 오면, 예정한 수색 시간을 훌쩍 넘겨서도 계속 고양이를 찾는다. 어떤 날은 오후 3시에 찾기 시작해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줄곧 쉬지 않고 걸으며 고양이를 찾아내기도 한다.”
만약에 포획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어쩌면 위의 고양이 찾기 전문가를 수소문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책은 용이와 같은 집고양이가 아니라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길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여기에 간간히 고양이를 키우며 고양이와 관련된 일들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와 저자와 저자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정도랄까.
사실 길고양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용이를 키우고 나서부터이다. 고양이라는 동물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거나 관심은 커녕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길 위의 고양이는 무쓸모의 존재에 불과하거나 추방해야 할 거리의 불량식품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다보면 길 위의 고양이에게 그저 심심하게 눈길을 보낼 수가 없게 된다. 그런 이유로 나 또한 몇 마리의 길고양이를 기억하고, 한 마리의 길고양를 수습한 적이 있으며, 현재도 거둬먹이는 길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용이의 탈출을 조장했던 (아무래도 동네 보스라고 여겨졌다, 사람을 절대 무서워하지 않으며, 결코 빠르게 걸어다니지 않는다) 왕큰 얼굴에 애꾸눈이 선명했던 노란 고양이, 어느 해 가장 추웠던 겨울날 용이로 착각하여 한참을 품에 안고 있었던 짝퉁 용이 고양이, 집앞을 서성거리는 것을 아내가 불쑥 데리고 들어오는 바람에 우리집에서 일주일을 요양시키며 동물병원을 거쳐 친한 동생에게 입양을 시켰던 애교 천단의 고양이 시시, 집앞의 창고에서 발견되었던 손바닥만한 새끼 고양이 노랑이와 깜장이가 있다. 깜장이는 현재까지도 우리집 앞을 서성이다가 우리가 주는 음식을 먹고 우리가 주는 물을 마시며 조금은 럭셔리한 길고양이로서 생활하고 있다.
책에는 길고양이와 지역 주민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원하는 저자의 마음이 잘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은 차근차근 정갈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잡지사 기자라는) 저자의 글과 많은 시간 공을 들이고 치열한 포즈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사진들에 잘 나타나있다. 더불어 저자는 TNR 프로그램이니 지역주민 네트워크니 실질적인 길고양이 프로젝트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저 이 지구라는 땅덩어리가 온전히 인간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 저자의 글과 사진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평화롭게 모든 것들과 공존하려는 마음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