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람들이 드라마 에 열광한 까닭은 의학 드라마가 아닌 ‘정치’ 드라마였기 때문이었다. 명인대학병원 외과과장 자리를 향한 장준혁의 야망을 둘러싼 이야기는 마치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이라는 책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법’은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다, 정리해고의 의미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당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져도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직장에 언론의 자유는 없다, 남의 말하길 좋아하면 조직의 반역자로 낙인찍힌다, 직장 친구는 위험하다, 잘못된 '진영'에 자리 잡으면 적으로 간주될 수 있다, 회사는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자격이 된다고 급여를 올려주는 것은 아니다, 인사고과는 업무 실적과 관계없다, 새로운 상사를 맞으면 그에게 적응하라, 회사의 MVP가 되고 싶으면 기꺼이 일을 떠맡아라,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존경받지 못한다 등 책에서 말하는 비밀은 오로지 을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은 그 동안 알면서도 쉬쉬했던 ‘조직’ 내 ‘파워 게임’의 실체를 예리한 메스로 절단해 드러내주었다.
은 『아부의 기술』이라는 책도 떠오르게 한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수석 편집장을 거친 리처드 스텐걸이 지은 이 책은 아부를 ‘전략적인 칭찬, 즉 특별한 목적을 추구하는 수단으로서의 칭찬’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누군가를 높이는 행위를 통해 결국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만드는 하나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전쟁의 기술』이라는 책도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적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하라, 과거의 방식으로 싸우지 마라, 평정심을 잃지 마라, 자신만의 지휘계통을 확립하라, 대의명분을 항상 심어주라, 위협적인 존재임을 과시하라, 전투는 패배해도 전쟁에서는 이겨라, 적장의 심리를 파악하라, 상대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여라, 역학 관계를 통제하라, 협상 중에도 진격을 멈추지 마라, 전쟁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계획하라 등 사방에 밑줄을 긋게 만드는 힘을 지닌 이 책은 흡사 의 장준혁 과장을 주인공으로 삼은 듯했다.
그러나 등으로 이미 오래 전에 한국 드라마사에 한 획을 그었던 김종학(프로덕션)의 속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드라마 초반부, 많은 시청자들, 특히 직장에서 이리 터지고, 저리 깨지는 남성 시청자들이 장과장의 삶의 방식에 열광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실컷 열광하라구. 하지만 당신들,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긴 하는 거야?”
『잭 아저씨네 작은 커피집』이라는 책이 있다. 내가 무엇을 결정하기 전, 내가 어떤 일을 행하기 전 틈틈이 꺼내어 보는 책이다.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이 책은 시애틀 시내 파인 스트리트와 4번가가 만나는 모퉁이에 자리한 ‘엘 에스프레소’라는 작은 커피집이 스타벅스로 상징되는 세계적인 커피 체인점에 맞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무슨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그런데 그 해답 역시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다. '엘 에스프레소'의 성공 비결은 오직 하나, 그 어떤 카페에서도 맛보기 힘든 커피의 품질과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주인과 종업원들의 '열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은 “삶과 사업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나아가 열정적이게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뭐, 너무 뻔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삶'이라는 단어가 무한한 힘을 지닌 까닭은 이렇듯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을 보는 동안, 나는 이 책을 몇 번이나 꺼내어 읽고 또 읽었다.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장준혁을 보면서 안철수의 『영혼이 있는 승부』도 다시 꺼내들었다. 우리에게 처음으로 ‘장준혁의 눈물’을 보게 만든, 이내 우리의 눈물샘을 터뜨려버린 마지막회를 보는 내내 『목적이 이끄는 삶』을 다시금 묵상해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그렇다. 결국 이 말하고 싶었던 건 의학 드라마도, 정치 드라마도, 한 천재의 영욕이 아닌 우리네 ‘삶’이었던 것이다.
최근 나는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이른바 ‘투잡’ ‘쓰리잡’이라고 불리던, 함께 진행하던 일도 모두 그만 두었다. 회사는 시간이 지나면 승진이 보장되고, 10여 년이 지나면 모든 결정을 온전히 내가 내릴 수 있는 곳이었다. 내 이름을 걸고 진행하던 온라인 매체의 편집장을 내려놓는 일도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 지금 내가 묶여 있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건 ‘건강’ 때문이었다. 지난 수년 동안 2-3개의 일을 병행하느라 체력적으로 다소 힘에 부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건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았음을 곧 알 수 있었다. 아내와 딸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메인 잡과 서브 잡, 그리고 한 달에 서너 차례 병행해온 외부 강의와 외부 원고 등의 일이 안겨주는 경제적 여유로움을 모른 체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 말하련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파고들었다. 이른바 ‘선수’들과 일하고 싶었다. 내가 ‘선수’가 되고 싶었다. 각자 삶의 목적과 방향이 달랐을 뿐, 모두들 ‘선수’였던 - 드라마 캐릭터에서도, 그 캐릭터를 담아낸 연기에서도 - 의 등장인물들이 내 안의 욕망을 부추겼다. 한동안 장준혁으로 살았을 게 분명한 '김명민'이라는 연기자가 내 결심을 재촉했다. 속에서 그는 ‘연기란 이런 거’라고 정의를 내리는 듯했다. 한마디로 엄청났다. 그는 눈을 치켜떠도, 두 눈을 감아도, 한쪽 입술을 실룩거리며 웃기만 해도 ‘연기’가 되는 흔치 않은 배우였다. 장준혁의 삶으로 ‘분투奮鬪’했던 그의 ‘열정의 연기’는 그야말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게 분명하다(그의 연인 희재가 ‘당신 오래도록 기억할게’라고 말하며 오열했듯이, 그리고 그가 자신의 심장에 휴대전화를 갖다 대며 심장을 쥐어뜯는 아픔을 감내했듯이 말이다).
장준혁은 내게 ‘선수’란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주었다. 솔직히 근래 내가 내린 결정은 무능한 - 알고 있다, 이게 얼마나 나만의 주관적 생각임을, 얼마나 오만한 생각임을 - 리더의 목을 노린 검이었다. 내 선택으로 인해 나를 믿어주고 도와준 몇몇 이들과는 등을 져야만 했다. 이 모든 걸 감수해야만 하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휴대전화에 천 명의 전화번호를 저장해 놓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기던, 그 동안의 내 모습과는 분명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기를 자청했다. 장준혁이 이러한 내 결정을 지지해 주었다. 장준혁은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라는 이름 앞에서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죽는 그 순간까지 그는 (집요한 노력으로 얻어낸) 천재의사이자, 장준혁이었다. 비록 서른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했었다.
생각해 보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 조금씩 엄습해 오는 순간, 나라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고. 내가 만나고 싶은 이는 누구이며, 내가 감사하고 싶은 이는 누구이며, 내가 미안함을 표할 이는 누구일지, 그리고 내가 용서하고 싶은 이는 누구일지를. 그리고 다시 물었다. 내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과연 어디일까를. 수술실 참관대에 앉아 드라마틱한 수술 현장을 복기하고, 야망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갔던 때보다 지인들과 함께 웃던 때를 기억하며 행복해 하던,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산소호흡기를 뿌리치며 자존감을 잃지 않았던,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의사였던 자신의 존재를 붙잡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밟혀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다. 아이처럼 드라마가 시작되기를 고대하고, 다시 한 주를 기다리고, 그 드라마 한 편으로 오랫동안 망설이던 삶의 진로를 수정한 내 모습이 낯설게만 다가온다. 그런데 어쩌랴. 바로 이게 내 모습인데.
지금 나는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다. 작지만 강한, 나만의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모처럼 맛보는 자유와 여유로움이 나를 감싸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일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울린 순간, 나는 ‘세상이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 비밀’을 경계해야 하고, 승리를 위한 ‘전쟁과 아부의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중요한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기술’로 완성되는 건 아니리라.
이 순간, 나는 ‘장준혁의 눈물’을 가슴에 간직하고자 한다. 그는 죽음 앞에서 눈물을 보였던 게 아니었다. 한 분야의 선수였던 그는 죽음이라는 불의의 일격 앞에서 자신이 사랑하던 일을 놓아야만 하는 자신을 인정하기 싫었을 게 분명하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모든 것을 바쳤던 일에서 떠나야만 하는 그의 아픔을 도무지 잊을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초심'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시작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그것과 부둥켜안고 싸우게 되고, 승리하고, 때론 패배하게 될 때마다 다시 꺼내야만 하는 이름이다. 그때가 오면 나는 장준혁의 눈물을 생각하고자 한다. 그때가 되면 나를 향한 세상의 온갖 평가는 일단 묻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만은 물을 것이다. 내 일에 내 이름 석 자를 걸었는지, 그리하여 내 이름에 한 점 부끄럼은 없었는지….
| 윤.동.희.
박건하와 함민승을 연기한 한상진과 김용민이라는 연기자들도 눈길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인생을 걸 만한 리더(보스)를 향한 이들의 변함없는 애정과 충성은 이라는 드라마를 떠받친 기둥 중 하나였다.
내가 이라는 드라마 한 편에 거품을 무는 건 이 드라마가 ‘힘’으로 상징되는 블랙홀이 빨아들이는 모든 것을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데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자신들이 모시던 보스의 죽음 앞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 우려낸 눈물로 충성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이들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이들이라고 장준혁의 오점을 몰랐겠는가?
무엇보다 드라마 속 장준혁과 이들의 모습은 그 동안 천편일률적으로 선악을 구분해온 이 땅의 드라마의 순진함을 보여주는 보이지 않는 성과를 거두었다. 현실이라면 어땠을까? 이들이 장준혁이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보스의 눈에 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장준혁이라면 이 두 사람이 정말 든든했을 것이다.
그 어떤 현실보다 생생한 현장감으로 우리를 찾은 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승리하고 싶다면 당당히 도전하라, 승리하고 싶다면 자신과 사회가 정한 도덕률의 기준 안에서 최선을 다하라. 장준혁처럼. 만약 그 모든 게 싫거나 자신없다면 최도영의 길을 선택하라고(그 길도 최선의 길이자, 의미 있는 길이 분명할테니). 물론 선택은 결국 바로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말라고.
장준혁의 "눈물"
장준혁의 '눈물'
처음 사람들이 드라마 에 열광한 까닭은 의학 드라마가 아닌 ‘정치’ 드라마였기 때문이었다. 명인대학병원 외과과장 자리를 향한 장준혁의 야망을 둘러싼 이야기는 마치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이라는 책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법’은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다, 정리해고의 의미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당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져도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직장에 언론의 자유는 없다, 남의 말하길 좋아하면 조직의 반역자로 낙인찍힌다, 직장 친구는 위험하다, 잘못된 '진영'에 자리 잡으면 적으로 간주될 수 있다, 회사는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자격이 된다고 급여를 올려주는 것은 아니다, 인사고과는 업무 실적과 관계없다, 새로운 상사를 맞으면 그에게 적응하라, 회사의 MVP가 되고 싶으면 기꺼이 일을 떠맡아라,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존경받지 못한다 등 책에서 말하는 비밀은 오로지 을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은 그 동안 알면서도 쉬쉬했던 ‘조직’ 내 ‘파워 게임’의 실체를 예리한 메스로 절단해 드러내주었다.
은 『아부의 기술』이라는 책도 떠오르게 한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수석 편집장을 거친 리처드 스텐걸이 지은 이 책은 아부를 ‘전략적인 칭찬, 즉 특별한 목적을 추구하는 수단으로서의 칭찬’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누군가를 높이는 행위를 통해 결국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만드는 하나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전쟁의 기술』이라는 책도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적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하라, 과거의 방식으로 싸우지 마라, 평정심을 잃지 마라, 자신만의 지휘계통을 확립하라, 대의명분을 항상 심어주라, 위협적인 존재임을 과시하라, 전투는 패배해도 전쟁에서는 이겨라, 적장의 심리를 파악하라, 상대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여라, 역학 관계를 통제하라, 협상 중에도 진격을 멈추지 마라, 전쟁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계획하라 등 사방에 밑줄을 긋게 만드는 힘을 지닌 이 책은 흡사 의 장준혁 과장을 주인공으로 삼은 듯했다.
그러나 등으로 이미 오래 전에 한국 드라마사에 한 획을 그었던 김종학(프로덕션)의 속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드라마 초반부, 많은 시청자들, 특히 직장에서 이리 터지고, 저리 깨지는 남성 시청자들이 장과장의 삶의 방식에 열광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실컷 열광하라구. 하지만 당신들,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긴 하는 거야?”
『잭 아저씨네 작은 커피집』이라는 책이 있다. 내가 무엇을 결정하기 전, 내가 어떤 일을 행하기 전 틈틈이 꺼내어 보는 책이다.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이 책은 시애틀 시내 파인 스트리트와 4번가가 만나는 모퉁이에 자리한 ‘엘 에스프레소’라는 작은 커피집이 스타벅스로 상징되는 세계적인 커피 체인점에 맞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무슨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그런데 그 해답 역시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다. '엘 에스프레소'의 성공 비결은 오직 하나, 그 어떤 카페에서도 맛보기 힘든 커피의 품질과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주인과 종업원들의 '열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은 “삶과 사업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나아가 열정적이게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뭐, 너무 뻔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삶'이라는 단어가 무한한 힘을 지닌 까닭은 이렇듯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을 보는 동안, 나는 이 책을 몇 번이나 꺼내어 읽고 또 읽었다.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장준혁을 보면서 안철수의 『영혼이 있는 승부』도 다시 꺼내들었다. 우리에게 처음으로 ‘장준혁의 눈물’을 보게 만든, 이내 우리의 눈물샘을 터뜨려버린 마지막회를 보는 내내 『목적이 이끄는 삶』을 다시금 묵상해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그렇다. 결국 이 말하고 싶었던 건 의학 드라마도, 정치 드라마도, 한 천재의 영욕이 아닌 우리네 ‘삶’이었던 것이다.
최근 나는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이른바 ‘투잡’ ‘쓰리잡’이라고 불리던, 함께 진행하던 일도 모두 그만 두었다. 회사는 시간이 지나면 승진이 보장되고, 10여 년이 지나면 모든 결정을 온전히 내가 내릴 수 있는 곳이었다. 내 이름을 걸고 진행하던 온라인 매체의 편집장을 내려놓는 일도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 지금 내가 묶여 있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건 ‘건강’ 때문이었다. 지난 수년 동안 2-3개의 일을 병행하느라 체력적으로 다소 힘에 부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건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았음을 곧 알 수 있었다. 아내와 딸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메인 잡과 서브 잡, 그리고 한 달에 서너 차례 병행해온 외부 강의와 외부 원고 등의 일이 안겨주는 경제적 여유로움을 모른 체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 말하련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파고들었다. 이른바 ‘선수’들과 일하고 싶었다. 내가 ‘선수’가 되고 싶었다. 각자 삶의 목적과 방향이 달랐을 뿐, 모두들 ‘선수’였던 - 드라마 캐릭터에서도, 그 캐릭터를 담아낸 연기에서도 - 의 등장인물들이 내 안의 욕망을 부추겼다. 한동안 장준혁으로 살았을 게 분명한 '김명민'이라는 연기자가 내 결심을 재촉했다. 속에서 그는 ‘연기란 이런 거’라고 정의를 내리는 듯했다. 한마디로 엄청났다. 그는 눈을 치켜떠도, 두 눈을 감아도, 한쪽 입술을 실룩거리며 웃기만 해도 ‘연기’가 되는 흔치 않은 배우였다. 장준혁의 삶으로 ‘분투奮鬪’했던 그의 ‘열정의 연기’는 그야말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게 분명하다(그의 연인 희재가 ‘당신 오래도록 기억할게’라고 말하며 오열했듯이, 그리고 그가 자신의 심장에 휴대전화를 갖다 대며 심장을 쥐어뜯는 아픔을 감내했듯이 말이다).
장준혁은 내게 ‘선수’란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주었다. 솔직히 근래 내가 내린 결정은 무능한 - 알고 있다, 이게 얼마나 나만의 주관적 생각임을, 얼마나 오만한 생각임을 - 리더의 목을 노린 검이었다. 내 선택으로 인해 나를 믿어주고 도와준 몇몇 이들과는 등을 져야만 했다. 이 모든 걸 감수해야만 하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휴대전화에 천 명의 전화번호를 저장해 놓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기던, 그 동안의 내 모습과는 분명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기를 자청했다. 장준혁이 이러한 내 결정을 지지해 주었다. 장준혁은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라는 이름 앞에서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죽는 그 순간까지 그는 (집요한 노력으로 얻어낸) 천재의사이자, 장준혁이었다. 비록 서른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했었다.
생각해 보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 조금씩 엄습해 오는 순간, 나라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고. 내가 만나고 싶은 이는 누구이며, 내가 감사하고 싶은 이는 누구이며, 내가 미안함을 표할 이는 누구일지, 그리고 내가 용서하고 싶은 이는 누구일지를. 그리고 다시 물었다. 내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과연 어디일까를. 수술실 참관대에 앉아 드라마틱한 수술 현장을 복기하고, 야망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갔던 때보다 지인들과 함께 웃던 때를 기억하며 행복해 하던,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산소호흡기를 뿌리치며 자존감을 잃지 않았던,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의사였던 자신의 존재를 붙잡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밟혀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다. 아이처럼 드라마가 시작되기를 고대하고, 다시 한 주를 기다리고, 그 드라마 한 편으로 오랫동안 망설이던 삶의 진로를 수정한 내 모습이 낯설게만 다가온다. 그런데 어쩌랴. 바로 이게 내 모습인데.
지금 나는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다. 작지만 강한, 나만의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모처럼 맛보는 자유와 여유로움이 나를 감싸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일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울린 순간, 나는 ‘세상이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 비밀’을 경계해야 하고, 승리를 위한 ‘전쟁과 아부의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중요한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기술’로 완성되는 건 아니리라.
이 순간, 나는 ‘장준혁의 눈물’을 가슴에 간직하고자 한다. 그는 죽음 앞에서 눈물을 보였던 게 아니었다. 한 분야의 선수였던 그는 죽음이라는 불의의 일격 앞에서 자신이 사랑하던 일을 놓아야만 하는 자신을 인정하기 싫었을 게 분명하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모든 것을 바쳤던 일에서 떠나야만 하는 그의 아픔을 도무지 잊을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초심'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시작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그것과 부둥켜안고 싸우게 되고, 승리하고, 때론 패배하게 될 때마다 다시 꺼내야만 하는 이름이다. 그때가 오면 나는 장준혁의 눈물을 생각하고자 한다. 그때가 되면 나를 향한 세상의 온갖 평가는 일단 묻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만은 물을 것이다. 내 일에 내 이름 석 자를 걸었는지, 그리하여 내 이름에 한 점 부끄럼은 없었는지….
| 윤.동.희.
박건하와 함민승을 연기한 한상진과 김용민이라는 연기자들도 눈길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인생을 걸 만한 리더(보스)를 향한 이들의 변함없는 애정과 충성은 이라는 드라마를 떠받친 기둥 중 하나였다.
내가 이라는 드라마 한 편에 거품을 무는 건 이 드라마가 ‘힘’으로 상징되는 블랙홀이 빨아들이는 모든 것을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데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자신들이 모시던 보스의 죽음 앞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 우려낸 눈물로 충성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이들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이들이라고 장준혁의 오점을 몰랐겠는가?
무엇보다 드라마 속 장준혁과 이들의 모습은 그 동안 천편일률적으로 선악을 구분해온 이 땅의 드라마의 순진함을 보여주는 보이지 않는 성과를 거두었다. 현실이라면 어땠을까? 이들이 장준혁이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보스의 눈에 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장준혁이라면 이 두 사람이 정말 든든했을 것이다.
그 어떤 현실보다 생생한 현장감으로 우리를 찾은 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승리하고 싶다면 당당히 도전하라, 승리하고 싶다면 자신과 사회가 정한 도덕률의 기준 안에서 최선을 다하라. 장준혁처럼. 만약 그 모든 게 싫거나 자신없다면 최도영의 길을 선택하라고(그 길도 최선의 길이자, 의미 있는 길이 분명할테니). 물론 선택은 결국 바로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