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물길을 지나며

윤이서2007.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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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 시작하여 여행으로 마무리한 구월이 지났다.

그리고 그 간의 몇몇 여행 노트와 사진들을 주욱 훑어 본다.

한달안에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그렇게 한달이 지났다.

무엇부터, 어디부터 써가야 할까 생각했다.

그리고는 그저 우연히 펼친 노트의그 자리에서 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베니스 물길을 지나며


 

 

내부모님이 머물고 간 자리의 허전함은 끊임없이 밀려왔다.

몸을 쉬게 하는것도 필요했지만 그 자리를 빨리 무언가로 메우던지 아니면 어디론가 떠나서 정신없이 지내는것이 마음을 다스리는게 더 나았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다녀와야 했는데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시간이 없어 부모님이 떠나시고 바로 다음 날로 비행기를 예약해 둔것이 결과적으론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부모님의 체온이 체 가시지도 않은 집을 비워두고 다음 날 아침비행기로 베니스로 떠나게 되었다.

 2박3일의 일정이라 뭐 딱히 챙길것도 없었고 단지 인스턴트 빵(모닝빵같은 것이 여러개 들은)한 봉지와 사과주스 4개, 허기짐을 위한 초컬릿, (이것이 내 3일 식량의 전부였다.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서 카페한잔한 걸 제외 하곤),사진기, 대한 항공 얇은이불, 가벼운 잠옷과 아주 간단한 세면도구, 글을 쓸 노트, 읽을 책 '하루끼의 여행법', mp3가 내 짐의 전부였다.

 

내가 탄 비행기는 Ryan air 이다.

지난번 스페인 여행에 이어 두번째로 이 비행기를 타면서 사랑하게된 라이언 에어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해야겠다.

이번에 한국에서 국내용 소형 항공기가 생겼다는데 그것과 같은 형태의 비행기라고 보면 된다. 인터넷으로만 예약을 할 수 있고 예약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카드 결제를 해야 한다. 환불이나 취소는 일체없고 그냥 타던지 아니면 자리를 포기하던지 해야 한다. 좀 터프하다.

공항에는 여권과 예약, 결제한 인터넷 복사종이만 가져가면 된다. 프린트 한 종이가 없으면 여권만 가져가도 된다고 들었다.

라이언 에어 이외에도 많이 알려진 easyjet이나 vueling.com 같은 회사들도 있지만 내가 라이언 에어를 애용하게 된 까닭은 '상상을 초월하는, 있을 수 없는' 가격때문이다.

이번 베니스행은 왕복 56유로(6만원)를 지불했다. 저렴한 가격의 시기를 놓치고 조금 늦게 예약을 했기때문에 비싼 가격에 해당한다.(그런데도 사실은 다른 항공이나 기차나 버스로는 이 가격이 불가능하다.)

가장 싼 베니스행 티켓은 0.99유로, 1유로가 안되는 가격이다.

거기에 tax같은것들이 붙으면 17, 18유로정도가 될까. 아무튼 왕복 가격이 30유로를 조금 넘는다.  이렇게 싼 가격의 자리를 구하려면 못해도 한달 반 전에는 서둘러야 하는 조건이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10유로에서 20유로 정도가 더 비싼 가격의 티켓을 구입할수 있다.

(예약하고 결제를 하려고 보면 14유로가 더 붙어있다. 보험가격이고 선택사항이다. 그런데 그런 비행기를 타다가 사고가 나면 즉사를 피할수 없을텐데 무슨 보험이 필요할까 해서 '보험'이라는 단어가 동반하는 '혹시..만약..' 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친다.)

그래서 내가 산 티켓은 19.99유로 짜리 티켓과 29.99유로티켓이었다.

그래도 싸다. 서울 부산 KTX보다 싼 가격에 파리에서 베니스(다른곳도 아닌 베니스를)를 1시간 반 만에 이동하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라이언에어는 샤를드골공항이 아니라 보베라는 좀더 멀리떨어진 작은 공항에서 이륙한다. 거기까지 가는 교통편은 라이언에어가 준비한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된다. 라이언 에어의 또 다른 매력은 이 공항에 있는데 공항 안에서의 이동 거리가 짧고 절차가 정말 간단하다는 것이다.  비행기를 탄다기 보다 무슨 시외버스타러가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보딩패스를 발권하면 바로 짐 검사를 한다. 출국검사같은것은 없다.

그 기계는 왠만해선 삑 하고 경고음을주지 않는다. 몸수색도 잘 하지 않는다. 단 10초안에 그곳을 지나면 그냥 간이 의자 같은곳에 앉아 있다가 저 멀리 비행기가 도착하고 거기서 사람이 내리면 떠날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입구로 모여든다. 단 임산부와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이 먼저 게이트로 들어간 후 마구잡이로 줄을 선 사람들이 하나 둘 출구를 나선다. 좌석번호조차 없다. 그냥 들어가서 마음내키는 자리에 앉으면 된다. '비행기의 자존심' 따위는 없는 듯하다. 쿨하다.

 

그런 비행기에 기내 서비스가 있을 리가 없다. 가끔 음료수를 줄지 물어 보지만 유료다. 그 수레(?)가 지나기전에 메뉴판을 준다. 기내를 지나는 스튜어디어스에게서는 향수냄새 같은 건 맡을 수 없다. 식당에서 아주 오래동안 일한 사람같은 냄새가 난다. 유니폼도 상당히 단조롭다. 이브클랑의 코발트 블루에 한 일년쯤 세탁하지 않은것 같은 파란 유니폼을 떠올리면 되겠다. 곁을 지날때 그녀들이 풍기는 냄새가 이런 상상을 자극하게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들은 우리가 비행기를 오를 때 기내 앞 쪽에서 커피를 타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커피이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커피와 함께 피자를 손에들고 우직우직 먹는것이 아닌가.

스튜어디어스가, 비행기 앞머리에 서서, 손님들 앞에서, 재미난 이야기들을 하면서, 깔깔깔 웃으며.  참 인상적이고 파격적인 풍경이었다. 그런생각을 하면서 그것이 인상적이게 보이는 것은 스튜어디어스에 대한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편견들을 가볍게 무너트릴수 있는 라이언에어를사랑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베니스를 가기위해 나르는 창공에서 바라보는 대지는 정말 아름다웠다.

프랑스 창공에서 바라보는 땅은 넓은 벌판들이었는데 마치 나무잎과 같이 잎맥을 가진것 같아보였다. 좁고 작은 잎맥들에서 넓게 펼쳐져 보이는데 그 사이사이가 가지각색의 초록으로 메워져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색의 조화인가. 자연이 만드는 색조에서 사람은 끊임없이 그것을 차용하고 있는것 일테다. 

조금 지나자 거대한 산맥이 끝없이 보였다. 알프스를 지나는 것이리라.  뽀족뽀족한 등성이, 끝이 없이 이어진 등성이. 녹지 않은 눈, 얼마전에 부모님과 함께 보았던 몽블랑 꼭대기의 쌓인 눈이 생각났다. '지금 어딘가 내가 보이있는 것들 중에 몽블랑이 있을지도 몰라..' 바로 어제까지 부모님과 함께 했던 시간, 그 느낌이 저 아래에서 울컥 올라왔다. 따뜻하고 물컹이는것이었다. 한참을 그 느낌과 함께 창공을 날았다.

 

 

비행기가 베니스 근처의 TREVISO공항에 착륙하자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무사히 도착한 것에 대한 감사일까, 아니면 싼가격에 잘 도착한것에 대한 자축일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양쪽 다 일것 같다.

'의심스런 비행기의 무사착륙'  박수 받을 만하다.

비행기에서 계단으로 내려와 공항까지 걷는다.

작은 비행기에서 계단을 타고 내릴때면 '대통령 처럼' 이란 말이 떠오른다. 레드 카펫같은 것은 없지만. 

수하물로 부친 짐이 없어 제일 처음으로 공항을 빠져나온다. 물론 입국심사를 하는 경찰도 만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단 한명의 경찰을 보지 못했다. 멋지다. 마음에 쏙든다.

오! 라이언 에어.

 

공항버스를 타고 베니스로 향했다.

멀리보이는 베니스의 풍경이 낯설기 보다 낯설 것 같이 느껴졌다.

무언가 보일듯말듯한 풍경만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기때문이었을것이다.

베니스에는 비엔날레를 보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유명하고 찬사를 보내는 아름다운 도시라지만 제대로 볼수 있을거라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베니스에 도착했다.

 


 도착해서는 머물숙소를 찾아야 했다.

먼저 infomation을 찾았는데 그렇게 불친절한 인포메이션은 처음이다.

호텔을 찾는다고 하니 족히 수백, 혹은 천개쯤 되어보이는 호텔정보가 있는 책자를 주었다. 거기서 원하는곳을 찾아서 직접 전화를 하라고 한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그냥 그대로 그 책을 돌려주었다. 내 발로 직접 나서는것이 나을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일단 비엔날레가 있는곳으로 가서 그 근처에서 숙소를 잡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저곳에 물어물어 그 장소에 도착했지만 거기엔 호텔이라고는 있을것 같지가 않았다.

한참을 걷고 헤메고 다른 인포메이션을 찾아서 물어도 어느곳 하나 친절하게 도와주지 않았다. '역시 내가 이탈리아를 좋아하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어.' 나의 편견을 굳히지 않을수 없었다.  

정말 많은 호텔을 들려서 가격을 물었지만 혼자 자는방의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 하루 밤에 100유로가 넘었으니 베니스의 물가를 알만하다.

지칠대로 지쳐서 도착한 어느호텔의 주인 아주머니에게 정말 열심히 흥정을 해서 하루에 85유로 하는 방을 60유로에, 이틀에 120유로에 합의를 보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호텔값 흥정하는 사람이 원래 있나? 하는 의문이 방에 도착했을때 들었지만, 어쨌던 난 성공했다. 방을 보고서는 도대체 이런방을 85유로씩 받는단 말인가 하고 흥정했던 나를 칭찬했지만)

내 한 몸 지친육신을 편히 내려놓을 곳이 있다는것이 새삼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날은 오전중에 도착했지만 호텔을 찾느라 시간이 한참 지나버렸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베니스를 거닐기로 했다. 마침 내가 얻은 숙소의 근처가 산 마르코 광장주변이라 걸어서 관광 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 날은 그렇게 오후 느즈막히 산책하고 정취를 느끼는것으로만족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 앞에 일찍 도착했다.

베니스의 아침을 보고싶은 마음에 일찍 방을 나섰다.

흐리고 안개낀 날씨속으로 아침일찍 부터 수없이 쏟아지는 그룹 관광객의 인파를 거슬러 전시장에 도착했다.

 

전시에 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전시장을 지나 밖으로 나섰을때 만난 베니스의 풍경이 전시보다 나았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베니스 비엔날레는 최근에 심각하게 미술이 지루해지고 재미없어진 내게 어떤 전환의 기회를 줄까 기대하고 가게 되었지만, 동기를 주기는 커녕 단념하는 쪽의 동기를 확실히 한 기회라고 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랫동안 동경해 오던 베니스 비엔날레였는데 오히려 도록의 감흥이 본 전시 보다 나았다.

국가관전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한국관전시는 재미있게 보았다. 내 선생님이셨던 김범, 박이소 선생님을 비롯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의 전시가 나름 재미있게 구성 해 놓아 볼거리들을 주었다. 아쉬운 면이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다른전시에 내가 실망한것들에 비하면 비교할 바가 아니라 언급할거리도 되지 않는다.

차라리 illy라는 커피회사에서 내놓은 illymind라는 착상이 더 흥미로웠다. 간이 커피판매대가 곳곳에 있는데 그 앞에 빨간 낚시 의자 같은것이 많이 놓여 있다. 그 의자에는 어깨끈이 있어서 어디든지 의자를 놓고 커피를 마시고 전시장안에 가지고 다니며 앉을수 있게 해놓았다. 전시장의 출구를 나가기전에 반납하고 가면 되었다.

오히려 이러한 시스템이 현대미술의 현주소라 불리워지는 비엔날레와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전시장을 찾아가도록 해놓은 게시판이나 안내가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고 베니스를 도착해서도 겨우찾은 인포메이션에서 여러번 애를 써서 물어야 그곳에 가는 배의번호가 몇번이라는 정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줄을서고 불친절해서 더 물어볼수 있는 상황도 안되었다.  전시의 막바지여서 그런지 몰라도 전시를 관리하고 안내하는 시스템 면에서도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고 할수 있다.

                  김 범  주전자 모양을 한 라디오,라디오 모양을 한 다리미,다리미 모양을 한 주전자 외

 

한국관에서는 꽤 오랜시간 머물러 있었다.

특히 김 범선생님의 작업들이 정말 재미있고 좋아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피느라 줄곧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았다.

이번 한국관 전시에는 어떠한 제목도 작가의 이름도 붙여두지 않았다. 그냥 관심있게 열심히 살펴야 진주를 발견할수 있는전시라고 할수 있을것 같다. 지극히 한국적인 형태의 전시형태이다. 유럽의 작업 형태와 많이 다르다. 유럽에서는 여전히 아트는 거창하고 멋있어야하는 경우가 태반인 것 같다. 그게 유럽에서 전시장을 돌면서 나를 지루하게 하고 지쳐버리게 만드는 요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다른 많은 국가관의 전시와 본전시가 그러했으니까.

거기에 비해 한국작업들은 아기자기(?)하다.  별것 아닌것 같은데 그 안에 툭 뒷통수 치는 재미난 것이 있다. 작품의 겉에서 보기와 구별되는 그 안에 흐르는 문맥은 참 유쾌하게 읽혀진다. 어쩌면 내가 한국사람이기때문에, 나 또한 작업하는 사람이기때문에  그 문맥들이 쉽게 보이고 그래서 더 깊이 공감하게 되는것도 무시 할 수는 없을 테다. 하지만 김범선생님의 주전자와 다리미와 라디오 작업을 그냥 스쳐가며 멀리서 바라보고 싱거운냥 지나쳐 가는사람과  가까이 와서 유심히 바라보고 이마를 치고, 무릎을치며 재미있어 하는 사람의 차이는 '관심'일지도 모른다.  어쨌던 관심을 가지고 보면 보이니까. 미술은 다행히 언어로서의 언어가 아니라서 국가가 달라도 같은 공기를 느낄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 두사람이 그 전시장을 찾아와서 가지고 가는것은 엄청난 차이일테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그렇게 전시장을 다 돌고 문을 닫기 20분전쯤에 출구를 나왔다.

밖을 나와 바다를 바라보는데 목이 허전했다.

둘둘말아 목도리 처럼 두루고 있던 가디건이 없어진 것이다.

사진기를 꺼냈다. 어느지점에 잃어버렸을까.

국가관을 들어서기전 벤치에서 찍은 셀카를 보니 본전시를 지나 국가관까지는 내 몸에 있었던것 같다. 정문을 향해 다시 달렸다. 옷을 잃어버렸는데 들어가서 찾게해달라고 이야기 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이탈리아 국가관에 들려 사정을 이야기 하니 내일 10시에 전화를 하라고 한다.

'전화? 어떻게?  전화기도 쓸줄 모르는데..누가 받을지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내 가디건 못봤냐고 이야기 하라는건가?'

일단 전화번호를 받아서 나왔다. 정문에 나서기전에 불어가 통하는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잘 설명하고 내일 10시에 여기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정문을 나왔다.

 

나는 아침 10시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이렇게 까지 애타게 그 가디건을 찾으려고 하면 다른이들은 모두 엄청나게 좋은 물건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 녹색 가디건은 작년에 동대문에서 1만 5천원에 반팔 목티셔츠와 덤으로 끼워서 받았던것이었다.  내가 그 가디건을 찾을수 있을거라는 희망은 아무도 그것을 옷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가져가지 않았을것이라는 약간 난감하게 느낄수 있는 기대때문이다. (뭐 걸레나 보풀이 많이 핀 천 조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나는 그 보풀이 많은 것이 더 멋스러워 좋았고 디자인이 나름대로 평범하지는 않아서 많이 좋아하는 옷이었다. 마치 로빈후드의 조끼형태를 닮아서 나는 로빈후드 가디건이라 불렀다.

만약 내가 건물안을 샅샅히 뒤져 목표물을 찾아낸다면 그들은 속으로 그것을 찾기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좀 한심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르는일이지만 내겐 정말로 중요하고 잃어버리면 며칠이나 속 앓이하며 안타까워할 것 임에는 틀림이 없다.



베니스 물길을 지나며10시가 되어 다시 정문으로 갔을 땐 어제 내가 사정을 이야기 하고 다시 다음날 여기로 오겠다고 약속했던 사람들과 다른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또 다시 상세히 모든 설명을 하고 어제 사용했던 입장권과 받은 전화번호를 보여주고 나서야  들어가서 옷을 찾는데 겨우 허락을 받았다.

 

먼저 어제 들렸던 이탈리아관에 들어가서 아침에 지킴이로 나와있는 한 남자와 모든 방을 자세히 살폈다. 비디오 전시가 많았기 때문에 램프까지 빌려서 그 큰 전시장을 모두 돌았지만 그 곳에서는 결국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서는 그 많은 국가관을 모두 돌기로 했다.

입구에서 각 국가관을 지키고 안내하는사람에게 혹시 그런 가디건을 보지 않았느냐고 물어보고, 다시 양해를 구하고 전시장안을 살폈다.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20-30분이 지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그렇게 각 국가관을 돌면서 내 옷을 찾을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스러워 졌다기보다 기분이 좋아서 웃으며 마치 아침 산책이라도 나온 듯 가벼운 걸음으로 걷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새 나는 잃어버린 옷을 찾고 있다기 보다 각 국가관의 모든 나라의 사람과 한사람한사람 이야기하고 그들의 친절을 받고 정중히 인사하기 위해서 국가관을 돌고 있는것만 같았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하는것을 나도 모르게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대단한 이야기를 나누는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 대화안에는 형식적인 느낌이외의 것을 느끼고,주고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음 국가관으로 향하며 옷을 찾지 못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국가관 지역의 아침 분위기도 보았으며, 모는 국가관의 각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 했고, 인간적인 마음도 느꼈으며 그 친절에 정중히 인사한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의 관계, 비록 오래 유지될 수 없지만 도움을 요청하고 가능한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 인간적인 관계가 내게 부족한 한구석을 메워주고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그 넓은 국가관을 웃음가득해서 뛰어다녔던 모양이다.

 

 그 넓은 국가관 전시장에서 마지막으로 내가 들린곳은 화장실이다.

실은 거기까지 갈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어제 그 곳에도 들렸었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 있었던걸 기억해서 찾아갔다.

그 곳에는 일하는 여자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제일 적극적이었다.

영어를 아주 잘하지는 못했는데 천천히 내가 설명하는 말을 듣고 다짜고짜 나를 이탈리아관으로 데리고 가는것이 아닌가. 뒤쫓아가며 몇번이고 불렀는데 듣지도 않았다.

 나는 옷을 찾기위해 어제부터 그 곳을 자주 들렸기때문에 그 곳의 역할이 전체 국가관의 중심과 같아서  전체 분실물 역시 그 곳에서 관리하고 있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그 분은 잃어버렸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를 거기로 안내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헌데 나는 이미 그곳을 다녀왔고 그 곳에 내 것이 없는걸 확인했기때문에 그 곳에 다시 갈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거기에서 아침일찍 만났던 분을 다시 만난다면 조금 난처할 수도 있었다. (스스로 좀 민망한 일이었다. 거창하지도 않는 물건을 모든 국가관을 다뒤지고 화장실까지 찾았다고 하면... 혹시나 정말 찾게되어 물건의 실체를 알게 될까 미미한 부끄러움 같은 것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함께 이탈리아관을 샅샅히 뒤졌던 그분은 만나지 않았지만 다시 이탈리아관에서 만난 다른 분에게 처음부터 상황 설명을 했고,이미 여길 왔었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데 바로  워키토키로 또 누군가에게 초록 가디건 찾은것이 있냐고 물은 후에 내게 찾은 옷이 없다고 이야기 하고 나서야 나는 그 자리를 떠날수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기질이 성급하다더니 그래서일까?..라고 잠시 생각하고 어쨌던 내게 보여준 성의에 몇번이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모든 국가관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하고 이야기 하고 다시 전시장을 둘러보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40분. 옷을 찾지는 못했지만 나는 더 큰것을 얻은 셈이다.

무언가를 체념하고 그 댓가로 훈훈한 관계를 경험했다. 그 걸로 충분했다. 

적절한 순간의 적절한 분실이라 생각했다.

 

그 길로 다시 나는 배낭을 메고 리도섬으로 향했다.

베니스에서 배를 타고 물을 가르며 다음 정거장으로 가는 느낌은 이색적이다.  그렇다고 낭만적이지는 않다.  낭만적인 배도 아니고 많이 낡고 녹슬어서 그저 의자가 있는 어선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선이라면 더 낭만적일지도 모른다. 어선을 타면 뭔가 느낌이 더 자유로울테니까. 적어도 고기를 낚으러가는게 될테니까. 헌데 지금은 버스를 대신한 배 위에 한번 타는데 3.50유로의 교통비를 지불했다. 비싸다.) 게다가 사람이라도 꾸역꾸역타게되면 지하철은 쓸어넣고 문이라도 닫으면 되지만 배에서 저러다가 바다로 떨어지기나 하는것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들게 한다.

그래도 그 머리와 머리사이로 지하의 굽굽한 바람이 아니라 바다바람이 드니까, 하늘이 열려있고 멀리보이는 뽀족거리고, 둥그스름한 멋진 건물들사이로 배가 흐르니까 훨씬 멋있다. 특히나 빛, 베니스를 내리쬐는 빛은 강렬했다. 배 위에서는 두배의 강렬한 빛을 체험한다. 출렁이는 바다에서 반사되는 은색 빛덩이의 부서짐. 그 빛을 가르는 갈매기. 도저히 사진기로는 담을수 없는 황홀한 아트는 베니스의 바다위에도 있다.

(미술관 안의 아트는 사진기로 담고싶지 않은 아트였지만.)

 

나는 베니스에 도착해서 3일 동안 다른 날씨를 경험했다.

일반적으로 유럽은 맑은 날씨가 훨씬 더 잘 어울리지만 베니스 만큼은 약간 안개가 끼고 살짝 흐릿한 날이 몇배는 잘 어울리고 그것이 베니스 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흐리고 안개가 있으면 베니스의 뾰족하고 둥그스름한 건물들이 원경 중경 근경을 가지게 된다.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건물, 그리고 가운데 중경을 이루는 성당혹은 무엇, 가까이서 보이는 선명한 가로등. 그 모습은 그런날씨의 날이 아니면 볼수 없는 풍경이었다. 베니스의 빛은 정말 유달리 강렬해서 해가 나기라도 하면 모든것이 쨍. 너무도 선명하게 잘 보여 흐리고 안개낀날의 운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느낌을 갖게한다. 나름대로의 느낌을 또 줄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수동카메라가 찍은 사진의 깊이있는 느낌이 아니라 디지털 카메라가주는의 쌩한 느낌과 같다고 갈까.

멀리 거대하고 희미하게 솓아있는 성당의 탑, 그 곳을 뒤로하고 안개사이로 유유히 사라지는 곤돌의 이미지, 사라져가는 곤돌위에서 부르는 봉골리에의 노래소리와 훌륭한 기타소리. 이 모습이 진짜 베니스만의 멋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에서 내려서 나는 리도섬의 해변으로 바로 찾아갔다.

책자에서 리도 섬에 대해 거창하게 써놓은 것에 비해 실제의 해변은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9월의 마지막이라 비키니들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해변은 간혹 비키니들에 의해 아름답게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웃음)

모래의 색깔은 짙은갈색이었고, 부드러웠지만 부서진 조개껍데기들이  뿌려져있어 맨발로 걷기에 힘들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도착한 곳의 해변에는 공사중이 었던건지 자동차 바퀴자국이 넓게 남겨져 있었다.

해변에 그런 중장비차 같은자국이 있는걸 보니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이런곳에서 앉아있어도 될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하지만 아침에 걷기도 많이 걸었고 더 이상 해변을 따라 걸어 갈 기운도 없었기 때문에 바퀴자국을 피해서 대한항공얇은 이불(피크닉 이불이라 부른다.)을 깔고 앉았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헤드폰을 끼고서 몇일전 한국으로부터 온 친구가 가져다 준 책 '하루끼의 여행법'을 펼쳤다. 귀에서 흐르는 Lutte berg의 잔잔히 들리는 기타음이 9월의 리도섬, 바람으로 한풀꺾인 태양빛과 드문 인적의 해변, 파도소리와 어우러져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들었다.

 

어제밤에 읽었던 하루끼책의 한구절이 떠올랐다.

'...그런 체념에 이르게 하는 진전이야 말로, 인간을 피곤하게 만드는 온갖 것들을 자연스럽고  묵묵히 받아들여가는 단계야 말로 여행의 본질일 것이었다.'

내게 오늘같은 일이 있으려고 내 눈에 그 구절이 들어왔었던 걸까.

그 말의 깊은 깨달음이 왔다. 게다가 그 체념은 더 많은 사유를, 더 깊은 관계를 만드는것을 경험했다. 수많은, 체념해야하는, 피곤하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며 그것들을 즐겨왔던것 같다.

내게도 역시 여행은 그런것이 었다.

 

 

 

바다..

오랜만에 그 소리가 귓가를 적셔준다.

바다는 옥색이다.

하늘은 바다색이다.

하늘에 펼쳐진 뭉게구름은 참 공간을 비 현실적이게 한다.

그러면서 현실이다.

옥색의 바다와 바다색을 가진 하늘사이에는 흰돛을 단 조각배가 있다.

마치 마우스로 하나하나 화면을 조립해놓은것 같은 이상적인 화면이다.

수영을 하러 달려가는 노란팬티의 아저씨가 참 인상적이다.

양쪽에서 손을 벌려 물을 가르며 달려와 껴안는 한쌍의 커플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바람..

바람은 음악과 함께 책장을 넘긴다.

 

 


 

 

 

 


 

 


 


 

 




 


 

     나는 골목마다 펼쳐지는 이런 장면들이 참 좋았다. 이색적이기도 했지만

    보이는 빨래들로 나름 베니스 사람들의 집 내부나 사는 모습들을 상상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널려있는 속옷들을 보고 속에는 이런 속옷을 입고 있구나..까지.

 

 

 

 

 

 

 


 

 

 

 

 

 

 

 

 

 

 

 

+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때 쯤 해변에 난 바퀴자국의 정체를 알았다.

어디서 부터 왔는지 커다란 노란 불도저(그 기계를 불도저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불도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 멀리서 해변을 가로질러 오는것이 아닌가.  정말 여기는 공사장인가보다 했는데 다름아닌 해변 청소를 위한 차였다. 사람들이 간혹 일광욕을 하기위해 누워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옆으로 거대한 불도저가 다니면서 그 위에 타고 있던사람이 내려 쓰레기를 집어 기계의 입안에 넣고 떠나는 것이었다.  참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그럴수도 있지 뭐..라고 하고 넘어갈 일이긴 하지만 휴양지의 해변에서 거대한 기계엄청난 소리를 내며, 해변을 누비며, 모래 위를 난도질하며 청소를한다.. 물론 깨끗한 해변을 위해 애쓰고 있긴 하지만 뭔가 조화롭지 않은 일이었다. 좀더 깊이 있는 배려를 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으리라. 

많지 않은 해변의 쓰레기보다 노란 불도저는 더 거대한 해변의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어쩔수 없이 들게 했다.

재미있는 광경이었지만 안타까운 일이었다.



 

 

 

2005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