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 하나만 바라보고 질주하는 ‘장준혁’에게 시청자들은 열광했습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출세 전쟁에 임하는 장준혁에 비해 착한 인물인 ‘최도영’에겐 오히려 시청자들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원래 착한 건 좋은 거고, 나쁜 건 싫은 건데 뒤집 혔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렇게 힘든가요?" ⓒ엠비씨
은 1, 2부로 진행됐는데 1부는 장준혁이 국내 최고 대학병원 외과과장이 되기 위한 투쟁이고, 2부는 의료사고 관련 법정싸움입니다. 1부 없이 2부부터 방영되었다면 시청자들이 장준혁에게 그렇게 감정이입하진 않았을 겁니다. 1부 ‘외과과장 되기’편이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냈습니다.
드라마에서 장준혁은 무매너에 출세를 향해 돌진하는 저돌적인 인간형입니다. 그는 시골 가난한 집안 출신입니다. 반면에 장준혁과 대립하는 기존의 외과과장 ‘이주완’은 대대로 의사집안 출신입니다. 그는 교양과 매너의 화신입니다. 그리고 장준혁의 친구, 착한 마음의 사나이 최도영도 역시 의사집안입니다.
의사집안이라. 의사면 이런 이미지지요. 청심국제중과 주요 외고, 민사고 등의 학생은 10명 중 1명 꼴로 의사집안 자녀들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이 나중에 다시 의대나 법대로 진학합니다. 세습귀족인 셈이지요.
1부에서 대립의 축인 장준혁과 이주완은 그러니까, 평민 대 귀족간의 투쟁을 상징합니다. 일반국민들은 특목고라든가 교육제도에서 벌어지는 신분 세습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는 모르지만, 지금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 울화가 장준혁에 대한 지지로 나타난 겁니다.
의사집안 최도영은 특목고 트랙을 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주완은 특목고의 과거 버전인 평준화 이전 명문고를 나왔을 겁니다. 경기고 정도? 어차피 특목고의 특수목적이 입시이기 때문에 입시 명문고면 다 특목고입니다. 그러니까, 이주완도 특목고. 이주완의 학교 동창인 외과학회장도 그 매너와 사회지도층에 광범위한 인맥으로 볼 때 특목고 출신일 겁니다. 그들이 장준혁의 대항마로 내세운 ‘노민국’도 그 세련됨, 매너, 고급 취향으로 볼 때 특목고 트랙입니다. 또 너무나 착해서 사람들에게 미움 받은 이주완의 딸도, 특목고 트랙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준혁은 당연히 일반고를 나왔을 겁니다. 시골에서 서울 명문대 의대를 갔다는 것은 거의 목숨 바쳐 공부했다는 뜻입니다. 라는 소설에 보면 가난한 집안 출신이 서울대 갔을 때 느꼈던 위화감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즘 서울대생 중 85% 정도가 중상층에, 20% 가까이가 특목고 출신이므로 일단 문화적 충격부터 받았을 겁니다.(그들은 문화적으로 세련됐을 테니까. 영어충격도 받았겠네요. 그들은 조기유학을 다녀왔을 테니까. 대부분 강남 학원 동창이겠구요.)
장준혁처럼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으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모멸감을 많이 느꼈겠지요. 또, 다른 학생들이 공부만 할 때 장준혁은 과외를 몇 탕씩 뛰며 죽기살기로 공부했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최고로 인정받았으니 살아온 과정이 만만치 않습니다.
장준혁의 절대적 후원자인 장인 ‘민충식’도 아마 일반고 트랙일 겁니다. 그가 보여주는 행태는 천박한 졸부 그 자체로서, 돈은 좀 벌었으나 명예에 한이 맺혀 사위를 통해 저돌적으로 그것을 쟁취하려 합니다. 당대 자수성가형인 것이지요. 당연히 매너 없습니다. 노골적입니다. 민충식의 동지인 의사협회장도 무매너에 저돌적, 노골적입니다. 아마 그도 당대 자수성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엠비씨
품위 있는 집단 대 품위 없는 집단이 붙었습니다.
귀족과 평민을 가르는 건 재산이 아니라 매너, 품위, 교양입니다. 미국이 개방적인 대중문화로 유명하면서도, ‘막상 가보니 우리나라보다 더 보수적이더라’는 말이 종종 들리는 건 WASP들이 품위 관리를 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WASP 귀족으로서 교양과 매너를 체득하고 컸을 부시 대통력이 대중 앞에서 무식하고 거친 사람 행세를 하는 것은 이런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지요.
“미국 국민여러분, 난 최도영이나 이주완이 아니라 장준혁입니다.”
장준혁은 대중에게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외과과장이 되기 위한 투쟁이 붙었을 때 이주완의 차는 검정색이었습니다. 장준혁의 차는 원색이었습니다. 장준혁의 노골적인 욕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장준혁은 품위 있게 뜻을 돌려 말할 줄 모릅니다. 그가 ‘오경환’ 교수에게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부탁하러 갔을 때, 잠깐 머뭇거리더니 그냥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천하진 않습니다. 의사협회장이 헤드락을 걸거나 폭탄주를 권할 때 장준혁의 얼굴에선 당혹스러움, 불쾌감, 어색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는 자부심을 지키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그의 인생동안 그에게 모멸감만을 안겨 줬을 겁니다. 그리고 그 모멸감은 아마도 대부분의 평민이 공감하는 걸 겁니다.
이주완은 품위 그 자체입니다. 그에게 매너는 이미 몸과 붙어버린 그 무엇입니다. 그는 자신이 욕망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품위는 노동자, 농민의 자식이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따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주완이 자기 딸을 노민국에게 시집보내려 할 때 이런 대화가 오갑니다.
이주완 부인 : 내일 윤진(딸)이 퇴원하면 본격적으로 작업을 들어가야겠어요. 이주완 : 작업 들어가다니. 표현이 좀 속된 거 아니야?
가족끼리 있을 때도 품위를 놓지 않습니다.
ⓒ엠비씨
최도영의 재력은 그냥 중산층 정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귀족은 재산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귀족으로 태어나야 귀족인 겁니다. 귀족의 특징 중 하나가 무어냐면, 삶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살면서 아등바등 지지고 볶고 자빠지고 뒤 엉키면서 싸워 얻어야 하는 세속적 이익들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배를 곯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주완 딸이 턱없이 착한 것이나, 최도영이 착한 것에 시청자들이 야유를 보내는 것도 뭔가, 본능적으로 낌새를 챘기 때문입니다.
장준혁이 자신을 비난하는 최도영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내 밥 내가 찾아 먹겠다는데 뭐가 추해! 너처럼 형제 모두 의사인 놈들은 몰라.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난 너보다 더 많은 사람 구할 거야.”
장준혁은 출세를 향한 욕망과, 의사로서 병을 정복하려는 욕망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당성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상고이유서(자신의 출세욕은 무죄)와 시신기증서(의학발전)를 남긴 것이지요.
장준혁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장준혁의 출세욕은 무죄라고 평결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시골에서 태어난 일반고 트랙 장준혁이 특목고 트랙에 둘러싸여 자신을 지킨 힘이기 때문이겠지요. 어렸을 때부터 거의 평생 동안 전투하듯 살았을 것이고, 대학에 갔을 때부터는 마음속의 자부심과 현실에서 당하는 모멸 사이의 괴리감에 ‘그래, 어디 한 번 붙어보자’하면서 칼을 갈았을 겁니다.
장준혁과 그 일당이 외과과장 자리를 특목고 일당으로부터 쟁취하기 위해 암수를 쓴들, 돈을 쓴들,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고 시청자들은 느꼈습니다. 이건 극단적인 양극화로 국민들 사이에 ‘도덕심’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불공평한 세상이고, 이 학벌사회에서 사교육비 없는 놈은 꺼져버리라는 체제인데, 장준혁 일당이 특목고 일당에게 역으로 비겁한 수를 좀 쓴들 그게 대수랴‘인 것이지요.
공정한 경쟁의 룰 같은 것은 이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기는 놈이 장땡입니다. 이 살벌한 세상에서 혼자 도덕군자연하는 최도영에게 국민은 ‘즐~ 도덕 쳐드셈!’하는 것이지요. 원칙과 상식하자고 대통령까지 뽑았지만 국민은 점점 더 그런 것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세상의 불공평함이 사람들 마음속에서 정정당당함을 앗아 가는 겁니다.
명백히 장준혁이 잘못한 의료사고의 경우, 이주완 일당인 외과학회장이 장준혁을 공격하자, 그에 대한 적극적 응전을 하는 과정에서 잠시 환자에게 소홀했던 것이 화를 불렀습니다. 장준혁은 환자에게 소홀했던 건 반성했겠지만, 언제나 불공평한 처지에서 전투하듯 살았던 자기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믿었을 겁니다.
장준혁의 인기는, 대통령이 사회적 자본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한국사회의 사회적 자본이 거의 파탄상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적 자본이란 공정함, 신뢰, 투명함, 정당함, 공평함, 이런 것들로부터 배양되는데 모든 국민이 ‘한국사회는 절대로 공 평하지 않다’라고 여기기 때문에, ‘비겁한 방식으로 싸우는 게 뭐 어때? 특히 저 특목고 일당들에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엠비씨 드라마 '하얀거탑'의 장면들. ⓒ엠비씨
장준혁의 장인인 민충식이 외과과장 싸움판의 한 가운데에서 장준혁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쎈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쎈 놈이야”
이건 싸움의 공정함을 절대로 믿지 않았을 때 가능한 말입니다. 공정한 싸움이라면 쎈 놈이 이기겠지요. 하지만 반칙을 해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그 놈이 벌을 받는 게 아니라, 그냥 승자로 인정받는 세상, 그래서 살아남는 놈이 쎈 놈 되는 세상. 이미 공정함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을 이렇게 바꾸면 어떻습니까?
“훌륭한 인재가 유학 가는 것이 아니라 유학 간 놈이 훌륭한 인재야”
혹은 “훌륭한 인재가 영어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 잘 하는 놈이 훌륭한 인재야”
혹은 “훌륭한 인재가 일류대 가는 것이 아니라 일류대 간 놈이 훌륭한 인재야”
혹은 “훌륭한 인재가 특목고 가는 것이 아니라 특목고 간 놈이 훌륭한 인재야”
혹은 “훌륭한 인재가 국제중 가는 것이 아니라 국제중 간 놈이 훌륭한 인재야”
혹은 “영재가 영재교육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재교육원 간 놈이 영재야”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해도 말이 되겠네요.
“훌륭한 인재가 돈 버는 것이 아니라 돈 많은 집안 놈이 훌륭한 인재야
△나도 장준혁을 좋아 합니다. 의료사고는 마음에 안 들지만, 인간으로서 장준혁을 좋아 합니다. 하지만 장준혁을 미워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몽상인가요? ⓒ엠비씨
한국사회 최대의 격전장인 교육제도 안에서 훌륭한 인재로 뽑히는 놈은 결국 돈 많은 집안 놈이라는 말이지요. 그들이 승자가 됩니다. 이건 말하자면 국가가 제도적으로 ‘부정’을 허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정말 화끈하지 않습니까? 부모 재산이 탁월함의 기준이 되다니.
이렇게 구조적으로 부정이 판치니까, 가난한 집안 출신이 뒷돈을 좀 쓴들, 작당을 좀 한들, 공작을 좀 한들 그게 대수냐는 사고방식이 생깁니다. 누구도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습니다. 격렬한 대립과 불신만 반복됩니다. 한국사회가 지금 판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도덕군자같은 소리는 별로 안 좋아합니다만, 이런 공동체는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없습니다. 이런 세상을 만들어놓은 시장광신도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이렇게 부정이 판치는 사회에선 절대로 시장이 발달할 수 없습니다. 시장광신도들은 경쟁을 좋아하는데 반칙으로 점철된 경쟁은 정상적인 경쟁의 싹을 자릅니다.
공정한 사회였다면 외과과장 되려고 악을 쓰는 장준혁에게 모두들 최도영처럼 “넌 추해”라고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귀족집안 자제가 되지 못한 일반 국민들은 최도영을 밀어내고 장준혁을 지지했습니다. 나도 장준혁을 좋아 합니다. 의료사고는 마음에 안 들지만, 인간으로서 장준혁을 좋아 합니다. 하지만 장준혁을 미워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몽상인가요?
『하얀거탑』의 장준혁을 미워하고 싶다
『하얀거탑』의 장준혁을 미워하고 싶다





평민 대 귀족간의 투쟁 상징하는 장준혁과 이주완
-하재근(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출세 하나만 바라보고 질주하는 ‘장준혁’에게 시청자들은 열광했습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출세 전쟁에 임하는 장준혁에 비해 착한 인물인 ‘최도영’에겐 오히려 시청자들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원래 착한 건 좋은 거고, 나쁜 건 싫은 건데 뒤집
혔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렇게 힘든가요?" ⓒ엠비씨
은 1, 2부로 진행됐는데 1부는 장준혁이 국내 최고 대학병원 외과과장이 되기 위한 투쟁이고, 2부는 의료사고 관련 법정싸움입니다. 1부 없이 2부부터 방영되었다면 시청자들이 장준혁에게 그렇게 감정이입하진 않았을 겁니다. 1부 ‘외과과장 되기’편이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냈습니다.
드라마에서 장준혁은 무매너에 출세를 향해 돌진하는 저돌적인 인간형입니다. 그는 시골 가난한 집안 출신입니다. 반면에 장준혁과 대립하는 기존의 외과과장 ‘이주완’은 대대로 의사집안 출신입니다. 그는 교양과 매너의 화신입니다. 그리고 장준혁의
친구, 착한 마음의 사나이 최도영도 역시 의사집안입니다.
의사집안이라. 의사면 이런 이미지지요. 청심국제중과 주요 외고, 민사고 등의 학생은 10명 중 1명 꼴로 의사집안 자녀들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이 나중에 다시 의대나 법대로 진학합니다. 세습귀족인 셈이지요.
1부에서 대립의 축인 장준혁과 이주완은 그러니까, 평민 대 귀족간의 투쟁을 상징합니다. 일반국민들은 특목고라든가 교육제도에서 벌어지는 신분 세습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는 모르지만, 지금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 울화가 장준혁에 대한 지지로 나타난 겁니다.
의사집안 최도영은 특목고 트랙을 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주완은 특목고의 과거 버전인 평준화 이전 명문고를 나왔을 겁니다. 경기고 정도? 어차피 특목고의 특수목적이 입시이기 때문에 입시 명문고면 다 특목고입니다. 그러니까, 이주완도 특목고.
이주완의 학교 동창인 외과학회장도 그 매너와 사회지도층에 광범위한 인맥으로 볼 때 특목고 출신일 겁니다. 그들이 장준혁의 대항마로 내세운 ‘노민국’도 그 세련됨, 매너, 고급 취향으로 볼 때 특목고 트랙입니다. 또 너무나 착해서 사람들에게 미움 받은 이주완의 딸도, 특목고 트랙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준혁은 당연히 일반고를 나왔을 겁니다. 시골에서 서울 명문대 의대를 갔다는 것은 거의 목숨 바쳐 공부했다는 뜻입니다. 라는 소설에 보면 가난한 집안 출신이 서울대 갔을 때 느꼈던 위화감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즘 서울대생 중 85%
정도가 중상층에, 20% 가까이가 특목고 출신이므로 일단 문화적 충격부터 받았을 겁니다.(그들은 문화적으로 세련됐을 테니까. 영어충격도 받았겠네요. 그들은 조기유학을 다녀왔을 테니까. 대부분 강남 학원 동창이겠구요.)
장준혁처럼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으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모멸감을 많이 느꼈겠지요. 또, 다른 학생들이 공부만 할 때 장준혁은 과외를 몇 탕씩 뛰며 죽기살기로 공부했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최고로 인정받았으니 살아온 과정이 만만치 않습니다.
장준혁의 절대적 후원자인 장인 ‘민충식’도 아마 일반고 트랙일 겁니다. 그가 보여주는 행태는 천박한 졸부 그 자체로서, 돈은 좀 벌었으나 명예에 한이 맺혀 사위를 통해 저돌적으로 그것을 쟁취하려 합니다. 당대 자수성가형인 것이지요. 당연히 매너
없습니다. 노골적입니다. 민충식의 동지인 의사협회장도 무매너에 저돌적, 노골적입니다. 아마 그도 당대 자수성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엠비씨
품위 있는 집단 대 품위 없는 집단이 붙었습니다.
귀족과 평민을 가르는 건 재산이 아니라 매너, 품위, 교양입니다. 미국이 개방적인 대중문화로 유명하면서도, ‘막상 가보니 우리나라보다 더 보수적이더라’는 말이 종종 들리는 건 WASP들이 품위 관리를 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WASP 귀족으로서
교양과 매너를 체득하고 컸을 부시 대통력이 대중 앞에서 무식하고 거친 사람 행세를 하는 것은 이런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지요.
“미국 국민여러분, 난 최도영이나 이주완이 아니라 장준혁입니다.”
장준혁은 대중에게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외과과장이 되기 위한 투쟁이 붙었을 때 이주완의 차는 검정색이었습니다. 장준혁의 차는 원색이었습니다. 장준혁의 노골적인 욕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장준혁은 품위 있게 뜻을 돌려 말할 줄 모릅니다. 그가 ‘오경환’ 교수에게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부탁하러 갔을 때, 잠깐 머뭇거리더니 그냥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천하진 않습니다. 의사협회장이 헤드락을 걸거나 폭탄주를 권할 때 장준혁의 얼굴에선 당혹스러움, 불쾌감, 어색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는 자부심을 지키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그의 인생동안 그에게 모멸감만을 안겨 줬을 겁니다. 그리고 그 모멸감은 아마도 대부분의 평민이 공감하는 걸 겁니다.
이주완은 품위 그 자체입니다. 그에게 매너는 이미 몸과 붙어버린 그 무엇입니다. 그는 자신이 욕망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품위는 노동자, 농민의 자식이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따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주완이 자기 딸을 노민국에게 시집보내려 할 때 이런 대화가 오갑니다.
이주완 부인 : 내일 윤진(딸)이 퇴원하면 본격적으로 작업을 들어가야겠어요. 이주완 : 작업 들어가다니. 표현이 좀 속된 거 아니야?
가족끼리 있을 때도 품위를 놓지 않습니다.
ⓒ엠비씨
최도영의 재력은 그냥 중산층 정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귀족은 재산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귀족으로 태어나야 귀족인 겁니다. 귀족의 특징 중 하나가 무어냐면, 삶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살면서 아등바등 지지고 볶고 자빠지고 뒤
엉키면서 싸워 얻어야 하는 세속적 이익들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배를 곯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주완 딸이 턱없이 착한 것이나, 최도영이 착한 것에 시청자들이 야유를 보내는 것도 뭔가, 본능적으로 낌새를 챘기 때문입니다.
장준혁이 자신을 비난하는 최도영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내 밥 내가 찾아 먹겠다는데 뭐가 추해! 너처럼 형제 모두 의사인 놈들은 몰라.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난 너보다 더 많은 사람 구할 거야.”
장준혁은 출세를 향한 욕망과, 의사로서 병을 정복하려는 욕망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당성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상고이유서(자신의 출세욕은 무죄)와 시신기증서(의학발전)를 남긴 것이지요.
장준혁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장준혁의 출세욕은 무죄라고 평결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시골에서 태어난 일반고 트랙 장준혁이 특목고 트랙에 둘러싸여 자신을 지킨 힘이기 때문이겠지요. 어렸을 때부터 거의 평생 동안 전투하듯 살았을 것이고, 대학에 갔을 때부터는 마음속의 자부심과 현실에서 당하는 모멸 사이의 괴리감에 ‘그래, 어디 한 번 붙어보자’하면서 칼을 갈았을 겁니다.
장준혁과 그 일당이 외과과장 자리를 특목고 일당으로부터 쟁취하기 위해 암수를 쓴들, 돈을 쓴들,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고 시청자들은 느꼈습니다. 이건 극단적인 양극화로 국민들 사이에 ‘도덕심’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불공평한 세상이고, 이 학벌사회에서 사교육비 없는 놈은 꺼져버리라는 체제인데, 장준혁 일당이 특목고 일당에게 역으로 비겁한 수를 좀 쓴들 그게 대수랴‘인 것이지요.
공정한 경쟁의 룰 같은 것은 이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기는 놈이 장땡입니다. 이 살벌한 세상에서 혼자 도덕군자연하는 최도영에게 국민은 ‘즐~ 도덕 쳐드셈!’하는 것이지요. 원칙과 상식하자고 대통령까지 뽑았지만 국민은 점점 더 그런 것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세상의 불공평함이 사람들 마음속에서 정정당당함을 앗아
가는 겁니다.
명백히 장준혁이 잘못한 의료사고의 경우, 이주완 일당인 외과학회장이 장준혁을 공격하자, 그에 대한 적극적 응전을 하는 과정에서 잠시 환자에게 소홀했던 것이 화를 불렀습니다. 장준혁은 환자에게 소홀했던 건 반성했겠지만, 언제나 불공평한 처지에서 전투하듯 살았던 자기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믿었을 겁니다.
장준혁의 인기는, 대통령이 사회적 자본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한국사회의 사회적 자본이 거의 파탄상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적 자본이란 공정함, 신뢰, 투명함, 정당함, 공평함, 이런 것들로부터 배양되는데 모든 국민이 ‘한국사회는 절대로 공
평하지 않다’라고 여기기 때문에, ‘비겁한 방식으로 싸우는 게 뭐 어때? 특히 저 특목고 일당들에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엠비씨 드라마 '하얀거탑'의 장면들. ⓒ엠비씨
장준혁의 장인인 민충식이 외과과장 싸움판의 한 가운데에서 장준혁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쎈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쎈 놈이야”
이건 싸움의 공정함을 절대로 믿지 않았을 때 가능한 말입니다. 공정한 싸움이라면 쎈 놈이 이기겠지요. 하지만 반칙을 해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그 놈이 벌을 받는 게 아니라, 그냥 승자로 인정받는 세상, 그래서 살아남는 놈이 쎈 놈 되는 세상. 이미 공정함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을 이렇게 바꾸면 어떻습니까?
“훌륭한 인재가 유학 가는 것이 아니라 유학 간 놈이 훌륭한 인재야”
혹은
“훌륭한 인재가 영어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 잘 하는 놈이 훌륭한 인재야”
혹은
“훌륭한 인재가 일류대 가는 것이 아니라 일류대 간 놈이 훌륭한 인재야”
혹은
“훌륭한 인재가 특목고 가는 것이 아니라 특목고 간 놈이 훌륭한 인재야”
혹은
“훌륭한 인재가 국제중 가는 것이 아니라 국제중 간 놈이 훌륭한 인재야”
혹은
“영재가 영재교육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재교육원 간 놈이 영재야”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해도 말이 되겠네요.
“훌륭한 인재가 돈 버는 것이 아니라 돈 많은 집안 놈이 훌륭한 인재야
△나도 장준혁을 좋아 합니다. 의료사고는 마음에 안 들지만, 인간으로서 장준혁을 좋아 합니다. 하지만 장준혁을 미워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몽상인가요? ⓒ엠비씨
한국사회 최대의 격전장인 교육제도 안에서 훌륭한 인재로 뽑히는 놈은 결국 돈 많은 집안 놈이라는 말이지요. 그들이 승자가 됩니다. 이건 말하자면 국가가 제도적으로 ‘부정’을 허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정말 화끈하지 않습니까? 부모 재산이 탁월함의 기준이 되다니.
이렇게 구조적으로 부정이 판치니까, 가난한 집안 출신이 뒷돈을 좀 쓴들, 작당을 좀 한들, 공작을 좀 한들 그게 대수냐는 사고방식이 생깁니다. 누구도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습니다. 격렬한 대립과 불신만 반복됩니다. 한국사회가 지금 판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도덕군자같은 소리는 별로 안 좋아합니다만, 이런 공동체는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없습니다. 이런 세상을 만들어놓은 시장광신도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이렇게 부정이 판치는 사회에선 절대로 시장이 발달할 수 없습니다. 시장광신도들은 경쟁을 좋아하는데 반칙으로 점철된 경쟁은 정상적인 경쟁의 싹을 자릅니다.
공정한 사회였다면 외과과장 되려고 악을 쓰는 장준혁에게 모두들 최도영처럼 “넌 추해”라고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귀족집안 자제가 되지 못한 일반 국민들은 최도영을 밀어내고 장준혁을 지지했습니다. 나도 장준혁을 좋아 합니다. 의료사고는 마음에 안 들지만, 인간으로서 장준혁을 좋아 합니다. 하지만 장준혁을 미워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몽상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