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영국 런던. 화려한 사교모임과 댄스파티를 즐기는 도도한 아가씨 ‘키티(나오미 왓츠)’와 그녀를 파티에서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차갑고 냉철한 성격의 ‘월터(에드워드 노튼)’. ‘월터’는 ‘키티’에게 청혼을 하고 ‘키티’는 자신을 숨막히게 하는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세균학자인 월터의 연구 일정으로 인해 결혼 후 중국 상해로 넘어간 그들. 그러나 너무나 다른 성격과 다른 취향을 가진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행복할 리 만무하다. 활발한 성격의 ‘키티’와 매사 너무나 진지하고 조용히 연구와 독서를 즐기는 ‘월터’의 사이는 점점 소원해지고 ‘키티’는 사교모임에서 만난 외교관과 사랑에 빠진다. 아내의 불륜을 눈치챈 ‘월터’는 콜레라가 퍼져있는 오지 산골마을에 자원해서 가고 그곳에 ‘키티’를 데려간다. 마치 자신의 믿음과 사랑의 배신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하려는 듯…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콜레라로 인해 마을 사람의 태반이 죽어나가는 그곳에서 ‘월터’는 ‘키티’의 존재를 무시한 채 연구와 의료봉사에 전념하고 ‘키티’는 수감생활과 같은 나날을 보낸다. 무지로 인해 처음에 ‘월터’를 배척하던 마을 사람들은 그의 진심 어린 도움과 노력에 차츰 마음을 열고, 남을 위한 일이라고는 한번도 해본 적 없던 ‘키티’도 수녀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봉사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마음은 차츰 서로를 향해 열리고 ‘키티’와 ‘월터’는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만 이내 슬픈 운명이 그들의 행복을 가로 막는데…
2. 개요
서머셋 모옴의 '인생의 베일' 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하지만 원작에서 나타난 인생론 등은 그다지 큰 비중이 없고, 두 주인공들의 관계와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었다. 필자로써는 상당히 오랜만에 본 영화였다. 이래저래 바쁘다 보니...여튼, 페인티드 베일은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광고를 하길래, "꼭 봐야지." 하고 있던 영화였다. 포스터의 문구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사랑을 배신했던 여자 사랑을 질투했던 남자 엇갈린 운명 끝에 찾은 영원한 사랑 이런 건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문구기 때문에...꼭 봐야지 싶었지만, 솔직한 느낌으로 기대에는 못 미치는 영화였다.
3. 평가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그런 것일까, 스토리 자체는 상당히 탄탄하다. 하지만 영화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반전이나 극적인 영상을 연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되는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이 영화가 전통적 공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과 배신, 새로운 사랑 이라는 코드가 자주 등장하는 현대식 로맨스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사랑과 믿음, 극복이라는 전통적 로맨스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주고 있다. 항상 거기서 거기인 로맨스 영화에 질린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단, 잠이 많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커피를 한잔 쯤 마시고 올 것.
영화가 시작하면 짐꾼들이 떠나고 두 남녀가 말없이 남는다. 낯선 땅, 중국. 영국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전혀 그들과 어울리지 않을 듯한 공간에 서 있는 모습은 얼핏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의문은 키티의 과거 회상을 나타내는 오프닝 - 상당히 길다 - 이 끝나고 중반부로 접어들 무렵이면 서서히 풀리게 된다.
한눈에 반한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서로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다른 목적을 두고 있다면 같은 길로 가다가 언젠가는 서로가 틀어지게 마련이다. 키티와 월터의 관계도 그런 식이다. 일과 사랑의 무게가 비슷한 월터와, 부모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월터와의 애정없는 결혼을 한 키티. 이들의 결혼생활이 결코 순탄치 못할 거라는 추측은 결국 키티가 찰리와의 교제(?)를 하는 것으로 확신이 되어 버린다. 이 상황에서, 진정으로 힘든 것은 자신의 행위가 들킬까봐 전전긍긍해하는 키티가 아니라 아마도 사랑하는 아내를 포기하지 못하는 월터였을 것이다. 월터는 더 큰 고독과 외로움을 키티에게 줌으로써 복수를 하게 된다. 이처럼, 이 영화는 인과관계가 뚜렷하고 남자와 여자의 심리상태와 변화를 잘 보여준다. 원작과 시나리오가 탁월한 덕도 있겠지만, 나오미 왓츠와 에드워드 노튼의 뛰어난 연기력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 영화의 명대사를 꼽으라면 두 가지를 꼽겠다. 비록 사랑의 대상은 다르지만...메이탄푸의 원장 수녀가 한 말, '사랑과 의무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면 축복받은 것' 이라는 말과 '사람이니까 실수도 하고 실망도 하는 거 아니예요? 미안하네요, 당신이 원한 완벽한 여자가 아니어서.' 라고 내뱉는 키티의 말. 어쩌면 이 두 문장...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한 바가 아닐까?
또 한 가지 좋았던 것은 배경과 음악이다. '역시 중국인가!' 하는 탄성을 자아내는 멋진 산등성이의 능선과 강줄기. 마치 서양화가가 그린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에 다소 낯설지만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생소한 이질감이 오히려 새로운 느낌이었달까.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샹송(확실한 가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의 내용과 목소리도 영화의 마무리에 여운을 남기는데 일조했다.
중간중간에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놓고 등장하는 복선들 때문에 식상한 결말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아름답게, 그리고 잔잔하게 그려지는 드라마같은 느낌은 가슴에 가벼운 잔상을 남기었다.
페인티드 베일 (Painted Veil)
1. Synopsis
너무나 늦게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
운명은 그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1925년 영국 런던. 화려한 사교모임과 댄스파티를 즐기는 도도한 아가씨 ‘키티(나오미 왓츠)’와 그녀를 파티에서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차갑고 냉철한 성격의 ‘월터(에드워드 노튼)’. ‘월터’는 ‘키티’에게 청혼을 하고 ‘키티’는 자신을 숨막히게 하는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세균학자인 월터의 연구 일정으로 인해 결혼 후 중국 상해로 넘어간 그들. 그러나 너무나 다른 성격과 다른 취향을 가진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행복할 리 만무하다. 활발한 성격의 ‘키티’와 매사 너무나 진지하고 조용히 연구와 독서를 즐기는 ‘월터’의 사이는 점점 소원해지고 ‘키티’는 사교모임에서 만난 외교관과 사랑에 빠진다. 아내의 불륜을 눈치챈 ‘월터’는 콜레라가 퍼져있는 오지 산골마을에 자원해서 가고 그곳에 ‘키티’를 데려간다. 마치 자신의 믿음과 사랑의 배신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하려는 듯…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콜레라로 인해 마을 사람의 태반이 죽어나가는 그곳에서 ‘월터’는 ‘키티’의 존재를 무시한 채 연구와 의료봉사에 전념하고 ‘키티’는 수감생활과 같은 나날을 보낸다. 무지로 인해 처음에 ‘월터’를 배척하던 마을 사람들은 그의 진심 어린 도움과 노력에 차츰 마음을 열고, 남을 위한 일이라고는 한번도 해본 적 없던 ‘키티’도 수녀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봉사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마음은 차츰 서로를 향해 열리고 ‘키티’와 ‘월터’는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만 이내 슬픈 운명이 그들의 행복을 가로 막는데…
2. 개요
서머셋 모옴의 '인생의 베일' 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하지만 원작에서 나타난 인생론 등은 그다지 큰 비중이 없고, 두 주인공들의 관계와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었다. 필자로써는 상당히 오랜만에 본 영화였다. 이래저래 바쁘다 보니...여튼, 페인티드 베일은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광고를 하길래, "꼭 봐야지." 하고 있던 영화였다. 포스터의 문구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사랑을 배신했던 여자
사랑을 질투했던 남자
엇갈린 운명 끝에 찾은 영원한 사랑
이런 건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문구기 때문에...꼭 봐야지 싶었지만, 솔직한 느낌으로 기대에는 못 미치는 영화였다.
3. 평가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그런 것일까, 스토리 자체는 상당히 탄탄하다. 하지만 영화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반전이나 극적인 영상을 연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되는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이 영화가 전통적 공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과 배신, 새로운 사랑 이라는 코드가 자주 등장하는 현대식 로맨스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사랑과 믿음, 극복이라는 전통적 로맨스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주고 있다. 항상 거기서 거기인 로맨스 영화에 질린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단, 잠이 많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커피를 한잔 쯤 마시고 올 것.
영화가 시작하면 짐꾼들이 떠나고 두 남녀가 말없이 남는다. 낯선 땅, 중국. 영국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전혀 그들과 어울리지 않을 듯한 공간에 서 있는 모습은 얼핏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의문은 키티의 과거 회상을 나타내는 오프닝 - 상당히 길다 - 이 끝나고 중반부로 접어들 무렵이면 서서히 풀리게 된다.
한눈에 반한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서로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다른 목적을 두고 있다면 같은 길로 가다가 언젠가는 서로가 틀어지게 마련이다. 키티와 월터의 관계도 그런 식이다. 일과 사랑의 무게가 비슷한 월터와, 부모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월터와의 애정없는 결혼을 한 키티. 이들의 결혼생활이 결코 순탄치 못할 거라는 추측은 결국 키티가 찰리와의 교제(?)를 하는 것으로 확신이 되어 버린다. 이 상황에서, 진정으로 힘든 것은 자신의 행위가 들킬까봐 전전긍긍해하는 키티가 아니라 아마도 사랑하는 아내를 포기하지 못하는 월터였을 것이다. 월터는 더 큰 고독과 외로움을 키티에게 줌으로써 복수를 하게 된다. 이처럼, 이 영화는 인과관계가 뚜렷하고 남자와 여자의 심리상태와 변화를 잘 보여준다. 원작과 시나리오가 탁월한 덕도 있겠지만, 나오미 왓츠와 에드워드 노튼의 뛰어난 연기력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 영화의 명대사를 꼽으라면 두 가지를 꼽겠다. 비록 사랑의 대상은 다르지만...메이탄푸의 원장 수녀가 한 말, '사랑과 의무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면 축복받은 것' 이라는 말과 '사람이니까 실수도 하고 실망도 하는 거 아니예요? 미안하네요, 당신이 원한 완벽한 여자가 아니어서.' 라고 내뱉는 키티의 말. 어쩌면 이 두 문장...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한 바가 아닐까?
또 한 가지 좋았던 것은 배경과 음악이다. '역시 중국인가!' 하는 탄성을 자아내는 멋진 산등성이의 능선과 강줄기. 마치 서양화가가 그린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에 다소 낯설지만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생소한 이질감이 오히려 새로운 느낌이었달까.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샹송(확실한 가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의 내용과 목소리도 영화의 마무리에 여운을 남기는데 일조했다.
중간중간에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놓고 등장하는 복선들 때문에 식상한 결말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아름답게, 그리고 잔잔하게 그려지는 드라마같은 느낌은 가슴에 가벼운 잔상을 남기었다.
4.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