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독학으로 할 수 있을까?

김영선2007.03.18
조회370
피아노, 독학으로 할 수 있을까?

 

 

 

피아노, 독학으로 할 수 있을까?
‘1%의 천재와 99%의 노력’으로

 

“다섯 살 때 나는 읽고 쓰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후로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피아니스트 발터 기제킹의 말이다. 이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자신감에 넘친 한 마디는 우리에게는 퍽 소원하게 들린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피아노는 혼자 깨닫기 힘든 악기임이 분명하다.

 

독학으로 악기를 터득한다는 것, 피아노로만 국한한다고 해도 무척 버거운 일임은 틀림없다. 이에 대한 잘못된 경우도 굳이 우리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역사상 그러한 예가 너무도 많다.


텔레만은 어린 시절 쳄발로 선생의 과도한 교육이 너무 힘들어 스스로 연습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고, 바그너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운지법이 엉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예들은 한정된 경우에 속한다.

 작곡가들에게 피아노는 꼭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던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피아노 협주곡을 비롯해 모음곡들을 많이 남긴 쇤베르크도 바이올린과 첼로를 잘 연주했지만 피아노는 전혀 배우지 못했다.

베를리오즈도 같은 경우지만 몇몇 편곡 작품을 남긴 것이 구색을 갖추었을 따름이다.

 

리히터에서 유키 구라모토까지
피아니스트들의 경우를 보자.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는 아버지에게 기초적인 피아노 교육만을 받았다고 전한다.

어린 시절 얼마간 어린이 음악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고는 하지만 곧 그만두었고, 이후 22세에 노이하우스 문하에 들어갈 때까지 독학으로만 피아노를 익혔다. 하지만 이전에 10대의 나이로 리스트의 모든 작품을 연주할 수 있었고,

 대부분 초견으로 혹은 암보로 연주할 수 있었다. 당시 리히터의 초견 능력은 오케스트라 악보를 앞에 놓고

즉석에서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였고, 암보 능력도 탁월했는데 훗날에는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이 상징처럼 되어버렸지만 그 스스로 지나친 기억능력 때문에 고통을 받을 정도였으니 대강 어느 만큼이었는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
폴란드 태생의 고도프스키 역시 거의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운 피아니스트이다.

 7세 때 첫 작곡을 하고, 9세 때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다니까 신동 중에 신동이었던 그는 생상스에게 잠깐 배운 것을 제외하고는 정규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런 그가 빈 국립음악원의 교수가 되고,

훗날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연주 활동과 작곡 활동, 그리고 정규 피아노 교육에도 열심이었다니 무척 경이롭게 느껴진다.

발터 기제킹의 경우는 앞서 소개한 한 마디가 있듯이 매우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훗날 하노버에서 정규 교육을 배우기도 했지만 피아노 연주사에 있어서 하나의 독창적인 영역을 구축한 그의 공은 다름 아닌 스스로 체득한 타건법에 있었다.
칼 라이머에게 유연한 팔동작과 무게를 이용한 타건법을 전수받은 그는 ‘하프 페달’(반 페달)이라는 새로운 연주법을 개발해 낸다. 하프 페달이 기제킹 이전에 전연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단지 가능성에 불과했던 이것을 완전한 연주 영역으로 끌어올린 공로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기제킹은 독학 시절에 여러 가지 서적들, 철학을 비롯하여 역사와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탓에 이와 관련된 서적들을 많이 읽었다. 이러한 서적들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확실하게 답할 수는 없지만 칼 라이머가 처음 그를 보고 높은 교양 지식을 가진, 어느 누구에게도 때묻지 않은 순수한 음악성에 감탄했다는 회고를 볼 때, 그의 음악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신동 첼리스트 장한나가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한 사실을 비춰보면, 연주자로서 어느 정도 음악성을 갖추었을 때 가장 필요로 느끼는 것이 정신적인 차원으로 승화할 수 있는 어떤 계기 내지는 존재인 것 같다.
피아노라는 악기에 국한하지 않아도 독학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아티스트가 된 경우는 많다. 우리에게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로 익숙한 이름인 료 테라카도 역시 19세에 독학으로 악기를 시작했고, 불세출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도 10년간 독학하며 세상에 나온 경우이다.
명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10세 때부터 독학으로 지휘를 공부한 케이스이고, 게오르그 솔티도 스스로 지휘법을 공부한 경우.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세기 전반에 활약한 토스카니니 역시 거의 독학으로 지휘를 터득한 경우이다.
성악가 델 모나코도 많은 선배 성악가들의 음반을 들으며 공부했다고 하고,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인 빌란트 쿠이켄도 독학이었으며, 작곡가 이전에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그라나도스 역시 독학으로 피아노를 익혔다.
우리에게는 지휘자로 알려진 이고르 마르케비치도 독학이었고, 바이롱 라크르아도 독학으로 하프시코드를 배웠으며,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인 유키 구라모토 역시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해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었다. 이밖에도 독학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예는 많다.

 

독학의 필수조건은 엄청난 연습
리히터는 6세에 피아노 교육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리히터의 경우는 기초부터 거의 독학으로 기량을 쌓아 올린 케이스로, 지금에나 당시에나 구식에 속하던 연주법, 즉 팔의 중량을 살리거나 합리적인 근대 연주법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코스를 벗어난 연주법으로 성공한 경우이다. 쉽게 말해 손가락의 힘을 이용한 연주법을 구사했는데,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수단은 바로 초인적인 연습량에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말년에도 하루에 7~8시간 정도의 연습을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리히터는 분명 탁월하고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이지만 그의 연주 양식은 러시아 레퍼토리를 제외하고는 시대착오적인 것에 속한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상태에서 피아노를 연습한 사람처럼 적잖이 19세기적인 연주 양식을 보인다. 그 자신이 내밀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독특한 방법으로 피아노를 연마했는지 밝힌 적은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정상적인 방식으로 연주를 했더라면 그런 테크니컬하고 변화무쌍한 표현은 불가능했으리라는 점일 것이다.
다른 한 사람으로 고도프스키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한 강연회에서 자신이 터득한 연습방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특히 기교의 훈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전에 그가 ‘기교의 참된 의의는 메커니즘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음을 미리 알아두자.
“기교는 손을 발달시키는 단련, 다시 말해 빠르고도 크게 발음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요구된다.

기교는 공부이다. 예술 작품을 악기에 의해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 하는 공부로서, 이 문제는 육체적인 것보다는 지적인 면에 더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즉 손가락이나 손․팔․건반이 아닌 두뇌의 강훈련을 통해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기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숙련은 자동 피아노보다도 훨씬 뒤지는 것이다.”


흔히 고도프스키는 초인적인 기교이자 완전주의자로, 일을 크게 확대하는 경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독학 시절 10시간 이상 연습을 반복하는 동안 자기의 근육 운동을 비교 연구하면서, 풍부하고 유려하며 더욱 서정미 있는 음향을 낼 수 있는 것은 연습 시간 끝에 근육에서 힘을 뺀 후 팔을 낙하시키는 데서 온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인위적인 거대한 음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연주는 양손의 독립성, 손가락의 균등함, 폴리포닉함을 이어 주는 능력에 특징이 있다. 아마 이런 점은 피아노 사상 가장 독자적인 연주자에 속할 것이다.
기제킹은 피아니스트로 대성한 이후 교육자로서도 명망을 얻었다.

그는 ‘연주의 6개의 속성’을 ‘자연 낙하’ ‘던진다’ ‘친다’(찌른다, 간혹 어루만지다) ‘흔든다’ ‘돌린다’ ‘누른다’ 등으로 구분하고는 이를 종합해서 음의 길이와 강약, 그리고 질감 등을 고려하여 귀를 훈련시키도록 주문했다.
“팔은 죽은 것처럼 아래로 떨어뜨려야 한다. 마치 길을 걸을 때의 자연스런 손과 팔의 모양처럼 근육이 완전히 잠든 상태가 피아노 연주의 가장 좋은 손 모양이다.”

그는 독학 시절 많은 서적의 탐독으로 인해 피아니스트로 데뷔했을 때 이미 박식한(Pedantic) 수준의 지식인이 되어 있었다. 훗날 그는 그때의 독서가 ‘음악을 올바른 성격으로 이해하게 해주었고, 연주의 완벽함을 기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다’라고 말했다. ‘곡에 대해 자신이 표현하려는 것을 분명한 생각으로 쌓아 올리는 것’이 가능하려면 많은 독서와 연구는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기제킹은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장 좋은 방법으로 먼저 바흐의 작품을 꾸준히 연습할 것을 권했다. 다음은 그가 독학의 결과로 얻었던 피아노 연주상의 기법을 설명한 것으로 지금도 눈여겨 볼 대목이 많다.

‘자기 연주는 언제나 비판적인 귀로 듣고 자신의 터치를 지속적으로 자신의 지배 아래 유지하는 것은 조직적이고도 극도의 정신 집중을 발달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다.’
‘피아노를 배우는 데에 가장 어려운 것은 모든 손가락을 균형있게 훈련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손가락의 강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그 다음 단계가 두뇌와 사고의 문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악보의 음 하나하나까지 넓은 지식을 가지고 구명하려는 생각을 가져야 연주의 완벽을 기할 수 있다.’
결국 독학의 가장 중요한 척도는 연습에 연습, 보다 많은 연습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

악기를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를 익히는 것이다. 이것은 테니스나 골프 등의 운동 종목과 마찬가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기본기란 교사의 체계적인 지도 아래 이루어지는 것이고, 앞서 소개한 아티스트들 역시 기본기만큼은 부모나 어린 시절 잠깐 동안이나마 교사로부터 배운 경우이다. 최소한의 음악적인 토양이 이들에게 심어져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 결코 스스로 자양분을 만들지는 못했던 것이다.

한 피아노 교사의 말을 들어보자.

“노력해서 안될 일은 없겠지만 독학의 문제점은 일정 수준 이상 연주력의 벽을 넘기 힘들다는 겁니다. 어느 교본이나 조언에도 그것은 불충분할 수밖에 없죠. 기초가 충분히 있다면 모르겠지만 주위에 피아노를 혼자서 하려는 학생들을 많이 봤지만 결국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기본기가 있어야지 기초 없이는 응용 면에서 수준이 현격히 떨어질 수 있는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악기든 독학으로는 무리가 따른다고 봅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를 이루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꾸준한 자신감을 유지한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죠. 어떻게 보면 피아노 같은 주관적이고 기술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 악기는 이러한 기본기와 자신의 상태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힘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재미 피아니스트로 보스턴에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최승옥은 이렇게 설명한다.
“독학은 기본이 없다면 굉장히 힘든 길이 될 겁니다. 처음 자세 잡는 것부터 어렵겠죠. 피아노 독학이 힘든 이유는 악보만 볼 줄 안다고 연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배우다보면 점점 많은 기교를 요구하기 때문에 앞서가려는 욕심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체계적인 교습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게 아니라, 독학으로 하다보면 더러 짜증나고 마음만 급해지겠죠. 그리고 피아노의 이론과 기능에 대해 자세히 정리해놓은 저서를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 이점을 간과한 것이 아쉽고, 또 책을 보더라도 다독(책을 많이 읽는 것)과 난독(아무 책이나 마구 읽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도 잊어선 안됩니다. 그렇게 독학을 시작해서도 자신이 지금 어느 수준이라 어떤 곡을 연주할 수 있는지 주위의 조언 없이는 쉽게 선택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독학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피아노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독단적으로 악보나 이론서를 사서 공부하지 말고, 그들의 권유대로 차근차근 해나가야 합니다.”

피아노 독학, 음악이론과 교양을 함께 갖춰야
과연 피아노는 독학으로 가능할까? 앞서 소개한 피아니스트들의 예에서 보듯이 안된다고는 할 수 없다. 기존의 주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재능이 정하는 방향에 따라 터득해가는 희열도 클 것이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깨닫는다면 독학으로 얻는 소득도 정규적인 교육으로 얻을 수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규적인 교육과 전문화된 기존 방식과는 다르기에 도중에 발생할 어려움도 스스로 해결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무작정 연습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좋은 피아니스트가 될 수는 없다. 기제킹이나 리히터가 그러했듯이, 자신의 음악이 남들에게도 납득이 될 만한 보편성과 독창성이 요구되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 어떠한 난관이 가로 놓일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일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강인한 정신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테크닉 연습뿐만 아니라 음악 지식과 문헌, 정신적인 배경이 되는 교양을 위한 덕목도 자신이 터득해야 하기에 독학이란 우스갯소리로 ‘가까운 길 놔두고 먼 길로 돌아가는’ 모양이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하지만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사람이나 어떤 독자성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독학이란 그 자체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제 결론을 짓도록 하자. 독학을 이루고자 하는 예비 피아니스트라면 무엇보다 정보와 이론에 갈증을 느끼기 쉽다.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 학습을 통해야 하므로 노력도 배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자신에게 조언자가 있다면 훨씬 수월하겠지만 자신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능력을 함양해야 함은 물론이다.

시중에는 독학에 관한 입문서들이 꽤 많이 나와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독학 입문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보다는 자신의 교양과 정신적인 양식이 될 만한 서적들을 탐독하는 것이 좋다. 독학으로 대성한 피아니스트들이 대부분 음악적 재능 위에 철학서와 역사서를 즐겨 읽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독학을 일컬어 혹자는 이런 비유를 하기도 한다. ‘새벽에 자기 앞에 쌓인 거대한 서류더미를 아침까지 읽어야만 하는 중압감’이라고. 이 중압감을 덜어내는 것이 독학으로 성공할 수 있는 관건이다.

 -퍼온글 <피아노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