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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재2007.03.18
조회21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만든 작품....

그러나 원작인 만화에 충실했기때문에 조금은 과장된...

 

그럼...진정 이 스파르타의 진실은.....??

 

"스파르타"는 나라이름이 아니다...!!

 

"스파르타"는 귀족명...!

원주민은 따로 있었다.

'도리아'인들이 본래 살고있는 그리스 인을 정복하여 자신들이 지배한것.

스파르타의 선조는 도리아인이다...!

스파르타인 >> 귀족 (도리아인)

자유인 >> 평민 (일반인)

노예 >> 하민층 (원주민)

스파르타인의 인구는 역사상 3000명을 넘지 못한다.

거기에 거느린 노예만 30만명이었다.

노예들은 농사를 짓거나 군사무기등 실질적인 스파르타의 경제을 이끌었고, 이 노예들이 조금이라도 반항의 조짐이 보이면 가차없이 공개처형을 했다.

많은 노예를 거느려야 했기때문에 소수인 자신들을 지켜내려면 어릴 적부터 지옥같은 군사훈련을 통해 몸을 단련해야만 했다.

 

페르시아 VS 스파르타...?

NO....!!!

 

본 전쟁은 페르시아와 그리스 연합군간의 전쟁이었다.

1차 전쟁은 아테네에의해 막혔다.

당시 아테네의 인구는 50만영.

전쟁을 할 수 있는 성인 남성이 15만명으로 추정된다.

아테네는 많은 스포츠와 훈련으로 예비병력이 많았다.

아테네시는 그리스 북동쪽에 위치해 있어 페르시아와 전쟁시 제일 먼저 부딪히게 되어있다.

스파르타는 그리스 남동쪽에 있어 페르시아의 침공시 다소 여유가 있다.

2차 전쟁에서 스파르타의 300명과 부딪힌다.

이것은 실화다...!!

 

100만명의 페르시아 대군...??

아니...!

 

그 당시 페르시아 군대는 ...?

이란의 역사가들은 그 당시 페르시아왕이 직접지위하는 정예부대가

10만명,페르시아가 정복한 나라에서 온 연합군 30만영

지금의 터키와 이집트지역의 해군 10만영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아무튼...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페르시아군과 그리스연합군이 전투를 벌이게 되는 것은 사실....!

스파르타의 300명과 아테네군이 5600명...!

그외 숫자는 군수물자와 스파르타의 노예가 더 있다.

 

당시 이 전투는 30만대 5900명이다.

 

영화에서는 절벽이 있고 바다가 있었으나. 외길만 있는 협곡이었다.

당시 협곡의 길이는 300~400 미터로 추측된다.

페르시아왕은 너무 적은 수의 그리스 연합군을 보곤 3만의 돌격대를 보낸다.

아테네군과 스파르타군으로 이루워진 연합군은 처음엔 스파르타군이 일열로 선봉에서고 전투에 지치면 아테네군이 선봉에 서는...

한마디로 번갈아가며 페르시아군을 맞아 싸웠다.

아테네군사들과 스파르타군은 전투에 단련이 되어있는 정예군사들이었으며, 페르시아는 전투훈련이 그닥...되어있지 않았다.

적은 수의 군대에 당하고만 있던 페르시아군에 희망이 생긴 것이

그 지역의 한 농부에 의해 협곡을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제공 받은 것..!

졸지에 그리스 연합군은 포위를 당한다.

전투에 승리를 할 수 없다고 느낀 아테네군은 5600명을 철수 시키고 스파르타군 300명만 남아 페르시아군에 맞서게 되었다.

협곡의 언덕을 등지고 반원 모양으로 페르시아군과 맞서 싸우고,

페르시아의 함성은 하늘을 찌를듯이 강했지만

시간이 흘러  1만명의 페르시아 군이 전사를 한다.

정면돌파가 어렵다 생각한 페르시아왕은 궁수부대를 투입...!!

화상을 한번 쏠때마다 화살수는 수만개에 달했다.

처음에야 방패로 막아냈겠지만 계속해서 쏟아지는 화살에 스파르타군은 하나 둘씩 쓰러져 전사하게 된다.

 

이 전투로 인하여 후방에 있던 연합군은 전쟁준비 완료..!!!

 

이미 1~2차의 전쟁에서 많은 피해를 당하고 지친 페르시아는

이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지형의 공통점은 앞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뒤로는 높은 산들로 되어있는...전쟁시 방어능력이 뛰어난 요새였다.

또한 그리스의 지형은 험난했다.

 

무식한 페르시아군....?

NO..!!

 

그 당시 페르시아영토는 동쪽으로는 파키스탄, 서쪽으로는 이집트 ,

북쪽으로는 카자흐스탄,터키,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반도로

규모가 상당히 클뿐만 아니라 서유럽과 중국보다도 더 발전된 문명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으며,노예에게 관대한 나라였다.

스파르타는 문명이 다른나라에 비해 많이 뒤져있었다.

 

전쟁이 일어난 그곳은 어디쯤...?

 

스파르타와 페르시아가 전쟁을 위해 부딪힌 곳은

현재의 터키와 그리스이다.

 이 두 나라는 지금도 에게해(그리스 앞바다의 여러섬들..)를 두고

분쟁을 하고 있으며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약 3000년동안

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역은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대립,

서구세력과 아시아세력이 대립,

서유럽과 우크라이나, 러시아의 해상통로로

예로부터 지금까지 대립이 많은 곳이다.

 

 

스파르타의 멸망은.....?

 

페르시아와의 전쟁 승리 후...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한판 붙게된다.

일인자가 누구냐를 가리는 식으로...

그러나 스파르타가 승리하게 된다.

이런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내란을 이용하여

그리스 위 마케도니아왕이 스파르타를 멸망시킨다.

어처구니 없는 내란이 파멸을 부른 것이다.

이후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더왕에 의해 인도 갠지스 강까지 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