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이강수200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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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의 경우엔. 나 자신에 대한 비애나 아픔들이 내 안에 내재한 힘들을 이끌어낸다. 무엇인가 나를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고 초라하게 하고 괴롭게 하기 때문에 나는 끝없이 꿈을 꾸려고 하는 것이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있어 최대한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이 많다. 정말로 많다. 나같은 보통사람이야 발끝에 치일만큼 많은것이 당연하겠지만... 정말 저렇게 모든걸 다 가져도 되는걸까?? 싶을 정도로 잘난 사람들이 정말 눈물나도록 서럽지만 너무도 많다. 물론 그런 사람들 눈에는 또 더 잘난 사람들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무리 가지고 가진다고 해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듯이 잘난사람들은 끝이 없이 많을것 같다. 여기에서 나의 비극은 출발한다. 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나의 모든 의식이 나에게 향하고 있었을 오래 전 시절에는 나는 우주의 중심에서 온 세계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 자신을 더 알아가고 주위에 더 잘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에게 스스로 부여했던 '특수성'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인식의 지평이 결국 나 자신이라는 무인도의 백사장에 도달했을 때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순수하지 못한 나의 객관적판단력은 나 이외의 존재를 접할때 본의아니게 그 안에서 나의 모습을 바라보려 하는 못된 습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상대가 나를 인정해주면 나는 그 상대의 모습을 통해 나 자신에게 일시적인 특수성을 부여하려는 얄팍한 술수를 부려, 자신을 꿈의 요정의 거짓된 술에 취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은 나의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발견할 때 나의 의식은 깊은 절망으로 쓰러져가게 된다. 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때로는 나에게 외압을 가하는 존재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것은 나와 단절된 것이며 아무리 다가가려 하여도 우리에게는 창이 없기에 어떠한 의미도 찾아낼 수 없다. 오히려 나에게 더 깊은 실망감만을 안겨주고는 하는 것이다. 상대를 향한 나의 의지가 크고 강할수록 나에게 돌아오는 반작용은 큰 것이 당연하겠지만 관계에 있어서 에너지의 흐름이란 자연계에 당연히 존재해야 할 마찰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그 잘난 가속력만이 당당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작용 반작용은 이윽고 경향성을 가지게 되며 그러한 경향성은 나 자신의 통제력을 넘어서는 운동력을 가지게 된다. 결국 나에게 남는 것은 사랑하고 싶어도 미워하며 감싸주고 싶어도 들추어내며 안아주고 싶어도 밀쳐내 버리는 비열하고 옹졸한 나 자신의 모습일 뿐이다. 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판도라의 상자는 열려버렸고 그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의 무지함과 무능함과 무력함과 무도덕함 무가치함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눈 씻고 찾아보아도 꿈꾸는 신화작가들이 약속하는 희망이라는 녀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신화적 비극을 통해서 인간의 본연의 에너지를 발견한 한 미치광이 천재는 어떻게 꿈의 유혹을 이겨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직도 나는 알 수가 없다. 너무나 일찍 상자를 열어버린 것일가? 아니 아니다 처음으로 두 손에 이 상자를 쥐었을때부터 나는 이러한 결과를 짐작하고 있었다. 막연한 두려움이었다지만. 어쩌면 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것이 아닐까? 언제까지나 덮어둘 수는 없는 문제였다. 어떠한 진로조차 제시하지 못한 채 위대한 비극을 시작하려 한다. 꿈의 달콤한 목소리를 받아들일것인지 동방의 미치광이 타락한 술주정뱅이를 불러 함께 끝없는 쾌락의 춤을 출 것인지 불타오르는 위대한 진리에 이 몸을 불사를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단 하나. 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이것으로 나의 비극을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