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불행하게 될 때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 때문에 고난을 겪는 가장 좋은 예를 창세기 37장에서 50장 사이에 묘사된 구약의 요셉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기억하듯이 요셉은 열 두 형제 중에 두 번째로 가장 나이가 어렸습니다. 특별히 위의 형들은 아버지가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였기 때문에 요셉을 시기하였습니다. 문제가 가장 심각해졌을 때, 형제들은 요셉을 웅덩이에 던져 넣고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지나가는 상인들이 있어서 형제들은 그들 죽이지 말고 팔아버리자고 말하고, 요셉의 큰 형제들은 그를 외국인 상인들에게 팔아 넘겼고, 그들은 요셉을 애굽의 종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외국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처음에는 애굽의 말도 하지 못했고 그는 자신의 의지에 반대하는 노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주인의 아내가 어느 날 그를 유혹하였습니다. 그가 거절하였을 때, 그녀는 요셉이 강간을 하였다고 거짓으로 고소하였고,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독했으며, 마음에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형제들에게 그 모든 상황들을 말하였고, 그 때 그의 마음의 자세를 유의하여 보십시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50:20). 다시 말하면 “당신들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행동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바꾸어서 나의 삶과 당신들의 삶과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의 선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요셉으로부터 배울 교훈요셉이 어떻게 그렇게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까? 그의 생애에 그가 알고 있었던 세 가지 중요한 진리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통과하는 삶의 모든 것을 보시고 돌보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셉의 생애에서 이것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시고 돌보신다는 진리를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요셉의 생에 중에 큰 위기와 폐배가 있을 때마다 나타나고 있는 다섯 가지 중요한 구절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나 주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잘못되어 나가도 주님은 여전히 요셉과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요셉이 알고있었던 두 번째 시실은, 하나님은 모든 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몇 마디 기도만 하는 꼭두각시도 아니고 로버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고, 우리가 옳은 것을 무시하고 선택할 때 하나님은 그의 뜻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선택해서 자주 문제를 자초하면서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잘못한 것처럼 하나님을 탓합니다. 하나님께서 전혀 원인이 되지 않는 많은 일에 대해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큰 사고나 비극적인 일이나 또는 문제와 위기를 만났을 때 마치 하나님께서 잘못들을 계획하시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라고 말하면서 영적인 것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요지는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니은 우리 각자의 삶 속에 그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또한 자유의지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길을 택하고 나갈 때, 하나님은 자신을 제한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살 속에서 스스로 잘못도하고,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선택의 자유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택의 자유를 주시고, 그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우리가 또한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에서 그의 형제들은 의도적으로 그를 음모하기로 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죄악입니다. 이것은 죄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을 꼭두각시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요셉이 세 번째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은 마지막 결과를 궁극적으로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잘못과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범한 모든 죄악들을 다 취하시고, 이러한 것들을 바꾸어서 선한 결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저기의 전쟁에서 패배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이미 준비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매우 악한 일까지라도 취하셔서 그것을 바꾸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마지막에 하실 말씀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결정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거의 죽임을 당한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예로 팔려가서 강간죄로 거짓 고소되었고 감옥에 던져진 것입니다. 그의 삶은 여기까지 완전히 소망이 없어 보이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비극들을 다시 바꾸어, 이러한 사건들 속에서 매우 선한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요셉은 옥에 갇혀있는 동안에 바로왕의 가까웠던 사람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다시 권좌에 오르게 되었을 때 바로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 사람은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궁전에 초대받았고, 그 꿈을 해석하였습니다. 바로왕이여, 하나님은 당신에게 수확이 많은 7년이 있고, 그 다음 7년에는 기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일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왕은 요셉의 꿈 해석에 깊은 감동을 받아서 애굽 전국에 국무총리로 임명하였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힌 외국인 노예에서, 애굽에서 두 번째로 권력있는 국가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국무총리가 됨으로 그는 애굽을 구원하였고, 그 외의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여러 다른 나라들을 굶주림에서 구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한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에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제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악한 선택이라도 사용하시며,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기면, 그러한 악한 일들이 우리에게 있어도 그것을 바꾸어서 그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반드시 선한 것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의 생애 마지막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니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선한 것을 허락하실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요셉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불리한 환경을 이겨나가는 일지금만이 당신이 시련의 기간을 통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원인이 되지 않은 상황의 희생자가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요셉의 반응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첫 번째로 그가 하지 않은 것은 자기 동정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문제 속에 있고 지금 시련 가운데 있다고 하면 자기 동정에 빠질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 동정에 빠지는 것이 침체에 빠지는 큰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존심도 이미 빠져나가고 , 자신을 정죄하고 자신을 무력하게 보고 자신을 동정한 파티를 크게 벌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처한 위기는 그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상황을 현식적으로 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빼가 폭풍을 만나면 배는 바람을 정면으로 대치하며 항해해야 합니다. 만일 배를 옆으로 돌린다고 하면 폭풍은 그 배를 뒤집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폭풍이 몰아쳐 올 때, 그 폭풍을 이기는 최상의 방법은 그 폭풍과 정면으로 대처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좌절하고 있는 시기에 있다고 하면 당신이 시련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일이 왜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가? 라고 물을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십시오. “당신이 침체기에 있을 때에는 중요한 결정을 절대 내리지 말라” 우리가 좌절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나는 이제 중단해야 되겠다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겠다 직장을 바꾸어야 하겠다. 이혼을 해야 하겠다라고 말하고 싶은 시험을 자주 받습니다. 당신이 침체에 빠졌을 때에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지 마십시오. 그러한 때에는 당신이 정확한 판단을 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초점이 흐려지고, 당신의 관점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초점이 흐려지고, 당신의 관점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대신 폭풍을 정면으로 대하고 자기 동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요셉의 삶 가운데 또 한가지 다른 것을 보는 것은 모든 일들이 잘못되어 나갈 때 그는 마음에 증오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수년이 지난 다음에 요셉은 곡식을 위해 애굽에 오지 않으면 안되었던 형제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들이 요셉의 앞에 나갔을 때, 그들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앞에서 절을 하면서 그가 자신들의 동생인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요셉이 그 형제들에게 자기가 동생인 것을 말하였을 때 그들은 놀라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이 수년 전에 죽이려고 하였던 자기 동생이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동생 앞에서 절하는 자신들이 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요셉은 이미 당신이 당신의 삶 속의 증오의 과도한 짐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증오하는 마음으로 시험에 들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을 주님께 맡기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한 일입니다. 그는 그의 믿음과 소망을 언제나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에는 모든 일들이 다 해결될 것을 믿고 그의 영적인 삶을 계속 살아간 것입니다. 우리는 일들이 잘못되어 가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분이신 주님을 우리가 자주 배척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말하기 시작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의 잘못으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님 이 문제를 맡아 주세요. 하나님은 전혀 소망이 없는 상황을 바꾸어 놓으실 수있습니다. 사람들이 당심을 넘어뜨리기 위해 환경을 이용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사건을 부활의 사건으로 바꾸기를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이유에 대한 답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난을 경험하고 있을 위로와 실제적인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다음의 힘의 원천들을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고 하면 우리를 황폐케 만드는 환경이나, 영원히 우리를 파괴하는 위기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우리가 요셉의 생애에서 보는 힘의 첫 번째 원천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 말씀은 모든 것이 선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악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언제나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 즉 악한 일까지라도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의 최대의 관심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지금 통과하고 있는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당신의 삶의 전체적이니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더 큰 영광을 나타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어떠한 문제보다도 더 위대하신 것입니다. 물론 당신이 어려운 상황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 하시는가를 지켜본다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 당신이 되 돌이켜 보면, 당신의 관점이 더 나아지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일해 왔고, 그 환경을 어떻게 위대하고 목적있는 것으로 사용하셨는가를 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진리를 당신이 이해할 때에, 당신은 과거를 돌아보며 당신에게 어려운 시간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나를 발전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당신은 나를 파괴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나로 더 강하고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전쟁에서 패배한다고 하여도, 그 전쟁은 이미 승리한 것이고, 마지막의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면 하나님은 실패를 바꾸어 그 가운데서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우리가 위기를 지나가고 있을 때 두 번째 힘의 원천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성경에는 7천개가 넘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들을 우리의 것들로 만들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들은 마치 자기앞 수표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사용해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몇 구절을 찾아서 조그만 카드에 기록하고, 그것들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암송하기를 제안합니다. 한 사람은 성경구절을 카드에 적어가지고 차안에 햇빛 가리개에다 꽂고 다닙니다. 신호를 대기할 때마다. 성경을 암송하여 수백 구절을 암송하였습니다. 당신은 성경구절을 화장실 거울에다가 적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이 약속들은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소망을 주기 위해 주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15:4).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읽고, 그 약속을 암송하고, 믿음으로 그 약속의 말씀을 나의 것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우리가 위기를 만나 통과할 때에 우리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는 세 번째 힘의 원천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모든 교회는 개인들을 서로 돌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돌아보고, 서로 위해 기도하고, 함께 웃고, 울고, 짐을 나누어지는 곳입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알지 못한다고 하면 교회는 서로 돕는 곳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성경을 같이 배우는 그룹과 같은 곳에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그룹으로 만나 정기적으로 교제하고, 우리의 삶을 함께 나누며 함께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함으로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우리를 격려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같은 문제나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여 지금은 그 일의 결말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로 그러한 어려운 시기를 잘 통과하고 끝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로 심한 시련과 문제의 시기를 지나가도록 허락하신 다음에는 우리를 위로하셔서, 우리와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해 줄 수 있도록 하십니다.(고후1:3-4).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방법으로 사용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임재
위기 속에서 필요한 네 번째 힘의 원천은 모든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인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 즉 그리스도인의 인성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지금도 살아계시고, 당신이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며 실제로 수백 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가진 산 증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의 요셉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의 표본이 됩니다.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흠없이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요셉이 고난을 당했지만, 결국에는 중동지방에 기근이 왔을 때, 그의 식량정책은 수많은 사람들을 기아에서 구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과 흡사합니다. 예수님은 완전하시고 죄가 없었지만 우리를 죄의 무서운 결과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그의 의지대로 꼭두각시나 로버트와 같이 강제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범죄하고 서로 헐뜯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리고 의지할 때에 그리스도는 우리의 어려운 환경을 돌보아 주시고 끝에 가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십자가는 악한 것을 사람들이 계획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선을 이루시고 인간에게 축복을 가져오게 한다는 궁극적인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요셉과 같이 가족 식구들, 즉, 형제, 자매, 부모, 남편, 아내, 또는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에 의해서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만일 그렇다고 하면, 요셉이 한 것과 같이 하십시오, 자기동정이나, 증오심에 빠지지 마십시오, 대신 모든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 험악한 환경에서 새로운 그 어떤 것, 신선하고 아름다운 그 어떤 것을 가져오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은 공평하지 못합니다. 나는 그런 것을 받을 자격이 못됩니다.”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또는 당신이 문제속에 빠진 친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공평하지 않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때,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이 세상에는 공평하지 않은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마지막 어느날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점수를 계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죄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모든 사람들을 공의로 심판하는 날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에 점수를 계산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의무는 불공정한 것들이 우리를 파괴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의 발전을 위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들을 계속 뱌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만일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있을까라고 묻고 싶은 유혹이 일어나는 상황을 통과하고 있다면, 당신에게 자유의지가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하나님이 잘못으로 상처받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시며, 다른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시기까지 하나님 자신이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험악한 환경을 바꾸어 선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시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맡기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있고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따뜻한 교회에 나가서 적극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분리
고독의 두 번째의 원인은 분리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친구들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당신의 가정(경력, 군대, 또는 다른 이유)에서 고립될 때 이러한 고립은 외로움을 가져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9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의 친구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누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의 곁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외국에서 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사람들이 그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와 같이 과거에 선교 여행을 한 바울의 친한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였고, 그는 어디든 혼자 가는 법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시간에 와서 분리의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모두 다른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당신은 전화를 걸어 다른 사람들을 불러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 바울은 연락할 수도 없고 누구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의 친구들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외로웠던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두 번(9,13절)이나 디모데를 “오라”고 부탁하고 있고, 다음에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21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는 “디모데야, 나는 이제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다. 나는 진정으로 너를 보고싶다. 어서 와서 나를 보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를 부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시간이 있을 때 그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떨어져 있는 어떤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주도록 하십시오.
반대
외로움의 세 번째 원인은 반대입니다. 바울은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나는 감옥에서 홀로 앉아 늙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는 공격을 받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렉산더가 바울에게 어떻게 해를 보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가 바울을 반대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었는지 모릅니다. 이 구절에 나타나고 있는 ‘해’라는 헬라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반대한다’ 또는 ‘저지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반대가 심할 때에는 참으로 외로운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놀이터에서 어린아이들이 가장 야비한 말들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린 아이였을 때, 아이들이 패거리가 되어 당신을 반대하였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갑자기 쉬는 시간에 인기의 변덕스러운 손가락질을 하고 모두가 당신을 반대하면서 “너는 이제부터 우리 친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당신을 홀로라고 느낀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과하는 것과 모든 사람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동안 홀로 배척을 받는 것은 바로 고독한 느낌이 되는 것입니다. 오해받는 것, 당황하는 것, 수치스러운 것도 고독한 느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일어날 때 받은 유혹은 자신을 속으로 감추고 벽을 쌓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더욱 당신을 고독하게 만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배척
고독의 네 번째 원인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대부분의 가장 큰 고통이 이 원인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척에서 오는 고독입니다. 당신이 배신을 당했고, 당신이 저버림을 당했고, 당신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시기에 버림을 받은 것처럼 느낄 때 배척의 외로움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는 버림을 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바로 앞에서의 그의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16절). 당신은 바울의 음성에서 그의 고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일들이 어려워질 때,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났습니다. 시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났습니다.” 아무도 그를 변호하기 위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손을 떼었습니다. 배척은 인간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혼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은 간음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성실한 것이고, 포기하는 것이며, 저버리는 것이고, 이것은 심한 고통스러운 경험인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받아들여지는 감정의 요구가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고, 이 요구가 위배되면 이것은 심각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외로움을 해결하는 길
외로움의 문제를 다루는 데는 좋은 방법과 자신을 좌절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기를 좌절시키는 방법 중에 하나는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계속 일하는데 다 사용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완전히 침대에 녹초가 되어 떨어질 때까지 계속 하루 종일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당신을 육체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희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질주의를 시도합니다. 그들은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구매합니다. “만일 내가 많은 것들을 내 주위에 가질 수만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물질은 만족을 줄 수가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섬에 떨어졌고, “당신은 인간과의 접촉만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준다면 당신은 과연 얼마 동안이나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물질은 만족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상호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받아주고 사랑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혼외관계를 가집니다. 그들은 결혼생활에서 다른 애인을 찾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술 중독이나 마약에 빠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소설을 읽고 텔레비전을 많이 시청하면서 자신을 환상의 세상에 빠뜨립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자기 동정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외로움과 싸우기 위해서 네 가지 일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그의 외로운 날들을 지날 때에 이 네 가지를 사용한 것같이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인 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선용하는 것과 시키는 것과 인식하는 것과 공감하는 것입니다.
선용하십시오.
고독을 이기는 첫 번째 방법은 당신의 시간을 지헤롭게 선용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당신의 좋지 못한 환경을 최상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시험을 물리쳐야 합니다. 고독은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그저 앉아 있다고 하면 당신을 무능하게 만드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독을 물리쳐야 합니다. 당신의 기분전환의 부족을 유익하게 쓰기 위해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하십시오. 만일 삶이 당신에게 레몬(불만족스러운 것)을 준다고 하면, 레몬 쥬스를 만드십시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든지 그 일을 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바울이 한 것입니다.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12절). 그리고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지고 오라”(13절). 바울은 그저 앉아서 우울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쌍한 나야, 불쌍한 나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이것이 30년 동안 사역한 후에 내게 주는 보상입니까? 이것이 내가 로마제국에 기독교를 퍼지게 하는 가장 책임 있는 자로서 많은 교회를 개척한 후에 주시는 보상입니까? 로마의 습기 찬 옥에서 고독하게 죽는 것이 내가 얻는 보상입니까?” 라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바울에게는 자기 동정이 없었습니다. 그는 대신에, “내가 만일 홀로 있어야 한다면 나는 여전히 마음의 편안함을 가질 수 있다. 나는 이 좋지 못한 환경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겠다. 나의 겉옷을 가져오면 적어도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자신의 필요한 것들에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을 가지고 오라. 나는 이 간섭이 적은 시간들을 선용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삶에 다른 차원의 큰 변화였습니다. 그는 활동적이고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감옥에서 연구하는 것보다는 원형극장에서 복음을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만일 바울이 원형극장에 있었다고 하면 그는 복음을 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대신 그를 옥에 가두어 두셔서 신약성경의 부분을 기록하게 하시고 오늘 우리가 그 말씀을 보게 된 것입니다.
최소화 시키십시오.
외로움을 해결하는 두 번째 방법은 외로움을 최소화 시키는 것입니다. 외로움을 작은 것으로 생각하십시오. 거것을 과장하지 말고 그 외로움을 계속 반복하여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고독하다. 나는 너무도 외롭다.” 외로움으로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지 못하게 하고 당신의 삶에 증오를 쌓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바울은 “나와 함께한 자도 하나도 없고……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16절). 바울은 그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었지만 그에게 시간을 낼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증오하는 일이었습니다. 증오심은 당신을 더 외롭게 만들고 당신의 삶의 벽을 더 높이 쌓게만 만든다는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증오심은 당신을 자기 감옥에 넣고 잠그고 다른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냉소하고, 언제나 마음에 증오심을 가지고 불평하는 사람 주위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바울은 “나는 더 고통받는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원한다. 그래서 나의 시간을 선용하고 나의 상처를 최소화시킨다”고 말한 것입니다.
인식하십시오.
외로움을 이기는 세 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께서 내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17절) 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외로울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당신 바로 곁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요14:18) “내가 너희를 위로함 없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KJV)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13:5)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은 아무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당신은 하나님과 항상 대화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것을 이해하는 한, 당신은 절대로 외롭지 않습니다. 기도는 외로울 때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놀라운 방법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고독의 놀라운 해독제가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는 너무도 외롭습니다. 사울이 나를 쫓고 나는 동굴에 외롭게 숨어 있습니다. 내가 당신의 임재를 피하여 어디를 가겠습니까? 만일 하늘에 올라가도 당신은 거기에 계십니다. 땅에 어디를 가도 당신은 거기에 계십니다. 나는 당신을 피하여 숨을 곳이 없습니다”(시139편에서). 다윗은 외로움이 우리와 하나님이 더 가까운 관계를 가져야 하는 좋은 시간의 표시인 것을 알았습니다. 애미 그란트(Amy grant)는 위대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외로운 날을 좋아하네. 그날은 나에게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도록 하는 기회를 주네” 그러므로 당신은 어떻게 해야만 하겠습니까? 바울이 행한대로 하십시오. 우울하게 그저 앉아 있지 마십시오. 아무 일도 안하는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시 을 선용하십시오.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십시오.
공감하십시오.
외로움을 이기는 네 번째 방법은 사람들의 필요에 공감하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만을 위하여 내적으로 생각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외부적으로 생각하십시오. 당신 자신만을 보지 말고 밖의 다른 사람들을 보십시오. 외로운 사람들을 도와주기 시작하십시오. 바울이 바로 이렇게 하였습니다. 삶 속에서 그의 목표는 밖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였습니다. 즉 자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딤후 4: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외로움 가운데 있었고 생애의 마지막에 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삶의 목표, 즉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역을 잊지 않았습니다.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이 젊었을 때에 그는 한 젊은 청년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그 남자에게 완전히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관계를 끊어버리고, 그녀의 가까운 친구와 결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좌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제치고 다른 사람이 선택을 받는 이 배척보다 더 큰 상처는 없습니다. 그녀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매우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코리야, 너의 사랑은 끝났다. 그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니. 이제는 그 끝난 사랑에 대해 두 가지 할 수 있는 일밖에 없다. 너는 그 감정을 속으로 억누르고 안에 품고 있으면 그것이 너를 삼켜 버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그 감정을 바꾸어 다른 어떤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관심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다. 너는 사랑의 삶,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녀는 당신 아는 대로, 그러한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부부가 아기를 가지기 이해 몸부림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을 가지고 싶은 마음을 가진 그 사랑을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아기를 가지기 위해 계속 노력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부부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벽 쌓는 일을 중단하고 다리를 놓기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는 너무도 외롭습니다.”라고 불평하는 일을 그만하고, “하나님, 오는 다른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벽을 쌓는 대신에 다리를 놓을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랑은 고독의 해독제입니다. 사랑을 받으려고 기다리지 말고,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다시 풍성한 것으로 당신에게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공백을 채우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외로움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첫 번째로 말씀하시는 것은 “나는 이해한다. 나는 참으로 이해한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기 전 그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에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제자들은 잠자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그를 심문하기 위해 붙들려고 왔을 때 그의 모든 제자들은 피하여 달아났습니다. 베드로도 곧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세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실 때에,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고독을 이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신에게 “나는 네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다. 내가 너를 돌보아 주고 도와주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주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사랑으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아가며, 주님께서 당신의 고독을 당신이 정복하도록 맡기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릭워렌의 성경을 통한 인생의 난제 해답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릭 워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불행하게 될 때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 때문에 고난을 겪는 가장 좋은 예를 창세기 37장에서 50장 사이에 묘사된 구약의 요셉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기억하듯이 요셉은 열 두 형제 중에 두 번째로 가장 나이가 어렸습니다. 특별히 위의 형들은 아버지가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였기 때문에 요셉을 시기하였습니다. 문제가 가장 심각해졌을 때, 형제들은 요셉을 웅덩이에 던져 넣고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지나가는 상인들이 있어서 형제들은 그들 죽이지 말고 팔아버리자고 말하고, 요셉의 큰 형제들은 그를 외국인 상인들에게 팔아 넘겼고, 그들은 요셉을 애굽의 종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외국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처음에는 애굽의 말도 하지 못했고 그는 자신의 의지에 반대하는 노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주인의 아내가 어느 날 그를 유혹하였습니다. 그가 거절하였을 때, 그녀는 요셉이 강간을 하였다고 거짓으로 고소하였고,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독했으며, 마음에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형제들에게 그 모든 상황들을 말하였고, 그 때 그의 마음의 자세를 유의하여 보십시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50:20). 다시 말하면 “당신들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행동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바꾸어서 나의 삶과 당신들의 삶과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의 선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요셉으로부터 배울 교훈요셉이 어떻게 그렇게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까? 그의 생애에 그가 알고 있었던 세 가지 중요한 진리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통과하는 삶의 모든 것을 보시고 돌보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셉의 생애에서 이것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시고 돌보신다는 진리를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요셉의 생에 중에 큰 위기와 폐배가 있을 때마다 나타나고 있는 다섯 가지 중요한 구절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나 주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잘못되어 나가도 주님은 여전히 요셉과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요셉이 알고있었던 두 번째 시실은, 하나님은 모든 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몇 마디 기도만 하는 꼭두각시도 아니고 로버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고, 우리가 옳은 것을 무시하고 선택할 때 하나님은 그의 뜻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선택해서 자주 문제를 자초하면서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잘못한 것처럼 하나님을 탓합니다. 하나님께서 전혀 원인이 되지 않는 많은 일에 대해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큰 사고나 비극적인 일이나 또는 문제와 위기를 만났을 때 마치 하나님께서 잘못들을 계획하시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라고 말하면서 영적인 것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요지는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니은 우리 각자의 삶 속에 그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또한 자유의지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길을 택하고 나갈 때, 하나님은 자신을 제한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살 속에서 스스로 잘못도하고,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선택의 자유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택의 자유를 주시고, 그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우리가 또한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에서 그의 형제들은 의도적으로 그를 음모하기로 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죄악입니다. 이것은 죄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을 꼭두각시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요셉이 세 번째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은 마지막 결과를 궁극적으로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잘못과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범한 모든 죄악들을 다 취하시고, 이러한 것들을 바꾸어서 선한 결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저기의 전쟁에서 패배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이미 준비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매우 악한 일까지라도 취하셔서 그것을 바꾸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마지막에 하실 말씀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결정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거의 죽임을 당한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예로 팔려가서 강간죄로 거짓 고소되었고 감옥에 던져진 것입니다. 그의 삶은 여기까지 완전히 소망이 없어 보이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비극들을 다시 바꾸어, 이러한 사건들 속에서 매우 선한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요셉은 옥에 갇혀있는 동안에 바로왕의 가까웠던 사람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다시 권좌에 오르게 되었을 때 바로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 사람은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궁전에 초대받았고, 그 꿈을 해석하였습니다. 바로왕이여, 하나님은 당신에게 수확이 많은 7년이 있고, 그 다음 7년에는 기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일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왕은 요셉의 꿈 해석에 깊은 감동을 받아서 애굽 전국에 국무총리로 임명하였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힌 외국인 노예에서, 애굽에서 두 번째로 권력있는 국가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국무총리가 됨으로 그는 애굽을 구원하였고, 그 외의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여러 다른 나라들을 굶주림에서 구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한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에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제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악한 선택이라도 사용하시며,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기면, 그러한 악한 일들이 우리에게 있어도 그것을 바꾸어서 그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반드시 선한 것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의 생애 마지막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니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선한 것을 허락하실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요셉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불리한 환경을 이겨나가는 일지금만이 당신이 시련의 기간을 통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원인이 되지 않은 상황의 희생자가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요셉의 반응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첫 번째로 그가 하지 않은 것은 자기 동정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문제 속에 있고 지금 시련 가운데 있다고 하면 자기 동정에 빠질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 동정에 빠지는 것이 침체에 빠지는 큰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존심도 이미 빠져나가고 , 자신을 정죄하고 자신을 무력하게 보고 자신을 동정한 파티를 크게 벌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처한 위기는 그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상황을 현식적으로 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빼가 폭풍을 만나면 배는 바람을 정면으로 대치하며 항해해야 합니다. 만일 배를 옆으로 돌린다고 하면 폭풍은 그 배를 뒤집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폭풍이 몰아쳐 올 때, 그 폭풍을 이기는 최상의 방법은 그 폭풍과 정면으로 대처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좌절하고 있는 시기에 있다고 하면 당신이 시련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일이 왜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가? 라고 물을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십시오. “당신이 침체기에 있을 때에는 중요한 결정을 절대 내리지 말라” 우리가 좌절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나는 이제 중단해야 되겠다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겠다 직장을 바꾸어야 하겠다. 이혼을 해야 하겠다라고 말하고 싶은 시험을 자주 받습니다. 당신이 침체에 빠졌을 때에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지 마십시오. 그러한 때에는 당신이 정확한 판단을 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초점이 흐려지고, 당신의 관점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초점이 흐려지고, 당신의 관점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대신 폭풍을 정면으로 대하고 자기 동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요셉의 삶 가운데 또 한가지 다른 것을 보는 것은 모든 일들이 잘못되어 나갈 때 그는 마음에 증오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수년이 지난 다음에 요셉은 곡식을 위해 애굽에 오지 않으면 안되었던 형제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들이 요셉의 앞에 나갔을 때, 그들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앞에서 절을 하면서 그가 자신들의 동생인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요셉이 그 형제들에게 자기가 동생인 것을 말하였을 때 그들은 놀라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이 수년 전에 죽이려고 하였던 자기 동생이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동생 앞에서 절하는 자신들이 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요셉은 이미 당신이 당신의 삶 속의 증오의 과도한 짐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증오하는 마음으로 시험에 들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을 주님께 맡기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한 일입니다. 그는 그의 믿음과 소망을 언제나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에는 모든 일들이 다 해결될 것을 믿고 그의 영적인 삶을 계속 살아간 것입니다. 우리는 일들이 잘못되어 가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분이신 주님을 우리가 자주 배척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말하기 시작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의 잘못으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님 이 문제를 맡아 주세요. 하나님은 전혀 소망이 없는 상황을 바꾸어 놓으실 수있습니다. 사람들이 당심을 넘어뜨리기 위해 환경을 이용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사건을 부활의 사건으로 바꾸기를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이유에 대한 답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난을 경험하고 있을 위로와 실제적인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다음의 힘의 원천들을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고 하면 우리를 황폐케 만드는 환경이나, 영원히 우리를 파괴하는 위기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우리가 요셉의 생애에서 보는 힘의 첫 번째 원천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 말씀은 모든 것이 선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악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언제나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 즉 악한 일까지라도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의 최대의 관심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지금 통과하고 있는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당신의 삶의 전체적이니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더 큰 영광을 나타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어떠한 문제보다도 더 위대하신 것입니다. 물론 당신이 어려운 상황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 하시는가를 지켜본다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 당신이 되 돌이켜 보면, 당신의 관점이 더 나아지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일해 왔고, 그 환경을 어떻게 위대하고 목적있는 것으로 사용하셨는가를 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진리를 당신이 이해할 때에, 당신은 과거를 돌아보며 당신에게 어려운 시간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나를 발전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당신은 나를 파괴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나로 더 강하고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전쟁에서 패배한다고 하여도, 그 전쟁은 이미 승리한 것이고, 마지막의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면 하나님은 실패를 바꾸어 그 가운데서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우리가 위기를 지나가고 있을 때 두 번째 힘의 원천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성경에는 7천개가 넘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들을 우리의 것들로 만들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들은 마치 자기앞 수표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사용해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몇 구절을 찾아서 조그만 카드에 기록하고, 그것들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암송하기를 제안합니다. 한 사람은 성경구절을 카드에 적어가지고 차안에 햇빛 가리개에다 꽂고 다닙니다. 신호를 대기할 때마다. 성경을 암송하여 수백 구절을 암송하였습니다. 당신은 성경구절을 화장실 거울에다가 적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이 약속들은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소망을 주기 위해 주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15:4).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읽고, 그 약속을 암송하고, 믿음으로 그 약속의 말씀을 나의 것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우리가 위기를 만나 통과할 때에 우리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는 세 번째 힘의 원천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모든 교회는 개인들을 서로 돌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돌아보고, 서로 위해 기도하고, 함께 웃고, 울고, 짐을 나누어지는 곳입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알지 못한다고 하면 교회는 서로 돕는 곳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성경을 같이 배우는 그룹과 같은 곳에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그룹으로 만나 정기적으로 교제하고, 우리의 삶을 함께 나누며 함께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함으로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우리를 격려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같은 문제나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여 지금은 그 일의 결말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로 그러한 어려운 시기를 잘 통과하고 끝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로 심한 시련과 문제의 시기를 지나가도록 허락하신 다음에는 우리를 위로하셔서, 우리와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해 줄 수 있도록 하십니다.(고후1:3-4).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방법으로 사용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임재
위기 속에서 필요한 네 번째 힘의 원천은 모든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인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 즉 그리스도인의 인성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지금도 살아계시고, 당신이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며 실제로 수백 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가진 산 증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의 요셉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의 표본이 됩니다.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흠없이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요셉이 고난을 당했지만, 결국에는 중동지방에 기근이 왔을 때, 그의 식량정책은 수많은 사람들을 기아에서 구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과 흡사합니다. 예수님은 완전하시고 죄가 없었지만 우리를 죄의 무서운 결과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그의 의지대로 꼭두각시나 로버트와 같이 강제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범죄하고 서로 헐뜯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리고 의지할 때에 그리스도는 우리의 어려운 환경을 돌보아 주시고 끝에 가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십자가는 악한 것을 사람들이 계획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선을 이루시고 인간에게 축복을 가져오게 한다는 궁극적인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요셉과 같이 가족 식구들, 즉, 형제, 자매, 부모, 남편, 아내, 또는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에 의해서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만일 그렇다고 하면, 요셉이 한 것과 같이 하십시오, 자기동정이나, 증오심에 빠지지 마십시오, 대신 모든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 험악한 환경에서 새로운 그 어떤 것, 신선하고 아름다운 그 어떤 것을 가져오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은 공평하지 못합니다. 나는 그런 것을 받을 자격이 못됩니다.”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또는 당신이 문제속에 빠진 친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공평하지 않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때,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이 세상에는 공평하지 않은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마지막 어느날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점수를 계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죄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모든 사람들을 공의로 심판하는 날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에 점수를 계산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의무는 불공정한 것들이 우리를 파괴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의 발전을 위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들을 계속 뱌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만일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있을까라고 묻고 싶은 유혹이 일어나는 상황을 통과하고 있다면, 당신에게 자유의지가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하나님이 잘못으로 상처받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시며, 다른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시기까지 하나님 자신이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험악한 환경을 바꾸어 선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시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맡기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있고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따뜻한 교회에 나가서 적극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분리
고독의 두 번째의 원인은 분리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친구들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당신의 가정(경력, 군대, 또는 다른 이유)에서 고립될 때 이러한 고립은 외로움을 가져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9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의 친구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누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의 곁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외국에서 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사람들이 그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와 같이 과거에 선교 여행을 한 바울의 친한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였고, 그는 어디든 혼자 가는 법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시간에 와서 분리의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모두 다른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당신은 전화를 걸어 다른 사람들을 불러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 바울은 연락할 수도 없고 누구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의 친구들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외로웠던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두 번(9,13절)이나 디모데를 “오라”고 부탁하고 있고, 다음에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21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는 “디모데야, 나는 이제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다. 나는 진정으로 너를 보고싶다. 어서 와서 나를 보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를 부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시간이 있을 때 그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떨어져 있는 어떤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주도록 하십시오.
반대
외로움의 세 번째 원인은 반대입니다. 바울은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나는 감옥에서 홀로 앉아 늙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는 공격을 받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렉산더가 바울에게 어떻게 해를 보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가 바울을 반대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었는지 모릅니다. 이 구절에 나타나고 있는 ‘해’라는 헬라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반대한다’ 또는 ‘저지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반대가 심할 때에는 참으로 외로운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놀이터에서 어린아이들이 가장 야비한 말들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린 아이였을 때, 아이들이 패거리가 되어 당신을 반대하였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갑자기 쉬는 시간에 인기의 변덕스러운 손가락질을 하고 모두가 당신을 반대하면서 “너는 이제부터 우리 친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당신을 홀로라고 느낀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과하는 것과 모든 사람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동안 홀로 배척을 받는 것은 바로 고독한 느낌이 되는 것입니다. 오해받는 것, 당황하는 것, 수치스러운 것도 고독한 느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일어날 때 받은 유혹은 자신을 속으로 감추고 벽을 쌓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더욱 당신을 고독하게 만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배척
고독의 네 번째 원인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대부분의 가장 큰 고통이 이 원인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척에서 오는 고독입니다. 당신이 배신을 당했고, 당신이 저버림을 당했고, 당신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시기에 버림을 받은 것처럼 느낄 때 배척의 외로움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는 버림을 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바로 앞에서의 그의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16절). 당신은 바울의 음성에서 그의 고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일들이 어려워질 때,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났습니다. 시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났습니다.” 아무도 그를 변호하기 위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손을 떼었습니다. 배척은 인간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혼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은 간음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성실한 것이고, 포기하는 것이며, 저버리는 것이고, 이것은 심한 고통스러운 경험인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받아들여지는 감정의 요구가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고, 이 요구가 위배되면 이것은 심각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외로움을 해결하는 길
외로움의 문제를 다루는 데는 좋은 방법과 자신을 좌절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기를 좌절시키는 방법 중에 하나는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계속 일하는데 다 사용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완전히 침대에 녹초가 되어 떨어질 때까지 계속 하루 종일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당신을 육체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희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질주의를 시도합니다. 그들은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구매합니다. “만일 내가 많은 것들을 내 주위에 가질 수만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물질은 만족을 줄 수가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섬에 떨어졌고, “당신은 인간과의 접촉만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준다면 당신은 과연 얼마 동안이나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물질은 만족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상호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받아주고 사랑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혼외관계를 가집니다. 그들은 결혼생활에서 다른 애인을 찾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술 중독이나 마약에 빠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소설을 읽고 텔레비전을 많이 시청하면서 자신을 환상의 세상에 빠뜨립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자기 동정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외로움과 싸우기 위해서 네 가지 일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그의 외로운 날들을 지날 때에 이 네 가지를 사용한 것같이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인 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선용하는 것과 시키는 것과 인식하는 것과 공감하는 것입니다.
선용하십시오.
고독을 이기는 첫 번째 방법은 당신의 시간을 지헤롭게 선용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당신의 좋지 못한 환경을 최상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시험을 물리쳐야 합니다. 고독은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그저 앉아 있다고 하면 당신을 무능하게 만드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독을 물리쳐야 합니다. 당신의 기분전환의 부족을 유익하게 쓰기 위해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하십시오. 만일 삶이 당신에게 레몬(불만족스러운 것)을 준다고 하면, 레몬 쥬스를 만드십시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든지 그 일을 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바울이 한 것입니다.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12절). 그리고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지고 오라”(13절). 바울은 그저 앉아서 우울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쌍한 나야, 불쌍한 나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이것이 30년 동안 사역한 후에 내게 주는 보상입니까? 이것이 내가 로마제국에 기독교를 퍼지게 하는 가장 책임 있는 자로서 많은 교회를 개척한 후에 주시는 보상입니까? 로마의 습기 찬 옥에서 고독하게 죽는 것이 내가 얻는 보상입니까?” 라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바울에게는 자기 동정이 없었습니다. 그는 대신에, “내가 만일 홀로 있어야 한다면 나는 여전히 마음의 편안함을 가질 수 있다. 나는 이 좋지 못한 환경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겠다. 나의 겉옷을 가져오면 적어도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자신의 필요한 것들에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을 가지고 오라. 나는 이 간섭이 적은 시간들을 선용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삶에 다른 차원의 큰 변화였습니다. 그는 활동적이고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감옥에서 연구하는 것보다는 원형극장에서 복음을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만일 바울이 원형극장에 있었다고 하면 그는 복음을 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대신 그를 옥에 가두어 두셔서 신약성경의 부분을 기록하게 하시고 오늘 우리가 그 말씀을 보게 된 것입니다.
최소화 시키십시오.
외로움을 해결하는 두 번째 방법은 외로움을 최소화 시키는 것입니다. 외로움을 작은 것으로 생각하십시오. 거것을 과장하지 말고 그 외로움을 계속 반복하여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고독하다. 나는 너무도 외롭다.” 외로움으로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지 못하게 하고 당신의 삶에 증오를 쌓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바울은 “나와 함께한 자도 하나도 없고……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16절). 바울은 그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었지만 그에게 시간을 낼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증오하는 일이었습니다. 증오심은 당신을 더 외롭게 만들고 당신의 삶의 벽을 더 높이 쌓게만 만든다는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증오심은 당신을 자기 감옥에 넣고 잠그고 다른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냉소하고, 언제나 마음에 증오심을 가지고 불평하는 사람 주위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바울은 “나는 더 고통받는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원한다. 그래서 나의 시간을 선용하고 나의 상처를 최소화시킨다”고 말한 것입니다.
인식하십시오.
외로움을 이기는 세 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께서 내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17절) 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외로울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당신 바로 곁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요14:18) “내가 너희를 위로함 없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KJV)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13:5)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은 아무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당신은 하나님과 항상 대화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것을 이해하는 한, 당신은 절대로 외롭지 않습니다. 기도는 외로울 때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놀라운 방법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고독의 놀라운 해독제가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는 너무도 외롭습니다. 사울이 나를 쫓고 나는 동굴에 외롭게 숨어 있습니다. 내가 당신의 임재를 피하여 어디를 가겠습니까? 만일 하늘에 올라가도 당신은 거기에 계십니다. 땅에 어디를 가도 당신은 거기에 계십니다. 나는 당신을 피하여 숨을 곳이 없습니다”(시139편에서). 다윗은 외로움이 우리와 하나님이 더 가까운 관계를 가져야 하는 좋은 시간의 표시인 것을 알았습니다. 애미 그란트(Amy grant)는 위대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외로운 날을 좋아하네. 그날은 나에게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도록 하는 기회를 주네” 그러므로 당신은 어떻게 해야만 하겠습니까? 바울이 행한대로 하십시오. 우울하게 그저 앉아 있지 마십시오. 아무 일도 안하는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시 을 선용하십시오.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십시오.
공감하십시오.
외로움을 이기는 네 번째 방법은 사람들의 필요에 공감하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만을 위하여 내적으로 생각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외부적으로 생각하십시오. 당신 자신만을 보지 말고 밖의 다른 사람들을 보십시오. 외로운 사람들을 도와주기 시작하십시오. 바울이 바로 이렇게 하였습니다. 삶 속에서 그의 목표는 밖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였습니다. 즉 자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딤후 4: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외로움 가운데 있었고 생애의 마지막에 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삶의 목표, 즉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역을 잊지 않았습니다.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이 젊었을 때에 그는 한 젊은 청년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그 남자에게 완전히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관계를 끊어버리고, 그녀의 가까운 친구와 결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좌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제치고 다른 사람이 선택을 받는 이 배척보다 더 큰 상처는 없습니다. 그녀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매우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코리야, 너의 사랑은 끝났다. 그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니. 이제는 그 끝난 사랑에 대해 두 가지 할 수 있는 일밖에 없다. 너는 그 감정을 속으로 억누르고 안에 품고 있으면 그것이 너를 삼켜 버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그 감정을 바꾸어 다른 어떤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관심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다. 너는 사랑의 삶,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녀는 당신 아는 대로, 그러한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부부가 아기를 가지기 이해 몸부림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을 가지고 싶은 마음을 가진 그 사랑을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아기를 가지기 위해 계속 노력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부부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벽 쌓는 일을 중단하고 다리를 놓기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는 너무도 외롭습니다.”라고 불평하는 일을 그만하고, “하나님, 오는 다른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벽을 쌓는 대신에 다리를 놓을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랑은 고독의 해독제입니다. 사랑을 받으려고 기다리지 말고,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다시 풍성한 것으로 당신에게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공백을 채우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외로움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첫 번째로 말씀하시는 것은 “나는 이해한다. 나는 참으로 이해한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기 전 그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에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제자들은 잠자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그를 심문하기 위해 붙들려고 왔을 때 그의 모든 제자들은 피하여 달아났습니다. 베드로도 곧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세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실 때에,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고독을 이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신에게 “나는 네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다. 내가 너를 돌보아 주고 도와주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주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사랑으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아가며, 주님께서 당신의 고독을 당신이 정복하도록 맡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