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교에 여성파워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이미 대사직과 본부 국장급간부가 배출된데 이어 과장급과 서기관급직원에도 상당수가 여성이다. 외교부본부의 과단위직원중 반이상이 여성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과장들이 효과적인 과운영을 위해서는 여성 심리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예전에는 여성이 외교관이 된다는것은 하나의 터부같은것이었다.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특성상 여자들이 하기에는 적절치않다는 이유에서 였다.평생을 옮겨다닐것을 생각하면 남편이 어떻게 따라다니느냐하는 문제, 또 자녀는 누가 키우느냐하는 문제등 모두가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지금도 이런문제가 온전히 남아있기는 하다. 그래도 선구적인 여성들이 직업외교관의 길을 뚤은이래 여러 제약조건을 극복해가며 이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외무고시세대의 첫 여성외교관은 1978년 외무고시(12회)를 통해 외교부에 들어온 김경임씨였다.마침 나와 같은해에 외교부에들어오게되어 어울릴 기회가 많았다. 첫 여성외교관이어서 세간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나와 외무고시동기였지만 나보다 나이가 일곱살이나 위여서 평소 누님같이 생각되었다.나이도 많고 또 홍일점이라는 배려도 있어서 국장(문화외교국장)도 동기생들중 빨리한 편이었고 대사(주 튀니지대사)도 빨리하였다.
그리고 한동안 여성들의 진출이 없다가 85년 백지아씨를 시작으로 간간이 외무고시 합격자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그러다가 외무고시에 여성합격자들이 대거 나오기 시작한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였다. 외무고시 합격자중 여성합격자비율이 2001년 37% 2002년 46% 2003년 36% 2004년 35%로 급격히 늘어난것이다. 급기야 2005년에는 최종합격자 19명중 여성이 10명으로 과반수를 넘기게 됐다.
초기에 진출한 여성외교관들의 경우 상사들로부터 환영을 받은것은 아니었다. 남성의 전용공간에서 상사들이 불편해 했기 때문이다. 남자직원들과같이 마음놓고 야단을 칠수도 없지 않느냐하는 식의 이야기였다.또 업무량이 많은 과에서는 밤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할수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오곤했다. 그래서 과배치때도 잘 받지않으려는 경향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서서히 여성외교관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여성외교관들의 강점은 섬세함과 강함이 어우러진 캐릭터에다 여성 특유의 붙임성을 배경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접근성(access)이 남자들보다 앞서 보인다.또 어학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내가 알고있는 여성외교관들중 특히 두각을 나타내고있는 예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강경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부판무관은 한국여성으로서는 유엔 기구에서 최고의 지위( 사무차장보급)에 올라간분이다. KBS 영어방송 아나운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미국 메사추세츠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한동안 국회의장 국제담당비서관으로 일했다. 1998년에 외교부장관특보로 특채되어 외교부에 들어온 그는 주유엔대표부공사를 거쳐 외교부 국제기구국장에 임명됐다.외무고시를 거치지않은 특채케이스공무원으로서는 이례적인 빠른 출세(?)라고 할수있다. 2006년말 공모직인 현직책에 선임되어 외교부를 떠났지만 앞으로 국제기구에서 더 높은 지위로 도약할것이 확실시된다. 적극적이고 강한 성격에 뛰어난 영어실력이 특별히 돋보이는 분이다.
최근에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부의장으로 선임된 주유엔대표부의 박은하참사관도 돋보이는 인재다. 나와 같이 북경에서 근무할때도 남성외교관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부지런히 활동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다. 북경에서의 활동시에는 같은 여성외교관인 중국외교부의 장치웨이대변인( 현 주EU대사)이 많이 도와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군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특보로 있는 김원수씨인데 부부외교관으로서 여러난관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길을 걷고있다.
현재 노무현대통령의 영어통역을 맡고있는 정의혜서기관( 97년입부. 외시 31기) 도 발군의 인재다. 부친이 대기업의 미얀마주재 임원으로 근무 미얀마에서 고교과정을 마친 정서기관은 뛰어난 영어실력과 순발력으로 통역으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던 경수로기획단 특보로 일할 당시 함께 일했는데 밝고 적극적인 성격과 실력으로 외교관으로서 대성할것으로 기대된다.
정의혜씨와 동기생인 이여진서기관도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노대통령의 통역을 역임하였으며 장래가 촉망되는 여성외교관이다. 함께 일할 기회는 없었지만 정의혜씨와 함께 두분모두 실력 적극적 케릭터 미모까지 겸비하고 있어 외교무대에서 성공할수밖에 없는 인재들이라고 할수있다.
외무고시출신이 아니고 언어특채로 외교부에 들어온 여성외교관들의 활약도 돋보인다.일본어로 특채되어 대통령통역까지했던 장혜령시는 언어능력이외에 겸손한 성격 아름다운외모로 매우 눈에띄는 인재였으나 그후 외교부를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였다. 후임자로 뽑힌 서명진씨도 일본어통역으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며 북핵 6자회담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중국어분야에서는 대만 국립대출신인 여소영주중대사관 서기관 과 현재 서울에서 통역을 맡고있는 신희경서기관이 크게 활약하고 있다.
여성 외교관들이 크게 활약하면서 남성외교관들이 상당한 위협감(?)을 느끼는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에는 역차별론 이야기도 나온다. 그동안 여성외교관들에게는 결혼생활이나 육아같은 인도적문제를 고려 상대적으로 선진국에 근무케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들을 어떻게 아프리카나 중남미 중동의 오지에 발령낼수있느냐는 분위기가 있었던게 사실이다. 또 부부외교관의 경우 같은 공관에서 근무하도록 배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역차별론을 거론하는 사람들은 외교관이 국제회의참가등 우아한 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등 오지에서 몸으로 때우는 일이 더많음을 지적한다. 여성외교관 숫자가 너무 많아지면 전투력(?)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하여튼 여성 외교관들의 숫자가 워낙 늘어나면서 특별한배려를 계속해 나가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상황이 어떻든간에 앞으로 여성외교관들의 비중과 활약은 더욱 두드러질것으로 보인다. 한국외교의 허리로 성장하고 있는 이들의 활약에 더 큰 기대를 해본다.
여성외교관 전성시대
한국외교에 여성파워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이미 대사직과 본부 국장급간부가 배출된데 이어 과장급과 서기관급직원에도 상당수가 여성이다. 외교부본부의 과단위직원중 반이상이 여성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과장들이 효과적인 과운영을 위해서는 여성 심리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예전에는 여성이 외교관이 된다는것은 하나의 터부같은것이었다.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특성상 여자들이 하기에는 적절치않다는 이유에서 였다.평생을 옮겨다닐것을 생각하면 남편이 어떻게 따라다니느냐하는 문제, 또 자녀는 누가 키우느냐하는 문제등 모두가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지금도 이런문제가 온전히 남아있기는 하다. 그래도 선구적인 여성들이 직업외교관의 길을 뚤은이래 여러 제약조건을 극복해가며 이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외무고시세대의 첫 여성외교관은 1978년 외무고시(12회)를 통해 외교부에 들어온 김경임씨였다.마침 나와 같은해에 외교부에들어오게되어 어울릴 기회가 많았다. 첫 여성외교관이어서 세간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나와 외무고시동기였지만 나보다 나이가 일곱살이나 위여서 평소 누님같이 생각되었다.나이도 많고 또 홍일점이라는 배려도 있어서 국장(문화외교국장)도 동기생들중 빨리한 편이었고 대사(주 튀니지대사)도 빨리하였다.
그리고 한동안 여성들의 진출이 없다가 85년 백지아씨를 시작으로 간간이 외무고시 합격자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그러다가 외무고시에 여성합격자들이 대거 나오기 시작한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였다. 외무고시 합격자중 여성합격자비율이 2001년 37% 2002년 46% 2003년 36% 2004년 35%로 급격히 늘어난것이다. 급기야 2005년에는 최종합격자 19명중 여성이 10명으로 과반수를 넘기게 됐다.
초기에 진출한 여성외교관들의 경우 상사들로부터 환영을 받은것은 아니었다. 남성의 전용공간에서 상사들이 불편해 했기 때문이다. 남자직원들과같이 마음놓고 야단을 칠수도 없지 않느냐하는 식의 이야기였다.또 업무량이 많은 과에서는 밤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할수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오곤했다. 그래서 과배치때도 잘 받지않으려는 경향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서서히 여성외교관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여성외교관들의 강점은 섬세함과 강함이 어우러진 캐릭터에다 여성 특유의 붙임성을 배경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접근성(access)이 남자들보다 앞서 보인다.또 어학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내가 알고있는 여성외교관들중 특히 두각을 나타내고있는 예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강경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부판무관은 한국여성으로서는 유엔 기구에서 최고의 지위( 사무차장보급)에 올라간분이다. KBS 영어방송 아나운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미국 메사추세츠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한동안 국회의장 국제담당비서관으로 일했다. 1998년에 외교부장관특보로 특채되어 외교부에 들어온 그는 주유엔대표부공사를 거쳐 외교부 국제기구국장에 임명됐다.외무고시를 거치지않은 특채케이스공무원으로서는 이례적인 빠른 출세(?)라고 할수있다. 2006년말 공모직인 현직책에 선임되어 외교부를 떠났지만 앞으로 국제기구에서 더 높은 지위로 도약할것이 확실시된다. 적극적이고 강한 성격에 뛰어난 영어실력이 특별히 돋보이는 분이다.
최근에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부의장으로 선임된 주유엔대표부의 박은하참사관도 돋보이는 인재다. 나와 같이 북경에서 근무할때도 남성외교관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부지런히 활동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다. 북경에서의 활동시에는 같은 여성외교관인 중국외교부의 장치웨이대변인( 현 주EU대사)이 많이 도와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군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특보로 있는 김원수씨인데 부부외교관으로서 여러난관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길을 걷고있다.
현재 노무현대통령의 영어통역을 맡고있는 정의혜서기관( 97년입부. 외시 31기) 도 발군의 인재다. 부친이 대기업의 미얀마주재 임원으로 근무 미얀마에서 고교과정을 마친 정서기관은 뛰어난 영어실력과 순발력으로 통역으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던 경수로기획단 특보로 일할 당시 함께 일했는데 밝고 적극적인 성격과 실력으로 외교관으로서 대성할것으로 기대된다.
정의혜씨와 동기생인 이여진서기관도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노대통령의 통역을 역임하였으며 장래가 촉망되는 여성외교관이다. 함께 일할 기회는 없었지만 정의혜씨와 함께 두분모두 실력 적극적 케릭터 미모까지 겸비하고 있어 외교무대에서 성공할수밖에 없는 인재들이라고 할수있다.
외무고시출신이 아니고 언어특채로 외교부에 들어온 여성외교관들의 활약도 돋보인다.일본어로 특채되어 대통령통역까지했던 장혜령시는 언어능력이외에 겸손한 성격 아름다운외모로 매우 눈에띄는 인재였으나 그후 외교부를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였다. 후임자로 뽑힌 서명진씨도 일본어통역으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며 북핵 6자회담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중국어분야에서는 대만 국립대출신인 여소영주중대사관 서기관 과 현재 서울에서 통역을 맡고있는 신희경서기관이 크게 활약하고 있다.
여성 외교관들이 크게 활약하면서 남성외교관들이 상당한 위협감(?)을 느끼는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에는 역차별론 이야기도 나온다. 그동안 여성외교관들에게는 결혼생활이나 육아같은 인도적문제를 고려 상대적으로 선진국에 근무케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들을 어떻게 아프리카나 중남미 중동의 오지에 발령낼수있느냐는 분위기가 있었던게 사실이다. 또 부부외교관의 경우 같은 공관에서 근무하도록 배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역차별론을 거론하는 사람들은 외교관이 국제회의참가등 우아한 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등 오지에서 몸으로 때우는 일이 더많음을 지적한다. 여성외교관 숫자가 너무 많아지면 전투력(?)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하여튼 여성 외교관들의 숫자가 워낙 늘어나면서 특별한배려를 계속해 나가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상황이 어떻든간에 앞으로 여성외교관들의 비중과 활약은 더욱 두드러질것으로 보인다. 한국외교의 허리로 성장하고 있는 이들의 활약에 더 큰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