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이대론 절대 안된다!! 여러분 이제 정말 바라봐야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선200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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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나는 학교폭력에 대해 더이상 무시 못하겠다.
이에 강하게 내 의견을 내놓으려고 한다.

요즘 매스컴의 초점은 학교폭력에 집중되어있다.
하지만 정작 그 내용을 보면 피혜사례, 그 후 결과, 안이한 대처방법논의가 끝이다.
내가 직접 tv를 본 봐, 답답해서 이렇게 글을 올리게되었다.
기타 상업적의도와는 아무 상관없이 순수 시청자로서, 또 일반 시민의 자격으로서다.
짧게 쓰려고 노력은 하겠으나, 글에대한 재주도 없고, 기교 또한 없으니,
그것은 읽은이에게 양해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일단 몇 가지 나눠서 글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원인파악 및 진단
둘째로 학교의 유래(?)
셋째로 제 경험담 및 해결방안


먼저 첫째로

 

"지금 학교폭력에 대한 원인파악을 잘 못하고있는 것 같다." 입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랴' 라는 우리나라사람이라면 너무나도 친숙한 속담이 있습니다.
원인없는 결과는 없다는 뜻이지요.
결과를 고치려면 원인을 고쳐야 하는게 순리겠지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학교폭력에 대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답이 나올 수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여러 원인을 생각할 수 있을것입니다.


여기에선 제 개인적인 생각을 토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학교폭력의 원인은 간단히 말해서 '어른들의, 학생의 불인정' 이라고 하겠습니다.
무슨말인 즉,

사람과 동물의 다른점이라 하면 흔히들 '생각하는 동물', '사회적 동물' 이라 말을 하지요.
인간은 생각하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생각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할 수록 깊어지고, 세대가 거듭될 수록 그 및 세대들은 더욱 성숙해지기 마련입니다.
애들(여기선 편하게 어른 외의 학생&아이들을 편하게 애들이라 칭하겠습니다.) 도 진화하고 생각합니다.
어른/애들 구분을 떠나서 생각을 하는 같은 인간이지요.


그렇다면 사회는요?
어른들이 사는 사회만 사회라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여기에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에게 사회가 있듯이 학생들에게도 엄연히 그들만의 사회가 있습니다.'

 

흔히 말해 개,돼지도 사람처럼 자기들만의 사회가 있습니다.
단지 사람들 하에 있는 사회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엄연한 사회입니다.
흔히 서열을 많이 얘기하는데 그게 그들 사회의 주요요인이지요.
그런 가축들도 사회가 있는데, 우리 학생들이라고 사회가 없다고 반론할 수 있습니까?
왜 어른들은 학생들을 어리게만 생각하고,
왜 학생들의 꿈은 '어른이 되는거에요' 라는 말이 나오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는 너무 어른/학생 이라고 너무 구별을 하는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어른들은 어른들의 사회문제에만 신경을 쓰고, 또 그럴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지요.
뭐 어른들도 학생시절을 안겪은것은 아니지만,
커가면서 자연스레 그때의 사회성이 사라지거나 혹은 바뀌는데 눈치를 못 채는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학생들 나름의 사회가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파악을 해야 한다는게
제가 쓰는 이 글의 중요 논점이자 해결책이라 봅니다.
학생들이 해결을 해야하는게 아니라 어른이 해결을 해야하는 것이니까요.
너무 추상적이지 않느냐? 라는 반문을 하실텐데요. 맞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추상적입니다.
하지만 그 추상적인 문장을 구체적으로 저는 쓸 수가 없습니다.


제가 꼭 이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그런 취지가 아니고, 저는 단지 제 생각을 여러분께 좀심스레 보여드림으로써 제 의견에 공감하신다면 같이 거기에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모두가 찾아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그런 취지로 제가 이 글을 쓰는것이구요.

 

다시 넘어가서,
그렇다고 학생들의 사회에(학생들의 사회를 인정한다는 하에) 어른이 개입이 안되있는것도 아닙니다.
바로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선생님은 물론 어른이구요
저는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학교와 선생님, 가정과 부모님에 대한 얘기는 대책으로 넘어가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선생님이 해결책의 'key'라고 봅니다.

 

학교폭력에대한 뉴스에 나올때 빠지지 않는 부분이 바로 선생님과의 인터뷰일텐데요,
선생님들은 다 똑같은 말을 하십니다. 쉽지않다. 체벌도 없어져 지도하기 어렵다. 등등...
물론 공감하는 바이지만, 너무 시선을 한곳만 두고 보시는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조금만 눈을 옆으로 돌려도 다른 길이 보일텐데 하는 생각이..

저때만 해도 선생님은 부모님과같은 존재였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을테고, 그런게 당연하지만 요즘 실상을 보면 다른게 확실합니다,
선생님을 신고한 학생, 선생님을 때린 학생 등등..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든것인지..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밤하늘의 별과같은 그런 존재입니다. 선생님들 또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런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때론 친구가 되어보고, 학생들의 학생이 되어보고..
그렇게 선생님들이 선생님의 사회를 잠시나마 잊고 학생들의 사회에 개입이 수월하게 되야 한다고 봅니다.
그럼으로써 학생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줄 수 있고, 학생/선생이라는 너무 무거운 벽을 허물음으로써 그들과 공감대를 펼 수 있게 되리라 봅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미처 보지 못했던 문제점 혹은 재치, 내가 예전에 미처 생각도 못했던 그런것을 생각한다는데에 놀랄수도 혹은 안심할 수도 있을게 분명합니다.

 

그게 미처 떼기 힘든 첫 걸음이 아닐까요?

 

그것이 애들의 사회를 인정함과 동시에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합니다.

 

 

 

 

둘째

 

"학교는 가정의 연장선, 선생님은 부모님의 연장선이다"


옛날, 흔히 "대가족"이라는 가족구성이 대부분이었을적엔 가정교육이 전부일때가 있었습니다.
또한 대단히 중요했지요.
제 아버지만해도 학교를 다님과 동시에 집안에서는 할아버지에게 형제들과 같이 한문을 배우셨다고 하셨습니다.
학교보다 할아버지 가르침이 더 무서웠고 더 엄하셨다네요.
원래 저희는 부모님에게 모든걸 배워야 합니다.
동물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부모가 새끼를 가르치지요. 사냥하는법, 먹이 먹는법 등등..

사람도 원래는 그렇게 부모에게 다 배워야 하는거라 생각합니다.
부모님에게 뭐든걸 다 배워서, 또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고.
그게 기본 원리이지요.

 


지금은..
지금도 물론 기본 바탕이 되는 예절이라든가, 먹는습관 등등은 부모님들이 가르치지요.
하지만 흔히 말해 교육이라는, 그런것들은 학교라는 곳에서 배웁니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그렇게 12년 이상을 학교라는 곳에서 배웁니다.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하신분이 보신다면 12년이란 세월이 참 아득하게 느껴지실텐데요.

핵가족화되고, 또한 부모님들도 어른들의 사회라는 곳에서 살아남아야 하기에 가정교육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라는곳이 자연스레 생기게 되었고, 우리 애들은 학교라는곳에 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학교는 가정의 연장선이라고 봐야합니다.
그리고 가정의 선생님은 부모님이듯, 학교의 선생님이 부모님 대신이구요.
(그렇다면 같은 학우들은 형제, 자매 라고 봐도 되겠군요.)

 

 

"학교에 왜 가니?"
"학교가 나한테 못오니까"

 

 

옛날 누구한테 들었던 유머글인데요.
이 글을 보고 처음엔 마구 웃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대단한 사고방식이라고 봅니다.
가정에서 배워야 하는 것을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
가정은 내가 태어난 곳이고, 내가 사는 곳이고 또한 제일 편안한 곳이라야 한다.
가정은 학교다
그렇다면 학교도 내가 태어난 곳이고, 내가 사는곳이고 또한 제일 편안한 곳이라야한다.
근데 학교가 내가 사는곳이 아니라서 그곳으로 가야한다.
어거지같지만 제 머리는 이렇게밖에 표현이... 이해해주시기바랍니다.
우리는 가정(학교)에 가야합니다. 그런 가정에서 부모님(선생님)에게 대신 가르침을 받아야하구요.
또 같은 형제(학우) 들과 같이 말이지요.

 

 

동물원에 동물들은 같은 무리類끼리 울타리를 쳐 그 안에 가둬둡니다.
사자, 호랑이, 곰 등등..
그곳에서 자연스레 자기들끼리 서열이 생기게 되구요.
하지만 사람들은
사람들은 학생들을 학교라는 울타리에 보낼때 구분을 어떻게 하나요?
같은 동네에 사니 같은 학교로, 같은 연도에 태어났다는 것으로 학년을 구분하여 모아둡니다(?)
자연스레 그 울타리안에 그들만의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사회집단을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이구요.

그렇다면 방법은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가정에서 자기 자식들을 가르치듯이,
학생들은 선생님을 부모님이라 생각하고 배운다면 더이상 할 말이 없을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 그게 문제지요

 

 

태어날때부터 우리는 사회라는걸 떼 놓을 수 없을정도로 붙어있습다.
사회에서 가장 강조하는건 공동체성이구요. 맞나요?
특히 우리나라는 애국심, 단결심, 공동체라는걸 아주 중요시하게 배우고 또 사실 강하지요.
학교에서는 매 학년마다 협동심을 강조하며 수련회라는곳을 보내고, 단체 운동회도 하고..
사회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게 협동심&공동체라 봅니다.
(어느회사에 취직을 할때 혹은 하고나서도 회사에선 이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게 기반사실이지요)

 

 

네. 맞습니다.
저는 협동심&단결&공동체 이게 바로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전 없앨 수 있다고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가능은 하다고 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혹은 전제하에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그것을 배웠고, 또 배우고 있고, 그게 바탕아니냐?
이러실텐데요.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그 방법이 많이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틀렸다고는 못하겠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은 분들이나, 많은 어른들은 다 그렇게 배워왔고,
그걸 틀렸다고 한다면 그들의 배움을 부정하게 되는것이 될테니 말입니다.

 


지금까지 배우고 듣고 본것은 말로만, 혹은 강요로인한 협동심과 공동체 조성이라는것입니다.
누가 하나 잘못했다고 다같이 벌을 받고 다 같이 반성해라 라고 강요한다면 이게 공동체입니까?
수련회 3박4일가서 다 같이 기합받고 훈련받고 하는게 그게 협동심조성입니까?
지금 어른인분들은 거기에 대해 불만을 토하거나 하기싫은거 억지로 한적이 없으셨습니까?
그러신 분이 있으실수도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안그랬습니다.

 

 

수련회가서 생판 모르는 조교라는 사람한테 강한 언성을 들어가며
줄 똑바로 서라, 뛰어가라, 전부 엎드려라. 이게 제가 어렸을때는 전혀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이해도 안되는데 거기에 억지로 뭘 가르친다고 그게 다 소화가 되겠습니까?
저는 학교폭력의 원인을 여기서도 꼽을 수 있다고 봅니다.
강한 교육의 방침의 부작용이 서서히 나타나다가 지금에 이름으로써 심각하게 표면에 나타났다고 보여집니다.

 

 

그럼 우리때는, 우리 아버지때는 다 잘 지냈는데 왜 지금에 이러냐, 이건 말이 안된다 라고 말씀하실텐데요,
지금은 1년만 지나도 유행이 져버리고, 옛날이라고 칭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아주 급격하게 바뀌고 바뀌는 시대지요.
여기서 옛날을 언급하신다면 벌써 그것부터가 학생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방해가 될 뿐이라고 말씀드리고싶습니다.

 


예를들어
지나가다 학생들의 나쁜 행동을 보며 "우리때는 저러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이들 생각해보셨을텐데요,
그것부터가 그들을 이해 못하고 자기들 사회로서 학생들의 사회를 바라본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 다른 특별한 방도가 있는것이냐?
저도 구체적으론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교사도 아니고, 따로 전문으로 배운사람도 아니기에,
자세하게 말씀은 못드리겠습니다. 허나 처음 말했듯이 제가 생각하는 것을 검토해보시고 타당하다 여겨지시면 그렇게 바꾸자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에 해결방안및 경험에서는 제가 정말 학교폭력이 없었던, 제 실제 중학교3학년때의 얘기를 바탕으로 적을건데요.
전 거기에 모든걸 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말씀드리자면, 억지로 주입하는 공동체&협동심이 아닌,
진정한, 가정에서 가족이 가족을 걱정하고 격려하고 도와주는 마음에서 정말 우러나는 그런 공동체의식을 심어야한다는 겁니다.

 


너무 막연하다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정말 막연하기만 할까요?
생판 모르는 사람을 그렇게 대하기가 쉽지많은 안다구요?
그렇다면 좀 범위를 줄여서,
가까운 이웃집 사람을 자기 가족처럼 대해보세요. 그건 조금만 지나도 쉬워질 것입니다.
(지금 저희 어머니는 옆집사람들을 저희 가족보다도 더 좋아하시고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엄연히 말하자면 그 옆집에 사시는 분들도 남입니다.
하지만 가까운데 산다는것 만으로도 쉽게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과 학생들은요?
선생님과 학생은 일주일에 최소 5일~6일은 마주 봅니다.
선생님만 학생들을 그렇게 대한다면(물론 그렇게 대하시는 선생님이 많으신건 압니다.) 정말 모든게 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그 학생들을 하나하나 개개인으로 보지 말고 반 전체를 하나의 구성으로서 바라봐야 한다고 조심스레 말합니다.

 


마치 잔디 잎 하나하나를 보기보단 푸른 잔디 전체를 잔디밭 하나로 봐야 하듯이요.
그 잔디밭을 지켜보다보면 조금만 지나면 잎이 제각기 자라 잎이 옆으로 삐죽 나오고, 지저분해 보이지요?
그럼 그 부분을 가서 잘라주거나 조금만 고쳐주면 다시 원상태의 푸른 잔디로 변하게됩니다.
하지만 잔디 잎 하나하나만 본다면 그런 전체적인 모양을 보기가 불가능하지요

저는 이것을 지금 학교 학생들에게 대입해보면 제 논리가 쉽게 이해되시리라 봅니다.
학생들 하나하나를 보다보면 선생님이 신이 아닌이상 누구를 더 편애하기도 하고, 누구를 더 이뻐하기도하고, 누구를 싫어하게 되기도 합니다.
(전 군대에있을때 제가 후임때는 선임병들이 제 동기들과 저를 차별할때 나는 절대 안그래야지 했는데, 막상 고참이 되고보니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게 중요한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보면 누구 하나가 탈선을 하거나 삐뚤어지면 제때에 그것을 보고 손을 써야하는데, 미처 알았을때는 때가 늦는다는 것이지요.

 

 

말은 쉽지만 그게 실제로 가능하겠냐?
하는데, 저는 그렇게 배웠고 체험했습니다. 가능합니다. 절대로.

 

 

 

 

셋째 방안 및 해결책


tv에서
학교에서 그것도 못고치고 방치해놓냐
교육부는 그렇게밖에 못하냐
교사는 뭐하는사람이냐

 

 

저도 참 보면서 많이 욕했습니다. 누구를?
우리나라 고위간부들을 욕했고, 교육부를 욕했고, 학교를 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죄송할따름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그들도 학생이었다. 하지만 힘든 어른들의 사회생활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다보니 옛날 나 학생때의 생각을 못했다. 경험은 했지만, 단지 그 생각을 다시 떠올릴 수 없을뿐이다.
그들도 마음 속 깊은곳에서 알고는 있지만 그 잠자고 있는 것을 끄집어 내지 못한다고 생각해본다면, 알면서 모르는체 하는건 나쁜거라 할 수 있지만,
모르는 상태에서 모르는체 하는건 고쳐주기만 하면 되니다.

이제부터 고쳐보았으면합니다.

 

 

저는 여기서 어떻게 하라,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안하겠습니다.
제가 무슨 전문 지식인도 아니고, 교사도 아닐뿐더러, 언론인 그런것도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 하찮은 제 자신이 누구에게 이런방법이 있는데 이렇것도 못하냐, 이렇게 운운한다는것은 정말 말도 안될뿐더러 저만 웃긴 제 자신이 되는것이니까요.
저는 단지 제가 보낸 너무나도 저에겐 행복했고, 달콤했고, 그립고 감사했던 학창시절 얘기를 적어보겠습니다.

 

 

저때도 물론 학교폭력 그리고 왕따는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슈화가 되지 않았고, tv에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일본의 이지매는 언뜻 본거 같긴 한데, 뚜렷히 기억날만큼 큰 화제는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저만 그런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너무 외소하고 남자치고는 키도 작고 그래서 많이 걱정도 했지요.
특히 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될때는 그 두려움이 너무도 컸습니다.
소위 왕따는 아니었지만, 반에서 놀림을 받거나 싸움좀 한다는 그런 애들을 보면 겁이 나고 그런 다른 평범한 학생이었지요.
중학교 1,2학년때는 싸움좀 한다는 친구한테 맞아보기도 하고, 그래서 이빨도 깨지고 했습니다
(어머니한테는 넘어져서 그랬다고 둘러데고 그랬지요 대부분)

 


중학교 3학년이 올라갈때,
저는 여느 학년 올라갈때와 마찬가지로 너무 두려웠습니다
'제발 누구랑은 같은반 안되기를, 또 어떤 새로운 애들이 같은반이 될까..'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초조하게 새학기를 시작했습니다.
첫 반 배정을 받고 교실 책상에 앉으니, 아무래도 3학년이라 그런지 1,2학년때 많이 봐왔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딱히 나쁘다고 생각은 안했었습니다.
개중에 싸움좀 한다는 친구도 있었고, 외소한 애들도, 여자(남녀공학)애들중 말이 너무 없고 내성적인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1,2학년때랑 똑같겠구나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다르셨습니다.
다른선생님들과는 너무 다르셨습니다.
선생님은 저희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자기 자식들을 바라보는 그런 눈빛으로 저희를 첫 대면하셨고,
저희는 거기서 포근함과 편암함, 앞에서 말했던 가정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나이가 그리 많지 않으셨는데,  고모뻘정도 되었던거 같습니다.
그로인해 저는 좀 전 느꼈던 두려움이 사라지고 설레임이 절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너무나 따뜻한 분이셨고, 또한 저희 친구였습니다.
물상 선생님이셨나..(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하여튼 저희반 애들은 선생님의 수업이 제일 좋았고 제일 기다려졌습니다.
뭐 다른게 있는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저희 반 아이들 45명을 단 하나의 자식으로 보셨고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공평했고,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셨습니다.
누가 하나 잘못하면 그걸 질책하거나 꾸중을 하되 마지막엔
"거봐 니가 그렇게하니깐 옆에 누가 비웃잖아" 이런식으로 반에 아이들 이름을 꼬집으며 웃음을 유발도하시고,
때론 고민거리를 털어놓으시며
저희에게 의견을 물으시기도 하고, 다른반에서는 없는 야외수업이나 담합같은것을 꾀하며
저희들 45명의 각자의 시간이 아닌 전체의 시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실 담합도 저와 몇몇은 정말 하기 싫었는데, 과반수로 하게되었었는데 정말 재미있었고, 마지막엔 모두 다음에 또 하자는 말이 나오게 만드셨던 분이십니다.)
누가 잘못하면 전부 눈을 감고 몇시간이고 반성하라고 하는 다른 반과 달리
저희반에서 누가 잘못을 한다치면 저희들끼리 모여 선생님에게 피해나 가지 않으실까, 걱정이나 끼치지 않을까 하는 어린 마음들이 마치 부모님이 힘들어하실까봐 말도 잘 못하는 그런 상황도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말을 조리있게 못하고, 또 자세한 방법은 못적었는데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저렇게 지내고나니 나도 모르게 우리반의 모든이들이 협동심과 공동체의식이 저절로 생겨나게 됐다는 것입니다.
절대 저희반은 싸움이 있었던 적이 없었으며, 작은 충돌은 잠시의 시간과 함께 묻혀졌고,
누가 싸움을 잘하건 못하건간에 전부 친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정말 장담합니다. 같은 학년 다른 반에서 일어나는 작고 큰 싸움은 태반이었지만, 저희반은 달랐습니다.

이런식으로 중학교3학년을 보냈는데, 저의 인생의 가장 큰 가정과 가족과 부모님을 만난 1년이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보다 유독 저는 그 담임 선생님을 평생 잊지 못할것입니다.

선생님의 교육방식을 제가 감히 평가한다는건 절대 아니고 말도안됩니다.

제자된 도리로서 저는 선생님의 뜻깊은 교육방식이 유달리 특별하다는것을 너무 늦게 알았고 그 방법을 다른 분들께서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랍입니다.

 

 

이것으로 제 얘기는 끝입니다.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는데요. 다 읽어주신 분들에게 부끄럽고 좀 그렇네요.
한 번도 이런 글을 써 본적이 없었던지라, 말에 앞뒤가 안맞고 순서가 뒤죽박죽이고, 억지도 좀 껴있는거같네요.
약 3시간에 걸쳐서 쓰고 또 고치고 그랬는데요.

하지만 이거 하나는 정말 자신할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에 의한 피해학생이든 가해학생이든 그 둘은 하나의 학생이고, 그 학생은 어른들의 사회라는 틀에 묶여있는 또 하나의 사회의 부작용이다.
우리 어른들은 그점을 인식하고 그 부작용을 최소화 시키는데 온 힘을 다 쏟아야한다.

고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말주변 없는 제 글을 다 읽어주셔서요.

 

 

모두 저같은 진심어린 학생들을 위하는 방법을 다 생각하고 계실것입니다.


학생들이 밝아야 어른들이 밝아진다는 말이 있듯이, 저희가 다 노력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2007년 3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