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과 소방서에 대한 변증론적 고찰

서동현2007.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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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던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보충수업 때 그렇게 깐깐하다던 영어 선생님을 조르고 졸라 아이스크림을 쏘게 만들었는데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친구들이 맛있는 것은 다 골라가고 쿠앤크만 간신히 남아서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그 목마른 느낌처럼 뻑뻑했던 내 26개월 군생활 중에 가장 웃음이 많았던 요즘, 모든것의 원인이 되었던 공주대 응급구조학과 언니들과의 짧았던 3주의 만남을 아쉬워 그리워해 새벽 네시까지 잔을 기울였던 이틀을 정리하며 양치질을 하다 맑은 거울위에 비친 제주도 감귤 껍질마냥 모공이 활짝 열린 내 쌩얼을 보다 문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찜질방과 소방서는 닮은 꼴이야

 

#1. 쉬는 날 우린 술을 마시다 날이 밝으면 남들이 출근하는 방향을 거슬러 찜질방에 들어간다.

소방서도 그러하다.

당번&비번제로 돌아가는 이곳 외곽 파출소에서도 비번날 질펀하게 술을 마시던 그네들은 해가 뜨는 모습을 뒤로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출근명부에 싸인을 한다. 그리고 기나긴 낮잠을 청한다.

 

#2. 간혹 순수한 찜질의 의도로 가벼운 저녁식사를 하고 찜질방에 들어간 이들은 미역국과 비빔국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수천칼로리의 야식을 먹는다.

소방서도 그러하다.

11시30분 점심식사 5시30분 저녁식사라는 다소 이른감이 없지 않아 있는 식사 패턴에 길들여진 그네들은 해가 지는 모습을 뒤로하며 오늘 야식은 무엇으로 할 지 열띤 토론을 펼친다. 배드민턴과 탁구를 치며 누가 쏠 것인지를 내기 한다.

 

#3. 중형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동네 찜질방조차도 PC Room을 마련하고 드래프트를 즐기기 위해 안구의 흰자가 붉게 물든 홍성 초등학교 6학년 5반 학생들을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소방서도 그러하다.

초고속 ADSL이 깔려 있는 우리 사무실의 8대의 최신식 컴퓨터는 루찌를 모으고 좀 더 나은 차로의 업그레이드를 갈구하는 그네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훈련장이다. 행정망과 초고속 ADSL망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짬짬이 드래프트와 맞고를 즐기는 그네들의 모습은 더이상 내게 낯설지 않다.

 

#4. 최근까지도 P2P방식의 각종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상종가를 치던 야동들의 공통된 타이틀은 찜질방 몰카와 도촬 등이었다. 커다란 로고가 새겨진 유니섹슈얼의 프리사이즈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다 맘만 내키면 어느곳에서든 내집 안방처럼 잠을 청할 수 있는 찜질방에서 세계 휴대폰 시장의 최첨단을 달리는 우리 나라의 카메라 기술은 제 몫을 발휘한다. 아무데서나 大자로 누우셔서 잠을 청하는 어떤 아저씨, 은근슬쩍 다가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어떤 젊은이, 어수룩한 태도로 이리저리 눈요기만 찾아 헤매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년.. 이 모든 것은 저기 문밖의 사회보다 더 마초적이다.

소방서도 그러하다.

노가다와 비슷한 수준의 잡일 능력을 요구하는 이 곳의 구조적 특징상 여성 직원의 비율은 한자리수 이상이 되질 못한다. 女男평등의 맞은편에 가장 후진적인 시츄에이션이 만연한 소방서에서 빡센 군대의 내무반과 같은 모습을 찾는 것은 청양군에서 65세 이상의 노인을 찾는 일보다도 쉽다. 각종 업무를 비롯한 모든 사무는 "짬"이라는 단어와 "나이"라는 서열에 의해 짐지워진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무한경쟁의 학습지 시장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재능교육의 합리적인 이성을 그네들에게서 찾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인가.

 

아직도 입안에선 '맑은 린'의 냄새가 난다.

문득 필흥이 솟아 자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그 20분의 투자가 헛되진 않은 듯 싶다.

시간에 쫓겨 마무리가 깔끔치 못하지만 누군가 이 긴 글을 읽으신 모든 1촌님들께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순결하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