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ce & Gabbana

정민정2007.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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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만을 위한 패션은 이미 죽은 패션이다”

 


돌체 앤 가바나 스타일은
믹스 앤 매치를 통해 수십, 수백 가지로 변한다

 

 

Dolce & Gabbana

 

 

이들은 지나친 아방가르드와 모던 스타일을 배제하고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여성에게 도발적인 매력을 선사한다. 돌체 앤 가바나의

구조적인 테일러링과 섹시한 셔츠, 독특한 액세서리 등은 그것을 선택하는 고객에 따라 수많은 이미지로 얼굴을 바꾼다. 환상적인 믹스 앤 매치를

통해 수십 가지, 수백 가지, 아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변신을 거듭하는

돌체 앤 가바나의 패션. 다른 이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젊은

듀오 디자이너에게 믹스 앤 매치 스타일은 디자인의 기본적인 영감이 된다.

 

 

 

1985년 데뷔 후 올해로 12년째 활동하고 있는 돌체 앤 가바나는

이제 밀라노에서 가장 촉망받는 디자이너 중 하나로 성장했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세계 정상 디자이너와 어깨를 나란히 한

돌체 앤 가바나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지중해 여성의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에 돌체 앤 가바나의 시선을 담아 섹시하고 도발적인 디자인

세계를 펼친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패션과 어울리는

다양한 액세서리 라인도 이들의 비즈니스 성공 전략에 포함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트렌드와 패션 디자인이 변하듯
디자이너의 구성원도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부부 디자이너

와이 앤 케이와 클레멘츠 리베이로를 비롯, 애즈 포, 브랙, 보우디카,

하우스 오브 재즈, 디스콰어드 등 둘 혹은 둘 이상의 디자이너들이 홀로서기를 벗어나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는 것이다. 런던, 뉴욕, 밀라노 컬렉션 명단을 채우고 있는 이 듀오 디자이너들은 독자적인 디자인 세계에서 벗어나

공동의 이름 혹은 브랜드 이름 뒤에서 서로의 장점을 강조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넣어 시너지 효과를 살리고 있다.

 

 

꼼꼼한 성격의 완벽주의자 도미니코 돌체(Dominico Dolce)와

뛰어난 연출력을 가진 스테파노 가바나(Stefano Gabbana)의

만남도 이러한 맥락으로 시작됐다.

도미니코 돌체는 1958년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에서 태어났고,

스테파노 가바나는 1962년 이탈리아 북부 베니스에서 태어났다.

돌체는 키가 작고 과묵한 성격이고,

가바나는 키가 크고 직선적인 성격이다.

외모와 성격이 정 반대인 이들은 밀라노의 디자이너 스튜디오에서 같이

일하면서 만났다. 당시 가바나는 집세를 줄이기 위해

돌체의 아파트로 이사왔고, 이들은 1981년에 뜻을 모아 동업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재단사였던 돌체는 어린 시절을 의상실에서 보냈기 때문에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고, 대학에서 그래픽을 전공한 후 광고회사를

다녔던 가바나는 일러스트에 강해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며 성장했다.

 

돌체와 가바나는 1985년 공동의 자금으로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브랜드를 설립해

첫 컬렉션을 열었는데, 이날 선보인 오리지널 드레스 시리즈는

패션 관계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느슨한 아르마니 스타일이 주도하던

밀라노 패션계에 여성의 바디라인을 강조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진정한 돌체 앤 가바나의 스타일을 찾은 것은

1987년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나서다. 검은 머리에 벌거벗은 여인이

검정 숄만 걸친 채 테라스에 서 있는 포스터를 보고 이들은 디자인 영감을

얻었다. 1940∼1950년대 네오리얼리즘 기수였던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그 영화에 등장했던

안나 마 냐니, 소피아 로렌 역시 이들의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시칠리아에서 태어난 돌체는 하이힐을 신고 속옷 같은 옷을 입은

라틴계 여성이나 핀 스트라이프 수트에 중절모를 쓴 갱스터의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경험이 훗날 지중해 풍의 의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된 것이다.


1987년 이탈리아 증시 붕괴에 따른 불경기에도 돌체 앤 가바나의 매출은 변동이 없었다. 이들은 1989년 언더웨어, 넥타이, 스카프, 수영복 라인을 전개하며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1990년에는 남성복을,

1992년과 1994년에는 여성과 남성 향수를 판매했고, 1994년에는

두 번째 브랜드인 D&G 컬렉션을 출시해 데님 소재를 이용한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토털 룩으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이들은 컬렉션 무대도 젊은이들의 공간인 카페나 클럽 등으로 정하고 개성과 카리스마를 살린 파격적인 패션을 선보였다. 돌체와 가바나가 선보이는

풍자적이며 예상하기 어려운 독창적 이미지는 국경을 초월해 전세계

젊은이들에게 D&G 선풍을 일으켰다.

 

마침내 1995년에는 매출 1억 8천만 달러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거대한 패션 기업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돌체와 가바나는 패션 디자인과 비즈니스의 분주한 스케줄 이외에도 마돈나, 이사벨라 로셀리니,

지나 데이비스, 나스타샤 킨스키, 위노나 라이더 등 많은 스타들과

사교적인 교류와 행사를 가졌고 이들을 통해 더욱 이름을 날렸다.

 

돌체 앤 가바나가 시즌별로 제안한 컬렉션을 살펴보면 먼저

1996 가을·겨울 시즌 지브라와 레오파드 등 여러 가지 애니멀 프린트와

플로럴 패턴이 화려한 이미지로 등장했고, 코르셋으로 여성의 바디라인을

드러낸 아이템이 도발적 매력을 이끌었다. 1997년 가을·겨울

컬렉션에는 뾰족한 모자와 넥타이, 비즈 디테일과 블랙·레드 컬러의

진한 메이크업 등 매스큘린 이미지와 페미닌한 이미지가 함께 등장해

자유로운 디자인 세계가 엿보였으며, 손안에 쏙 들어가는 작고 화려한

백과 자수로 장식된 부츠 등이 실크·시폰 등으로 제작된 의상과 만나

완벽한 토털 룩을 제안했다.

 

 

 

1988년 돌체 앤 가바나의 새 스튜디오에서 펼쳐진 컬렉션에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프린트해 고귀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제안했고,

긴 장갑과 광택 소재 원피스로 전위적인 관능미를 연출하기도 했다.

2001 봄·여름 시즌에는 레이스를 사용한 란제리 룩으로 섹시미를

표현했으며, '03년 S/S 시즌에는 D&G 쇼에 가방, 슈즈, 선글라스, 귀걸이, 목걸이 등 금속을 활용한 다양한 액세서리 라인을 전개했다.

 

 

지난 2005 봄·여름 시즌 돌체 앤 가바나는 인물과 패션 사진작가로

유명한 리차드 아베돈과 어빙 펜의 1970년대 글래머러스한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아프리칸 스타일과 스네이크 스킨 퍼레이드로 엑조틱한

컬렉션을 펼쳤다. 스네이크 스킨은 사파리 재킷, 트렌치 코트,

이브닝 가운 등은 물론이고 지브라 스킨과 레오파드 프린트와 더불어 모자·백·부츠·뱅글 등 액세러리 라인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제안되었고,

코코 샤넬을 연상시키는 트위드 재킷과 시폰 블라우스, 코튼 셔츠 등에도 부분적으로 접목해 소프트한 소재와 와일드한 소재간의 이색 충돌을 제안했다. 애니멀 스킨 외에도 라피아(raffia) 소재에 심취해 깃털이 흩날리는 블루종과 초커, 프린지가 달린 스커트 등으로 에스닉한 멋을 자아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