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의 저서출판, 나에게 감동을준 두권의 책

신봉길200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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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관이 책을 쓴다는것이 하나의 터부일때가 있었다. 자기가 경험한것이나 지식을 경솔히(?) 발표하고 자신을 내세우는것이 공직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닌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을때였다. 원로외교관이 은퇴후 남긴 회고록 정도가 전부였었다. 90년대 들어 이러한 관행이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근무했던 지역이나 관심사항에 대해 글로남기는 작업이 시작된것이다. 91년말인가 필자가 미얀마( 구 버마)에서의 근무경험을  `시간이 멈춘땅 미얀마` 라는 졸저( 한나래출판사)로 출간한이래  외교관들의 잠재해있던 욕구가 분출되면서 이런저런 분야의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다.

 

 외교관들의 저서출판이나 또 출판된 책들의 질(quality) 에 대해서는 보는사람에 따라서 다른 평가가 있을수있지만 나름으로 의미있는 작업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중 나에게 가장 감동을 준 책, 가장 가슴에 와 다았던책-물론 매우 주관적이긴하지만-두권을 소개하려한다. 

 

 하나는 2006년초 예순을 갖넘긴 나이에 작고한 채수동 전수단대사가 남긴 `한 외교관의 러시아추억`(2001년 동서문화사 출판)이라는 책이다.본인이 근무했던 러시아 수단 루마니아등의 이야기를 수필형식으로 쓴것인데 자칫 진부할수도있는 소재와 수필형식을 가지고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수도 있구나하는것을  느끼게한 작품이었다. 이책이 출간된것은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근무할 당시였는데 10여권을 주문해서 평소 인간적으로 가깝게 여기던 분들에게 보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탁월한 필력과 유려한 문장도 그렇지만 무었보다도 한인간의 절실한 휴머니즘에 가슴이 막힐것 같은 감동을 느꼈었다. 특히 서문형식으로 쓴 `아내를 그리며`라는 부제가 붙은 글은 변변치못한 외교관의 아내로  평생 마음고생하다  먼저간 아내를 한겨울 남한강변 어딘가에 묻으면서 쓴 글인데 나는 한번도 뵌적이 없는 채대사님의 사모님이 안스러워 가슴속으로 눈물을 흘려야했다.   

 

 채수동대사는 외대러시아어과 재학시절 이미 다수의 러시아문학( 특히 토스토예프스키작품)을 번역 소개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조숙한 문학도였다고 한다.그분이 `채대치`라는 이름으로 번역 소개한 작품들은 지금도 최고의 번역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제는 이분이 고시출신도 아닌 행정직으로 외교부에 들어와 이후 30여년을 소위 크게 출세도 못하고 돈도 없는 외교관으로 일생을 보낸데 있었다.

 

 나는 외교부 초년병으로 80년대초 구주국에 근무할 당시 동구과에 근무하던 채수동선배( 나의 고등학교선배여서 나는 늘 채선배님이라고 불렀다)를 알게된후 계속 인연을 유지하며 지냈다. 평소 가깝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책이 출판된뒤에야 서평을 써준 한국의 저명한 문인 평론가등을 통해서 이분의 젊은날의 모습이라던가 그의 문학적 재능등 감춰져있던 모습 전부를 알수있었다.

 

 이분이 주수단대사를 끝으로 은퇴한후 위암으로 병석에 누웠을때 나는 외교부내의 소식란(`나눔터`)에 `채수동대사를 아시는분들께`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그분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정을 표시한적이 있었다. 투병생활끝에 지난해초 별세하였는데 본인이 그토록 그리던 남한강변 아내의 곁에 묻혔다. 진작에 문학의 길로 나갔으면 아마도 외교관으로서와는 비교할수없을 정도로 이름을 떨쳤을것이다. 그 알량한 외교관을 한답시고 한 뛰어난 재능이 맥없이 사라진것이 아쉽고 또 아쉽다. 

 

 또하나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다.  `드골의 리더쉽과 지도자론`이라는 책이다.이주흠 현외교안보연구원장이 1999년말 출판한 책인데

2차대전후 프랑스를 이끌었던 전대통령 드골의 인간됨과 리더쉽등에 관해 쓴글이다.

 

 1부의 `지도자 드골`은 `이단의 전사`, `나신의 저항자`, `몽유의 지도자`, `거부의 인간`등의 소제목으로 나누어져 있고  2부의 `지도자의 조건`은 `주동성`, `위신`, `소신`, `비전`, `전략적사고`, `선인안`등으로 나뉘어져있다. 제목만 봐도 이책의 전반적 내용과 분위기를 짐작할수있으리라 생각된다.

 

 2000년초 오오사카총영사관에 근무하던 저자가  보내준 책을 받았는데 한국에서 상업성이 없다고 아무도 출판하려하지않아 자비로 오오사카의 인쇄소에서 제본한 것이었다. 드골이라는 한 거인의 고독한 내면세계, 범상함을 거부했던 한인간의 위대성을 간결하고 정제된 언어로 힘있게 그려낸 역작이었다. 저자가 얼마나 한인간에 몰입해서 열정적으로 글을 써나갔는가하는것이 느껴졌다. 더군다나  나날이 왜소해가는 스스로에 대해 쓸쓸함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이책은 더할수없는 감동으로 다가왔었다.

 

 나는 이주흠선배( 나보다 고시가 한해 아래였지만 나이는 나보다 훨씬 위였다) 였기에 이런 글을 쓸수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주흠선배는 고시 동기들중에서 제일 연장자이기도 했지만 남이 쉽게 접근할수없는 어떤 강력한 에고를 느끼게 하는분이었다. 아무하고나 쉽게 어울리는 타입도 못되었다. 고독한 아웃사이더같은 사람이었다.

외교부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잘 맞지않는 분이라고 할수있다. 그의 이러한 케릭터가 드골이라는 거인속에 자신의 영웅을 발견하게 했다고 할수있을것 같다.     

 

 이책이 뜻하지않게 화제가 되었던것은 노무현대통령이 국회의 탄핵결의로 한동안 직무가 정지되어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이책을 읽고 극찬하면서였다. 노대통령은 아마도 이책이 서술한 고독한 아웃사이더 드골에게서 본인의 모습을 보고 위로와 함께 새로운 출발의 자신감을 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이주흠씨는 대통령의 `리더쉽 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 후에 주미얀마대사를 거쳐 차관급인 외교안보연구원장으로  승진하였다.외교부 관료들의 서열로만 따진다면  파격적인 발탁이라고 할수있는데 이경우는 서열로만 따질수없는 특수한 케이스였다고 하는게 옳을것이다. 남다른 비범함이 그에게 있었다.

 

 두책의 저자인 채수동씨나 이주흠씨 모두  `고독한 아웃사이더`형의 사람들이었다. 내가 특히 이들이 쓴책에 매력을 느끼는것은 나에게도 아마 아웃사이더적인 기질에 대한 끌림이 있어서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