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인. 여. 25. TA. 교통환자 17번. 난생처음 입원이란 것을 한 내게 공포로 다가온 것은, 겁없이 돌진했던 차량에 대한 기억도, 쓰러진 내게 삿대질을 하던 음주운전자의 환영도 아닌, "정체성 상실"의 위협이었다. 핑크색 스키니진과 금색 하이힐을 벗고, 새하얀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그 순간, 나는 더이상 - 코리아헤럴드의 신혜인도, 신 모모씨와 함 모모씨의 귀한 외딸 신혜인도, 고흐와 보통을 좋아하는 신혜인도, 이번 주말 페인티드베일을 보러가야하는 신혜인도, 닭똥집과 청하를 좋아하는 신혜인도 아닌, "교통환자 17번 신혜인"이 되었다. 머리를 질끈 묶고 환자복을 입은 나는, 모두와 똑같은, 환자가 되어있었다. 교통사고. 그 하나의 공통점으로, 우리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은 화장실을 쓰며, 같은 표정을 지었다. 교통환자 17번의 명찰을 달고 침대에 누운지 닷새째 되던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운오리새끼"라는 동화는 조만간 개작을 거쳐야 할지 모른다. 어느날 유난히 몸집이 크고, 튀는 빛깔의 털을 가진 오리가 태어났다. 오리마을 사람들은, 그 특이한 오리가 훗날 마을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 예언했고, 어린 오리왕은 갈수록 거만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백조마을에서 잃어버린 아기백조를 찾으러 왔다. 그 특별한 오리는, 그저 평범한 백조에 불과했던 것이다. 백조마을로 복귀한 어린 오리왕은, 상심에 빠졌다. 우리는, 평범한 백조보다는, 특별한 오리가 더 인정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남들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 번호로 인지되는 평범한 존재가 된다는 것. 두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치떨리는 공포였다.
오리왕이 될래요
신혜인. 여. 25.
TA. 교통환자 17번.
난생처음 입원이란 것을 한 내게 공포로 다가온 것은,
겁없이 돌진했던 차량에 대한 기억도,
쓰러진 내게 삿대질을 하던 음주운전자의 환영도 아닌,
"정체성 상실"의 위협이었다.
핑크색 스키니진과 금색 하이힐을 벗고,
새하얀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그 순간,
나는 더이상 -
코리아헤럴드의 신혜인도,
신 모모씨와 함 모모씨의 귀한 외딸 신혜인도,
고흐와 보통을 좋아하는 신혜인도,
이번 주말 페인티드베일을 보러가야하는 신혜인도,
닭똥집과 청하를 좋아하는 신혜인도 아닌,
"교통환자 17번 신혜인"이 되었다.
머리를 질끈 묶고 환자복을 입은 나는,
모두와 똑같은,
환자가 되어있었다.
교통사고.
그 하나의 공통점으로,
우리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은 화장실을 쓰며,
같은 표정을 지었다.
교통환자 17번의 명찰을 달고 침대에 누운지 닷새째 되던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운오리새끼"라는 동화는
조만간 개작을 거쳐야 할지 모른다.
어느날 유난히 몸집이 크고,
튀는 빛깔의 털을 가진 오리가 태어났다.
오리마을 사람들은,
그 특이한 오리가 훗날 마을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 예언했고,
어린 오리왕은 갈수록 거만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백조마을에서 잃어버린 아기백조를 찾으러 왔다.
그 특별한 오리는,
그저 평범한 백조에 불과했던 것이다.
백조마을로 복귀한 어린 오리왕은,
상심에 빠졌다.
우리는,
평범한 백조보다는,
특별한 오리가 더 인정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남들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
번호로 인지되는 평범한 존재가 된다는 것.
두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치떨리는 공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