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온천천 이야기

부산광역시동래교육청2007.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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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내 방에서 바라다 보이는 온천천에서 시작해봅시다.

  인류의 역사는 물가에서 시작한다 했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온천천에서도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답니다. 동래패총이라고 들어 본 적 있을 거예요. 그런데 위치가 어딘지 몰라서 가보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낙민초등학교에서 동해남부선 철길 쪽으로 가다보면 주택지 안에 있어 찾기가 좀 어려웠을 겁니다.

  여기는 삼한시대에 동래 지방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흔적을 나타내는 중요한 사적지랍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터전을 잡고 살았던 곳이 바로 온천천이지요. 이 고대인들은 온천천으로부터 풍부한 해산물을 이용하여 삶을 꾸려나갔던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고 있는 동래는 온천천이라는 물이 있기에 존재했던 역사깊은 고을이랍니다.

   지금은 낙민동의 동래 패총 자리가 주택이 들어서서 여기까지 물길이 들어왔을까 의심스럽겠지만 예전엔 이 일대가 모두 온천천의 범위에 속하던 곳이었답니다.

  패총이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조개를 먹고 버린 조가비와 생활 쓰레기들이 쌓여 이루어진 것으로 조개더미 유적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랍니다. 오늘날 우리가 만들었던 쓰레기들도 세월이 지나면 유적지가 될 수 있겠지요. 그 쓰레기들만 보고서도 후세사람들은 우리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여기 패총에선 위로부터 겉흙층, 조가비섞임층, 회색찰흙층으로 되어있는데 회색찰흙층에서는 쇠를 녹여내던 쇠부리터가 나왔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견된 고대 제철 관계유적으로 이 시기의 사람들이 얼마나 강력한 집단을 이루고 살았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 되지요. 고대엔 철이 국가 형성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되었거든요.

  출토된 유물은 토기, 뼈와 뿔로 만든 도구, 철기, 바늘, 가락바퀴, 독무덤(옹관묘) 등이 있는데 이런 유물 등의 특징으로 볼 때는 1세기에서 3세경 사이에 강력한 집단이 우리 동래 지방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유적이랍니다. 
   이 집단들의 수장들 무덤이 복천동 고분군이겠지요. 여기서도 여러 유물이 나왔으니 그 유물들로 복천박물관을 만들었답니다. 복천동 고분군에서의 유물 때문에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슬그머니 접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니 동래 지방은 우리의 정체성을 밝혀준 고장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온천천은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 고당봉과 계명봉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범어사, 청룡동 상마전 마을에 모여 수원지를 이루고 금정구와 동래구, 연제구, 부산진구를 관류하여 수영강과 합류, 바다로 흘러 수천년 동안 해운대 백사장의 모래를 생성하는 주요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금정산의 범어사에서 발원한다고 하여 범어천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였고, 또는 동래 고을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서천, 동래를 관통한다고 해서 동래천이라고도 하였지요. 온천천이란 말은 동래 온천에서 나온 말이랍니다. 동래 온천은 신라시대 이래로 유명한 온천으로 전국에서도 이름이 난 온천이었답니다. 특히 조선시대로 오면서 동래 온천은 휴양지로서 이름을 날렸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하여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국제적인 명승을 얻게 되었지요.

  지금도 온천장에 간다고 하면 목욕하러 가는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그 물은 전국적으로도 알려진 온천이지요.

  어릴 때 부모님 손잡고 온천 목욕을 갈 양이면 얼마나 그 물이 뜨거웠든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목욕 마치고 음료수 한 잔과 곁들인 간식거리에 꼬여 싫으면서도 따라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이 온천과 관련한 이야기로는 한 마리의 학이 아픈 다리를 온천물에 담근 후 씻은 듯이 나아 날아가는 것을 본 노파가 자신의 아픈 다리도 온천물로 치료했다는 백학(白鶴)전설이 전해지고 있답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 있어 온천물은 아픈 몸을 낫게 해주는 신비한 매력이 있다고 본 것이겠지요. 실제로 조선시대 선비들은 휴양차 동래온천을 찾았다는 기록이 많이 나온답니다.

 

  온천천은 수영강의 제1지류로서 수영강 하구로부터 약 3.1km 상류지점에서부터 금정산까지 전체 길이가 약 14.1Km가 되는 하천입니다. 걸어서도 제법 먼 거리인 이곳에는 마라톤 클럽들이 생겨 전체 거리를 1시간 전후로 달리고 있다나요.

 온천천과 연결된 작은 하천은 14개로, 상류로부터 장전천, 건너천, 명륜천, 미남천, 사직천, 거제천, 안락천 등이 있답니다. 그러니 이 강은 부산의 중심지인 금정구, 동래구, 연제구, 부산진구를 관통하는 도심 하천으로 서울의 청계천과 같은 구실을 하는 하천이랍니다.

  이 강을 건너려면 다리가 있어야겠지요. 지금은 안락교, 충렬고, 동래교, 세병교 등 크고 튼튼한 다리들이 놓여 있어 동래 사람들과 연산동, 수영, 거제동이나 시내로 나가는 사람들이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지만 예전엔 나무로 만든 다리가 놓여 있어 물난리에 견디기가 어려웠지요. 그래서 돌로 만든 튼튼한 다리를 놓았는데 그 다리가 바로 利涉橋(이섭교)랍니다. 이섭이란 ‘사람들이 다니기에 편리한’ 이란 뜻이지요.

  이 다리는 ‘안경다리’라고 불렸는데 다리를 바치는 교각이 안경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지금 천변의 안민초등학교에서 동래 쪽으로 걸어오다 보면 낙민파출소 근처에 있답니다. 물론 지금은 예전의 안경다리는 없어지고 튼튼한 다리가 놓여 있어 이섭교 다리가 있던 곳이란 표지석만 세워져 있답니다. 다리를 세우고 나서 자축하면서 세웠던 비석은 금강공원 안에 있고요. 1635년에 세운 利涉橋碑(이섭교비)랍니다. 금강공원에 가시거든 케이블카 타는 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답니다.

 

  또 다리 하나 더 공부해볼까요.

  洗兵橋(세병교)라고 들어봤을 겁니다. 교대 쪽에서 동래로 넘어오는 다리지요. 洗兵(세병)이란 말 그대로 병기를 물에 씻었다는 뜻이랍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요?

  이는 동래읍성 남문 앞 온천천에서 임진왜란 등 큰 전쟁을 치른 후 피묻은 병기를 물에 깨끗이 씻은 곳이었기에 이곳에 석교를 세우고 세병교라 명명했던 것이라는 주장과, 향토사학자 최해군 선생님의 주장은 동래 남문의 앞쪽 문 이름이 洗兵門이었는데 거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부산은 임진왜란의 첫 격전지로서 고통을 당했던 고장이었지요. 송상현 부사가 적장의 戰則戰矣 不戰則假道(전즉전의 부전즉가도 -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거든 길을 비켜 달라.)라는 요구에 戰死易 假道難(전사이 가도난 -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내주기는 어렵다.)이란 팻말을 걸어 절대로 우리의 땅에 일본의 더러운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는 결의를 다진 자리도 세병교 근처랍니다.

  이 온천천에 서면 그날 동래 읍민들이 일본에 맞서 싸우던 그 장엄한 모습이 떠오르진 않는가요? 여기 동래읍성의 남문 터에서는 우리의 무고한 백성들이 적의 칼날에 쓰러져 해골로 발견되었는데 그 분들을 모신 무덤이 바로 금강공원 안의 임진동래의총이랍니다.

  여기서 발견된 해골들에서는 화살과 칼에 맞아 쓰러진 모습이 선명했었거든요. 그러니 그 원한을 풀어드리는 것은 우리 후손들이 할 일이었겠지요. 그리고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세운 다리가 세병교랍니다.

  이렇게 나라를 위하여 돌아가신 분들의 자손들이 일제강점기에는 동래시장의 3.1만세운동을 주도했겠지요. 그러니 이 고장 동래는 ‘충절의 고장’이란 이름을 달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없고서야 어디 우리가 하루라도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으며 공부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동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답니다.

  온천천 세병교 구간은 예전에는 온통 모래사장이었으며 ‘황새벌’이라 불릴 만큼 황새가 천지였다. 가까이 있는 부산교육대학교 상징이 황새라네요. 그 축제가 한새벌축제고요. 학교가 있던 곳은 예전에는 뻘밭(개펄)이라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없인 살 수가 없다.’는 우스개가 전할 정도로 황새들의 천국인 곳이었답니다.  

  이런 황새의 몸짓을 보고서 ‘동래학춤’이 발원한 곳도 이 고장이랍니다. 동래학춤을 추고 있는 분들을 가까이서 한번 보세요. 우리의 단아한 선비들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주 맑아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온천천이 바다로 나가기 전에 수영강과 만나게 된답니다. 예전에는 그 모래가 너무 고와 수영해수욕장도 있었답니다. 오죽하면 고려 말 동래로 유배 왔던 鄭敍(정서)가 여기 온천천 변에 瓜亭(과정 - 오이 정자, 여기 정자 앞의 밭에서 오이와 채소를 길러 먹은 것에서 유래한 정자 이름이다.)이란 정자를 지어놓곤 유유한 세월을 보냈을까요? 정서는 자신의 호를 과정이라고 짓기도 하였지요. 그가 쓴 정과정곡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데 임금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잘 나타난 고려가요랍니다.

  그가 짓고 살았던 정자가 과정이고 그의 이름자를 붙여서 鄭瓜亭曲(정과정곡)이 되었지요. 지금도 그 길이 瓜亭路(과정로)인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고, 과정초등학교도 이렇게 하여 탄생한 이름이랍니다.

 

   온천천이 바다로 가기 전에 우뚝 솟은 시설물이 있는데 바로 수영하수처리장이랍니다. 1988년 제 24회 서울올림픽 요트 경기를 위하여 세운 시설물이지요. 올림픽을 치르겠다는 나라에서, 그것도 세계인들을 모셔놓고, 유명 선수들이 와서 경기를 하는데 그 물이 똥물(?)이라면 곤란했겠지요. 부랴부랴 만든 시설물인데 그 덕에 온천천 물도 맑아지고, 퇴근하며 살펴보면 간혹 고기들이 제법 물질을 심하게 하는 모습들도 보인답니다. 시민들의 보살핌 속에 온천천이 더욱더 깨끗해져서 명실상부한 ‘시민공원’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랍니다.

  오늘은 3월 말일, 여기 온천천에 봄이 오면 축제가 펼쳐진답니다. 어릴 적 진해벚꽃 놀이를 상상하고는 그쪽으로 가야겠다는 분들이라면 차 막혀서 고생하시지 마시고 얼른 이쪽으로 나오세요.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시설도 충분하고,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사람들, 각종 운동 시설들도 충분하고요,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꽃과 어우러진 이 아름다운 시민공원으로 얼른 나오세요. 추억을 담아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답니다. 얼른 나오세요. 지금 막 온천천 축제가 시작되려는지 벚꽃들이 더욱 힘을 내어 피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쇼 유랑극단’이 시민들과 신나게 한 판 놀아볼 작정인 듯 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 공원이 어디 있는가요? “서울엔 청계천이 있다면 부산엔 온천천이 있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공간, 동래 고을에는 온천천이 있어 자손 대대로 자랑하며 살 수 있답니다. 봄꽃이 더 피기 전에 아이들 손잡고 온천천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보입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