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명은 캄보디아왕국이다. 어떤 경우는 캄보디아로 표기하고 어떤 경우는 캄푸치아 또는 크메르라고 하기도 한다. 이 나라의 헌법에도 이 세 가지 국명이 등장한다. 특히 캄보디아 국민들을 호칭할 때나 캄보디아의 언어를 말할 때는 크메르 혹은 크마에라는 표현을 쓴다.
서양학자들이나 중국이 과거에 이 나라를 일러 ‘후난’이라고 기록하였고 중국의 사서에는 ‘첸라’라고 기록되었다.
크메르라는 말은 802년에 첸라국의 왕이었던 자야바르만2세가 앙코르 근처에서 “나는 크메르 왕중의 왕”이라고 선포하였는데 이 기록에 크메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때부터 학자들은 영화로웠던 앙코르시대의 국가를 “고대 크메르왕국”이라고 한다.
1975년 킬링필드의 주역인 폴폿이 이 나라 이름을 크메르 대신에 캄푸치아로 표기 한다. 즉 크메르, 캄보쥐, 캄푸치아, 캄보디아는 모두 캄보디아를 말한다.
캄보디아의 국기의 변천사를 보면 이 나라의 과거 어려웠던 시대를 짐작할 수 있다. 불과 24년의 세월동안에 여섯 번이나 국기가 바뀌었다. 이는 여섯 번 국가통치체제가 바뀌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여섯 번이나 혁명이나 정변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앙코르의 영화를 이어받은 크메르왕국이 정식으로 소멸한 것은 1970년 3월 18일 미국의 사주를 받았던 론놀장군이 시아누트왕자를 국가수반에서 축출하면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선포한 것이다. 크메르공화국이다. 국기의 형태를 보면 미국식이다.
정권은 5년간을 지탱하다가 1975년 4월 17일에는 폴폿이 이끄는 크메르루지 공산당이 프놈펜을 함락하면서 이른바 피의 숙청이 시작된다. 정식 국명을 민주캄푸치아로 바꾸면서 국기도 바꿨다.
1979년 헹삼린과 체아심 그리고 현 국무총리인 훈센이 이끄는 반 크메르 루지 공산당이 베트남군대와 함께 프놈펜을 점령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이른바 캄푸치아인민공화국이다. 국기가 바뀌었다. 앙코르와트의 5개의 탑을 그려 넣었다.
1989년에 들어서 캄푸치아인민공화국은 정치체제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탈바꿈한다. 그러나 공산당이 정권의 주체였고 국명을 State of Cambodia로 변경하고, 국기를 공산당의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위에는 청색바탕을 아래는 붉은색 바탕을 사용했다.
훈센과 시아누크가 포진하여 서로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상태에서 파리에서 평화회담을 개최, 회담을 성사시켜서 총선거가 끝날 때까지 잠정기구로서 캄보디아 통치 최고위원회를 각 정파의 대표 12명이 잠정적으로 국가를 통치하자는 내용으로 국기도 바뀌었다.
1993년 5월 23일에 총선거를 실시하고 9월 24일에 시아누크국왕이 두 번째로 즉위함으로서 정식으로 Kingdom of Cambodia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면서 국기는 1973년 이전의 크메르왕국 국기를 채택하였다.
현재 국기는 아래 위 청색바탕에 가운데 부분에 붉은 바탕을 두었으며 중앙에 앙코르와트의 세 개의 탑을 그려 놓은 것이다.
캄보디아의 국토와 인구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그중에서도 인도차이나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지도 모양이 밥그릇과 비슷한 모양이다. 국토의 면적은 181,000km2로 한반도 보다는 약간 작은 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한반도 보다는 국토의 쓰임새가 양호하다. 평야는 전국토의 절반정도이며 나머지는 산림과 호수로 채워져 있는데 삼림자원은 거의가 원시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림자원은 주로 국경지역인데 라오스와 타이의 국경은 거의가 산악지방이며, 베트남과의 사이에는 북쪽에는 산악지방이나 남쪽에는 평랴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프놈펜의 서북쪽에서부터 타이와의 국경지역에는 천연의 밀림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가장 높은 산은 캄퐁츠낭에 위치한 오랄산으로서 해발 1,810m에 달한다.
건기와 우기에 따라서 수면이 차지하는 면적이 달라진다. 톤레샵호수가 건기인 1월까지는 약 2,500~3,000km2이나 본격적인 우기에 접어들어 메콩강물이 역류하여 호수가 만수위가 되었을 때는 약 2.5만km2에 달하기도 한다.
캄보디아는 1998년도에 UN의 도움을 받아 전국적인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총인구가 11,426,223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2003년에 인구를 추계하여 그 결과 13,798,237명이다. 인구의 대부분은 농촌에 거주하는 인구로서 대략적으로 85%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인구증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남성보다 1.4%높다. 이는 오래 동안의 내전으로 인해 남자들이 많이 죽은 결과이다. 이 나라의 인구 피라미드가 아주 특이하다. 대개는 정섬각형이어야 하는데 이나라의 경우 1998년네 작성한 인구피라미드에서 20세에서 24세까지와 4세 이하의 피라미드가 움푹 들어간 것을 볼 수 있다.
캄보디아의 기후는 프놈펜이 대략적으로 북위 10도 선상으로서 열대 권에 속한다. 캄보디아의 기후는 2개의 계절풍의 영향을 받는다. 여름철에는 인도양과 타이만에서 불어오는 습도가 높은 계절풍으로 많은 비가 오며, 5월 중순부터 11월까지 이어진다. 12월부터 5월까지는 북동쪽의 중국대륙으로부터 불어오는 건조하고 시원한 공기를 가진 계절풍이다.
캄보디아는 좁은 땅 덩어리이기는 하지만 잡다한 종족들과 소수민족들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이곳에 토착화한 크메르족 이외 이웃의 많은 종족들도 이곳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8세기경에는 자바인들이, 10세기에서 15세기에는 타이인들이, 17세기경에는 베트남인들이, 그리고 18세기경에는 중국인들의 피가 이곳 순수하다고 생각되어 온 크메르인들과 혼혈되었다.
캄보디아의 수도는 프놈펜이라고 이 나라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프놈펜은 1422년부터 1505년 사이와 1866년 이래 현재까지 이 나라의 수도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프놈펜의 유래는 7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놈펜은 “펜 여인의 언덕”이라는 뜻인데 프놈은 언덕 혹은 구능을 의미하며 펜은 당신에 살았던 캄보디아의 부유한 한 여성의 이름이다. 이 여성에 의해서 1372년에 프놈펜이 알려지게 되었다.
캄보디아를 통치하는 행정기구로서는 중앙의 25개 부처와 아울러 우리의 도와 같은 개념의 지방행정기구가 24개가 있다. 그중 프놈펜을 비롯하여 시아누크빌, 켑, 파일린은 특별시이며 나머지는 도이다.
캄보디아 국가개항
캄보디아 국가개항
국가명은 캄보디아왕국이다. 어떤 경우는 캄보디아로 표기하고 어떤 경우는 캄푸치아 또는 크메르라고 하기도 한다. 이 나라의 헌법에도 이 세 가지 국명이 등장한다. 특히 캄보디아 국민들을 호칭할 때나 캄보디아의 언어를 말할 때는 크메르 혹은 크마에라는 표현을 쓴다.
서양학자들이나 중국이 과거에 이 나라를 일러 ‘후난’이라고 기록하였고 중국의 사서에는 ‘첸라’라고 기록되었다.
크메르라는 말은 802년에 첸라국의 왕이었던 자야바르만2세가 앙코르 근처에서 “나는 크메르 왕중의 왕”이라고 선포하였는데 이 기록에 크메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때부터 학자들은 영화로웠던 앙코르시대의 국가를 “고대 크메르왕국”이라고 한다.
1975년 킬링필드의 주역인 폴폿이 이 나라 이름을 크메르 대신에 캄푸치아로 표기 한다. 즉 크메르, 캄보쥐, 캄푸치아, 캄보디아는 모두 캄보디아를 말한다.
캄보디아의 국기의 변천사를 보면 이 나라의 과거 어려웠던 시대를 짐작할 수 있다. 불과 24년의 세월동안에 여섯 번이나 국기가 바뀌었다. 이는 여섯 번 국가통치체제가 바뀌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여섯 번이나 혁명이나 정변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앙코르의 영화를 이어받은 크메르왕국이 정식으로 소멸한 것은 1970년 3월 18일 미국의 사주를 받았던 론놀장군이 시아누트왕자를 국가수반에서 축출하면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선포한 것이다. 크메르공화국이다. 국기의 형태를 보면 미국식이다.
정권은 5년간을 지탱하다가 1975년 4월 17일에는 폴폿이 이끄는 크메르루지 공산당이 프놈펜을 함락하면서 이른바 피의 숙청이 시작된다. 정식 국명을 민주캄푸치아로 바꾸면서 국기도 바꿨다.
1979년 헹삼린과 체아심 그리고 현 국무총리인 훈센이 이끄는 반 크메르 루지 공산당이 베트남군대와 함께 프놈펜을 점령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이른바 캄푸치아인민공화국이다. 국기가 바뀌었다. 앙코르와트의 5개의 탑을 그려 넣었다.
1989년에 들어서 캄푸치아인민공화국은 정치체제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탈바꿈한다. 그러나 공산당이 정권의 주체였고 국명을 State of Cambodia로 변경하고, 국기를 공산당의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위에는 청색바탕을 아래는 붉은색 바탕을 사용했다.
훈센과 시아누크가 포진하여 서로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상태에서 파리에서 평화회담을 개최, 회담을 성사시켜서 총선거가 끝날 때까지 잠정기구로서 캄보디아 통치 최고위원회를 각 정파의 대표 12명이 잠정적으로 국가를 통치하자는 내용으로 국기도 바뀌었다.
1993년 5월 23일에 총선거를 실시하고 9월 24일에 시아누크국왕이 두 번째로 즉위함으로서 정식으로 Kingdom of Cambodia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면서 국기는 1973년 이전의 크메르왕국 국기를 채택하였다.
현재 국기는 아래 위 청색바탕에 가운데 부분에 붉은 바탕을 두었으며 중앙에 앙코르와트의 세 개의 탑을 그려 놓은 것이다.
캄보디아의 국토와 인구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그중에서도 인도차이나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지도 모양이 밥그릇과 비슷한 모양이다. 국토의 면적은 181,000km2로 한반도 보다는 약간 작은 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한반도 보다는 국토의 쓰임새가 양호하다. 평야는 전국토의 절반정도이며 나머지는 산림과 호수로 채워져 있는데 삼림자원은 거의가 원시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림자원은 주로 국경지역인데 라오스와 타이의 국경은 거의가 산악지방이며, 베트남과의 사이에는 북쪽에는 산악지방이나 남쪽에는 평랴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프놈펜의 서북쪽에서부터 타이와의 국경지역에는 천연의 밀림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가장 높은 산은 캄퐁츠낭에 위치한 오랄산으로서 해발 1,810m에 달한다.
건기와 우기에 따라서 수면이 차지하는 면적이 달라진다. 톤레샵호수가 건기인 1월까지는 약 2,500~3,000km2이나 본격적인 우기에 접어들어 메콩강물이 역류하여 호수가 만수위가 되었을 때는 약 2.5만km2에 달하기도 한다.
캄보디아는 1998년도에 UN의 도움을 받아 전국적인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총인구가 11,426,223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2003년에 인구를 추계하여 그 결과 13,798,237명이다. 인구의 대부분은 농촌에 거주하는 인구로서 대략적으로 85%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인구증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남성보다 1.4%높다. 이는 오래 동안의 내전으로 인해 남자들이 많이 죽은 결과이다. 이 나라의 인구 피라미드가 아주 특이하다. 대개는 정섬각형이어야 하는데 이나라의 경우 1998년네 작성한 인구피라미드에서 20세에서 24세까지와 4세 이하의 피라미드가 움푹 들어간 것을 볼 수 있다.
캄보디아의 기후는 프놈펜이 대략적으로 북위 10도 선상으로서 열대 권에 속한다. 캄보디아의 기후는 2개의 계절풍의 영향을 받는다. 여름철에는 인도양과 타이만에서 불어오는 습도가 높은 계절풍으로 많은 비가 오며, 5월 중순부터 11월까지 이어진다. 12월부터 5월까지는 북동쪽의 중국대륙으로부터 불어오는 건조하고 시원한 공기를 가진 계절풍이다.
캄보디아는 좁은 땅 덩어리이기는 하지만 잡다한 종족들과 소수민족들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이곳에 토착화한 크메르족 이외 이웃의 많은 종족들도 이곳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8세기경에는 자바인들이, 10세기에서 15세기에는 타이인들이, 17세기경에는 베트남인들이, 그리고 18세기경에는 중국인들의 피가 이곳 순수하다고 생각되어 온 크메르인들과 혼혈되었다.
캄보디아의 수도는 프놈펜이라고 이 나라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프놈펜은 1422년부터 1505년 사이와 1866년 이래 현재까지 이 나라의 수도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프놈펜의 유래는 7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놈펜은 “펜 여인의 언덕”이라는 뜻인데 프놈은 언덕 혹은 구능을 의미하며 펜은 당신에 살았던 캄보디아의 부유한 한 여성의 이름이다. 이 여성에 의해서 1372년에 프놈펜이 알려지게 되었다.
캄보디아를 통치하는 행정기구로서는 중앙의 25개 부처와 아울러 우리의 도와 같은 개념의 지방행정기구가 24개가 있다. 그중 프놈펜을 비롯하여 시아누크빌, 켑, 파일린은 특별시이며 나머지는 도이다.
- 꿈과 미래가 있는 캄보디아 101가지 이야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