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단풍은 곱다. 나는 개울가에 앉아 물끄러미 숲을 바라보았다. 검기만 하던 숲도 이제는 단풍이 들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들창코는 옆에 누워 자고 있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독파했는지, 이젠 베개로만 사용한다. 내가 사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배 위에 얹어놓고 씩씩 소리를 내며 자는 들창코의 표정이 싱그럽다. 조금 부럽기도 하다. 내 책은 너무 두꺼워서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도 겨우 절반 정도 읽어냈는데, 이 녀석은 벌써 두 권째다. 싫증 내는 것에 익숙한 나에게 [우울과 몽상]은 너무 무거운 책이었던가. 자꾸 새 것이 탐난다. 솔직히 딱 요만큼만 읽고 에드거 앨런 포를 다 안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던져버리고 싶은 맘이 가득하다. 나도 들창코처럼 쉬이 읽히는 책을 몇 권씩 들고 다닐 것을. 부러운 맘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누굴 부러워한다는 생각에 살짝 짜증이 났다. 내가 이 녀석 따위를? 그럴 리가 없다. 부러워했으면 저 숲의 중후한 단풍을 부러워했겠지. 싫증 내기 좋아하는 15세 소년에게 중후함 같은 게 있을 리 없으니까. 그래서 붉은 숲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중이다. 숲을 보고 있자니 역시나 한 번 다시 들어가보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지난 번엔 두려움이 있었던지 너무 전투적인 태세로 숲을 대해버렸다. 사실, 저렇게 온화한 빛으로 물든 숲이 나에게 적대적일 리가 없다. 게다가 해가 뉘엿 넘어가며 숲 주변으로 노을을 만들어주고 있어서, 그 장관을 바라보며 이제는 예전 패배의 감정 따위는 아예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이다. 불과 한달 전의 패배인데, 사람은 참으로 망각의 동물이다. 한 번 들어가보고 싶긴 한데 들창코가 문제였다. 들창코에게 저 숲 안은 공포의 공간일 테니 말이다. 아마 내가 들어가서 놀자고 하면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잠들어 있다. 잠깐 다녀올까? 이 녀석이 깨기 전에 잠시 들어갔다 오면 되는 일이다. 나는 숲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일어섰다. (들)창코야 미안하다. 내, 잠깐만 놀다 올게. 빌어먹을 내 호기심과 저 붉은 단풍이 여가생활에 충실한 나를 가만히 두질 않는구나. 그런데 그 순간 들창코가 잠에서 깨어났다. 굉장히 단잠을 잤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천진난만하게 기지개를 켜며 나를 바라보았다. 왠지 ‘왜?’내지는‘야옹’이라고 할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일어서 있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까봐 국민체조 무릎 운동을 하고야 말았다.
라면가게.
들창코와 헤어지고 종종 들르는 분식집에 갔다. 이 곳은 삼양 라면에 계란을 넣은 이른바 ‘삼계탕’이 유명한 집이다. 하지만 나는 늘 삼계탕 대신 만두라면 곱빼기를 먹는다. 마치 주인 아저씨가 심심할 때 손수 빚은 것처럼 보이는 볼품 없는 만두 다섯 개와 라면 두 개. 도저히 혼자 다 먹을 수 없는 양임에도 불구하고 꼭 곱빼기를 시킨다. 그리고 어쩌다가 한 그릇을 다 먹는 날이면 그렇게 내가 자랑스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기어코 끝까지 먹어보리라 쓸모 없는 다짐을 하며 오늘도 역시 만두라면 곱빼기를 주문한다. 라면 위에 동그랗게 얹어진 만두 하나를 입에 넣고 씹으며 나머지 네 개를 라면 국물에 하나씩 푸욱 담그고 있는데, 주방에서 느닷없이 껄렁이 원이 나왔다. 나는 젓가락으로 만두를 누른 채 가만히 껄렁이 원을 쳐다보았다. 껄렁이 원도 내 얼굴을 보며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그랬던 것인가, 이 곳이? 동네가 좁아서? 이 삼계탕 집 주인은 껄렁이 원의 아버지란 건가. 그런데 왜 여태껏 저 놈을 여기서 한번도 못 봤을까. 들창코 괴롭히느라 집안 가사일은 도울 새가 없나 보지? 우리 아버지도 음식점 하니까 공통점이 있구나. 아니지, 우리 아버지는 국가를 위해 일을 하시지. 가만, 저 놈이 지금 주방에서 나오는 거잖아. 그럼 이 만두라면 곱빼기도 혹시 저 놈이? 갑자기 입에 넣은 만두를 삼키기가 싫어진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라면은 불어만 간다.
껄렁이 원과의 결투.
오늘이 드디어 그 날인가 싶었다. 재수없게 껄렁이 원의 집에 들어와서 태연하게 라면을 먹고 있다니. 똑똑한 껄렁이 투와는 달리 이 놈은 불 같은 놈 아니던가. 비굴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드디어 오늘 이 놈과 한 판 결투를 벌이겠구나. 그럼 만두라면 곱빼기는 스테미너를 위해서 반드시 다 먹어놓아야겠다. 이처럼 심각한 마음으로 라면을 먹기는 처음이었다. 라면 국물에 담가 두었던 만두를 꺼내어 먹었다. 이 상황에서도 역시 맛이 일품이었다. 껄렁이 원은 벽에 기대어 내가 라면 먹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젠장, 체할 것 같다. 덕분에 국물 머금은 만두가 입 천장을 다 벗겨내고 있는데도 묵묵히 남은 하나를 마저 입에 넣고 씹었다. 그제서야 보다 못한 껄렁이 원이 나를 부른다. ‘야, 잠깐 나 좀 보자.’이제야 때가 됐구나. 나는 만두를 꾹 삼키며 껄렁이 원을 따라 나섰다. 라면은 반쯤 남아있었다. 아깝지 않았다. 따라 나서느라 라면 값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날 밖으로 끌어낸 껄렁이 원은 내 얼굴을 한참 쏘아보더니 이윽고 퉁명스런 말을 던진다. ‘너, 들창코랑 친하냐?’순간 딴 생각을 해버렸다. 이 녀석도 들창코라고 부르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그래도 난 머리 속으로만 생각하고 실제로는 그렇게 안 부르는데. ‘들창코랑 친하냐고!’ 내가 석이 죽어 대답 못 하는 줄로 알고 녀석이 재차 물었다. 나는 태연한 듯 대답했다. ‘친하긴 누가 친해. 그냥 그 녀석이 달라붙는 거지.’ 껄렁이 원은 또 입을 다물고 물끄러미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한편, 나는 방금 한 말을 후회하고 있었다. 들창코에게 조금 미안한 맘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녀석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라.’ 놈이 나에게 명령조로 얘기하는 게 맘에 안 들어서 나는 짜증을 내고 말았다. ‘내가 걔랑 친하든 말든 니가 무슨 상관인데?’ 내가 강하게 나오는 것에 놀랐는지 껄렁이 원은 다소 누그러진 어투로 말을 이었다. ‘걔네 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인 줄 알아? 일수쟁이야. 우리 마을 사람들..우리 아버지도 걔네 아버지 땜에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냐?’ 솔직히 모른다. 내가 알게 뭐냐고. 그런 건 내 관심사가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일수쟁이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지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이 놈이 나랑 결투를 할 생각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다소 긴장이 풀린 나는 ‘나 걔랑 안 친하다니까.’라고 말해버렸다. 아, 까딱하다간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가 되어버리겠다. ‘그럼 됐어.’ 껄렁이 원은 이렇게 말하고 가게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싸울 생각이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녀석에게 강하게 시비를 걸었다. ‘너 고작 니네 아버지가 그랬다고 들창코한테 해코지한 거냐? 그런 거 유치하다고 생각 안 하냐?’ 껄렁이 원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너, 니 삼촌 빽 믿고 까불지 마라.’ ‘삼촌? 뭔가 잘못 알고 있나 본데..’ 나는 국가 기관에서 일하는 건 삼촌이 아니고 우리 아버지라고 당당히 말했다. 껄렁이 원은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난 끝까지 멋있게 ‘자, 라면 값 천오백 원.’ 하며 돈을 꺼냈지만, 껄렁이 원은 손을 저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일수쟁이.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삼촌이 집에 와 있었다. 도대체 삼촌은 무얼 하는 사람이길래 이토록 우리 집에 자주 오냐는 말이다. 매번 물어도 삼촌은 빙그레 웃을 뿐 정확히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묻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다. 대신 삼촌에게 일수쟁이가 뭐냐고 물었다. 삼촌은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보며 ‘너, 일수쟁이가 정말 뭔지 모르냐?’라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의외네.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 녀석이 일수쟁이가 뭔지도 모르다니.’하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게 자세히까지는 어차피 알려줘도 잘 모를 텐데 말이다. 하여튼, 삼촌의 설명 덕에 일수쟁이가 대충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 그렇구나. 들창코의 아버지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껄렁이 원이 그렇게 들창코를 괴롭혔던 거였구나. 아무래도 껄렁이 원의 아버지를 포함해서 이 동네의 제법 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이 들창코 집의 돈을 빌려 쓰는 모냥이다.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다. 급해서 돈을 빌려 쓴 사람들이 나쁘면 나쁘지, 빌려준 사람이 욕 먹을 건 또 뭔가. 어린 나로서는 왜 그런 식이 되는 건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TV를 보면 돈놀이 하는 사람들은 항상 고약하거나 느글거리는 얼굴이긴 하다. 들창코의 아버지는 어떤 얼굴일까. 들창코랑 닮았을까. 순간 들창코처럼 맑고 귀여운 고양이의 눈을 하고 돈놀이를 하는 것일까 하는 상상이 들어 살짝 웃음이 터져 나왔다.
끄떡 없었다.
껄렁이 원의 협박도, 들창코 아버지가 일수쟁이란 사실도 우리의 우정전선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숲의 단풍이 점점 힘을 잃어 그 잎을 바닥에 떨구기 시작했을 무렵에도 우리는 변함없이 같이 밥을 먹고 책을 읽었다. 조금 지나면 날씨가 추워져서 더 이상 이 개울가에 앉아 책을 읽지 못할지도 모른다. 겨울이 되면 집에 들창코를 데려가 으레 그랬듯, 감자나 구워 먹으며 놀아야겠다.
숲에 들어가볼래?
내가 한 소리가 아녔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 지경이었는데 들창코가 숲에 들어가보자고 해서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났다. 의아해서 들창코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들창코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보여줄 게 있어.’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야, 숲이 싫은 게 아니었나? 그렇다면 이 녀석은 의외로 용감한 성격이구나. 아니면 나쁜 기억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는 낙천적인 성격인가? 아무튼 숲에 한 번쯤 들어가고팠던 나로서는 퍽이나 고마운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엔 가방과 책을 빼놓지 않고 챙겨서 들창코를 따라 일어섰다. 붉은 빛이 아직 남아있는 숲 쪽으로 걸어가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들창코의 발걸음은 사뿐했다. 어쩌면 이 녀석 또한 그 동안 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숲으로 향하는 녀석의 발걸음이 이렇게 흥겨울 수가 있단 말인가. 분명 이 녀석도 그간 숲에 들어가지 못해서 좀이 쑤셨던 게야. 보여줄 거라니, 대체 무엇일까. 숲에 다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호기심 가득한데, 무언가 볼 것이 또 있다니 근사하다. 이번엔 검은 숲이 아니라 붉은 숲에 들어간다.
두 번째 탐험.
가을의 시작과 끝을 숲과 같이 한다. 숲에는 낙엽이 소복이 쌓여있다. 다시 들어온 숲은 그래서 포근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옆에는 사박사박 낙엽을 밟는 놀이에 충실한 들창코가 있다. 지난 번에는 경황이 없어서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여러 갈래로 뻗어있다. 다들 숲으론 안 다니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나 보다. 난 다른 길도 걸어보고 싶은데 우선 지금은 들창코를 따라 옛 길을 묵묵히 걷는다. 이윽고 통나무 다리에 이르렀다. 들창코가 먼저 건넌다. 아, 저기를 밟는 거였구나. 지난 번엔 혼자 건너느라 어디를 밟아야 할지 난감했었는데, 이렇게 들창코가 먼저 건너가니 한결 수월했다. 녀석이 밟은 자리를 유심히 봐두었다가 따라서 안전하게 건넌다. 심술궂었던 통나무 다리도 오늘은 얌전하고 튼실하다. 느린 심장 탓에 그제서야 신이 나기 시작했다. 들어와보고 싶었다. 녀석이 나한테 먼저 들어오자고 한 이유를 알겠어. 이 곳은 이토록 편안한 곳이었던 거야. 생각해보면 나는 낯선 곳에 호기심을 갖긴 하지만, 여태껏 그렇게 편하게 여기진 않았던 것 같다. 낯선 장소에 가면 일단 구석부터 노리고, 남의 집에 가면 화장실도 제대로 못 다녀온다. 나만 그런 건지,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볼라치면 행여 그 부끄러운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진 않을까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가보았던 평택 삼촌 집에서도 그랬다. 불편해서 참고 참다가 결국 밭에 나가서 애꿎은 고추나무에 거름을 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고추는 대체 누가 먹었을까.
숲의 호리.
그런데 이 숲은 낯선 곳인데도 편하게 느껴진다. 어디서든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소변을 봐도 좋을 것 같았다. 겉에서 봤을 땐 붉었던 숲이 안에 들어와 보니 전처럼 검게 느껴지는 것 빼고는 딱히 나무랄 것이 없을 정도로 아늑했다. 들창코와 처음 만났던 슬픔의 도살장에 이르렀다. 들창코에게 더 이상 아픔의 기억 따위는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녀석의 표정은 생글했으며, 커다란 두 눈은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호리야!’ 들창코는 주위를 두리번대며 누군가를 불렀다. ‘호리야, 어디 있니?’ 가만히 있으려니 반대편에서 검정색의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 걸어오는 게 보였다. 들창코의 눈을 하고 있는 날렵한 고양이었다. 녀석은 나를 보자 조금 경계한 듯 멈칫대다가 이윽고 안심하며 들창코에게 달려들었다. 작고 도톰한 두 앞발로 들창코의 오른쪽 다리를 부여잡고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들창코는 무릎을 꿇고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저 검은 고양이였나 보다. 나는 가족의 상봉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아기자기한 자식, 다 좋은데 이름이 ‘호리’가 뭐냐. 들창코에게 왜 ‘호리’냐고 물었더니 녀석은 그냥 호리호리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빈약한 상상력 같으니라구. 고작 그게 다였단 말이냐. 촌스러운 놈. 너 때문에 안 웃을 수가 없다. 그래도 좋아 보였다.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인데도 저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다시 들어올 생각이 들었다니. 무릇 이런 것이 따뜻함 아니겠는가. 가끔 이런 훈훈한 광경도 정서에 많은 도움이 될 테지. 세상엔 사실이 아니어도 꼭 믿어야 할 몇 가지 정도는 있는 것일 테니까.
숲의 밤비.
정작 숲의 두 번째 방문이 즐거웠던 건 그 다음부터였다. 들창코에게 충분히 반가움을 표시한 호리는 자기가 걸어온 쪽을 바라보며 ‘야옹’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그 아기는 들창코를 아니, 호리를 닮아있었다. 검은 색이 아닌 잿빛에 검은 줄무늬를 두른 것 빼고는 호리와 똑같이 생긴 새끼 고양이었다. 이번에는 들창코도 놀란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호리에게 새끼가 있었단 건 들창코도 몰랐나 보다. ‘호리는 암컷이야?’하고 물었더니 들창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아비가 잿빛 고양이겠지? 그런데 아비는 애 싸질러 놓고 어디 갔을까? 아무튼 수컷들이란! 하여간 생각지도 못한 새끼 고양이 때문에 숲 속 공터에 생기가 돌았다. 들창코도, 나도, 호리와 새끼 고양이도 더 없이 즐거웠다. 들창코가 나한테 이름을 붙여주라고 제안했다. 그래? 좋아. 녀석에게 이름을 지어주자. ‘호리’같은 빈약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 멋진 이름을 붙여볼 테다. 고심 끝에 나는 ‘밤비’라고 부르기로 했다. 왜 ‘밤비’인가. 아무 이유 없다. 나중 되서야 후회했다. ‘호리’에 못지 않은 촌스러운 이름이었다. 늘 제때 좋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순발력 문제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름이야 뭐든 어떠냐. 밤비야, 밤비야, 귀여운 잿빛 새끼 고양이. 들창코의 호리, 그리고 나의 밤비. 그 후로는 매일 숲에 들어가게 되었다. 숲에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지만 나는 줄곧 호리와 밤비가 있는 공터만 찾았다. 그리고 때로는 들창코가 없을 때에도 혼자서 숲의 밤비를 찾았다. 개울가도, 애드거 앨런 포도 잊은 채, 어느새 숲에서만 놀게 되었다.
[창작 소설] - 숲의 내부 (5)
[5부]
10월의 단풍.
10월의 단풍은 곱다. 나는 개울가에 앉아 물끄러미 숲을 바라보았다. 검기만 하던 숲도 이제는 단풍이 들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들창코는 옆에 누워 자고 있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독파했는지, 이젠 베개로만 사용한다. 내가 사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배 위에 얹어놓고 씩씩 소리를 내며 자는 들창코의 표정이 싱그럽다. 조금 부럽기도 하다. 내 책은 너무 두꺼워서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도 겨우 절반 정도 읽어냈는데, 이 녀석은 벌써 두 권째다. 싫증 내는 것에 익숙한 나에게 [우울과 몽상]은 너무 무거운 책이었던가. 자꾸 새 것이 탐난다. 솔직히 딱 요만큼만 읽고 에드거 앨런 포를 다 안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던져버리고 싶은 맘이 가득하다. 나도 들창코처럼 쉬이 읽히는 책을 몇 권씩 들고 다닐 것을. 부러운 맘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누굴 부러워한다는 생각에 살짝 짜증이 났다. 내가 이 녀석 따위를? 그럴 리가 없다. 부러워했으면 저 숲의 중후한 단풍을 부러워했겠지. 싫증 내기 좋아하는 15세 소년에게 중후함 같은 게 있을 리 없으니까. 그래서 붉은 숲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중이다. 숲을 보고 있자니 역시나 한 번 다시 들어가보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지난 번엔 두려움이 있었던지 너무 전투적인 태세로 숲을 대해버렸다. 사실, 저렇게 온화한 빛으로 물든 숲이 나에게 적대적일 리가 없다. 게다가 해가 뉘엿 넘어가며 숲 주변으로 노을을 만들어주고 있어서, 그 장관을 바라보며 이제는 예전 패배의 감정 따위는 아예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이다. 불과 한달 전의 패배인데, 사람은 참으로 망각의 동물이다. 한 번 들어가보고 싶긴 한데 들창코가 문제였다. 들창코에게 저 숲 안은 공포의 공간일 테니 말이다. 아마 내가 들어가서 놀자고 하면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잠들어 있다. 잠깐 다녀올까? 이 녀석이 깨기 전에 잠시 들어갔다 오면 되는 일이다. 나는 숲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일어섰다. (들)창코야 미안하다. 내, 잠깐만 놀다 올게. 빌어먹을 내 호기심과 저 붉은 단풍이 여가생활에 충실한 나를 가만히 두질 않는구나. 그런데 그 순간 들창코가 잠에서 깨어났다. 굉장히 단잠을 잤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천진난만하게 기지개를 켜며 나를 바라보았다. 왠지 ‘왜?’내지는‘야옹’이라고 할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일어서 있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까봐 국민체조 무릎 운동을 하고야 말았다.
라면가게.
들창코와 헤어지고 종종 들르는 분식집에 갔다. 이 곳은 삼양 라면에 계란을 넣은 이른바 ‘삼계탕’이 유명한 집이다. 하지만 나는 늘 삼계탕 대신 만두라면 곱빼기를 먹는다. 마치 주인 아저씨가 심심할 때 손수 빚은 것처럼 보이는 볼품 없는 만두 다섯 개와 라면 두 개. 도저히 혼자 다 먹을 수 없는 양임에도 불구하고 꼭 곱빼기를 시킨다. 그리고 어쩌다가 한 그릇을 다 먹는 날이면 그렇게 내가 자랑스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기어코 끝까지 먹어보리라 쓸모 없는 다짐을 하며 오늘도 역시 만두라면 곱빼기를 주문한다. 라면 위에 동그랗게 얹어진 만두 하나를 입에 넣고 씹으며 나머지 네 개를 라면 국물에 하나씩 푸욱 담그고 있는데, 주방에서 느닷없이 껄렁이 원이 나왔다. 나는 젓가락으로 만두를 누른 채 가만히 껄렁이 원을 쳐다보았다. 껄렁이 원도 내 얼굴을 보며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그랬던 것인가, 이 곳이? 동네가 좁아서? 이 삼계탕 집 주인은 껄렁이 원의 아버지란 건가. 그런데 왜 여태껏 저 놈을 여기서 한번도 못 봤을까. 들창코 괴롭히느라 집안 가사일은 도울 새가 없나 보지? 우리 아버지도 음식점 하니까 공통점이 있구나. 아니지, 우리 아버지는 국가를 위해 일을 하시지. 가만, 저 놈이 지금 주방에서 나오는 거잖아. 그럼 이 만두라면 곱빼기도 혹시 저 놈이? 갑자기 입에 넣은 만두를 삼키기가 싫어진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라면은 불어만 간다.
껄렁이 원과의 결투.
오늘이 드디어 그 날인가 싶었다. 재수없게 껄렁이 원의 집에 들어와서 태연하게 라면을 먹고 있다니. 똑똑한 껄렁이 투와는 달리 이 놈은 불 같은 놈 아니던가. 비굴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드디어 오늘 이 놈과 한 판 결투를 벌이겠구나. 그럼 만두라면 곱빼기는 스테미너를 위해서 반드시 다 먹어놓아야겠다. 이처럼 심각한 마음으로 라면을 먹기는 처음이었다. 라면 국물에 담가 두었던 만두를 꺼내어 먹었다. 이 상황에서도 역시 맛이 일품이었다. 껄렁이 원은 벽에 기대어 내가 라면 먹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젠장, 체할 것 같다. 덕분에 국물 머금은 만두가 입 천장을 다 벗겨내고 있는데도 묵묵히 남은 하나를 마저 입에 넣고 씹었다. 그제서야 보다 못한 껄렁이 원이 나를 부른다. ‘야, 잠깐 나 좀 보자.’이제야 때가 됐구나. 나는 만두를 꾹 삼키며 껄렁이 원을 따라 나섰다. 라면은 반쯤 남아있었다. 아깝지 않았다. 따라 나서느라 라면 값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날 밖으로 끌어낸 껄렁이 원은 내 얼굴을 한참 쏘아보더니 이윽고 퉁명스런 말을 던진다. ‘너, 들창코랑 친하냐?’순간 딴 생각을 해버렸다. 이 녀석도 들창코라고 부르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그래도 난 머리 속으로만 생각하고 실제로는 그렇게 안 부르는데. ‘들창코랑 친하냐고!’ 내가 석이 죽어 대답 못 하는 줄로 알고 녀석이 재차 물었다. 나는 태연한 듯 대답했다. ‘친하긴 누가 친해. 그냥 그 녀석이 달라붙는 거지.’ 껄렁이 원은 또 입을 다물고 물끄러미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한편, 나는 방금 한 말을 후회하고 있었다. 들창코에게 조금 미안한 맘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녀석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라.’ 놈이 나에게 명령조로 얘기하는 게 맘에 안 들어서 나는 짜증을 내고 말았다. ‘내가 걔랑 친하든 말든 니가 무슨 상관인데?’ 내가 강하게 나오는 것에 놀랐는지 껄렁이 원은 다소 누그러진 어투로 말을 이었다. ‘걔네 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인 줄 알아? 일수쟁이야. 우리 마을 사람들..우리 아버지도 걔네 아버지 땜에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냐?’ 솔직히 모른다. 내가 알게 뭐냐고. 그런 건 내 관심사가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일수쟁이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지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이 놈이 나랑 결투를 할 생각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다소 긴장이 풀린 나는 ‘나 걔랑 안 친하다니까.’라고 말해버렸다. 아, 까딱하다간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가 되어버리겠다. ‘그럼 됐어.’ 껄렁이 원은 이렇게 말하고 가게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싸울 생각이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녀석에게 강하게 시비를 걸었다. ‘너 고작 니네 아버지가 그랬다고 들창코한테 해코지한 거냐? 그런 거 유치하다고 생각 안 하냐?’ 껄렁이 원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너, 니 삼촌 빽 믿고 까불지 마라.’ ‘삼촌? 뭔가 잘못 알고 있나 본데..’ 나는 국가 기관에서 일하는 건 삼촌이 아니고 우리 아버지라고 당당히 말했다. 껄렁이 원은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난 끝까지 멋있게 ‘자, 라면 값 천오백 원.’ 하며 돈을 꺼냈지만, 껄렁이 원은 손을 저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일수쟁이.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삼촌이 집에 와 있었다. 도대체 삼촌은 무얼 하는 사람이길래 이토록 우리 집에 자주 오냐는 말이다. 매번 물어도 삼촌은 빙그레 웃을 뿐 정확히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묻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다. 대신 삼촌에게 일수쟁이가 뭐냐고 물었다. 삼촌은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보며 ‘너, 일수쟁이가 정말 뭔지 모르냐?’라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의외네.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 녀석이 일수쟁이가 뭔지도 모르다니.’하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게 자세히까지는 어차피 알려줘도 잘 모를 텐데 말이다. 하여튼, 삼촌의 설명 덕에 일수쟁이가 대충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 그렇구나. 들창코의 아버지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껄렁이 원이 그렇게 들창코를 괴롭혔던 거였구나. 아무래도 껄렁이 원의 아버지를 포함해서 이 동네의 제법 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이 들창코 집의 돈을 빌려 쓰는 모냥이다.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다. 급해서 돈을 빌려 쓴 사람들이 나쁘면 나쁘지, 빌려준 사람이 욕 먹을 건 또 뭔가. 어린 나로서는 왜 그런 식이 되는 건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TV를 보면 돈놀이 하는 사람들은 항상 고약하거나 느글거리는 얼굴이긴 하다. 들창코의 아버지는 어떤 얼굴일까. 들창코랑 닮았을까. 순간 들창코처럼 맑고 귀여운 고양이의 눈을 하고 돈놀이를 하는 것일까 하는 상상이 들어 살짝 웃음이 터져 나왔다.
끄떡 없었다.
껄렁이 원의 협박도, 들창코 아버지가 일수쟁이란 사실도 우리의 우정전선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숲의 단풍이 점점 힘을 잃어 그 잎을 바닥에 떨구기 시작했을 무렵에도 우리는 변함없이 같이 밥을 먹고 책을 읽었다. 조금 지나면 날씨가 추워져서 더 이상 이 개울가에 앉아 책을 읽지 못할지도 모른다. 겨울이 되면 집에 들창코를 데려가 으레 그랬듯, 감자나 구워 먹으며 놀아야겠다.
숲에 들어가볼래?
내가 한 소리가 아녔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 지경이었는데 들창코가 숲에 들어가보자고 해서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났다. 의아해서 들창코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들창코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보여줄 게 있어.’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야, 숲이 싫은 게 아니었나? 그렇다면 이 녀석은 의외로 용감한 성격이구나. 아니면 나쁜 기억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는 낙천적인 성격인가? 아무튼 숲에 한 번쯤 들어가고팠던 나로서는 퍽이나 고마운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엔 가방과 책을 빼놓지 않고 챙겨서 들창코를 따라 일어섰다. 붉은 빛이 아직 남아있는 숲 쪽으로 걸어가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들창코의 발걸음은 사뿐했다. 어쩌면 이 녀석 또한 그 동안 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숲으로 향하는 녀석의 발걸음이 이렇게 흥겨울 수가 있단 말인가. 분명 이 녀석도 그간 숲에 들어가지 못해서 좀이 쑤셨던 게야. 보여줄 거라니, 대체 무엇일까. 숲에 다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호기심 가득한데, 무언가 볼 것이 또 있다니 근사하다. 이번엔 검은 숲이 아니라 붉은 숲에 들어간다.
두 번째 탐험.
가을의 시작과 끝을 숲과 같이 한다. 숲에는 낙엽이 소복이 쌓여있다. 다시 들어온 숲은 그래서 포근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옆에는 사박사박 낙엽을 밟는 놀이에 충실한 들창코가 있다. 지난 번에는 경황이 없어서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여러 갈래로 뻗어있다. 다들 숲으론 안 다니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나 보다. 난 다른 길도 걸어보고 싶은데 우선 지금은 들창코를 따라 옛 길을 묵묵히 걷는다. 이윽고 통나무 다리에 이르렀다. 들창코가 먼저 건넌다. 아, 저기를 밟는 거였구나. 지난 번엔 혼자 건너느라 어디를 밟아야 할지 난감했었는데, 이렇게 들창코가 먼저 건너가니 한결 수월했다. 녀석이 밟은 자리를 유심히 봐두었다가 따라서 안전하게 건넌다. 심술궂었던 통나무 다리도 오늘은 얌전하고 튼실하다. 느린 심장 탓에 그제서야 신이 나기 시작했다. 들어와보고 싶었다. 녀석이 나한테 먼저 들어오자고 한 이유를 알겠어. 이 곳은 이토록 편안한 곳이었던 거야. 생각해보면 나는 낯선 곳에 호기심을 갖긴 하지만, 여태껏 그렇게 편하게 여기진 않았던 것 같다. 낯선 장소에 가면 일단 구석부터 노리고, 남의 집에 가면 화장실도 제대로 못 다녀온다. 나만 그런 건지,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볼라치면 행여 그 부끄러운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진 않을까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가보았던 평택 삼촌 집에서도 그랬다. 불편해서 참고 참다가 결국 밭에 나가서 애꿎은 고추나무에 거름을 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고추는 대체 누가 먹었을까.
숲의 호리.
그런데 이 숲은 낯선 곳인데도 편하게 느껴진다. 어디서든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소변을 봐도 좋을 것 같았다. 겉에서 봤을 땐 붉었던 숲이 안에 들어와 보니 전처럼 검게 느껴지는 것 빼고는 딱히 나무랄 것이 없을 정도로 아늑했다. 들창코와 처음 만났던 슬픔의 도살장에 이르렀다. 들창코에게 더 이상 아픔의 기억 따위는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녀석의 표정은 생글했으며, 커다란 두 눈은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호리야!’ 들창코는 주위를 두리번대며 누군가를 불렀다. ‘호리야, 어디 있니?’ 가만히 있으려니 반대편에서 검정색의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 걸어오는 게 보였다. 들창코의 눈을 하고 있는 날렵한 고양이었다. 녀석은 나를 보자 조금 경계한 듯 멈칫대다가 이윽고 안심하며 들창코에게 달려들었다. 작고 도톰한 두 앞발로 들창코의 오른쪽 다리를 부여잡고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들창코는 무릎을 꿇고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저 검은 고양이였나 보다. 나는 가족의 상봉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아기자기한 자식, 다 좋은데 이름이 ‘호리’가 뭐냐. 들창코에게 왜 ‘호리’냐고 물었더니 녀석은 그냥 호리호리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빈약한 상상력 같으니라구. 고작 그게 다였단 말이냐. 촌스러운 놈. 너 때문에 안 웃을 수가 없다. 그래도 좋아 보였다.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인데도 저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다시 들어올 생각이 들었다니. 무릇 이런 것이 따뜻함 아니겠는가. 가끔 이런 훈훈한 광경도 정서에 많은 도움이 될 테지. 세상엔 사실이 아니어도 꼭 믿어야 할 몇 가지 정도는 있는 것일 테니까.
숲의 밤비.
정작 숲의 두 번째 방문이 즐거웠던 건 그 다음부터였다. 들창코에게 충분히 반가움을 표시한 호리는 자기가 걸어온 쪽을 바라보며 ‘야옹’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그 아기는 들창코를 아니, 호리를 닮아있었다. 검은 색이 아닌 잿빛에 검은 줄무늬를 두른 것 빼고는 호리와 똑같이 생긴 새끼 고양이었다. 이번에는 들창코도 놀란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호리에게 새끼가 있었단 건 들창코도 몰랐나 보다. ‘호리는 암컷이야?’하고 물었더니 들창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아비가 잿빛 고양이겠지? 그런데 아비는 애 싸질러 놓고 어디 갔을까? 아무튼 수컷들이란! 하여간 생각지도 못한 새끼 고양이 때문에 숲 속 공터에 생기가 돌았다. 들창코도, 나도, 호리와 새끼 고양이도 더 없이 즐거웠다. 들창코가 나한테 이름을 붙여주라고 제안했다. 그래? 좋아. 녀석에게 이름을 지어주자. ‘호리’같은 빈약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 멋진 이름을 붙여볼 테다. 고심 끝에 나는 ‘밤비’라고 부르기로 했다. 왜 ‘밤비’인가. 아무 이유 없다. 나중 되서야 후회했다. ‘호리’에 못지 않은 촌스러운 이름이었다. 늘 제때 좋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순발력 문제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름이야 뭐든 어떠냐. 밤비야, 밤비야, 귀여운 잿빛 새끼 고양이. 들창코의 호리, 그리고 나의 밤비. 그 후로는 매일 숲에 들어가게 되었다. 숲에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지만 나는 줄곧 호리와 밤비가 있는 공터만 찾았다. 그리고 때로는 들창코가 없을 때에도 혼자서 숲의 밤비를 찾았다. 개울가도, 애드거 앨런 포도 잊은 채, 어느새 숲에서만 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