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검사의 검사스런 ''히트'' 비판을 비판한다

한지민2007.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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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검사의 검사스런 ''히트'' 비판을 비판한다

 

 

몇몇 다큐멘터리를 제외하면 모든 영화는 본질적으로‘허구(fiction)’다. 총 맞아 죽는 사람은 실제로는 죽는 척 할 뿐이고, 영화 속 연인들은 사랑을 흉내 낼뿐이다. 이런 사실을 뻔히 아는 관객이 그 이야기에 공감하고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있을 법한 허구’, 즉 ‘개연성 있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관객이 느끼는 개연성은 영화에 구현된 리얼리티(reality)에 크게 좌우된다. 리얼리티가 없는 장면에 관객이 빠져들기는 어렵다. 그래서 리얼리티에 대한 비판은 작품의 완성도와 관계되는 치명적인 영역이다.

권력기관이 이러면 안 되는 거다

현직 검사가 MBC 월화드라마 ‘히트(H.I.T)'에 대해 “리얼리티가 없다”고 비판하는 글을 썼다. 김진숙 검사가 쓴 <검경의 빅딜? 드라마 히트!!>라는 글이 그것이다.

검사라고 해서 글쓰기에 특별한 제한을 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검찰이라는 기관 차원에서 특정 작품을 비판하는 행위는 극도로 삼갈 일이다. 권력기관의 비판은 자칫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압력으로 작용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인식되기 쉽다.

김진숙 검사의 이번 글은 검사 개인의 의견으로 치부하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우선 김 검사는 대검찰청의 부공보관(副公報官)이다. 검찰의 공식 입장을 대외적으로 전달하는 ‘검찰의 입’에 해당한다. 또한 이번 글은 대검찰청이 만든 온라인 신문 <뉴스-프로스> 창간호에 실렸다.

<뉴스-프로스>가 발행되자마자 주요 언론이 이번 글을 앞 다퉈 보도하는 이면에는 언론기관을 상대하는 김 검사의 직책 그리고 <뉴스-프로스>의 창간에 즈음한 검찰의 홍보작업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드라마 제작진이 느끼는 부담과 압박이 어떠할 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아무리 정당한 비판이라도 국가기관이 민간의 창작물에 대해 이러면 안 되는 거다.

리얼리티가 뭔지도 모르는 검사 1

게다가 “리얼리티가 없다”는 김 검사의 비판은 정당하지도 않다. 리얼리티에 대한 인식수준 - 바꾸어 말하면 리얼리티에 대한 감수성(sensitivity)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모든 관객을 만족시키는 100% 완벽한 리얼리티는 불가능하며, 대부분의 평균적인 관객이 리얼리티가 있다고 느끼면 훌륭한 것이다.

예컨대, 영화 <할로우 맨 Hollow Man>에서는 인간을 투명하게 만드는 물질이 투여되자 먼저 피부가 사라지고, 이어서 근육, 내장, 뼈가 하나씩 차례로 사라지는 장면이 나온다.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이 이루어낸 이 놀라운 비주얼은 과학적인 시각에서는 엉터리에 가깝다. 투명 물질은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흘러들어 온 몸으로 퍼지므로 맨 먼저 혈관과 심장이 사라지고, 피부는 맨 마지막에 사라져야 맞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이 “매우 사실적”이라고 느끼는 이 장면을 두고 과학적 지식을 들이대며 “리얼리티가 없다”고 하는 것은 생뚱맞은 비판이다.

김 검사가 ‘히트’의 리얼리티를 문제 삼는 주장은 대개 이런 생뚱맞은 부류에 속한다. 이를 테면 검경 합동수사본부에 김재윤 검사가 혼자 나간 데 대해서 “합동수사본부에 검사가 (검찰)수사관 없이 혼자 나가는 일은 전혀 없음에도 이 드라마에서는 검찰수사관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식이다.

이와 같이 자신은 검사라서 잘 알겠지만 대부분의 일반 시청자는 알 리 없는, 그래서 시청자 입장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장면을 두고 리얼리티 운운하는 것은 한참 오바다. 어떤 장면에 대해 이런 식으로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총출동하여 미주알고주알 트집 잡기로 말하면 문제없는 영화가 어디 있을까?

리얼리티가 뭔지도 모르는 검사 2

더 웃긴 건 “법에 위반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투로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흠잡는 김 검사의 태도다. 좀 길지만 먼저 김 검사의 비판 내용을 보자.

△ [드라마 속 장면] 검사 임관을 하루 앞둔 예비 검사 김재윤(하정우)이 불법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다가 현장을 덮친 경찰관에게 쫓겨 우연히 조폭과 함께 배를 탔다가 조폭 두목을 끌어안고 물에 뛰어들어 검거한 일로 영웅이 되고 다음날 임관식에서 칭찬까지 받는다.

→ [김진숙 검사의 비판] 만일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더라면 법무부나 대검 감찰부는 그 사건을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검사를 비롯한 검찰 공무원에게 비위 사실이 있을 때는 대검 감찰부는 지체 없이 감찰조사에 착수하게 되는데 김재윤 검사가 조폭과 함께 도주하게 된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재윤 검사는 왜 불법카지노에 출입하게 되었는지 (...) 어떻게 도주하는 조폭들과 합류하게 되었는지 등을 상세히 조사한 후 불법카지노에 가서 게임을 한 사실이 발각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것이다. 그 경우 감찰 조사 완료시까지 검사 임용이 보류될 수도 있고 사안이 중한 경우 검사 임용이 거부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드라마 속 장면] 차수정 경위(고현정)가 말다툼 끝에 김재윤 검사의 뺨을 때리자, 김재윤 검사가 “검사를 폭행한 것을 문제 삼지 않을 테니 내 도박 사실을 눈 감아 달라”고 제안하여 무마한다.

→ [김진숙 검사의 비판] 폭행사건은 현법 제260조 제3항에 의하여 폭행을 당한 검사가 피의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임에 비하여 도박죄는 그러한 규정이 없다. 따라서 차 경위가 자신의 불법에 대한 죄책을 면하기 위하여 김재윤 검사의 도박사건을 무마한다면 형법 제122조 소정의 직무유기죄에 해당이 될 것이다. 아무리 수사권한이 있는 경찰관일지라도 자신의 편의 여하에 따라 형사입건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

이 대목에 이르면 김진숙 검사가 영화의 리얼리티는 고사하고 현실세계를 제대로 아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과연 현실세계에서 비위를 저지른 공직자에 대해 그 소속기관이 예외 없이 엄정하게 감찰조사를 하는가? 아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다른 어떤 기관이든 ‘제 식구 감싸기식’ 감찰조사가 횡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사례라면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바로 지난 달 12일, JU 사건에 청와대 비서관을 엮어 넣으려고 허위진술을 강요하는 불법을 자행한 검사에 대해 법무부는 감찰조사 후 “부적절한 언행은 있었지만 허위진술을 강요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형사입건 대신 ‘품위 손상’을 이유로 징계만 했다.

또한, 검찰이든 경찰이든 수사기관이 자기들에게 협력하는 자의 불법을 눈감아 주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다. 마약수사관이 마약사범을 봐주고 속칭 정보원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분명 있었다. 검찰의 마약 수사관이 이런 식으로 정보원을 활용했음을 알 수 있는 판례까지 있다(대법원 2004도1066 판결 참조). 나아가 국민들은 아직도 수사기관에 잘 보이면 처벌받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상징되는 이러한 인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현실이 이런데도, 비위를 저지른 예비 검사는 감찰조사 때문에 무사할 수 없고, 수사관이 범법을 무마해 주는 일은 직무유기죄가 되기 때문에 있을 수 없다고? 원 농담도. 이런 식이라면 공무원이 불법을 저지르는 내용의 영화는 모조리 리얼리티가 없다고 해야 하는데, 과연 일반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할 지 의문이다.

리얼리티가 뭔지도 모르는 검사 3

창작의 영역에서 때로는 현실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일도 리얼리티가 인정될 수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에는 판문점에서 대치중인 남과 북의 병사들이 초코파이를 나눠 먹고 닭싸움을 하며 노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현실세계에서 이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현실의 기반 위에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상상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기에 그 인상적인 장면의 리얼리티는 인정된다.

또한,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대신 현실의 고갱이를 뽑아 대중이 공감하도록 상징화하여 표현하는 방식도 리얼리티를 부정할 수 없다. 하늘과 산과 바다를 온통 빨갛게 칠한 그림은 현실을 그대로 묘사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쟁의 비극과 참상을 상징화하여 표현한 것이라면 오히려 고도의 리얼리티가 있는 것이다.

드라마 ‘히트’에서 주인공 차 경위는 상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노부부 살인사건’이 연쇄살인이라고 주장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연쇄살인사건을 전담 수사하는 ‘조직범죄 및 이상범죄 특별수사본부(H.I.T)'의 팀장을 맡는다. HIT가 구성된 후 첫 회의 때 신출내기 김재윤 검사가 빈정대면서 수사관들에게 “연쇄살인이 아닌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보고 재수사하라”고 지시하지만 수사관들은 검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차 경위의 지시에 따른다.

이 장면에 대해 15년 경력의 김진숙 검사는 형사소송법상 경찰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형사들이 검사의 지휘를 무시하는 것은 현행법에 저촉되고 실제로 그런 일도 없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형사들이 검사의 지휘를 대 놓고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검사에게 무슨 보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례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충남지방청 소속 김영일 경감은 사기 피의자를 체포하여 구속영장을 신청하였으나 검사가 “직접 면담 후 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겠으니 피의자를 검찰청으로 인치하라”고 지시하자, “그런 지시는 법에 근거도 없고,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어 따를 수 없다”며 거부하였다. 같은 해 강릉경찰서 소속 장신중 경정은 검찰로부터 “검찰청에서 조사 중인 피의자를 데려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하라”는 전화를 받고 “전화로는 입감 대상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니 공문으로 요청하라”며 거부하였다.

두 경찰관 모두 검찰에 의해 직무유기죄 혹은 인권옹호직무방해죄 등으로 기소되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따라서 경찰이 검사의 지휘를 거부한 일이 없다는 김 검사의 주장은 우선 사실이 아니다.

나아가, 설령 검사의 지휘를 경찰이 거부한 사례가 전혀 없었더라도, 검찰과 경찰 간에 수사지휘를 둘러싼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드라마에서 묘사된 장면은 한편으로는 검경 갈등상황이라는 현실을 기반으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즉, ‘그런 일이 발생할 법도 하다’는 류의) 상상의 범주에 속한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검경 갈등이라는 현실을 극적으로 상징화하였다는 점에서 참으로 리얼하다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검사스런 발상의 전형

김 검사가 드라마 속 김재윤 검사의 호화로운 사생활이 실제 검사의 일상과 다르다며 딴죽거는 부분도 역시 가당찮다. 실제 검사들은 드라마에서처럼 고급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거나, 바에서 피아노를 치고, 수영을 한 후 맥주를 마시는 따위를 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검사들 중 적어도 일부는 룸싸롱에서 고급 양주를 대접 받고, 기업가들과 골프를 즐기는 것이 사실인 바에야, 드라마 속 검사의 호화로운 사생활에 대해 리얼리티를 문제 삼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따지고 보면 이 드라마처럼 리얼리티에 노력을 기울인 형사물을 찾기 어렵다. 그리고 그 노력은 주로 형사들을 둘러싼 갈등과 문제점들을 끄집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경대출신 젊은 경위와 늙은 경사와의 갈등, 여성 경찰관에 대한 경찰 내부의 편견, 언론 보도에 벌벌 떠는 소신 없는 상관들, 수사를 팽개치고 몰래 승진 공부하는 형사, 동네 양아치에게 상납 받는 비리 형사 등은 경찰로서는 숨기고 싶은 불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검찰이 이 드라마에 시비를 붙은 속내를 김진숙 검사의 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김 검사는 “작년 9월 대검에서 방송작가들을 초청, 검찰에 관한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관람하게 한 후, 특히 검사, 검찰을 소재한 드라마 등을 집필하고자 하는 작가들은 (...) 많은 자문을 구하고 있고, 대검 홍보기획관실에서는 성실히 조력을 하고 있다” 면서, MBC의 드라마 ‘히트’가 검찰의 자문을 받지 않은 데 대해 노골적인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

지난 2005년 1월 18일, 서초동 대검찰청에서는 같은 달 27일 개봉을 앞둔 영화 <공공의 적2>에 대해 현직 검사들을 상대로 시사회가 열렸다. 검찰이 검찰청사를 촬영장소로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력한 이 영화를 보고 시사회에 참석한 송광수 검찰총장과 검사들은 박수갈채를 보내며 극찬하였다고 한다.

검찰이 전폭적으로 자문하고 협력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강철중 검사(설경구)는 정의의 화신이다. 부장검사에게 대드는가 하면, 직접 조폭들에게 찾아가 총을 쏘고, 심지어 범인과 맞짱 뜨면서 격투까지 한다. 이게 리얼리티가 있는 걸까?

김진숙 검사의 글에 의하면 검사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사무실을 비우고 현장을 돌아다닐 여유가 전혀 없단다. 더구나 검찰 사무관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서 현장에 나가는 경우도 없단다. 내가 알기로도 그렇다. 또한 검찰에는 총도 없고, 검사에게 총기 사용을 허용하는 법규도 없으며, 결정적으로 검사는 38권총을 쏴 본 일이 없어서 쏠 줄도 모른다.

따라서 검사가 조폭에게 총을 쏘고, 범인과 격투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아마 검사생활 15년째인 김진숙 검사도 이런 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없을 거라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검찰의 자문과 협력을 받아도 김진숙 검사가 말하는 리얼리티를 구현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고 보면, 검찰이 ‘히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드라마 속 검사가 멋있지도 않고 유능하지도 않은, 기껏 주인공인 경찰 나부랭이의 주변에서 맴도는 주변인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검사는 누구보다 우월하며 항상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믿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심하게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오만하고 편협한 검사스런 발상이 아닐까 싶다.

서프-죽림누필

 

현직 검사가 히트에 딴지 건 이유가 단순히 리얼리티에만 있는게 아니라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게 보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