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가훈이 리멤버아프리카인이유

장봉진2007.04.04
조회19

아프리카에서 살다가 돌아온지 13일째....
짐바브웨에선 감히 한국땅에선 상상도 못할일들이 늘 언제나 일어납니다.

1. 전기

들어올때도 많지만 나갈때가 더많죠... 평일에 타운에 전기가 안들어와서
영업못하고있는 가게들 많습니다. 제일 길었던날은 종일 하루종일 전기가
안들어왔습니다. 제이수도인곳에서 만약 부산시내에 전기공급이 중단되서
1시간만 들어오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힐겁니다.
그나라에는 가스가 워낙비싸서 전기로 대부분의 요리를 하기때문에 많은
레스토랑에서 심지어 호텔 레스토랑도 전기나감 sorry 뿐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더구나 웃기는건 다들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는겁니다.
모두들 할수없지뭐... 정도로 여길뿐그러니 심심하면 전기가 나간다는겁니다.
그곳에 사는사람들 물론다들 자가 발전기를 가지고있습니다. 그래도 잘사는
사람이 100%가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70%의 사람들은 모두 전기가
들어올때까지 기다리던가 아니면 빵으로 때우던가 그것도 없다면 더 가난한
사람들은 나무로 불을지펴 싸자(아프리카인들의 주식)를 만들어야합니다.


2. 물

이또한 자원이 부족하고 이번우기엔 비도 많이 오지않아서 자주 나오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말씀을 한마디 드리자면 저희집 주변에 집도 크고
정원도 무지하게 잘되있고 그집차만 7대나되는 집이 있었습니다.
그집 게이트수리후 바닥에 마치 한국 시청앞처럼 보도블럭으로 무늬맞춰서
새단장 해놨던 터라 제가 그집의 애칭을 시청이라 불렀습니다만...
그집에 수도가 터져서 계속 새자 그집주인이 뭐라 압력을 넣었는지 저희집
까지 한블럭 전체 수도공급이 일주일동안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니 정말이지
물한바가지로 샤워하고 그물받아 화장실쓰고 그물도 감사했지요 눈물나게..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을 소중히 감사한마음으로 욕조에 모아서 일단은 밥하고
설겆이며 빨래며 화장실이며 해결해야 했습니다.


3. 물가...

물가라는 말이 무색합니다만 아주 좋은예를 든다면 이런겁니다.
슈퍼에 갔습니다. 내가사고싶은것이 있다면 그게 충분한 양으로 진열되어
있다면 주저말고 사야합니다. 1개요? 아니죠 4 ~ 5개정도는 사야합니다.
별나게 산다 하시겠지만 소금, 설탕 이런 당연히 팔아야 한는 것들조차
이렇게 안하면 파는곳이 없어 당신도 옆나라에 가야할지도 모르니까요.
옆나라가 동네 슈퍼도 아니고 소금이나 설탕 심지어 이들의 주식인 밀리밀
(옥수수가루)를 사려고 밀가루 빵가루 등등은 워낙 자주 안팔다 보니
판다고만하면 다들 사재기를 망설이지 않습니다. 백인이건 흑인이건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안파는 때가 훨씬 많은지라... 요즘은 나름 살짜기
좋아져서 잘사는 사람들은 바로 옆나라에가서 쇼핑을 해옵니다.
자동차로 8시간정도 가면 국경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지도상에 고구마 모양
으로 끼어있는 나라여서 바다도 없으니 모든 수산물은 수입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잘사는 사람이 아니면 평민들은 먹어볼 기회조차 없습니다.
정부에선 뭘하냐... 물으신다면 전 정치적인 것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잘 모르나 이런식인겁니다. 나랏님이 온다하면 그곳에 설탕 소금 밀리밀
심지어 자동차 기름까지 갑자기 확 푸는겁니다. 콜라나 스프라이트 등등
그럼 나랏님이 보기엔 늘 풍족해보인다는겁니다. 이것이 국민들의 말입니다.
다들 말하는 바가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말들을 하더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싸자와 야채 그리고 티 or 칩스에 콜라 or 콜라에 식빵
그래도 직업이 있다면 싸자와 닭고기 좀더 직업이 좋다면 싸자와 소고기
잘사는 사람의 경우 외식도 할것이고 아님 전용 요리사가 차려놓은 밥상에
앉아서 즐겁게 식사를 하겠죠...
빈부의 격차가 너무나도 심합니다.
저희 가드너 월급을 2월말 그나라돈으로 90,000 줬습니다.
이돈이면 제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닭브렌드인 난도스에서 닭 두마리만 살수
있는 돈입니다. 그러니 저희 식구가 외식을하면 저희집 가드너 월급이 된다
는 결론이 됩니다. 참고로 정부공시 공지 가드너 월급은 3000원입니다.
만일제가 저희 가드너에게 3000원을 준다면 저희집 가드너 굶어 죽을겁니다.
밀리밀도 10kg에 18000원인데 어떻게 사냐는 말입니다.
슈퍼에선 매주 가격바꾸기를 합니다. 이런식입니다.
제가 마조에라는 쥬스를(물에 희석해서 먹는 쥬스임)월요일에 3900원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수요일에 저희가게 종업원에게 가서 마조에를 사오라고
5000원을 줬는데 다시 돌아와하느말 마조에가 9500원이어서 그냥 왔다더군요
이런식인겁니다. 정부와 아무 상과없이 늘 가격은 언제나 매일이라도 올라
갈수있다는겁니다. 대한민국서 이런다면 국민들이 정부를 아주 죽일테지만
이나라 국민들은 당연히 받아들입니다. 자기들끼리도 머리를 흔들며 웃고
맙니다.
제가 너무한거 아니냐고 물으면 이들의 순박한 농담은 마담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넌 여기가 어딘지 알지 않는냐는 반문의 농담이 오갈정도였으니까요
모든 공산품 가격이 이렇게 매일 올라갑니다. 그리고 같은 제품이라도 제각
모든슈퍼에서 다른가격에 팔린다는 말씀입니다.
국가에서 가격을 내려라라고 신문에 공지하면 슈퍼들은 이렇게 합니다.
그해당 제품을 모조리 창고로 옮겨놓습니다. 그리고 팔지않는 겁니다.
그러다 흐지부지되고 그사이 슈퍼 매니져급들은 백인들에게 혹은 잘사는
사람들은 해당제품을 매니져를 통해서 사는것이고 그밖의 사람들은 하염없이
기다리는겁니다. 물건이 있을때까지....
그리고 이나라는 외화 반출금지입니다. 외화를 반출하다 적발되면 무조건 압수
돌려주는건 없습니다. 그러니 이나라에서 돈을 벌어도 숨겨서 도둑처럼 들고
나와야합니다. 아니면 다른나라에 가서 계좌를 열고 송금을 하던지요
당연히 은행에서 환전이란 단어는 꿈꾸지 마십시요. 은행시가 달러는 299원
2월말 암시장 시세가 5500원 아마 지금쯤은 6500원이나 약 7000원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암시장 시세가 많이 올를때는 하루에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약 200원에서 많을때는 1000원정도도 올라갑니다.
더 웃기는건 암시장에 돈이 없어서(경찰들이 늘 잡으러다님)돈아줌마들이 도망
다니느라 돈이 없어서 몇일씩 돈을 집에 쌓아둬야하는때도 많습니다.
은행에 입금하러갈때 정말 많이 버는 사람들은 예전 고액권이 없었을때
상자로 아님 아주 큰 여행용 가방 4개정도 가드너들 시켜서 들고 은행에
갈정도입니다. 그럼 은행은 이걸 다 세느라 한고객당 기본 1시간은 돈을
세는데에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여행용 가방에서 손가방정도로 바뀐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거 말씀드리고 싶네요.


4. 환경

아프리카는 환경은 어디든 정말로 아름다고 그 신선한 공기 아마도 죽을때
까지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넓은정원 집에있는 수영장등등 그리고 영어권
나라니 자연히 영어교육도 좋구여... 학교도 명문이 꽤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공부도 중요하지만 각종 스포츠나 여가활동에있어 전 정말
부러웠습니다. 한국에서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나 이곳에서도 그렇지만요..
그래도 환율차이로 작은비용으로 많은걸 가르칠수있다는 점이 정말이지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일단은 청소, 빨래, 설겆이등등 제가 하지않아도
가정부나 가드너가 하니 일단 제 개인적인 시간이 많죠 가게만 아니라면
골프며 수영이며 테니스등등 많은 여가거리가 있습니다.
아이를 위한 환경은 무엇보다 좋았으니까요.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아도 무엇하나 그누구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는것

누구든 아이가 가장우선이라는것 심지어 슈퍼에서도 아이들이 다칠까봐 누구든

아이들의 안전을 우선시해준다는것 아무리 피곤해도 대형마트의 종업원들이

늘 미소지으며 아이들과 눈을 맞춰주며 환한 미소를 보내주는 여유가 있다는것

언제든 어느나라 못지않게 멋진 자연환경이 그것도 세계 삼대 폭포중인 빅토리아폭포를 가진나라

하지만 그 좋은 자연을 잘 활용못하는게 좀 아쉬웠지만 정말이지 멋진 자연환경을 가진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와 뭐랄까요 따뜻함은 잊지 못할것 같아요



제가 이글을 쓴건 3월 초정도 였답니다. 

제가 그때 귀국했을때 모든것이 너무도 막막했습니다.

직장도 다시 시작해야하고 살집도없고 우리 꼬마 유치원도 보내야하는데...

뭐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거든요.....

그래도 첨에 갈때도 그랬습니다.

아프리카행 비행기를 탈때만해도 거기까지 잘찾아갈수나 있을지..

영어라고는 hello와 Thank you 밖에 모르는 우리가 가서 잘할지 막막하게 갔거든요

그래도 못하는 영어로 어느새 친구도만나고 서로 대화도 하게되고 생일파티에도 가보고

장례식장도 가보고 장지까지 가서 가족들을 위로하고 정말로 생면부지인사람들을 안아주고

마음을 위로해주고 같이 울어주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친구들도 늘어나고...

당연히 아직도 제영어 수준이야말로 초등학생수준일테지만요...

그래도 이 영어실력으로 시댁흉도 살짜기 봐가며 각국 아줌마들과 왕수다떨며 놀았답니다.

지금이야 시간이 지났으니 이렇게 웃으며 말하지만 첨엔 다들그랬습니다.

우리의 용기가 부럽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한국사람이라고는 딱 우리뿐인 나라에가서 어찌

살거냐는 질문도 많았지만요....

요즘 시끌벅적한 우리의 실정....

국익을위해 너도나도 나라걱정에 목청을 살짜기 올리고있는요즘....

다시한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대해 생각해봅니다. 
무엇하나 빠지지않는 어느나라를 가나 현대, 삼성, 엘지를 생산하는
잘나가는 대한민국 똑똑한나라 IT강국의 나라.... 나의조국 대한민국

문화, 예술, 그어떤것하나 빠지지않고 세계에서 주목받고있는 우리나라

살짜기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데.....

모두들 한숨만쉬고있는 이때에 살짜기 위쪽에 꼿힌 시선을 잠시 돌려 아래도보심

그래도 우리가 낮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런나라도 있구나 나름 대한민국이 아주 나쁜나라는 아니구나...

전에 어떤글을보니 나라를 떠야한다느니 이래서 하루에도 수천명이 이나라를 등지고 간다는데...

그래도 누군가 보긴엔 뭐하나 빠지는것없고 너무나도 부러운 그런나라입니다.

자연도 풍부하고, 먹거리, 문화, 교통수단, 삶의 질.... 까지도 빠지지않는

세계강대국들 사이에 어깨를 나란히하며 기술력으로 멋지게 승부수를 던지고있는

작은땅 대한민국이 나름 뿌듯한 나의 조국으로 다가오는 날도 있다는 겁니다.

 

짐바브웨에서 봤던 나의조국은 너무나멋진 나라였습니다.

당당하게 나 코리안이다 라고 말하며 다녔습니다.

현대, 삼성, 엘지, 대우, 기아 세계인이 알고있는 이많은 브랜드가 작지만 큰나라 대한민국

나의 조국에서 모두 만들어진다 이런 자부심으로 어깨에 힘줬던 적도있구여....

니들 메인페이지 뜨는데 20분걸리지 우리나라 2초면 다뜬다....

뭐든 한국은 없는게없다... 뭐든다 된다... 안되는게 없다...

 

하지만 멋지 나의 조국에 2% 부족한게 있더군요....

여유... 사람들에게서 조금도 느낄수없는 여유....

짐바브웨에서 다 찢어진옷을 말끔히 빨아서 입고다녀도 아무도 손가락질하지않는데...

한국에서 다들 이상한 눈초리로 볼겁니다. 아니 어떤곳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할수도 있겠구여

작은일에 감동하고 서로의 아픔을 눈물로 감싸주며 함께 울어주고 가슴아파하며

물건을 훔치다 걸리면 모든사람들에게 맞아서 죽을수도 있지만 그런일조차 이슈가 될만큼

이슈가 없는나라.... 그래도 모두 자기의 것에 적당히 만족하는나라....

큰욕심이 없는 작은것에도 나름 만족하며 사는 그런여유....

그런건 한국에서 찾을수 없던 부분이었습니다.

미소... 아파트 엘리베이터안에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했는데

이상한 눈초리로 흘겨보던 아저씨.....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냈는데 깜작 놀라는 아주머니의 대답 "나 알아 새댁?"

당연히 눈을 마주치고 서로를 향해 활짝웃어주며 시작하는 아침 누군가 인사를 건내며

안녕하세요 좋은하루 되세요라고 말해줄수있는 마음...

작은건데.... 이조차 바쁘시더라구여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포옹해주고 악수하고 서로 웃으며 저멀리서도 차돌려서 와서 인사하던 나의 아프리카는 이제 제 먼기억이 되어버릴것만같네요...

양배추 김치에 밥이라도 행복했던 나의 아프리카를 기억하렵니다.

그때의 어려움을 생각하며 지금의 작은것에 행복을 느끼고 기쁨으로 남에게 돌려주렵니다.

우리 꼬마와 코끼리등에타고 넓은 초원을 바라보며 야생동물들을 만났던 때를 기억하고

우렁찬 빅토리아 폭포를 그장관을 그 시원함을 기억하고

잠비아강위에 일몰도 일출도 기억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전기가 없고 물이없고 기름도없어서 차를 운행할수가 없어도

셋이 함께여서 좋고 가족이 함께여서 좋고 모두가 건강해서 좋고....

지금또 막막하지만 그래도 기억합니다.

힘들었던 아프리카 생활을 그럼 우린 못할게 없거든요....

살집도 없고 모든게 막막했지만 지금은 나름.....

우리 꼬마가 유치원에 다니고 한국생활에 잘적응하고

남편도 열씨미 일하고 늘 너무 열씨미 일하지만 저도 100에 벌벌떨며

작은 비용으로 식구들의 세끼를 열씨미 챙기는 억척아줌마가 되었지만

그래도 마음속의 내고향 아프리카를 생각하며 더 열씨미 살려구여....

감사하면서... 작은거에도 감사하면서 아프리카를 기억하면서

그래서 가훈이 리멤버 아프리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