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s]동대문 쇼핑 십팔사략

이창화2007.04.05
조회194
[Reports]동대문 쇼핑 십팔사략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었고, 나는 지금 한 남자와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닐 바렛의 블랙 점퍼가 썩 잘어울리는 이 남자는 생글생

              글 웃으며 나의 공격적인 언변을 잘 받아넘기고 있다. 벌써 한 시간째

              이어지는 소리 없는 검무. 솔직히 말하면 내가 밀리고 있다. '대한민국

              상위 2% 이빨'이라는 친구들의 칭찬이 부끄럽지 않게 난 대화를 즐기

              는 편이다. 대개 나의 페이스대로 이끄는 편인데, 이 남자는 만만치가

              않다. 그는 동대문 apm의 운영이사 김동석이다. 굳이 개인적인 의견을

              적는 레포트 섹션을 쓰기에 앞서 이 사람과의 만남을 추진한 이유는 이

              글에 어느 정도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함이었다. 남성 패션지

              피처 에디터라는 직업을 떠나 나는 동대문시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

              계다. 많은 지인들이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을뿐더러, 나 또한

              쇼핑몰 운영 경험이 있어 동대문시장에서 성공과 좌절의 부침을 겪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꽤 많은 옷들이 - 물론 동대문시장에서 구입한 것들 -

              내방 장농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쇼핑광이기도 하다. 남자들끼리 만나

              서 '동대문 가자'란 말은 이제 맥주한잔하자는 말처럼 흔한 대화가 되었

              다. 평소 옷깨나 잘 입는다고 주위에 칭찬이 자자한 친구도 막상 동대문

              시장에 가면 겉만 핥다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도 아니면 고작 여자친

              구 손에 이끌려 동대문을 헤매다, 그녀의 옷값만 치르고 오기 일쑤. 그런

              불쌍한 대한민국 남자들을 위해, 혹은 동대문시장의 단 1%만 구경하고

              모든 걸 정복했노라고 착각하는 남자들을 위해 나름의 동대문 쇼핑 병법

              서를 만들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첫 번째 전략은 도매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두산타워 건너편 동대문운동장 쪽 상가들이 바로 도매시장인데, 소매시장

              과는 달리 대량의 옷이 거래된다. 소매로는 팔지 않는 곳도 있지만, 도매상

              인들의 간택을 받지 못한 - 그래서 훨씬 패셔너블한 - 옷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 특히 apm3~5층과 누존6층은 숨겨진 보물이 많은 곳으로 패션 피플

              들이 손꼽는 곳이다.

              두 번째 전략은 상인들과의 대면 시 노하우.

              막 상경한 시골신사처럼 맘에 드는 옷가게 앞을 서성거린다면 십중팔구 이

              런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어디서 오셨어요?" 그때 미리 준비해둔 대로 말

              하면 된다. 나 같은 경우엔 "프렌치 가이(인터넷 쇼핑몰을 연상케하는 상호

              다)에서 왔어요"라고 말한다. 도매시장이기 때문에 어떤 소매점인지 확인하

              는 절차다.

              세 번째는 방문 시기다.

              김동석이사가 말하는, 일반 구입자가 방문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일요일과

              화요일이다.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에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도매업자들이 

              대거 방문하기 때문에 구입량이 적은 일반인들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네 번째 명심해야 할 점은 결코 상인들의 친절을 바라면 안 된다는 것.

              상점을 지나가기만 하면 손짓하며 유혹하는 소매점에 익숙해져 있다 해도

              도매 시장에선 그런 호강은 잊어야 한다. 어차피 소매 수익은 그들에게 있

              어서 빙산의 일각이기 때문이다. 티셔츠 같은 경우엔 길 하나를 사이에 두

              고 5천~1만원, 코트의 경우 3만~10만원 정도 저렴하니 어느 정도 참을수

              있지 않을까?

              다섯 번째는 도매시장은 신용카드가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반드시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이쯤에서 도.소매합쳐 20여 개에 육박하는 상가와 2만 7천여 개의 가게를

              품에 안은 패션왕국 동대문에서의 본격적인 쇼핑 노하우를 알아보자.

 

              아직도 동대문시장이 낯설다면 하루쯤 윈도쇼핑 - 제대로 된 윈도강 없으

              니 이 단어가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 을 해보자. 윈도쇼핑의 최적기는 역설

              적으로 지방 상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목요일과 금요일 오후. 가게 앞

              에 포장된 짐들이 특히 많은 곳을 중점적으로 체크해야 하는데, 그건 바로

              그곳들이 지금 현재 동대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집들이라는 반증이다.

              이걸 체크하는 것이 여섯번째다.

             일곱 번째 전략은 그날의 쇼핑 품목을 확실히 정하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광활한 동대문시장에서 미리 동선을 정하지 않고 가면 발품만 팔고

              헛수고하기 일쑤다. 또 널린 가판대 때문에 백화점보다 쇼핑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패셔너블한 트렌드를 따라잡고 싶다면 apm몰을,

              겨울을 맞이해서 가죽 제품을 사고 싶다면 광희사장 2층을 그리고 

              OEM방식(이 경우 대부분 진의가 의심스럽지만)의 해외 유명브랜드를

              장만하고 싶다면 누존6층이나 제일평화시장을 권한다.

              여덟 번째 기억해야 할 것은 도매시장에선 옷을 입어볼 수 없다.

              이 말은 곧 자신의 사이즈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환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충동적인 구매는 금물이다.

              아홉 번째 필승 전략은 잡지에서 나오는 트랜드를 참고하라는 것이다.

              가게 대부분이 소비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연예인이 입고 나온

              사진이나 카피한 캣워크 사진을 걸어놓는데, 이 경우 지난 컬렉션

              사진이 많고 잘못된 정보를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열 번째 유의할 점은 도매시장의 경우 입어보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

              워낙 많은 옷들이 있기 때문에 봉제 상태가 불량인 것들도 종종 있다.

              귀찮다고 대충 집어들었다가 집에 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열한 번째 필살기는 단골가게 만들기다.

              쇼핑몰하는 지인 하나쯤 수소문해 그의 단골가게를 가라. 사람 기억

              하기로는 동대문 상인들이 최강이기 때문에 혼자 방문했을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은 접어도 된다.

              열두 번째 전략은 카피 의상 전문과 창작 의상 전문집을 구별해야

            한다는것.

              김동석이사의 말에 따르면 상당수 동대문 가게도 이젠 자신들의 라벨을

              붙여 생산한다고 한다. 내셔널 브랜드에서 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 셈이다.

              물론 단가가 높아지는 단점은 있지만, 그런 집들일수록 멋진 옷이 많다.

              열세 번째는 심플한 옷을 고르라는 것이다.

              동대문 시장에 가면 유독 스타일이 '쎄'보이는  옷이 많다. 아래래도

              디자이너의 의도를 어설프게 따라잡으려는 상인과, 트렌드에 부합하는

              옷을 싸게 사려는 소비자의 욕구가 맍아 떨어진 결과물이다. 좋은 옷일

              수록 완벽한 실루엣을 자랑한다. 그래서 실루엣이 좋지 못한 옷들은

              디테일로 약점을 감추려고 한다. 하지만 과도한 디테일은 싼 옷을 더

              싸보이게 만드는 역효과만 낼 뿐이다.

              부자재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 열네 번째다.

              동대문 쇼핑의 성패 여부는 바로 싸 보이지 않는 옷을 사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때 가장 '싼티'가 나는 것이 바로 싸구려 부자재다. 특히

              지퍼와 단추 등을 유심히 살펴봐야 하며, 디자인은 좋은데 부자재가 너무

              형편없다면 동대문 종합 시장 1층에 들러 맘에 드는 걸로 교체한다.

              열다섯 번째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상가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쇼핑 감각을 믿는다면 광장시장 내의 2층 상가를 추천한다.

              코를 찌르는 퀘퀘한 옷 냄새와 좁은 골목은 최악의 쇼핑 환경이지만,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옷들과 거저라는 표현이 맞는 옷값을 보면 금세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쇼핑팁은 상인들이 정산 때문에 현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흥정이 쉬운 토요일 오후에 가서 스키니 팬츠 차림의 고등

              학생 집단을 따라다니라는 것. 그들이 가는 곳이 복잡한 광장시장 내

              최고로 감각적인 가게일 확률이 높다.

              열여섯 번째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광장시장에서 산 옷은 사자마자

            반드시 세탁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세탁값도 옷값에 포함시켜야 한다. 특히 가죽 제품은 자칫

              피부병을 옮길수도 있으므로 주의한다. 3만원짜리 가죽 블루종을 샀다가

              세탁비로 10만원을 날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디터의 조언이니

              꼭 참고할 것.

              열일곱 번째 특급 비밀은 유명스타의 단골집 리스트.

              차승원은 apm3층 '블루보이'. 조인성은 제일평화시장3층에 위치한

              빈티지 숍 그리고 조승우는 같은 제일평화시장의 '빈티지 환'이란

              가게를 자주 간다고 한다.

              마지막 열여뎗 번째 전략은 많은 패션 칼럼니스트가 입이 닳도록

            말하는 믹스앤매치.

              머리에서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하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머리에서

              발끝까지 동대문 제품을 애용하는 것도 보기에 가히 좋지는 않다.

              브랜드와 동대문 제품을 적당히 매치하는 것이야말로 동대문 쇼핑에서

              실패하지 않는 지름길이다.

 

              지금까지 동대문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옷을 살수 있는 방법에 대해

              나름대로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쇼핑에는 왕도가 없다. 굳이 하나를

              든다면 열심히 발품을 팔라는 것이다. 가장 미련한 짓은, 한두 곳 들어

              옷을 덜컥 사버리는 것. 많이 돌아다는 새가 먹이도 많이 줍는 것은

              고금의 진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ports]동대문 쇼핑 십팔사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