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위의 나무위로 올라앉은 내 몸이 흔들거리자, 난 한팔으로 손을 뒤로 돌려 머리 위로 등 뒤의 나무를 잡으려니 몸이 뒤뚱 뒤뚱 좌우로 흔들거렸다. 또 한팔로는 아길 꼭 안아야 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날 나는 도박에서 이겼다
What?
화학부대 옆의 돼지막사에서 아들과 내가 자는데 불이 난게 4월 30일,
그런지 3개월 14일 만이었다
Po Chun Gun 낭떠러지로 안내하는 사진사는 파파라치 출신? 내 아들과 나의 생명을 담보로 한 사진 한장, 도박은 스릴이 있따. 역시 한미 FTA의 긴장감은 쥑여준다. 국민의 미래를 담보로 한 도박이었다. 국민은 위기에서 이겨낼것이다. 너도나도 박대통령님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풀뿌리반상회의 반장이 된다면!
아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의 위협과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엄마, 저기..봐요. 아래로 떨어지면 둘다 죽어요."
라고 몸으로 말하는듯 아들은 첨이며 끝으로 완강히 버티었다.
5개월짜리는 말을 못한다. 몸을 빳빳이 세우고 경직된 자세로 서 있고. 내 품안에서 빠져나가려는 아들의 몸을 꼭 붙잡고 있다.
절벽위의 나무위로 올라앉은 내 몸이 흔들거리자, 난 한팔로 손을 뒤로 돌려 머리 위로 등 뒤의 나무를 잡으려니 몸이 뒤뚱 뒤뚱 좌우로 흔들거렸다. 또 한팔로는 아길 꼭 안아야 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혹여 절벽아래로 던져질까봐 아래로 안 던져지게 할려고... 엄마의 두 손이 안닿게 하려는 자세다. 생존본능이었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이겨냈던 자세의 아들의 사진 한장이 앨범에 있었다....... 아들은 엄마를 못믿어서였을까? 그런데 지금 사진을 보니, 아들이 버티고 있어 준 덕분에 우리는 안전했다.
아들이 만약 울거나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였다면, 절벽아래로 우리 둘은 추락했을 것이다. 그 뒤의 비스듬하게 뉘어져 있는 나무는 혼자서 걸터앉기도 매우 위험스런 나무였다. 사진사는 대대장이 이미경 유시민 정부학장의 친척인 줄을 모르고, 일본 오사가조폭의 위협때문에 우리 가문을 짓밟으려는 것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날 절벽위에 올라앉으라며...
아길안고 사진을 찍자고 절벽위에 우릴 올ㄹ라앉으라고 주문했었다..., 이미 1달전에 사진사는 대대장이 시킨대로? 사전답사를 한 뒤로.... 10분후, 모자가 죽지 않고 만난 대대장은 어두운 얼굴로 고민 중... 대대장 사모님이 "이쁜 사람이 있었네 "라고 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듯 했다. 그 날 개구리를 잡았는지 구워먹더라는...
' 내가 개구리같이 나약한 짐승에 불과했더란 말인가?'
내가 죽뻗은 개구리 신세가 될뻔 했다는...
사진사랑 죽이 맞았든지...남편을 꼬여서
군대에 침투한 야쿠자라면 서 자신사일까? 누굴까? 사진사가 꼬였든지...사진사가 대대장을 꼬였든지. 1985년 당시 11월 25일에 나에게 생각ㅇ 있어요 라는 말을 그 사진사에게 들었었다. 당시 .. 하긴 저 주문에 응할정도면 면식범이지 않겠나 조작된 소문이라는 둥...내부고발자에 대한 심판을 어제 밤 7시에 무조건 해고하였던. 자의 손을 들어준 법원판결...뉴스가 터져 나오기에 정치권으로 확장된 포천사건임이 느껴졌 다
정치판이 갑자기 저 믈살처럼 쏜살같이 요동치다니 함악한 느낌 하긴 저 주문에 응할정도면 면식범이지 않겠나
한미 FTA 는 도박이다...
My sun whose age is 5 months.
나의 아들은 5개월
14th July 1987 year, at Po Chun gun in Koung Ki Do.
1987년 7월 14일 포천군 경기도 ...
I would be falled over a precipice. if I lived without LORD's blessing.
만약 신의 축복이 없었다면, 나는 절벽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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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는 도박이다...
인생도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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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위의 나무위로 올라앉은 내 몸이 흔들거리자,
난 한팔으로 손을 뒤로 돌려 머리 위로 등 뒤의 나무를 잡으려니 몸이 뒤뚱 뒤뚱
좌우로 흔들거렸다.
또 한팔로는 아길 꼭 안아야 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날 나는 도박에서 이겼다
What?
화학부대 옆의 돼지막사에서 아들과 내가 자는데 불이 난게 4월 30일,
그런지 3개월 14일 만이었다
Po Chun Gun 낭떠러지로 안내하는 사진사는 파파라치 출신?
내 아들과 나의 생명을 담보로 한 사진 한장,
도박은 스릴이 있따.
역시 한미 FTA의 긴장감은 쥑여준다.
국민의 미래를 담보로 한 도박이었다.
국민은 위기에서 이겨낼것이다.
너도나도 박대통령님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풀뿌리반상회의 반장이 된다면!
아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의 위협과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엄마, 저기..봐요.
아래로 떨어지면 둘다 죽어요."
라고 몸으로 말하는듯 아들은 첨이며 끝으로 완강히 버티었다.
5개월짜리는 말을 못한다.
몸을 빳빳이 세우고 경직된 자세로 서 있고.
내 품안에서 빠져나가려는 아들의 몸을 꼭 붙잡고 있다.
절벽위의 나무위로 올라앉은 내 몸이 흔들거리자,
난 한팔로 손을 뒤로 돌려 머리 위로 등 뒤의 나무를 잡으려니 몸이 뒤뚱 뒤뚱
좌우로 흔들거렸다.
또 한팔로는 아길 꼭 안아야 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혹여 절벽아래로 던져질까봐 아래로 안 던져지게 할려고...
엄마의 두 손이 안닿게 하려는 자세다.
생존본능이었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이겨냈던 자세의 아들의 사진 한장이 앨범에 있었다.......
아들은 엄마를 못믿어서였을까?
그런데 지금 사진을 보니, 아들이 버티고 있어 준 덕분에 우리는 안전했다.
아들이 만약 울거나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였다면,
절벽아래로 우리 둘은 추락했을 것이다.
그 뒤의 비스듬하게 뉘어져 있는 나무는 혼자서 걸터앉기도 매우 위험스런 나무였다.
사진사는 대대장이 이미경 유시민 정부학장의 친척인 줄을 모르고, 일본 오사가조폭의
위협때문에 우리 가문을 짓밟으려는 것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날 절벽위에 올라앉으라며...
아길안고 사진을 찍자고 절벽위에 우릴 올ㄹ라앉으라고 주문했었다...,
이미 1달전에 사진사는 대대장이 시킨대로? 사전답사를 한 뒤로....
10분후, 모자가 죽지 않고 만난 대대장은 어두운 얼굴로 고민 중...
대대장 사모님이 "이쁜 사람이 있었네 "라고 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듯 했다.
그 날 개구리를 잡았는지 구워먹더라는...
' 내가 개구리같이 나약한 짐승에 불과했더란 말인가?'
내가 죽뻗은 개구리 신세가 될뻔 했다는...
사진사랑 죽이 맞았든지...남편을 꼬여서
군대에 침투한 야쿠자라면 서 자신사일까? 누굴까?
사진사가 꼬였든지...사진사가 대대장을 꼬였든지.
1985년 당시 11월 25일에 나에게 생각ㅇ 있어요
라는 말을 그 사진사에게 들었었다.
당시 ..
하긴 저 주문에 응할정도면 면식범이지 않겠나
조작된 소문이라는 둥...내부고발자에 대한 심판을 어제 밤 7시에 무조건 해고하였던. 자의 손을 들어준 법원판결...뉴스가
터져 나오기에 정치권으로 확장된 포천사건임이 느껴졌
다
정치판이 갑자기 저 믈살처럼 쏜살같이 요동치다니 함악한 느낌
하긴 저 주문에 응할정도면 면식범이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