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할 수 밖에 없는 남자

이선우2007.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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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할 수 밖에 없는 남자

 

오늘 인터뷰를 네 번 했다고 들었다. 하루에 다섯 번이나 하는 인터뷰, 질리고 물리겠다. 영화 홍보를 위한 인터뷰라서 질문도 비슷할텐데, 괜찮나?

- 하기로 약속한 거니까 재미있다고 계속 생각한다.

 


 반복해서 들은 질문이라 더 이상은 싫은 것이 있다면 말해라. 안 묻겠다.

- 어떤 인터뷰를 해도 "뭐 재미있는 에피소드 없나?" "어떻게 하게 됐나?" 같은 질문이 가장 많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은데 에피소드는 별로 없을 수밖에 없다. 일부러 에피소드를 만드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없으면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뭐 없나?" 할 땐 좀 그렇다.

 


 묻는 사람이 당신을 불친절하다고 느끼겠다.

- 친절하게 말한다. 미안하기도 하고. 힘들었던 점이 있냐는 질문도 그렇다. 나는 사실 힘들지 않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안 한다. 힘들었더라도 조금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또 더 힘든 사람 많이 있는데 뭐가 힘드나 한다. 힘든 게 아니라 재미있는 거야, 운동하는 거야, 노는 거야라고 다른 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안 힘들다. 이번에 하면서 엄지가 뒤로 꺾이고 인대가 늘어났다. "고생 많이 하셨죠?" 하는데 나한테는 고생이 아니었다. 이 영화 하면서 두세 군데 부러지고 입원하고 그럴 줄 알았으니 고생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없으면 없다, 고생이 아니면 아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종종 오해를 받기는 하지만.

 


 오해 받은 적 있나?

- 영화 같은 경우에 많은 사람들이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 다툴 수도 있는데, 그럴 때 싸우다 보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발전적인 싸움이 아니라 감정적인 문제가 되면 곤란하다.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면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 그쪽의 문제다. "너, 변한 거 같다"그러면, 그렇게 말한 사람이 변한 거다. 모르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면 변했다고 하는 것 같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전부를 몰랐던 것이다.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해를 하나? 이해는 불가능한 일이다. 난 널 이해해? 웃기지 말라고 하고 싶다. '알 것 같아' 정도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이해와 가장 비슷한 거 아닐까?


 이해가 불가능하다면 이렇게 맘 놓고 솔직한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 인정하면 쉽다. 이해가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다. 솔직한 것도 인정하고 아닌 것도 인정하고. 생각의 차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바뀐다. 세상이 바뀐 것에 내가 변하려면 힘들다. 아내에게서도 새로운 것을 보면, 이런 면이 있었네, 한다.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게 있을 수 있다. 그게 맞다.

 


 솔직한 게 힘들지 않나?

- 아니다. 솔직한 게 힘이 된다. 결국에는 '정의'가 승리한다.

 


 이번에는 정의의 승리인가? 인터뷰마다 교육적인 명제를 말한다. 어느 인터뷰에서는 "최선을 다하면 다 된다"고 말했던데, 최선을 다하면 다 되나?

- 물론 안 되는 것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된다.

 


 당신은 그래서 배우가 아니라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가?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 물론이다. 끝까지 가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가봤다는 것은 정상을 의미하나?

- 아니, 과정의 끝을 말하는 것이다. 계획부터 창작물을 만들기까지의 전반을 해 본 사람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것은 직업을 여러 번 바꿔 보고 난 후에 든 생각인가?

- 누구나 그렇지만 나는 누구인가? 뭐가 될까? 그런 질문에 스스로 답이 안 나왔다. 이름도 못 남긴 것 같고. 왜 사는 건가? 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죽어야겠다, 했다. 시도도 해 보고.

 


 정말 시도도 했나?

- 안 해본 사람 있나? 죽어야지 마음 먹고 지내던 그때가 포토그래퍼로 일할 때였는데, 자동차 사고가 심하게 났다. 자동차 반 토막이 날아가는 엄청난 사고였다. 앞 덤프 트럭이 순식간에 다가오는데 그 순간 슬로 모션으로 살아온 풍경이 정말 눈앞에 펼쳐졌다. 그 찰나에 말이다. 영화와 똑같았다. 그런데 살았다. 함께 있던 스튜디오 실장과 나 모두 멀쩡했다. 자동차가 이렇게 되었는데 다친 사람이 없냐고 앰뷸런스 기사가 황당해했다. 그러고는 바로 근처 식당에서 소주를 마셨다. 얼이 빠져서였는지 소주 네 병이 완전히 맹물이었다. 밥집 아줌마가 혹시 사고났냐고 사람이 죽었냐고 물었다. 낮에 여기 와서 낯선 사람이 술을 먹을 땐 사망 사고가 있을 때라며 참 다행이라고 했다. 식당에서 나왔는데 그 와중에 봉고차가 뒤집혀서 할머니와 애가 죽어 실려가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실장님, 우리가 할 일이 남았나 봐요." 그때부터 열심히 살았다. 진짜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좋아해주고 그러다 오늘인 것이다. 분명히 내가 살아온 이유가 있고 살아갈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오늘 걸어가다가 간판이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 죽음도 삶의 한 순간이라 생각하면 하나도 두렵지 않다. 자주 말한다. 죽으면 어떻게 하라고, 시신도 기증하고, 뭐 이런 식으로.

 


 가족 생각은 안 하나?

- 내가 죽으면 이 가족이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준비해 줄 뿐이다. 그리고 말한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나 자신보다, 내 이미지대로 살아야 하는 게 배우라는 직업의 윤리일 수도 있다. 그럴 때 나와 내 이미지가 상이하다면 힘들 것 같다.
- 술을 좋아하니까 술 먹고 실수할 수도 있고, 뭐 똑같다. 하지만 이미지가 있으니까 나를 믿고 광고 모델로 선택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참는다. 잘못하지 않았어도 잘못했다고 넘어간다. 처음엔 스트레스였지만 계속 참다보니까 익숙해진다. 종교는 없지만 신의 존재는 믿으니까 이렇게 생각한다. '신이 나를 정말 사랑하셨구나. 올바로 살라고 요소요소에 별 장치를 다 해놓으셨구나'하고.

 

 

 뼛속까지 긍정적인 것, 부모님의 영향인가?
- 어머님의 굉장한 분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하루는 "담배 피냐? 술은 마시냐? 여자친구는? 당구는?" 하고 물으시는 거다. 실제로 하나도 하고 있는 게 없어서 다 아니라고 했더니 "너는 사내 새끼도 아니다"라고 하시더니 다음날 어머니 친구 딸과 사귀라며 데려오신 분이다. 천원 달라면 이천원 주셨고, 십만원 달라면 이십만원 주셨다. 왜 더 주냐고 물으면 남자는 그래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다 십만원 달라는 데 오만원 주신다 하고, 내일 달라고 했는데 모레 주시겠다고 하는 날이 왔다. 아버님 사업이 기울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내가 더 벌어드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대중이 외면하는 시기가 온다면 바로 다른 직업을 취할 건가?

- 물론이다. 배우는 정말 좋은 직업이고 평생 직업이라 생각하지만 더 이상 원하지 않는 배우가 된다면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방에 있는 금속 공예 관련 책을 봤다. 벌써 바꿀 준비를 하는 건가?

- 취미 생활이다. 50대에 하고 싶은 거 준비하는 거다. 공예, 디자인, 사진 등. 머물러 있거나 생각이 멈춰 있으면 가라앉는 느낌이 많아서 새롭게 반성하고 실천하고 그런다.

 


 정말, 어떻게 살고 싶나?

- 내 좌우명은 '착하게 살자'인데 이것을 들으면 대체로 되게 웃는다.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착하게 사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인데, 사람들이 웃는 것 보면 맥 빠진다. 진짜 힘들다. 착하게 사는 것은.

 


 당신은 정말 착한 남자인가?

- 좋은 남자다. 좋은 남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남자.

 

 

 

- From < GQ Apri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