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 "독재 증오해 "박정희 찬가" 거부"

곽중현2007.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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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 "독재 증오해 "박정희 찬가" 거부"


"그의 (음악 생활) 절정기인 1972년 어느 날 아침, 한 통의 치명적인 전화가 그의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청와대의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은 그에게 기분 나쁜 목소리로 박정희 찬가를 만들도록 강요했다."

가 4일(현지 시각) 은퇴 기념 전국 순회 공연에 나선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씨의 굴곡 많았던 인생을 집중 조명하면서, 그의 인생에 정치가 개입하기 시작한 순간을 이렇게 전했다.
그가 미국 언론의 조명을 받은 것은 7월 인터넷 판에 이어 두번째이다.
한국의 아티스트가 미국 유력지 2곳으로부터 소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 록 음악의 선구자로 살아온 그의 음악 인생에 대한 미국 언론의 찬사인 셈이다.


신씨는 '한국 록의 대부 재기하다'라는 제목의 와 인터뷰에서 "청와대 요청을 정중하게 거부하자, 10분도 못 돼 이번에는 공화당 인사가 명령을 내렸다"면서 "나는 정치가 재미 없었고, 단지 독재 정권을 증오했기 때문에 다시 (박정희 찬가 작곡을)거부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자신이 마약 소지 혐의로 구속된 것도 박정희 찬가 작곡 거부와 연관이 있다고 믿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신씨는 한국의 월남전 참전에 항의한 미국 히피들에게서 마리화나와 엘에에스디(LSD) 같은 마약을 소개 받아 한 동안 복용했으나, 곧 마약이 자신의 음악 활동을 방해하는 것을 깨닫고 이내 끊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한국전 직후 미군 부대에서 '재키 신'으로 출발한 신씨가 은퇴 공연을 통해 기나긴 음악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신문은 전쟁과 군사 독재 시절을 거쳐 새로워진 한국 사회가 그를 당황하게 하고 다소 실망시키는 면도 없지 않지만, 그 속에서 그와 그의 음악이 재발견되고 있다면서 '한국 록의 대부'가 되기까지 화려하지만 힘들었던 그의 인생사와 음악 인생을 전했다.
이 신문은 최근 후배 가수들의 헌정 앨범 발표하면서 그의 음악이 재평가 받고 있지만, 그의 잃어버린 시간은 경제적인 면을 포함해 그에게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