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추천

박숙영2007.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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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추천


마음이 공허한 사람에게,

쉽게 우울해지거나 외로워지는 사람들에게

성당을 추천한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성당을 다녔다.

흔히 모태신앙이라는 건데_

솔직히 부모님이 아니었으면 성당에 가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웃기지 않는가 종교라는 것 자체가.

더구나 2000년도 전에 죽은 서양 남자를 신으로 모신다니.

 

하지만 확실히 사는데 도움이 된다.

가족들이 날 지금까지 생존하게 했고

힘들때면 친구들이 내 마음을 잘 다독여 주었지만,

비오면 잠 못자고 새벽에 비맞고 다니던-

'씨랜드'사건처럼 마음아픈 일이 있을 때면 학교도 안가고 몇일동안 울기만하던

 

지나치게 감성적인 사춘기를 보낸 나에게는

가장 큰 삶의 버팀목이었다.

 

야자 땡땡이 치고 성체조배실 가서

기도도 안하면서 성서 배고 자기도 잘했고,

신부님 방을

삼촌 집 가는 것처럼 가서 얘기도 나누고 짜장면도 얻어먹고..

그랬었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하면 큰일나겠지만

난 확실히 성당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동네마다 있는 성당, 처음 가는 사람에겐

 주일미사를 추천한다.

보통 일요일 오전 10시~10시반쯤 가면 되는데.

 

가서 그냥 1시간 앉아 있으면 된다.

 

성당은 노래소리나 악기소리가 울리도록 지어진다.

가서 노래만 듣고와도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예배당 뒤쪽에 배치되어있는 성가책 보고

조금씩 따라불러도 좋고(악보 다 그려져 있다)

 

성당에 대한 작은 오해가 몇 가지 있다.

성모마리아랑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

 

성모님은, 예수님 엄마여서 예수님이랑 가장 가까운 '인간'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대신 기도좀 해달라고 부탁드리는거다.

기도빨이 제일 잘 먹힐 테니까.

 

성당에 많이 있는 동상, 그거 그냥 가난한 사람들 보기 편하라고 만들기 시작한것이다.

 

신앙을 전파할때, 보이는 것이 제일 단순하고 쉬우니까_

그걸 우상 숭배라 얘기하면 곤란하지.

 

그리고 제사 지내는거 , 절하는것,

따지다 보면 끝도없이 논란의 대상이겠지만

조상이 신이 아닌 것쯤은 알잖아?

문화의 코드라 받아드린거고, 조상님을 길이기위해 인사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면 안되나?

싫으면 안하면 되는거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성당 한번 오시라.

입맛대로 가자면 토요일 오후에 어린이미사도 있고

일요일 오후엔 청소년미사, 저녁엔 청년미사도 있다.

어린이미사 재밌고,

청소년 미사에는 또래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며

청년미사는 반주가 신난다. 노래도 아는 노래가 많을 테고..

 

가슴 절절하게 기도하고 싶으면 교회도 좋다.

난 그냥 모르니까 그쪽은....성당을 추천하는 거지,

 

성당에 오면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사 시간, '평화의 인사'라는 이벤트도 있고.

 

참고하라고 미사의 순서를 워드로 첨부하였다.

 

아 그리고, 다음은 저번주 주보(미사안내문..?)에 나온 글이다.

 

동감해서 실는다.

 

 

용서한다고 해서 그 사건을 잊어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그 일을 잊어버린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사건이 계속해서 잊혀지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용서를 못하고 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일들이 덜 생각나도록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용서한 후에 과거의 사건을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용서와 잊음'은 비슷한 말이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괴로움을 주는 행동을 잊는다는 것은 그 행동이 계속되고 있을 때 특히 어렵다. 고통스럽고, 불쾌한 일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용서는 가능하다. 잊어버리지 못한다고 해서 용서를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용서한다고 해서

모든 고통이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용서하려고 하지만 그때의 고통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용서하자마자 바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고통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내가 받은 상처를 더 솔직하게 바라보고 그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으로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때부터 고통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치유는 계속되는 과적이다. 고통이 남아있다고 해서 내가 아직도 용서를 못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지 말라.

 

 

용서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옳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어떤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 그 사람은 옭고 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정폭력의 희생자라면, 나의 용서는 결국 나를 학대한 사람이 옳았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 용서에 대한 이런 잘못된 생각은 용서 할 수 있는 능력을 방해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잘못했어도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고, 내가 잘못한 것이 없어도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도 용서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루가23,24참조)

 

 

용서는 빚을 청산하는 것과 같다.

 

용서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나에게 이것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용서는 치유받기 원하는 상처와 같다. 이 상처는 치유될 것이다. 그러나 상처의 상흔은 남는다. 그러나 상처의 고통에 대한 기억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나의 상처를 볼 때마다 대단히 큰 고통을 당했던 기억나겠지만, 그 상처는 단지 기억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용서이다.

 

-인천교구 가정상담센터 한의열 요셉 신부



첨부파일 : 미사 순서.d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