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금단의페트 - promise - Chapter 5-1

홍한석200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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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페트(The forbidden pet) -

[애니, 소설 보러 오세요^ - ^]

이 름 배진국

제 목 금단의페트 - promise -
 
 
 
 
 학교에서 제일 구석진 어느 낡은 교실 안이다. 창고로 쓰고
 있는 모양인지, 잡동사니 같은 것이 교실 안에 엉망으로 널브
 러져 있어서 조금은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해온다. 그 여학생
 둘은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편해 보이는 의자를 나에게 권해
 주며 자신들도 의자에 몸을 묻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천천
 히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음, 베리는 서클 정해둔 거 혹시 있어?"
 엘리라고 불려지던 소녀가, 크고 시원해 보이는 눈을 빛내며
 그렇게 나에게 질문했다. 물론 당연히 식당 일 하기에도 바쁜
 내가 서클을 들었을 리는 만무하다.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그
 렇게 '아뇨.'라고 대답했다.
 "일단 소개부터 하자. 내 이름은 엘리자베스 타르니안이라
 고 해. 그냥 편하게 엘리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어."
 엘리자베스라… 그러고 보니 집에 놔두고 온 엘리자베스가
 생각나는군. 내가 없어도 집 잘 지켜주었으면 좋겠는데. 쓸쓸
 하다고 날 원망하고 있는 건 아니런지 모르겠네.
 "어이, 이봐 무슨 생각해?"
 엘리의 옆에 있는 소녀가 얼굴을 갸우뚱거리며 나에게 말했
 다. 남이 말하고 있는데 다른 생각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지.
 내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사과하자, 그녀가 괜찮다는 미
 소를 하며 입을 열었다.
 "뭐, 내 이름은 리체라고. 그리고 같은 나이 같은데 존칭
 쓰면 어색하지도 않은 거냐? 나는 그런 거 딱 질색이니까 그
 냥 말 트자고."
 굉장히 털털한 성격인가 보군. 하여튼 나는 나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반 아이들 전부에게 존칭을 사용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도 했지만, 나는 그
 냥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전 이게 편하니까 괜찮습니다… 그리고, 서클에 관해서 말
 씀하시고 싶으신 거 같은데, 아닌가요?"
 둘은 정곡에 찔렸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잠시 후 조
 금은 어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나와 엘리는 서클을 하나 만들려고
 하고 있거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베리가 우리 서클에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서클이라. 생각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건상 불가능할
 듯 싶은데 말이야. 나는 잠시 고개를 숙이며 생각을 하다가,
 조금은 슬픈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렇게 입을 열었다.
 "여건상 불가능할 것 같군요.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도 없고, 잘 활동할 자신도 없으니까요."
 리체는 그런 나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음, 서클을 한 군데도 들지 않는다면 성적에 감점 대상이
 되는 거 알고 있는 거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도 그
 냥 놀고 먹기 편하기 위해서 서클을 만드는 거라고. 나와 엘리
 는 모르겠지만, 너는 그냥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좋으니까 그냥 가입만 해주었으면 좋겠어."
 음, 나쁜 조건의 이야기는 아니군 그래. 일단 성적에 마이너
 스를 받지 않아서 좋다. 제대로 활동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까 그냥 확 가입해 버릴까? 내가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엘리가 조금은 기합이 들은 목소리로 그렇게
 입을 열었다.
 "일단 나중에 마음에 들지 않으며 퇴부하더라도 뭐라고 하
 지 않을 테니까 가입 좀 해줘. 내일까지 서클 신청서를 제출해
 야 되는데 인원이 부족하단 말이야. 여학생들은 다 선별했고,
 남학생들에게는 부탁하고 싶지도 않다고."
 남학생이 가입하기에는 조금 이상한 뉘앙스가 느껴지는 그
 런 서클인가 보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부이기에, 그런 것입니까? 서클 이름
 이 뭐죠?"
 내 질문을 듣더니 갑자기 두 소녀는 조금은 안색을 굳히며
 그렇게 대답하기 주저하는 기색을 보였다. 대체 무엇이기에?
 설마, 무슨 나쁜 목적을 계획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그렇게
 궁금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잠시 후에 리체가 무엇인가 험악
 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미소년 사랑 동호회."
 
 * * *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거의 폐점 시간이 다가올 무렵에, 대걸레질을 하고 있는 나
 를 바라보며 아이린 씨가 그렇게 질문했다. 내색치 않으려고
 했지만, 나는 생각하고 있는게 표정으로 비치는 타입인가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숨 쉬며 대걸레질을 계속하자 아
 이린씨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곧 주방
 안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학교 생활이 굉장히 고달파질 수
 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너에게 손해 되는 일이라고 생
 각지 않으니까. 좋은 결정 내려주기 바래. 일단 내일까지 시간
 을 줄 테니,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당황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순식간에 그 둘은 자리
 에서 일어나고는 문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생각해 보니, 정말 일방적인 권유잖아. 좋게 생각하려고 해
 도 조금은 억울하기도 하고 말이지.
 ".. .."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시아 녀석이 노엘을 안아 들고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만지기만 하려고 해도 그렇게
 죽기 살기로 저항했었던 노엘 녀석은 이상하게도 시아에게만
 은 얌전했었던 것이다.
 일 년 동안 먹여주고 재워준 주인에게는 저렇게 포악하게
 굴더니, 시아 녀석에게는 저렇게 얌전하다니, 정말 은혜도 모
 르는 싸가지없는 고양이 녀석이다.
 저녁때가 되어서인지 굉장히 피곤하고 졸린 눈이다. 나도 피
 곤하기는 했지만, 청소를 끝마치고 검술 연습하고 숙제도 해야
 되는데 말이지. 하여튼 저렇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으면, 청
 소에 집중할 수가 없잖아.
 "졸리면 방에 가서 자."
 조금 더 시간을 끌고 나를 바라보더니, 곧 시아 녀석은 아이
 린 씨의 손에 이끌려 반 강제로 자신의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평소보다 검이 가볍군.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기르디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나
 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숨이 턱까지 차 올랐기 때문에 대답
 하기조차 힘이 들었지만, 나는 간신히 숨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 .."
 사정은 들은 기르디의 표정은 참으로 애매모호했다. 비웃기
 는 해야 할 텐데 간신히 참고 있는 표정이라고 할까? 잠시 후
 나는 땅바닥에 누워 있는 상태를 유지하며 그런 기르디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해야 되죠?"
 기르디는 그런 내게서 시선을 돌리며, 말없이 식당 쪽으로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런 녀석에게 해결 방안을 듣는다
 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저렇게 아무
 말 없이 사라져 버리다니 조금은 약이 오르기 시작한다. 나중
 에 늙으면 두고 보자고. 시설 후진 양로원을 구해서 처박아 버
 릴 테니 말이야. - 세상에서 제일 심한 욕 중에 하나라고도 하
 며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에라이, 늙어서 죽을 놈아.' -
 으윽, 하여튼 짜증 나는군 그래. 다 좋은데 왜 하필 '미소년
 사랑 동호회'인 것이냐!! 차라리 하프링, 드워프 사랑 동호회라
 고 하면 이해를 하겠다! - 이종족에게 평등하게 대하자, 어쩌
 고 변명은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잡념을 떨쳐 내기 위해 나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그렇
 게 쓰러지듯이 잠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교 시간이다. 가방에 책을 집어넣으며, 집으로 돌아갈 준
 비를 하고 있는 나에게 갑작스레 누군가 다가와 그렇게 질문
 했다.
 "결정은 내렸냐?"
 리체라고 하는 소녀였던가,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
 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입부하겠습니다."
 리체, 그리고 어느새 다가왔는지 엘리는 내 대답을 듣고는,
 흐뭇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환영해.', '잘
 지내보자.' - 그 말에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빨
 을 가는 나였다. -
 하여튼 기어이 입부 신청서까지 받아내고는, 그 둘은 발걸음
 도 가볍게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교실
 에서 나는 그렇게 허탈한 눈으로 창밖에 비치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졸지에 변태가 되어버린 기분이군. 젠장, 요새는 왜 이렇게
 안 좋은 일들의 연속인가? 겹경사, 줄초상이라고 하더니 그 말
 이 딱이다.
 하여튼 나는 그렇게 대충 책을 가방에 쑤셔 넣으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식당 일을 하기 전에, 방으로 올라간 나는 책을 펼쳐 놓고
 조만간 있을 시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시험은 이제 일주일
 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처음인 만큼 더욱더 열심히 노력
 해야 한다. 남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말이다.
 요즘 들어서는 정말 하루는 너무 짧다고 불평할 만큼, 할 일
 도 많고 시간도 부족했다. 그렇다고 하나라도 포기할 수는 없
 는 것들이다. 식당 일을 하지 않는다면 기르디에게 쫓겨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학교에서 쫓겨날 테고,
 그렇다고 검술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 2학년 때부터
 는 실기와 실전 위주다. 1학년 때는 이론이 더 비중이 크지만
 말이다. - 더 고생을 할 테니 말이다.
 머리 좋다는 소리는 자주 듣기도 했지만, 일단은 뭐든지 열
 심히 노력해야지 대가가 있는 법이지. 도둑질도 해본 놈이 잘
 한다고, 자주 열심히 이렇게 공부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리고 일단 이 학교의 수준이 수준인 만큼, 대충대충 했다가는
 어중간한 성적도 거두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공부하는 책의
 난이도도, 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어렵고 복잡했다.
 전에는 눈으로 대충 여러 번 읽은 다음, 그 의미를 생각해 보
 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였지만, 요새 공부하
 는 것들은 그렇게 대충했다가는 이해는 커녕 머리만 더 아파
 오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이나 마법, 역사 쪽에 관련된 것들이었
 다. 그만큼, 전에 책을 열심히 읽기도 했고, 지식도 대충은 밝
 은 것들이어서, 웬만큼 공부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
 이라 예상되었다.
 하지만 예법이라던지 전술과 진형, 기사도, 같은 것들은 정
 말 취미도 맞지 않고, 지식도 거의 전무하다고 말할 정도로 부
 족했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점수가 나
 올지도 모르겠다고 통감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레이디에게 할 수 있는 예법에 대해서 서술하시
 오.'라던지, '다음 중, 자신의 주군에게 해서는 안되는 일은 무
 엇일까요?'같은 문제들 말이다. - 소위 열심히 교양 떠는 일이
 다. 내 단순 무식한 성격에는 거리가 먼 것들이기도 하다. -
 취미가 맞지 않는다고 해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 년 동안 반에서 아마 평균 성적이 10
 위권 안이면, 자동 진학의 특혜가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나머
 지 학생들은 담임 선생의 '공정한' 심사에 거쳐서, 진학의 유
 무가 결정된다고 했다. - 말이 좋아 공정한 심사지, 집안 배경
 이 좋고 성적이 그렇게 나쁘지만 않는다면, 3학년 때까지는 그
 냥 진학한다고 들었다. -
 하여튼 나 같은 경우는 반에서 10등 안에 들지 못한다면, 자
 동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한 반에는 대충, 30명 정도의
 학생이 수업을 들으니까 그렇게 힘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일
 단은 하는 데까지는 해보는 게 중요하다. 일단 성적이 우수하
 면 여러 가지 특혜가 주어진다고 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공부를 끝마치고 나는 옷을 갈아입은 후에, 식당을
 향해 털레털레 걸음을 움직였다. 계단을 내려와 보니, 시아 녀
 석이 열심히 쪼르르-하고 달려가며,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일단 아직은 별로 손님이 그렇게 많아 보
 이지는 않았지만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대가 되면, 인간들이
 밥을 먹기 위해 득실득실거릴 것이 분명하다.
 나도 그렇게 펜과 메모지와 메뉴 판을 장비하고, 천천히 테
 이블 사이를 누비며,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어이, 이쁜이! 여기 맥주 두 잔 부탁해!"
 단골 손님들이란 것들은 슬슬 내 얼굴에 익숙해지면서, '이
 쁜이'라던지 하는 극악한 별명으로 나를 부르기 시작했던 것
 이다. 맨 처음에는 얼굴이 저절로 붉어 오를 정도로 창피했지
 만, 이제는 뭐 무덤덤한 상태였다. 듣기 싫었지만 참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복수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
 그렇게 부르는 손님에 음식에는 소금이 왕창 들어가 있다든지,
 맥주의 양이 다른 손님의 비교해서 현저하게 그 양이 적다는
 것 같은 사소한 문제들은 제외하기로 하자. -
 역시 익숙해진 만큼, 처음과 달리 음식이 뒤바뀐다거나, 바
 닥에 떨어트린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너무
 실수를 자주해서, 기르디에게 매일마다 구박을 들었을 정도였
 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 일도 체력을 늘려주는데, 한몫을 했다는 것은 부
 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무거운 음식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
 다니는 것은 엄청난 체력 소모이었던 것이다. 영업이 끝날 무
 렵에는, 땀이 온몸을 뒤덮을 정도로 쏟아져 있었고, 다리는 걷
 지도 못할 정도로 후들후들거리는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 그
 래도 처음에 비하면 요즘은 체력이 늘어서, 조금은 쌩쌩하기도
 했다. -
 하여튼, 내가 온 덕분에 이득이 본 것이 있다면, 일단은 식
 당에 단골 손님이 묘하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평민이라는 신분
 의 벽에도 불구하고 카이리온 기사 양성 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부터 손님들은 날 조금은 안스
 럽게 여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이다. 그리고, 간혹 가다가 아이린씨나 시아를 통해서 팬레터
 가 오기도 했었다. 보잘것없는 내가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일단은 그래도 조금 흐뭇한 것도 사실이었다. 비록
 다 교제를 거절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
 
 장사가 끝나고, 식당 문을 닫을 무렵이다. 나와 아이린 씨,
 그리고 기르디 녀석은 정말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 시아
 녀석은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
 아무 말 없이, 밥만 먹는 것도 지겨운 나머지 나는 아이린
 씨를 바라보며 전부터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사실을 질문
 했다.
 "시아를 낫게 해준 사람은 누구죠?"
 나는 그때 정신을 잃듯이 잠에 들어버렸으니까 말이다. 그렇
 게 심하게 발작을 하던 아이를, 한순간에 낫게 해줄 정도니까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말을 들은 둘은, 조금은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말하기가
 껄끄러운 모양인 것인가? 한참을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아이린씨는, 포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굉장히 심각한 표
 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대로 이야기 해주길 바라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르디는 음식을 먹다 말고 의자에서
 일어나서는 자리를 피해주었다. 아마도 그만큼 심각한 일인가
 보다. 아이린씨는 조용히 한숨 쉬고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시아는 인간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마법 생명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얼마 살지도 못할 꺼야… 길어봐야,
 몇 년이겠지."
 아이린 씨의 눈은 서서히 물기에 젖기 시작한다. 나는 그녀
 가 한 말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에 멍청하
 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한참의 적막 후에 서서
 히 그녀는 그렇게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엄청난 고통… 매일마다, 그렇게 설령 어른이라고 해도 참
 지 못할 그런 고통을 겪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멍청하게 우리
 중 누구 하나 알아채지 못한 거야."
 천천히 방울체, 테이블 위에 그녀의 눈물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고통이라니? 인간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그것은 저주받은 과거의 마법의 결정이지. 마법이 굉장히
 발달했던 고대에서만 존재하던, 그런 것들… "
 고대의 것들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인간이 아니더라도
 좋아. 하지만, 왜 죽어야 하는 거지?
 "무슨 소리하는 거죠?"
 "믿지 못하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사실이다. 증거로
 그녀는 모든 마나의 성질을 무시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설령
 화염구(fire-ball)에 직격으로 맞는다고, 그 아이는 죽지 않을
 꺼야."
 머리 속은 한없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소설에서나 나올 법
 한 이야기들의 나열이다. 이런 것들을 나에게 믿으라고 강요하
 는 것인가?
 "매일마다 잠들지 못할 정도로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거야.
 하지만 나는 눈치 채지 못했어. 그냥 잠이 없는 아이라고만 생
 각했던 거야. 가끔씩 슬픈 미소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도… 그
 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어."
 가끔씩 침대에 숨어 들어오는 것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다
 는 미소 지으며, 얄밉게 말하는 것도… 왜 나는 알아채지 못했
 을까. 시아는 나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눈치 채주었으면 하
 고 언제나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언제나 '힘들다'
 라고 불평할 때도, 웃으며 미소 지어주었던 그녀의 마음은 어
 떤 것이었을까. 적어도 나보다, 백 배는 아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괴로웠을 텐데.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 왜 말하지 않았을까요. 나 같은 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
 을 정도로 괴로웠을 텐데."
 이를 악물고,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느새 눈물은 방울체
 그렇게 떨어져 내려 옷을 적시기 시작한다. 남자는 울면 안되
 는 건데… 바보같이 이렇게 울면 안되는 건데 하고 생각하지
 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아직 철 들지도 않은 아이니까.
 "죽기에는 아직 너무 어려요. 좀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데… "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저주스러워서 그렇게 참지 못할
 정도로 부끄럽다. 소중한 사람도 살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
 게 기사가 된다고 그렇게 노력하는 것인가. 다 쓸모 없는 일이
 다.
 아이린 씨는 조용히 다가와, 그런 나를 두 팔로 감싸 안아주
 었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그녀의 셔츠를 다 적
 실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고는 쓰러지듯이 잠에 드는 수밖에
 없었다.
 
 "방법은 없는 것인가요."
 침대에 누워 그렇게 천장을 바라본다. 전에 살던 집과는 비
 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깔끔한 디자인의 천장. 물방울,
 아니면 다이아몬드 같은 기하학적인 무늬들의 나열이다. 말을
 했지만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과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해. 그분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자신이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자학
 적인 톤이 묻어나는 대답이다.
 휴일이었기 때문에 학교에는 가지 않아도 되었다. 전날 밤,
 조금은 한심스럽게 울었던 그날의 기억을 생각하니, 왠지 아이
 린 씨에게 조금은 쑥스럽기도 하다. 나보다 더 마르고, 가냘픈
 그녀의 품 안에서 그렇게 슬프게 울었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
 문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만큼, 나는 근성없고 한심한 녀석은 아니다. 설령 불
 가능하더라도, 1%의 가능성이 있다면 해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 하지만 찾아봐야지, 남은 시간 동안."
 한참의 시간을 그렇게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던 그녀는, 그
 래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급한 대로 손을 썼으니, 당분간은 괜찮을 꺼야."
 나를 위로하려는 듯, 아이린 씨는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웃음
 을 지은 체, 천천히 말하며 침대 위에 놓여진 내 한 손을 잡아
 주었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져 왔기 때문에 그래도 조금은 마
 음이 가벼워져 오기 시작했다.
 순간 갑작스레 문이 열리고 누군가 급히 내 방문으로 뛰쳐
 들어왔다. 시선을 돌리자, 시아 녀석이 미소지은 얼굴을 한 체,
 고양이 노엘을 품에 안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아는 나와
 아이린 씨를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인상을 굳히기 시작했다.
 ".. .."
 혹시 또 몸이 아픈 것인가? 당혹스러운 마음에, 이불을 걷어
 차고 빠르게 침대에 일어나서 녀석에게 다가갔다. 인상을 굳히
 고 있던 녀석은 내가 갑작스레 뛰쳐 나와오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조금은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어디 아프니?"
 갑작스러운 질문에 멀뚱히 날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면, 왜 그런 표정으로
 날 바라본 것인가. 내가 궁금하게 여기기 전에 녀석이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내리며,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어
 색한 침묵이 방 안을 감돌기 시작했다. 눈치없는 노엘 녀석만
 시아의 품에서 그렇게, 냐옹-거리며 울고 있을 뿐이다. 시아는
 힘겹게 천천히 작은 입술을 열었다.
 "다른 사람하고 그렇게 손잡고 있는 게 싫어."
 "뭐?!"
 내가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아이린 씨가 옆에서
 쿡쿡-거리며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시아는 무어라 더 말
 하고 싶어했지만, 그런 아이린 씨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
 를 푹하며 숙이고는 얼굴만 붉힐 뿐이었다.
 이거 웃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울어야 하는 건가. 막상 무
 엇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아이린 씨의 목소
 리가 귓가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용기 내어서 고백한거라구, 그 마음 고맙게 받아줘야지.』
 마법의 일종인가? 하여튼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고맙
 게 받아주라는 말의 의미는 알겠는데, 대체 내가 무슨 대답을
 해야 한다는 거냐! 대충 쉽게 쉽게 대답하고는 싶은데, 그랬다
 가는 저 눈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골칫 덩어리 녀석이 상처받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충 긍정적인 감정이 묻어나는 말을 해
 야 할 듯 싶은데 말이다. - 그렇다고, '이제는 시아하고만 손
 잡을게.'하고 대답 해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
 저 녀석, 의외로 질투심(..)이 강한 성격이었구나. 평소에는
 얌전하게만 있어서 느끼지 못했지만 말이다.
 "으응…. 나도 시아가 좋아."
 크아아악! 왠지 말해놓고도 이상하다. 저 녀석이, 동생으로서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좋은 건 사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여
 튼, 내 대답이 적절한 것이 맞는 모양이었는지 시아는 고개를
 들고는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무
 엇인가 단어 선택의 실수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은 거 같
 다. 하지만, 말이라는게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일단 저렇게 좋아하는 거 같으니 말이다. 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녀석은 한참을 그렇게 쑥스러워하며 좋아하더니, 노엘 녀석
 을 땅에 내팽겨치고는 살짝 내 품에 안겨왔다. 그 모습을 옆에
 서 쿡쿡거리며, 아이린씨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
 에, 무엇인가 후회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