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하탄 중심 47st 7th Ave있는 우리한민족의 문화예술공간 세븐스타 공연장이 없어질 위기에 쳐해있어 이렇게 멀리 까지 도움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뉴욕 최초로 작년 9월에 계관을 하여 아쉽게도 이번달에 문을 닫게된 세븐스타 공연장에서는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예술을 널리 알리고 매주 무료공연을 하며 한인
사회나 멀리 나아가서 세계인들이 즐기고 배울수 있는 좋은 문화 공간 이었습니다.
전 부모님을 따라 11살때 뉴욕으로 이민와서 자란 1.5세입니다. 한국문화와 예술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고 배우지도 못하였습니다. 바쁜 뉴욕생활 중에서도 짧게 몇달이나마 세븐스타 공연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국문화를 즐기며 배울수 있었습니다.
공연을 본 저의 많은 미국친구들은 공연이 끝나도 한동안 입을 못다문채 서있기가 일쑤였고
그런 표정을 보는 저의 마음속에서는 나는 대단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생각과 뭔지 모를
자랑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지난주 일요일 마지막 공연을 보고 나오며 너무나도 아쉬운 마음에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힘들게 차려논 밥상을 빼앗기듯이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예술이 자리를 빼앗기는것같아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고 저려 우리라도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동안의 재정문제는 대표님의 사비로 들어갔으며 여러 무용수님들의 무보수 공연과 많은 자원봉사자님들의 도움으로 끌어왔으나 이제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몇일전 이사실을 알고 한국에서 많은 어린 학생들이 저금통을 털어 오천원,만원씩 모아5000불이라는 성금을 전달받기도 하였답니다.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20000불이라는 큰 산이 있다고 합니다. 10일안에 그 렌트비를 내지 못할경우 쫗겨나듯이 나오셔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민생활 많이 힘드시고 어려우신 점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부탁 드립니다. 우리가 도와줘야 합니다.
우린 한국사람 입니다.
그 어렵다는 IMF도 장농속에 있던 금을 팔아가며 이겨왔고 월드컵 경기 응원할때 우리나라 국민처럼
그렇게 하나가 되어 응원한 역사가 없다고들 합니다. 도와주세요.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예술 전통을 우리가 지켜나아가야 합니다. 이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뉴욕의 세븐스타 국악 공연장 대표 권칠성입니다. 작년 9월에 브로드웨이 타임스퀘어에 개관하여 우리 음악을 홍보해 오던 이 공간이 지금 임대료 연체로 폐관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그동안 공연장 식구가 글을 써서 올린 적도 있었고, 전혀 관계 없는 분이 게시물을 올려 도와 주신적도 있었습니다. 말주변도 없고 아는 거라곤 장구 밖에 없는 저이지만 대표로서 네티즌 여러분께 직접 속사정을 말씀 드리고 도움을 요청하고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2000년 미국에 유학 준비를 하러 왔다가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을 갔습니다. 워낙 물을 싫어하는 저인데, 그 웅장함과 거대함… 그리고 폭탄이 터지는 듯한 그 소리가 저를 전율케 했습니다.
‘X발 여기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도전할 곳은 이곳이다!’
그리고 곧 제가 단장을 맡고 있던 “뜬쇠 사물놀이패” 후배들과 함께 다시 뉴욕으로 왔습니다. 오자마자 저는 10년 안에 맨하탄에 국악 전용 극장을 개관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2년치 공연이 줄을 서, ‘무언가 되겠다’ 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9.11이 터지고 예약되었던 공연이 모두 취소되고 만 것입니다.
영어도 안되고, 생활 적응 안되고, 텃새싸움에, 사람 매장시키는 유언비어에, 갈피를 못 잡는 저는 매일 술과 살았습니다. 아내가 배가 불러 있을 때도, 딸을 출산했을 때도, 전 계속 밖으로 돌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술 한잔 하고 새벽에 집에 들어왔는데, 딸아이가 안자고 혼자 깨어 양 발을 쭉쭉 차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쳐다보니 눈만 똥그랗게 뜨고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처음 아빠와 눈이 마주 친 순간이었습니다.
숨이 멈추는 듯한 기분과 함께 콧등이 시큰해져 왔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눈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아빠로서 너무나 부족한 제 자신을 보았고, 딸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도 안 통하고, 무시당하며 있는 제 처지에 견딜 수 없이 화가 났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했습니다.
그 동안 사물놀이 하면서 영어 잘해서 외국으로 공연 다닌 것도 아니었고 좋은 학교 나와서 VIP 대접 받은 것도 아니었고 잘생겨서 무대에서 박수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장구였습니다. 장구야 말로 바로 제 생활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장구로 미국을 바꾸자.’ 자신이 생겼습니다.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라면 “강한 나라”, “큰 나라”. 우리는 “당하는 나라”, “작은 나라”. 답답했습니다.
그러면 멀리 보자.
이놈들에게 우리 소리를 알려주자. 그래서 우리 무시 못 하게. 그렇게 시작한 것이 미 중, 고교 사물놀이 클럽 결성 프로그램입니다.
가르치는 김에 똑똑한 놈들만 가려서 가르치자. 이런 이유로 악기를 기증할 제 1호 학교를 미국 명문 공립 고등학교인 헌터 고등학교로 점 찍었습니다.
술, 담배를 끊고 돈을 모아 사물놀이 악기를 구입해서 학교에 기증하고 무료 강습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공짜로 가르쳐준다고 해도 미국 학교에선 받아주지도 않고 무시했습니다. 서류 작성해 와라.. 비디오 자료 좀 보자…
그래 두고 보자. 악착같이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후 1년 6개월 후,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전 흐뭇했습니다. 지금은 학교를 대표하는 음악 서클이 되었습니다. 다른 학교에도 초청되어 가고, 유럽에 가서도 공연하고.. 지금은 뉴저지 릿지우드 고등학교, 맨하탄에 스타이브슨트 고등학교에 까지 서클이 생겼습니다.
영어도 못하는 제가 어떻게 가르치냐고요? 전 한국말로 가르칩니다. 가르치는 방식도 한국식으로 소리 빽빽 질러가며 가르칩니다. 인사도 꼬박 꼬박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시킵니다. 한국인 2세가 반, 외국 아이들이 반 정도인 헌터 고등학교 사물놀이 클럽 아이들은 지금 아리랑까지도 한국말로 정확하게 노래합니다.
2005년엔 해외에선 처음으로 뉴욕 메츠 구장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했습니다. 제가 가르친 100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100명 어린이 사물놀이 단이요.
하지만 우리가 강해지는 것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미국 내 한국인의 입지는 날로 향상 되가는 추세였지만 더 큰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힘들 거라는 것이 제 추측이었습니다.
처음 뉴욕에 왔을 때 계획한 공연장을 구체화할 시기가 된 것 입니다. 전 그때까지 중간 중간 시련이 닥쳐와도 공연장만 상상하면 가슴이 뛰고 힘이 솟았습니다. 이렇게 준비하여 2006년 9월에 이 공연장을 개관하면서 제 원래 계획보다 6년을 앞당긴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어렵게 운영되어 오면서 단체로 거하게 삼겹살 한번 대접하지 못한 자원봉사자 분들과 보수 없이도 기꺼이 시간과 정열을 내어준 예술단원 분들… 여러 사람들 고생시킨 거 생각하면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럼 이렇게 될 거 왜 저질렀냐고요?
정부도 안하고, 기업도 안하고, 아무도 안 해서 제가 했습니다.
제가 전혀 아무 자금 계획 없이 무작정 터뜨린 것은 아닙니다. 공사비 와 1년 동안 조달할 자금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내부 공사를 하면서 모든 것이 망가졌습니다. 관광 특구 라는 특수성 때문에 일단 공사하는 것 자체가 아주 복잡하고 비용도 다른 곳의 3배, 많게는 5배 가량 들었습니다. 건물주의 무관심으로 지붕에선 매일같이 비가 새고, 애기만한 콘크리트 천장이 무너져 내리질 않나.. 말도 안 되는 법이 통하는 타임스퀘어…
저는 사실 이미 2004년부터 공연장 계획서를 만들어 정부에, 기업에 제출하여 지원을 요청했지만 그 당시 답은, “좋은 일인데 장소도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후원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타임스퀘어에 공간을 임대한 후 다시 계획서를 제출 하였더니, 이번 대답은 “공연장 유지비로는 지원 할 수 없다”였습니다.
당연하지요… 누가 유지비 달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공연 단체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공연, 더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공연 프로그램을 지원해 달라 했습니다.
이번에 날라온 대답은 “나라에 돈이 없습니다.”
김명곤 장관께, 노무현 대통령께도 편지도 했고, 전화도 했고, 홍보부장이 면담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 당했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흑백을 가리지 못하면 이것 또한 죕니다.
뉴욕 문화원은 형평성을 들먹거리며 후원을 꺼려하고.. 문화원장들은 뉴욕 와서 현지 파악을 하고 간다 하지만, 그렇게 둘러보기만 해서 국가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저희는 2003년에 뉴욕 주정부에게서 허가 받은 비영리단체입니다. 후원 없이는 절대 자생할 수 없는 성격의 단체입니다. 미국엔 수많은 비영리 간체가 있지만 대표가 사비를 들여가며 하는 단체는 별로 없습니다. 있는 사람들은 사회에 환원하는 마음으로 후원하고,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운영을 하고… 그래서 미국이 선진국인 것입니다.
혼자 이끌어 왔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후원 문화가 있어야 사회가 아름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원에서 작년에 총 400만원을 후원 받았습니다. 근래에 200만원을 지원해 준다는 것을 정중히 거절하고 왔는데, 부대표 님께서 받아오셨습니다. 저는 “문화원 회식비로 보태 쓰시라고 하지 그러셨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저 어이가 없었습니다.
저와의 수 차례 미팅을 통해, 현재 공연장 폐관위기 상황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문화원에서 지원해준 액수가 총 600만원이라니요…
현재 폐관을 막기 위해 4월 11일까지 내야 하는 돈은 2500만원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 있는 한 사람 없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억대의 큰돈도 아닌데, 왜 이리도 힘든지…
도움이 필요합니다. 간절합니다.
한 일본 사업가는 눈을 부릅뜨고 이 공연장을 사려고 물밑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한테 넘기면 전 돈이라도 남습니다. 지금 하루에도 몇 통씩 걸려오는 카드회사의 독촉 전화라도 끝낼 수 있습니다.
이 극장 살리지 못하면 저 그냥 이대로 나머지 빚 (10년 입대를 계약했으니 몇 억짜리 빚이 되겠네요)을 다 안고 쓰러질 생각입니다. 차라리 저 같은 한 사람 쓰러지는 꼴을 보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후원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손을 걷어 부치고 문화의 밭을 갈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물려줄 정신적 유산은 없습니다.
멀리 보아야 합니다.
1997년, 29살이었던 저는 당시 최고로 꼽혔던 KBS 국악 경연 대회에서 대상을 목표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습니다. 배고프고, 피곤하고, 몸놀림이 마음대로 안 될 때는 정말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그럴 때면 전 대상을 타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 상상만 하면 눈물이 났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다시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뉴욕의 국악 공연장 살리자구여~!!
위편지들은 사람들이 후원금과 함께 보낸 응원의 메세지와 카드래요..
공연장싸이트에서 펌질..
그리고 다음글은 LA한인회게시판에 한 교민분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뉴욕 맨하탄 중심 47st 7th Ave있는 우리한민족의 문화예술공간 세븐스타 공연장이
없어질 위기에 쳐해있어 이렇게 멀리 까지 도움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뉴욕 최초로 작년 9월에 계관을 하여 아쉽게도 이번달에 문을 닫게된 세븐스타 공연장에서는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예술을 널리 알리고 매주 무료공연을 하며 한인
사회나 멀리 나아가서 세계인들이 즐기고 배울수 있는 좋은 문화 공간 이었습니다.
전 부모님을 따라 11살때 뉴욕으로 이민와서 자란 1.5세입니다.
한국문화와 예술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고 배우지도 못하였습니다.
바쁜 뉴욕생활 중에서도 짧게 몇달이나마 세븐스타 공연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국문화를 즐기며 배울수 있었습니다.
공연을 본 저의 많은 미국친구들은 공연이 끝나도 한동안 입을 못다문채 서있기가 일쑤였고
그런 표정을 보는 저의 마음속에서는 나는 대단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생각과 뭔지 모를
자랑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지난주 일요일 마지막 공연을 보고 나오며 너무나도 아쉬운 마음에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힘들게 차려논 밥상을 빼앗기듯이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예술이 자리를 빼앗기는것같아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고 저려 우리라도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동안의 재정문제는 대표님의 사비로 들어갔으며 여러 무용수님들의 무보수 공연과
많은 자원봉사자님들의 도움으로 끌어왔으나 이제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몇일전 이사실을 알고 한국에서 많은 어린 학생들이 저금통을 털어 오천원,만원씩 모아5000불이라는 성금을 전달받기도 하였답니다.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20000불이라는 큰 산이 있다고 합니다.
10일안에 그 렌트비를 내지 못할경우 쫗겨나듯이 나오셔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민생활 많이 힘드시고 어려우신 점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부탁 드립니다.
우리가 도와줘야 합니다.
우린 한국사람 입니다.
그 어렵다는 IMF도 장농속에 있던 금을 팔아가며 이겨왔고 월드컵 경기 응원할때 우리나라 국민처럼
그렇게 하나가 되어 응원한 역사가 없다고들 합니다.
도와주세요.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예술 전통을 우리가 지켜나아가야 합니다.
이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http://www.yourktcc.org
1212-764-2999
다음 글은 공연장 대표님이 홈페이지에 직접 남긴 글입니다..
뉴욕의 세븐스타 국악 공연장 대표 권칠성입니다.
작년 9월에 브로드웨이 타임스퀘어에 개관하여 우리 음악을 홍보해 오던 이 공간이 지금 임대료 연체로 폐관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그동안 공연장 식구가 글을 써서 올린 적도 있었고,
전혀 관계 없는 분이 게시물을 올려 도와 주신적도 있었습니다.
말주변도 없고 아는 거라곤 장구 밖에 없는 저이지만 대표로서
네티즌 여러분께 직접 속사정을 말씀 드리고 도움을 요청하고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2000년 미국에 유학 준비를 하러 왔다가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을 갔습니다.
워낙 물을 싫어하는 저인데, 그 웅장함과 거대함…
그리고 폭탄이 터지는 듯한 그 소리가 저를 전율케 했습니다.
‘X발 여기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도전할 곳은 이곳이다!’
그리고 곧 제가 단장을 맡고 있던 “뜬쇠 사물놀이패” 후배들과 함께 다시 뉴욕으로 왔습니다. 오자마자 저는 10년 안에 맨하탄에 국악 전용 극장을 개관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2년치 공연이 줄을 서, ‘무언가 되겠다’ 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9.11이 터지고 예약되었던 공연이 모두 취소되고 만 것입니다.
영어도 안되고, 생활 적응 안되고, 텃새싸움에, 사람 매장시키는 유언비어에, 갈피를 못 잡는 저는 매일 술과 살았습니다. 아내가 배가 불러 있을 때도, 딸을 출산했을 때도, 전 계속 밖으로 돌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술 한잔 하고 새벽에 집에 들어왔는데,
딸아이가 안자고 혼자 깨어 양 발을 쭉쭉 차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쳐다보니 눈만 똥그랗게 뜨고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처음 아빠와 눈이 마주 친 순간이었습니다.
숨이 멈추는 듯한 기분과 함께 콧등이 시큰해져 왔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눈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아빠로서 너무나 부족한 제 자신을 보았고,
딸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도 안 통하고, 무시당하며 있는 제 처지에 견딜 수 없이 화가 났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했습니다.
그 동안 사물놀이 하면서
영어 잘해서 외국으로 공연 다닌 것도 아니었고
좋은 학교 나와서 VIP 대접 받은 것도 아니었고
잘생겨서 무대에서 박수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장구였습니다.
장구야 말로 바로 제 생활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장구로 미국을 바꾸자.’
자신이 생겼습니다.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라면 “강한 나라”, “큰 나라”.
우리는 “당하는 나라”, “작은 나라”.
답답했습니다.
그러면 멀리 보자.
이놈들에게 우리 소리를 알려주자. 그래서 우리 무시 못 하게.
그렇게 시작한 것이 미 중, 고교 사물놀이 클럽 결성 프로그램입니다.
가르치는 김에 똑똑한 놈들만 가려서 가르치자.
이런 이유로 악기를 기증할 제 1호 학교를 미국 명문 공립 고등학교인 헌터 고등학교로 점 찍었습니다.
술, 담배를 끊고 돈을 모아 사물놀이 악기를 구입해서 학교에 기증하고 무료 강습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공짜로 가르쳐준다고 해도 미국 학교에선 받아주지도 않고 무시했습니다. 서류 작성해 와라.. 비디오 자료 좀 보자…
그래 두고 보자.
악착같이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후 1년 6개월 후,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전 흐뭇했습니다. 지금은 학교를 대표하는 음악 서클이 되었습니다. 다른 학교에도 초청되어 가고, 유럽에 가서도 공연하고.. 지금은 뉴저지 릿지우드 고등학교, 맨하탄에 스타이브슨트 고등학교에 까지 서클이 생겼습니다.
영어도 못하는 제가 어떻게 가르치냐고요?
전 한국말로 가르칩니다.
가르치는 방식도 한국식으로 소리 빽빽 질러가며 가르칩니다.
인사도 꼬박 꼬박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시킵니다.
한국인 2세가 반, 외국 아이들이 반 정도인 헌터 고등학교 사물놀이 클럽 아이들은 지금 아리랑까지도 한국말로 정확하게 노래합니다.
2005년엔 해외에선 처음으로 뉴욕 메츠 구장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했습니다. 제가 가르친 100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100명 어린이 사물놀이 단이요.
하지만 우리가 강해지는 것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미국 내 한국인의 입지는 날로 향상 되가는 추세였지만 더 큰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힘들 거라는 것이 제 추측이었습니다.
처음 뉴욕에 왔을 때 계획한 공연장을 구체화할 시기가 된 것 입니다. 전 그때까지 중간 중간 시련이 닥쳐와도 공연장만 상상하면 가슴이 뛰고 힘이 솟았습니다. 이렇게 준비하여 2006년 9월에 이 공연장을 개관하면서 제 원래 계획보다 6년을 앞당긴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어렵게 운영되어 오면서
단체로 거하게 삼겹살 한번 대접하지 못한 자원봉사자 분들과
보수 없이도 기꺼이 시간과 정열을 내어준 예술단원 분들…
여러 사람들 고생시킨 거 생각하면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럼 이렇게 될 거 왜 저질렀냐고요?
정부도 안하고, 기업도 안하고, 아무도 안 해서 제가 했습니다.
제가 전혀 아무 자금 계획 없이 무작정 터뜨린 것은 아닙니다.
공사비 와 1년 동안 조달할 자금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내부 공사를 하면서 모든 것이 망가졌습니다.
관광 특구 라는 특수성 때문에 일단 공사하는 것 자체가 아주 복잡하고 비용도 다른 곳의 3배, 많게는 5배 가량 들었습니다. 건물주의 무관심으로 지붕에선 매일같이 비가 새고, 애기만한 콘크리트 천장이 무너져 내리질 않나.. 말도 안 되는 법이 통하는 타임스퀘어…
저는 사실 이미 2004년부터 공연장 계획서를 만들어
정부에, 기업에 제출하여 지원을 요청했지만 그 당시 답은,
“좋은 일인데 장소도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후원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타임스퀘어에 공간을 임대한 후 다시 계획서를 제출 하였더니,
이번 대답은 “공연장 유지비로는 지원 할 수 없다”였습니다.
당연하지요… 누가 유지비 달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공연 단체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공연, 더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공연 프로그램을 지원해 달라 했습니다.
이번에 날라온 대답은
“나라에 돈이 없습니다.”
김명곤 장관께, 노무현 대통령께도
편지도 했고, 전화도 했고, 홍보부장이 면담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 당했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흑백을 가리지 못하면 이것 또한 죕니다.
뉴욕 문화원은 형평성을 들먹거리며 후원을 꺼려하고..
문화원장들은 뉴욕 와서 현지 파악을 하고 간다 하지만, 그렇게 둘러보기만 해서 국가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저희는 2003년에 뉴욕 주정부에게서 허가 받은 비영리단체입니다.
후원 없이는 절대 자생할 수 없는 성격의 단체입니다.
미국엔 수많은 비영리 간체가 있지만 대표가 사비를 들여가며 하는 단체는 별로 없습니다. 있는 사람들은 사회에 환원하는 마음으로 후원하고,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운영을 하고… 그래서 미국이 선진국인 것입니다.
혼자 이끌어 왔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후원 문화가 있어야 사회가 아름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원에서 작년에 총 400만원을 후원 받았습니다. 근래에 200만원을 지원해 준다는 것을 정중히 거절하고 왔는데, 부대표 님께서 받아오셨습니다. 저는 “문화원 회식비로 보태 쓰시라고 하지 그러셨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저 어이가 없었습니다.
저와의 수 차례 미팅을 통해, 현재 공연장 폐관위기 상황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문화원에서 지원해준 액수가 총 600만원이라니요…
현재 폐관을 막기 위해 4월 11일까지 내야 하는 돈은 2500만원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 있는 한 사람 없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억대의 큰돈도 아닌데, 왜 이리도 힘든지…
도움이 필요합니다.
간절합니다.
한 일본 사업가는 눈을 부릅뜨고 이 공연장을 사려고 물밑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한테 넘기면 전 돈이라도 남습니다.
지금 하루에도 몇 통씩 걸려오는 카드회사의 독촉 전화라도 끝낼 수 있습니다.
이 극장 살리지 못하면 저 그냥 이대로 나머지 빚 (10년 입대를 계약했으니 몇 억짜리 빚이 되겠네요)을 다 안고 쓰러질 생각입니다.
차라리 저 같은 한 사람 쓰러지는 꼴을 보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후원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손을 걷어 부치고 문화의 밭을 갈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물려줄 정신적 유산은 없습니다.
멀리 보아야 합니다.
1997년,
29살이었던 저는 당시 최고로 꼽혔던 KBS 국악 경연 대회에서
대상을 목표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습니다.
배고프고, 피곤하고, 몸놀림이 마음대로 안 될 때는 정말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그럴 때면 전 대상을 타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 상상만 하면 눈물이 났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다시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원하던 대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전 믿습니다.
염원하면 꿈은 이루어 진다는 것……
전 굳게 믿습니다.
2007년 4월 5일
권칠성 드림.
4월9일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688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