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인생

양재오200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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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인생


글. 양재오


며칠 전 소식 하나 들었다. 누가 악성 림프종(암)에 걸렸는데 그 상태가 가볍지 않아 치유가 어렵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이미 난치병(難治病)의 정도를 넘어서 거의 불치병(不治病)이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이와 같은 소식을 듣는 일이 그리 낯설지 않다. 이쯤에서 내 주변을 잠시 둘러보면 내 가족이나 친지가 아니더라도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서 암으로 투병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누가 암(癌)에 걸렸는데 그것이 말기(末期)라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죽는 날까지 그와 같은 질병(疾病)의 발병(發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지금은 단지 내가 아니라 그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퍼뜩 떠오르는 생각은 지금 불치의 암에 걸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모두 외면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공유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시한부(時限附) 인생이라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말기 암으로 투병중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다른 점을 하나 든다면, 한 쪽은 그 죽음의 그림자를 좀 더 가까이에서 또렷하게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대체로 자신의 죽음의 그림자를 그리 실감하지 못하고 죽음이 지금 자신과 상관없는 먼 훗날의 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교통이 발달한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利器) 가운데 하나인 자동차나 선박 그리고 비행기 같은 교통수단이 어떤 경우에 그것을 이용하는 우리 자신을 죽이는 흉기(凶器)로 쉽게 둔갑하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예고되지 않은 각종 사고에 노출된 우리 모두가 설령 직접 그런 불행한 사고로 목숨을 잃지 않는다 해도, 결국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시한부 인생이다.


어디 그뿐인가?  갑작스레 닥치는 태풍, 지진이나 해일 그리고 홍수나 화재 같은 재해는 그것이 인공적인 것이든 자연적인 것이든 단숨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끔찍한 재앙인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죽음을 맞이할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는 정황들을 목격하기도 한다.


어제만 해도 밝은 꿈을 꾸며, 장래를 미리 보장 받은 듯이 내일을 향하여 전력질주 하던 사람이, 오늘 병원에서 진찰 결과 불치의 말기 암에 걸렸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았을 때, 그것은 그에게 일종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죽음은 단지 먼 미래에 다가올 막연한 그 무엇으로 여기고, 미래에 대한 꿈과 장래에 성취할 그 어떤 포부를 지니고 앞만 보며 살아온 그는 말기 암이라는 자신의 현실에 당면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뭔가 잘못된 진단일 거라 여기며 한동안 혼란에 직면할 것이다.


결국 어떤 점에서 시한부 인생이라는 자신의 현실을 수긍하게 되면서, 그 때 머지않아 맞이하게 될 자신의 죽음의 때를 좀 더 또렷이 의식하게 되고, 지나온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보는가 하면, 결국 자신이 장차 성취하려던 것이 과연 무슨 가치가 있고 소용이 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늘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은 아닐지라도, 할 수 있다면 좀 더 넓은 시야로 인생을 바라봐야겠다. 양이 아니라 질의 측면에서 봤을 때, 한 인생에 결국 어느 것이 더 유익할지 쉽게 속단할 수 없다. 보통 사람(凡夫)들의 소박한 바람이라면 무병장수(無病長壽)하는 것일 터인데, 그것이 늘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질 않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한 사람의 출생이 그 자신의 뜻과 상관없듯이,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제외한다면, 한 사람의 죽음도 그의 뜻과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질병과 관련하여 보면, 어떤 점에서 인간의 역사는 각종 난치병과의 싸움과 그 극복의 과정으로 점철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전으로 적지 않은 난치병이 이제 치료 가능하게 되었고, 또 의사와 환자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던 어제의 불치병이 조만간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재분류될 날이 올지라도, 새로운 불치병이 출현할 개연성은 엄존할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실존이 본래 시한부라는 명백한 사실이 외면될 수 없을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한 번 흘러 지나가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지금도 흐르고 있고, 그 시간의 흐름 따라 내 죽음의 때가 그 만큼 가까이 다가온다. 죽음의 때, 내 임종의 그 순간을 염두에 두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오늘 그리고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이 시간을 멋지고 맛갈스럽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2007.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