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들어 우리나라가 소위 IMF 금융위기를 맞아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쫏겨난때가 있었다.
`경쟁력`이란 말이 당시의 최고의 화두였다. 경쟁력이 없으면 국가건 기업이건 개인이건 퇴출을 감수하지않으면 안되었다. 그이래 모두들 소위 경쟁력을 갖추기위해 허둥거리고 있다.
당시 중견 외교관이었던 나도 심각히 나에게는 어떤 경쟁력이 있는지를 고민했었다.내가 외교부라는 울타리에서 쫏겨나면 과연 무었을 하며 살수있을까 하는것과 같은 고민이었다. 그때 남겨놓은 메모지에 의하면 내가 나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던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첫번째는 언어능력이었다.
나는 내자식들과 같이 어떤 특정언어(영어)를 모국어같이 자유자재로 구사할수는 없지만 영어 중국어 일본어등 3개언어를 일하는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로 구사할수있었다.
자연 한국어방송뿐만 아니라 CNN등 영어체널 또 CCTV 등 중국어체널 NHK등 일본어체널을 편하게 시청할수있었다. 내나이또래의 사람들과 비교했을때 이정도의 능력은 그래도 내가 내세울수있는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다. ( 외무고시 과목으로 선택했던 불어와 스페인어도 어느정도 기본은 남아 있으나 시험후에는 거의 쓰지않아 경쟁력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다고 생각됨)
두번째는 세계어느곳이건 큰 부담을 느끼지않고 여행하고 또 어떤 낯선 나라에 가서도 큰 고통을 느끼지않고 살수있을것 같은 능력이었다.
이게 무슨 능력이냐고 생각할지 모르는데 외교관으로서 많은곳을 여행하고 여러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해본 만큼 어떤 어려운 조건속에서도 생존(survive)할수있는것도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세련된 말로 표현하면 `국제화`되었다고 할까? 출장명령이 떨어지면 어디든지 찾아갈수있고 어떤곳에 발령이 나더라도 잘 적응하고 그나라의 문화나 풍습에 맞추어 일할수있는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 아닐까?
세번째는 이세상 이곳저곳에 아는 사람이 있고 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와도 편하게 만나고 사귈수있는 능력이었다.
생활의 반이상을 외국에서 보내다보니 이곳저곳에서 사람을 사귀었다 . 그중에는 정이 많이들어 친지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지금도 틈이나면 연락하고 지낸다. 굳이 말하면 글로벌한 네트워킹이라고 할까? 인맥형성이라고 할수도 있을것이다.
또 중견 외교관으로서 세계의 각양각색의 사람들, 한나라의 최고 통치자로부터 빈민들에 이르기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사람을 만난 경험이 많아 누구를 만나도 편하게 만날수있을것 같았다.어느나라의 국가원수나 또 세계적 비지니스맨 인기연예인 누구를 만나도 떨리지않고(?) 침착하게 만나고 할 이야기들을 다할수있을것 같았다. 소시민이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과 만나도 잘 어울릴수있을것 같았다. 친화력이라고 할까?
하여튼 이런것들이 내가 다른 사람과 구별할수있는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게 무슨 경쟁력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변호사도 의사도 아니고 교사자격증이 있는것도 아니고 근사한 외국 Law School 이나 MBA출신도 아니다. 그렇지만 어쨋든 그때엔 나에겐 그이외의 경쟁력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이래 세월이 좀더 지났지만 그이후 나에게 더이상 또다른 어떤 경쟁력이 생겼는지 잘 생각나지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의 명함이 추가된것이다. 특히 지난 3년 중국에 있으면서 중국의 정부인사 문화계인사들을 포함한 각계인사 천여명의 명함을 확보(?) 하였다. 어딘가에서 짧게 또는 길게 만남의 시간을 가졌던 사람들이다.그중에는 인간적으로 가까워져서필요시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도 꽤있다. 이것도 경쟁력이라고 할수있는지 모르겠다.
외교관은 은퇴할때면 남는게 여행용 가방뿐이라는 자조섞인 이야기를 선배외교관들로부터 들어왔는데 말이다.
직업외교관인 나의 경쟁력
90년대 후반들어 우리나라가 소위 IMF 금융위기를 맞아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쫏겨난때가 있었다.
`경쟁력`이란 말이 당시의 최고의 화두였다. 경쟁력이 없으면 국가건 기업이건 개인이건 퇴출을 감수하지않으면 안되었다. 그이래 모두들 소위 경쟁력을 갖추기위해 허둥거리고 있다.
당시 중견 외교관이었던 나도 심각히 나에게는 어떤 경쟁력이 있는지를 고민했었다.내가 외교부라는 울타리에서 쫏겨나면 과연 무었을 하며 살수있을까 하는것과 같은 고민이었다. 그때 남겨놓은 메모지에 의하면 내가 나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던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첫번째는 언어능력이었다.
나는 내자식들과 같이 어떤 특정언어(영어)를 모국어같이 자유자재로 구사할수는 없지만 영어 중국어 일본어등 3개언어를 일하는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로 구사할수있었다.
자연 한국어방송뿐만 아니라 CNN등 영어체널 또 CCTV 등 중국어체널 NHK등 일본어체널을 편하게 시청할수있었다. 내나이또래의 사람들과 비교했을때 이정도의 능력은 그래도 내가 내세울수있는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다. ( 외무고시 과목으로 선택했던 불어와 스페인어도 어느정도 기본은 남아 있으나 시험후에는 거의 쓰지않아 경쟁력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다고 생각됨)
두번째는 세계어느곳이건 큰 부담을 느끼지않고 여행하고 또 어떤 낯선 나라에 가서도 큰 고통을 느끼지않고 살수있을것 같은 능력이었다.
이게 무슨 능력이냐고 생각할지 모르는데 외교관으로서 많은곳을 여행하고 여러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해본 만큼 어떤 어려운 조건속에서도 생존(survive)할수있는것도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세련된 말로 표현하면 `국제화`되었다고 할까? 출장명령이 떨어지면 어디든지 찾아갈수있고 어떤곳에 발령이 나더라도 잘 적응하고 그나라의 문화나 풍습에 맞추어 일할수있는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 아닐까?
세번째는 이세상 이곳저곳에 아는 사람이 있고 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와도 편하게 만나고 사귈수있는 능력이었다.
생활의 반이상을 외국에서 보내다보니 이곳저곳에서 사람을 사귀었다 . 그중에는 정이 많이들어 친지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지금도 틈이나면 연락하고 지낸다. 굳이 말하면 글로벌한 네트워킹이라고 할까? 인맥형성이라고 할수도 있을것이다.
또 중견 외교관으로서 세계의 각양각색의 사람들, 한나라의 최고 통치자로부터 빈민들에 이르기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사람을 만난 경험이 많아 누구를 만나도 편하게 만날수있을것 같았다.어느나라의 국가원수나 또 세계적 비지니스맨 인기연예인 누구를 만나도 떨리지않고(?) 침착하게 만나고 할 이야기들을 다할수있을것 같았다. 소시민이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과 만나도 잘 어울릴수있을것 같았다. 친화력이라고 할까?
하여튼 이런것들이 내가 다른 사람과 구별할수있는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게 무슨 경쟁력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변호사도 의사도 아니고 교사자격증이 있는것도 아니고 근사한 외국 Law School 이나 MBA출신도 아니다. 그렇지만 어쨋든 그때엔 나에겐 그이외의 경쟁력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이래 세월이 좀더 지났지만 그이후 나에게 더이상 또다른 어떤 경쟁력이 생겼는지 잘 생각나지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의 명함이 추가된것이다. 특히 지난 3년 중국에 있으면서 중국의 정부인사 문화계인사들을 포함한 각계인사 천여명의 명함을 확보(?) 하였다. 어딘가에서 짧게 또는 길게 만남의 시간을 가졌던 사람들이다.그중에는 인간적으로 가까워져서필요시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도 꽤있다. 이것도 경쟁력이라고 할수있는지 모르겠다.
외교관은 은퇴할때면 남는게 여행용 가방뿐이라는 자조섞인 이야기를 선배외교관들로부터 들어왔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