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4. 15 난초화
난초(蘭草)
-이병기
1
한 손에 책(冊)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
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 볕이 발틈에 비쳐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孤寂)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 앉아 책을 앞에 놓아두고
장장(張張)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4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르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작자 소개
이병기 李秉岐 [1891.3.5~1968.11.29]
호 가람(嘉藍). 전북 익산(益山) 출생. 한성사범(漢城師範)학교를 졸업하고 보통학교 교사를 지내면서 고문헌(古文獻) 수집과 시조연구에 몰두, 1925년 《조선문단(朝鮮文壇)》지에 《한강(漢江)을 지나며》를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조시인으로 출발했다. 한편 한국고전(韓國古典)에 대한 주석 및 연구논문을 발표하여, 국문학자로서의 자리도 굳혔다. 1926년 최초로 시조회(時調會)를 발기하고 《시조란 무엇인가》 《율격(律格)과 시조》 《시조와 그 연구》 등을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였다.
1930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제정위원, 1935년 조선어 표준어 사정위원이 되고 1939년에 《가람시조집(嘉藍時調集)》을 발간, 《문장(文章)》지 창간호부터 《한중록주해(恨中錄註解)》를 발표하는 등 고전연구에 정진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사건에 연루되어 일경에 피검, 함흥(咸興) 형무소에 수감되어 l년 가까이 복역하다 1943년 가을에 기소유예로 출감한 후 귀향하여 농사와 고문헌연구에 몰두했다. 광복 후 상경, 미군정청 편찬과장,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고 각 대학에서 국문학을 강의했다. 1948년 《의유당일기(意幽堂日記)》 《근조내간집(近朝內簡集)》 등을 역주(譯註) 간행했고, 1954년 학술원회원이 되었으며, 이 해 백철(白鐵)과 공저로 《국문학전사(國文學全史)》를 발간, 국문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 분석했다. 시조시인으로서 현대적인 시풍을 확립하였고, 국문학자로서는 수많은 고전을 발굴하고 주해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난초화
2007. 4. 15 난초화 난초(蘭草) -이병기 1 한 손에 책(冊)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 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 볕이 발틈에 비쳐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孤寂)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 앉아 책을 앞에 놓아두고 장장(張張)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4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르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작자 소개 이병기 李秉岐 [1891.3.5~1968.11.29] 호 가람(嘉藍). 전북 익산(益山) 출생. 한성사범(漢城師範)학교를 졸업하고 보통학교 교사를 지내면서 고문헌(古文獻) 수집과 시조연구에 몰두, 1925년 《조선문단(朝鮮文壇)》지에 《한강(漢江)을 지나며》를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조시인으로 출발했다. 한편 한국고전(韓國古典)에 대한 주석 및 연구논문을 발표하여, 국문학자로서의 자리도 굳혔다. 1926년 최초로 시조회(時調會)를 발기하고 《시조란 무엇인가》 《율격(律格)과 시조》 《시조와 그 연구》 등을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였다. 1930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제정위원, 1935년 조선어 표준어 사정위원이 되고 1939년에 《가람시조집(嘉藍時調集)》을 발간, 《문장(文章)》지 창간호부터 《한중록주해(恨中錄註解)》를 발표하는 등 고전연구에 정진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사건에 연루되어 일경에 피검, 함흥(咸興) 형무소에 수감되어 l년 가까이 복역하다 1943년 가을에 기소유예로 출감한 후 귀향하여 농사와 고문헌연구에 몰두했다. 광복 후 상경, 미군정청 편찬과장,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고 각 대학에서 국문학을 강의했다. 1948년 《의유당일기(意幽堂日記)》 《근조내간집(近朝內簡集)》 등을 역주(譯註) 간행했고, 1954년 학술원회원이 되었으며, 이 해 백철(白鐵)과 공저로 《국문학전사(國文學全史)》를 발간, 국문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 분석했다. 시조시인으로서 현대적인 시풍을 확립하였고, 국문학자로서는 수많은 고전을 발굴하고 주해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